마정록 2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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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19화
219화
등경은 이를 갈았다.
정말 싸움을 더럽게 하는 놈들이었다.
무사가 싸우면서 암기부터 날리다니.
하지만 천사교도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전쟁에서 무사도가 무슨 소용이고, 정당함이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이기는 것!
그것만이 전쟁의 최고 목표였다.
그리고 지금 그 전쟁의 끄트머리에서 시작되는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목표는 최대한 피해를 입히는 것. 자신들의 죽음은 생각지 않았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기껏해야 반의반 각 정도.
천사교도들은 스물다섯 구의 시신을 남겨 놓고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철군성은 무사 십여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암기에 맞았다.
하지만 싸움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철군성 무사들이 사상자를 정리하고 독암기에 맞은 부상자를 손보고 있을 때 다른 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적이다!”
“놈들을 막아!”
“암기를 조심해라!”
한 곳이 아니었다. 비슷한 형태의 습격이 세 곳에서 더 벌어졌다.
천사교도들은 치고 빠지면서 마지막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정파연합 무사들을 괴롭혔다.
이각이 지나서야 싸움이 끝났다.
들리는 소리는 나직한 신음과 두려움에 찬 목소리, 욕설뿐.
“빌어먹을! 역시 독이 발라져 있었어.”
“무기도 독이 발라져 있습니다.”
“개자식들! 무인이란 놈들이 무기에 독을 바르다니.”
유원당은 천종원의 보고를 받고 이마를 찌푸렸다.
“피해가 얼마나 되오?”
“칠팔십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고 이백여 명이 경상을 입었습니다. 문제는 놈들의 암기와 무기에 독이 발라져 있어서 경상을 입은 자들도 속히 해독하지 않으면 움직이기가 곤란할 것 같습니다.”
대부분 지나치게 멀리 떨어져 있던 자들이 습격을 받았다.
적은 죽음을 각오한 듯 생존자를 남기지 않았다.
죽은 자는 적이 더 많지만, 정파연합 쪽은 그 이상의 숫자가 전쟁에 참여할 수 없는 상태였다.
‘놈들은 한 번의 공격으로 멈추지 않을 거다. 계속 흔들어서 혼란에 빠뜨리려고 하겠지.’
밤이 되면 더 날뛸 것이다. 그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물러나든지, 공격하든지.
이를 악문 유원당이 지시를 내렸다.
“가서 각 세력의 수뇌들을 모셔 오게.”
* * *
상주성 서남쪽에는 원중루(原中樓)라는 칠 층 누각이 우뚝 서 있었다.
높이가 워낙 높아서 성 밖이 다 보였는데, 오래전에 한 장수가 상주에 쳐들어온 적과 그 누각에서 큰 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장수는 결국 밑에까지 내려와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누각이 워낙 높다 보니 계단에 죽어 있던 무사가 삼백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장수를 기리기 위해 원중루를 삼백루(三百樓)라고 부르기도 했다.
북궁천은 당시 그 장수가 서 있었던 칠 층에서 성 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금천장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비록 보이는 것은 지붕뿐이었지만 북궁천의 눈에는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천사교 놈들이 습격해서 정파연합의 피해가 제법 크다고 합니다, 주군.”
호양곽의 보고를 듣고도 북궁천은 별반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그도 숙야돈이 가만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로서는 발악이라도 하고 싶겠지. 그래야 호연도광의 손에 죽지 않을 테니까.”
“오늘 붙을까요?”
뒤에서 장추람이 물었다.
“그럴 거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싸울 것인지 하는 것이 문제일 뿐.”
“변성까지 무너졌다면 정파연합이 유리하겠군요.”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북궁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천사교가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천사종 호연도광. 그는 앉아서 당할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의 예상을 비웃듯이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북궁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냉호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밤이 되면 정파연합이 불리할 테니 그 전에 공격할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서로 간에 시간을 오래 끌려고 하지 않을 거다. 천사교 입장에선 정파연합 쪽에 정파의 무사들이 모여드는 것이 걱정될 것이고, 정파연합으로선 천사교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빨리 끝내고 싶겠지.”
북궁천은 결론을 내리듯 말을 맺었을 때 노중문이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 금천장에서 무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몇이나 나왔지?”
