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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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17화
217화
삼대세력의 주인은 북궁천에 대해서 더 이상 평대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소랑은 달라질 줄을 몰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풍척은 그런 딸에 대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딸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볼 때마다 걱정이 앞섰다.
‘저런 성격 때문에 북혈회에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북혈회주로서 회를 걱정하는 마음과,
‘저러다 시집도 못 가는 거 아닐까?’ 하는 순수한 아버지로서의 우려가 복합된 마음이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걱정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더 문제다.
사실 세 사람은 밝은 표정과 달리 살얼음 위를 걷는 마음이었다.
정파연합과 천사교.
어느 쪽도 그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산이었다.
삼파가 힘을 합쳤으니 재채기에 날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대결이라는 말을 하기가 무안할 정도로 힘에서 차이가 났다.
“저, 궁주. 앞으로 저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설문이 먼저 물었다.
북궁천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명령하듯이 말했다.
“천사교로 보낸 무사들을 모두 철수시키쇼.”
그 말에 적주원이 눈을 크게 떴다.
“괜찮겠소?”
“천사교로선 당연히 화를 내겠지만, 당장 이곳에 신경 쓸 정신은 없을 거요.”
연풍척과 설문이 북궁천의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정파연합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만약 그들이 이긴다면 우리를 보고만 있진 않을 것 아니오?”
연풍척의 질문에 북궁천이 유원당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당신들이 철수한 것만으로도 그들은 기회를 줄 거요. 닷새 정도면 정리하기에 적당한 시간 같은데. 그때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으면 상관없는 일이고.”
“물론 그 정도면 충분하오. 그런데 우리가 떠날 때 그들이 뒤쫓아 오면……?”
“쉽게 그러지 못할 거요. 나와 적이 될 생각이라면 몰라도.”
그제야 연풍척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그런데 적주원이 넌지시 물었다.
“천사교가 이기면 어떻게 되는 거요?”
연풍천과 설문도 잔뜩 궁금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북궁천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할 것 없소. 현재 두 세력의 전력은 비슷하오. 설령 천사교가 승리한다 해도 피해가 막대할 것이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거요.”
“그 말씀은……?”
“사냥할 힘이 없어진 호랑이는 늑대 밥이 되는 게 자연의 섭리요.”
그 말을 들은 네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주의 삼대세력이 천사교를 잡아먹을 수도 있다! 그런 말 아닌가 말이다.
물론 조건이 있었다.
북천마제 북궁천이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때였다.
연소랑이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줘.”
연풍척과 적주원, 설문이 흠칫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북궁천이 그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않자 그녀가 다시 말했다.
“남들 눈치 보면서 도망치듯 떠나고 싶지 않아. 떠나더라도 당당하게 떠나고 싶어. 허락한다면, 서마련과 남패령은 어떻게 할지 몰라도 우리 북혈회는 당신을 따라가겠어.”
“북천궁 사람이 되겠다는 거냐?”
“전에 그랬잖아, 갈 곳이 마땅치 않으면 좋은 곳 소개시켜 준다고. 그때 북천궁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냐?”
그랬었다.
북궁천도 부정하지 않았다.
“맞아. 그런데 네 생각이 북혈회 전체의 생각이라고 할 순 없잖아?”
그 말에 연풍척이 북궁천을 직시했다.
“북혈회의 생각이라고 여겨도 좋소.”
사실 그와 연소랑은 북궁천이 북천마제라는 걸 안 이후 나름대로 결정을 내린 터였다. 때를 기다리느라 아직 말을 못 했을 뿐.
북혈회가 통째로 수중에 들어오는데 마다할 북궁천이 아니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북혈회는 북천궁 조직으로 생각하지.”
그러자 설문이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 서마련도 가고 싶은 사람들은 궁주를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
“함께 갈 거요?”
“데려가 주신다면…….”
지금 천사교와 등을 지면 혈문이나 마종보와도 등을 지는 셈이다.
그들이 손을 쓰지 못할 곳으로 멀리 떠나야 하는데, 어차피 떠날 거라면 북천궁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제 남패령만 남은 상황.
적주원은 화끈한 성격답게 고민하지 않았다.
“나도 따라가지 뭐!”
그는 다시 만난 동생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따로 살길을 찾아가겠다는 애들은 듬뿍 집어 주면 되지 않겠수?”
그동안 삼대세력을 아우르긴 했어도 하나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하나가 되었다.
북천마제 북궁천이 이끄는 세력!
천하의 어느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세력이 탄생했다.
천사교와 정파연합으로선 생각조차 못 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북궁천은 혼자서만 생각하고 있던 일이 연소랑의 말을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자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호연도광에게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해 주는 일만 남았다.
‘내 너를 반드시 지옥으로 보내주마, 호연도광.’
* * *
호연도광은 가슴에 쌓인 분노를 털어 내고 침체된 사기를 북돋기 위해 수뇌부를 소집했다.
정파연합의 힘이 막강하다는 것은 그도 인정했다. 그러나 유원당이 없는 이상 머리 없이 힘만 센 불곰이나 마찬가지였다.
유원당 대신 구심점이 될 영허진인은 모사가 아니고, 공손후나 제갈상은 애송이로 보일 뿐.
북궁천이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고수 다섯이 합공한다면 북궁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라.
호연도광은 나름대로 계산을 마치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금화전에는 천사교의 수뇌부와 혈문, 마종보의 주요 간부, 그가 초청한 고수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막강한 전력!
자신감에 찬 그는 어깨를 펴고 소리쳤다.
“이제부터 놈들을 공격할 것이다! 모두들 각오를 단단히 하고 놈들을 쳐부수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하라!”