“삼사백 정도 된다고 합니다. 혈문의 무사와 천사교도들이 섞여 있는 것 같습니다.”
“이동 방향은?”
“북쪽입니다.”
변성에서 후퇴한 이백여 명이 금천장에서 십오 리 떨어진 외곽에 방어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섬서연합 무사들은 천사교와 너무 가까워서 함부로 공격을 못 하는 상태.
그곳을 방어하기 위해서 지원을 나가는 듯했다.
이마를 찌푸린 채 눈을 반쯤 감고 잠시 머리를 굴린 북궁천이 냉소를 지었다.
“그곳이 막히면 재미가 없지.”
* * *
유시 초.
금천장의 정문이 열리고 무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백오십은 마종보의 총호법인 철검마신 누광이 이끌고, 삼백삼십은 야랑군주 야율수가 이끌었다.
총 오백팔십.
그들은 넓게 퍼진 채 정파연합이 있는 여명산 기슭 코앞까지 전진했다.
잠은각 무사들이 금천장에 접근을 할 수 없는 상황. 정보망이 차단된 사이 금천장에서 오백여 명이 동문과 서문을 통해서 더 나왔다.
그들은 좌우로 돌아서 여명산을 향해 달렸다.
시시각각 소식이 천종원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잠은각 대원이 접근하지 못하는 이상 정보는 단절될 수밖에 없었다.
“놈들의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저 앞에 있는 자들 외에 또 움직인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원당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결국 저들은 우리의 눈을 막기 위해서 나온 자들이라는 말이군.”
기다리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빠르게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어둠이 밀려들면 불리한 것은 정파연합이다. 언제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
유원당 역시 적의 움직임에 대응할 준비를 해 둔 터였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럼 우리도 움직이세.”
“알겠습니다, 총군사.”
잠시 후.
모두 이천여 명. 여덟 조로 나누어진 정파연합 무사들은 여명산 기슭을 떠나 금천장으로 향했다.
코앞까지 다가왔던 천사교 무리가 일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정파연합 무사들은 굳이 그들을 쫓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전진했다.
십 리를 가자 피로 물든 평원이 나왔다.
수천 마리 까마귀 떼가 먹물을 흩뿌린 것처럼 평원을 시커멓게 뒤덮고 있었다.
정파연합 무사들이 접근하자 까마귀 떼가 무리를 이루며 날아오르고, 하늘이 새카맣게 변해 버렸다.
그들은 동료의 피를 밟으며 전진했다.
아직 다 가시지 않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먼저 갔음을 아쉬워하지 마라, 형제들이여!
하늘에서 바라봐 다오, 친구들이여!
저 사악한 천사교를 무찔러 그대들 영전에 바치리라!
속으로 각오를 다진 그들은 떨어지는 햇살에 금빛으로 물든 지붕이 보일 때쯤 걸음을 멈췄다.
저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천사교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언제 나왔는지 오백여 명이 더해져서 숫자가 일천이 넘을 듯했다.
* * *
금천장과 정파연합이 급박한 움직임을 보이던 그 시각.
북궁천은 장추람과 적풍, 임표와 담운, 그리고 삼대세력에서 고르고 고른 고수 삼십을 대동하고서 상주를 빠져나왔다.
삼대세력 고수들 중에도 나름대로 한가락 하는 자들이 다수 섞여 있었다.
초절정경지의 고수는 없었다. 하지만 천사교가 싫어서, 용꼬리 대신 뱀 대가리라도 되는 게 낫다 싶어서 삼대세력에 머물던 절정고수가 열한 명이나 되었다.
거기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로 있다가 나중에 초청을 받고 가입한 고수도 상당수였다.
천사교나 정파연합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강호의 어느 문파 못지않은 전력이었다.
기련검마와 싸우면서 내상을 입은 냉호와 등에 상처를 입은 철교신은 벽성장에 남겨 놓았는데, 처음에는 당연히 반발하며 함께 가겠다고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주군.”
“잔소리 말고 내 말대로 해. 너희는 남아서 단숙과 함께 진아를 지켜.”
“정말 괜찮습니다, 주군.”
“이 정도는 모기에 물린 것 정도라니까요?”
“진아를 지키는 일이 천사교를 무너뜨리는 것보다 더 중요해. 그러니 너희는 그 일만으로도 충분히 임무를 다하는 거다. 만약 내가 돌아왔을 때 진아에게 이상이 있으면 알아서 해.”
결국 북궁천은 진아의 안전을 들먹이며 두 사람을 눌러 앉혔다.
그렇게 상주를 빠져나온 북궁천 일행은 천사교 무리가 섬서 무사들을 막기 위해 진을 치고 있다는 곳으로 향했다.
그로부터 이각 후.
그들은 천사교의 방어진이 있는 향촌 외곽에서 오 리 떨어진 야트막한 야산에 도착했다.
향촌은 금천장으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요지였다. 향촌을 피해서 돌아가려면 적어도 삼십 리는 더 우회해야 했다.
그런데 풍요롭고 평화스런 마을의 주인이 언제부턴가 주민에서 천사교 무리로 바뀌었다.
천사교 무리가 백여 호쯤 되는 향촌을 장악한 채 주민들을 한곳으로 몰아넣고 가옥 절반 정도를 자신들이 차지한 것이다.
“듣기로는 마을의 아녀자들을 겁탈하고 반항하는 남자들은 처참하게 죽였다고 합니다.”
호양곽이 향촌에서 들려온 소문을 전했다.
향촌을 바라보던 북궁천의 표정에서 찬바람이 불었다.
지금까지 본 대로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놈들이었다.
“죽어도 싼 놈들이군. 놈들을 지옥으로 보내 주면 염라대왕이 좋아하겠군.”
그때 상주를 먼저 나와서 섬서연합의 움직임을 살피러 갔던 노중문과 곽태문이 달려왔다.
“주군, 섬서의 무사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동 속도로 봐서는 곧 도착할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다.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서 향촌으로 들어오는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저만치서 혈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모두 준비해.”
화산파 제자들이 왼쪽을, 종남파 제자들이 오른쪽을 맡았다. 그리고 중앙은 진평천이 이끄는 섬서의 정파 무인들이 책임졌다.
그들의 숫자는 천사교 무리와 비슷했지만, 대부분이 고르고 고른 고수들이었다.
천사교 무리를 향해 내달린 그들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공격하라! 마도 놈들을 쳐라!”
“정파의 위선자 놈들을 막아라!”
천사교도들도 사력을 다해서 공격을 막았다.
금천장에서 삼백오십여 명이 달려와 이제는 숫자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전면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즈음, 북궁천은 대동한 사람들과 함께 천사교 무리의 후면으로 접근했다.
갑자기 뒤에서 한 무리의 무사들이 나타나자 천사교 무리 중 하나가 당황해서 물었다.
“어디서 온 자들이냐?”
“너희들을 지옥으로 보내 주려고 온 사람들.”
북궁천이 담담하게 대꾸하며 묵혼을 휘둘렀다.
이 장 앞에 서 있던 천사교 무사의 목이 스르르 옆으로 미끄러지더니 피분수를 뿜으며 떨어졌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장추람과 적광, 삼대세력의 고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튀어나갔다.
“적이다!”
“적이 뒤에서도 공격한다!”
뒤늦게 천사교도들이 악을 썼다.
하지만 섬서연합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던 그들로서는 북궁천 일행을 막을 만한 인원이 없었다.
북궁천이야 말할 것도 없고, 장추람과 적광은 그야말로 피를 갈구하는 혈귀처럼 적을 쓰러뜨렸다.
그들의 검광 도광이 번뜩일 때마다 두어 명씩 쓰러지니 혈문의 무사와 천사교도들은 대항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삼대세력에서 뽑은 고수들도 그간 근질근질하던 손발을 마음껏 풀었다.
삼대세력의 주인이 마제를 주인으로 모셨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잘 보여야 나중에 한자리 차지할 수 있을 터. 마제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냈다.
일부는 그저 싸움이 좋아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전력을 다했고.
순식간에 일백여 명이 무너졌다.
전체 전력 오백에서 일백의 피해는 무척이나 컸다.
앞쪽에서 싸우던 천사교 무리는 뒤가 무너지자 당황해서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진 노사! 언제까지 꾸물거리면서 싸울 거요?”
북궁천이 소리쳤다.
진평천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용기백배해서 대소를 터트렸다.
“와하하하! 자네가 왔군! 모두 힘을 내서 공격하시오! 북천의 주인이 우리를 돕기 위해서 왔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