기이한 떨림이 있는 그의 목소리는 장중의 마도고수들 가슴을 흔들었다.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영원불멸의 마도세상을 위하여!”
천사교 간부들과 마도고수들이 들뜬 가슴으로 소리칠 때 금화전 안으로 대여섯 사람이 들어왔다.
그들 중 선두에 서서 들어오는 자는 핏빛 붉은 장포를 걸친 쉰 살가량의 중년인이었다.
각진 얼굴에 주먹코, 길게 찢어진 눈은 마주 보기 힘들 정도로 차가웠고, 걸음걸음에서는 천하를 오시하는 힘이 느껴졌다.
그를 본 호연도광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하하! 어서 오시오, 척 형!”
“조금 늦었소이다!”
붉은 장포의 중년인이 포권을 취했다.
그를 알아본 몇 사람이 놀라서 소리쳤다.
“척 곡주 아닌가?”
“이제 영허진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구먼!”
현현마종(玄玄魔宗) 척발산.
중원마도를 통틀어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절대고수. 영허진인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실력을 지닌 자.
척발산은 세력을 이루지 않고 대파산 혈곡에 머물며 제자만 키웠다.
강호 활동도 드물어서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몇 안 되었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강호에서 이십 년 이상 굴러먹은 자들이었다.
호연도광은 그가 오자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번에 초청한 자들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고수가 바로 그였다.
늦어서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가장 중요한 시기에 나타나다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먼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별말씀을. 이 척 모가 정파의 떨거지들 목을 치는 일에 빠지면 되겠소?”
“허허허허, 척 형의 말을 들으니 든든하구려.”
척발산은 뒤를 돌아보았다.
“이 녀석들은 척 모가 아끼는 제자들이오. 뭐 하느냐? 교주께 인사를 올려라?”
그의 뒤에 서 있던 삼십 대 장한 넷이 두 손을 맞잡고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천사종을 뵙습니다!”
하나같이 고수의 풍모가 느껴지는 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키가 크고 얼굴이 긴 말상의 장한은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호연도광은 한꺼번에 고수가 다섯 명이나 늘어나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잘 왔네. 우리 함께 정파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도록 하세!”
* * *
북천마제가 아기를 구해 냈다는 소식은 정파연합의 귀에도 들어갔다.
백리진과 사공강후 등 정파연합의 수뇌부 중 북궁천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북궁천을 싫어했던 사람들조차도 그와 싸워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는 것에 안도했다.
천사교와의 싸움을 앞둔 지금으로서는 그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었다.
그렇게 유원당과 임강령이 사라지면서 침체된 정파연합의 분위기가 반전되어 갈 때였다.
금천장 정문에 피범벅이 된 머리 두 개가 내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대에 꽂힌 채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그 머리의 주인이 유원당과 임강령이라는 소문이 들불처럼 번졌다.
정파연합에도 곧 그 소식이 전해졌는데, 군웅들은 그 소문을 듣고 대경했다.
두 사람이 사라졌다는 말에 걱정이 태산 같았던 정파연합 수뇌부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었다.
“총군사와 임 대협의 머리가 내걸렸다고? 그게 사실인가?”
남궁원이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소식을 전한 천종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남궁 가주.”
“그게 무슨 소린가? 그럼 총군사와 임 시주가 정말 천사교에 당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천종원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아니라…….”
왠지 괴이한 표정.
남궁원은 물론이고 곁에 있던 군웅들이 천종원을 주시했다.
더욱 괴이한 것은 당연히 놀라야 할 서너 명이 놀라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이라는 것이었다.
공손후, 제갈상, 백리진, 그리고 영허진인이.
관호명은 뭔가 숨겨진 일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 천종원을 다그쳤다.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보게나! 답답하게 하지 말고!”
그때 한쪽에 앉아 있던 사공강후가 벌떡 일어나더니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총군사! 임 대협!”
군웅들이 일제히 소리친 곳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숲 안쪽에서 유원당과 임강령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졌다는, 머리가 금천장 정문에 내걸렸다는 그 주인공들이.
그리고 그들 옆에는 그들을 찾으러 떠났던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함께 있었다.
삼십여 명의 군웅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들이 다가오는 걸 바라보았다.
잠시 후, 군웅들 앞에 그들이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 드렸습니다.”
유원당이 두 손을 맞잡은 채 깊숙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관호명은 남들이 아는 일을 자신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기분이 상한 듯 인상을 쓰며 유원당을 바라보았다.
“허어!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총군사?”
유원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 이해해 주십시오, 관 대협.”
이번에는 어깨가 피로 물들어 있던 선우명이 다그치듯 물었다.
“이보시오, 총군사. 금천장 정문에 내걸렸다는 머리는 또 뭐요?”
유원당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마 제 머리가 맞을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북궁 궁주에게 저와 임 대협의 머리를 갖다주고 아기와 교환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임 대협의 머리가 정문 위에 걸린 거지요.”
“그러니까 가짜 머리로 호연도광을 속였단 말이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가짜 머리로 천사종 호연도광을 속이고 마제의 아기를 구하다니!
그러나 유원당의 행동이 못마땅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한 사실을 왜 미리 말하지 않은 거요? 모두들 정말 사라진 줄 알고 걱정했잖소?”
선우명의 목소리에서 기분 상한 감정이 묻어 나왔다.
다른 사람들 몇몇도 유원당 독단으로 진행한 계획을 질책했다.
“그건 정말 총군사가 잘못했소이다.”
“우리를 그리 믿지 못해서야 원…….”
“가짜 머리로 적을 속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계책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단 말이오?”
“이제 봤더니 총군사의 눈에는 우리가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구려.”
그때 무당의 장로인 청원도장이 눈살을 찌푸리며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결국 우리들 몰래 마제와 협상을 했다는 뜻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