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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211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3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211화

 

211화

 

 

 

 

 

 

 

<찬성하면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거야. 하지만 반대하면…… 당신부터 죽여 버리겠어.>

 

등골이 절로 오싹해지는 목소리.

 

찔끔한 숙야돈은 나름대로 고민한 표정을 지으며 호연도광의 질문에 대답했다.

 

결정은 교주가 하는 것. 어차피 자신의 말은 일 푼의 값어치도 없었다.

 

“교주, 유원당과 임강령은 정파연합에서 머리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만 제거한다면 앞으로도 천하를 향한 발걸음이 보다 순조로울 것입니다.”

 

호연도광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차갑고도 사이한 눈빛으로 북궁천을 바라보더니 또박또박 말했다.

 

“좋다. 네 의견을 받아 주마. 단,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그들의 머리를 가져와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네 아기의 팔이 하나 사라질 것이니라.”

 

‘이 비겁한 개자식이!’

 

북궁천은 치미는 분노에 심장이 숯덩이처럼 타올랐다.

 

하지만 가까스로 감정을 억누르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서 뚜벅뚜벅 금화전을 나섰다.

 

빠지직! 빠지직!

 

그의 분노를 대변하듯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단단한 청석이 부서지며 푹푹 파였다.

 

 

 

* * *

 

 

 

하늘이 밝아 오면서 정파연합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그들은 적의 공격에 철저히 대비를 한 채 느린 속도로 여명산의 고갯길을 넘었다.

 

굳이 고개를 넘을 것 없이 산을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지체하는 것도 문제고, 뒤에 적을 두어서 좋을 게 없었다.

 

천사교 무리는 정파연합의 전진을 차단하기 위해 독이 묻은 암기와 화살로 공격했다.

 

선두에 선 정파연합의 고수들은 싸릿대 묶음에 입고 있던 장포를 두르고 공력을 주입해서 휘둘렀다.

 

소나기처럼 날아들던 암기와 화살 대부분이 그들의 방어벽에 막혀서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천사교 무리가 지닌 암기와 화살의 수에는 한계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암기와 화살비가 멈췄다.

 

“공격하시오!”

 

“놈들을 쳐라!”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 공격 명령이 여명산을 뒤흔들었다.

 

참고 참았던 정파연합 무사들이 눈빛을 번뜩이며 날듯이 고개 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단숨에 적진 속으로 뛰어든 그들과 천사교 무리가 뒤엉켰다.

 

살이 갈라지고, 사지가 잘리고, 여기저기서 시뻘건 피분수가 뿜어졌다.

 

“으아악!”

 

“죽어라, 이놈들!”

 

“어림없다!”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정파의 위선자 놈들을 막아라!”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크억!”

 

비명과 악다구니가 끊이지 않고 메아리치면서 여명산의 아침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들었다.

 

 

 

천사교 무리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후퇴를 시작할 즈음, 금천장에 사백여 명의 무사들이 들어섰다.

 

마침내 마종보의 무사들마저 도착한 것이다.

 

마종보의 보주인 한초균은 몸이 안 좋아 오지 못했다. 대신 총호법인 철검마신(鐵劍魔神) 누광이 수하들을 끌고 왔다.

 

정파연합이 여명산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도착하고 이각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호연도광의 입에서 냉혹한 명령이 떨어졌다.

 

“가서 놈들에게 지옥의 맛을 알려줘라!”

 

곧 금천장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천사교와 혈문과 마종보의 무사 이천여 명이 장원을 나섰다.

 

그때부터 하늘마저 터뜨릴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상주 일대를 짓눌렀다.

 

 

 

* * *

 

 

 

정파연합이 여명산 고갯길을 넘던 그 시각.

 

변성에서 북쪽으로 삼십 리 떨어진 양곡에 진을 치고 있던 섬서연합이 움직였다.

 

그들은 변성 공격 실패 후 이제나저제나 때만 기다렸다.

 

그런데 정파연합에서 연락이 왔다.

 

해가 뜨기 전 변성을 공격하라는 것이다. 정파연합도 시간을 맞춰서 여명산을 넘을 거라며.

 

진평천과 명진도장, 송광도장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변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동녘이 밝아 오자 변성 공격을 시작했다.

 

그들의 각오는 전과 또 달랐다.

 

“인정사정 봐줄 것 없다! 간악한 놈들의 숨통을 끊어서 사형제들의 복수를 해주어라!”

 

그들에게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할 의무 아닌 의무가 어깨에 얹어져 있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쓸어버려라!” 

 

 

 

변성에 있는 무사 수는 전과 비슷했다. 그러나 정예무사들이 상당수 되돌아간 상황이었다.

 

게다가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백여 명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그들은 대부분 상주의 삼대세력에 속한 자들로 정예무사를 빼내고 머릿수를 맞추기 위해서 보내진 자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중요한 무사는 아니라지만 백 명이 넘는 인원이 갑작스럽게 빠져나가자 방어벽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방어벽이 뚫렸다! 놈들을 쳐라!”

 

와아아아아!

 

“화산파 제자들은 왼쪽을 뚫어라!”

 

“종남의 제자들아! 저 사악한 놈들에게 종남의 검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려 줘라!”

 

사기가 충천한 섬서연합 무사들은 그동안 쌓인 분노를 풀겠다는 듯 천사교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그렇게 싸움이 벌어진 지 반 시진. 마침내 섬서연합은 천사교를 쫓아내고 변성을 차지했다.

 

천사교가 발호한 이후 처음으로 거둔 대승이었다.

 

하지만 진평천과 명진도장, 송광도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전열을 정비했다.

 

변성을 차지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전쟁의 아가리에 한 발 내디딘 것뿐.

 

 

 

 

 

 

 

5장. 그들이 그곳에 간 까닭은

 

 

 

 

 

네 곳의 고개를 통해서 여명산 산줄기를 넘어온 정파연합은 삼중으로 된 진세를 형성한 채 금천장을 향해 나아갔다.

 

평원의 결전이 될 가능성이 컸다.

 

선두는 언제든 학익진(鶴翼陣)을 펼칠 수 있는 일자장사진(一字長蛇陳)을 형성했다.

 

중위는 공격이 시작되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게끔 중앙에서 자유롭게 움직였다.

 

그리고 후위는 상황에 따라서 양쪽으로 움직여 적을 포위할 수 있는 음양진(陰陽陣)을 펼친 채 뒤를 따랐다.

 

전체를 따지면 삼재진 형태.

 

따로 진세의 기동을 연습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으로선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진세를 펼치는 수밖에.

 

천사교 무리는 금천장에서 나온 자들과 여명산에서 후퇴한 자들이 합류했다. 

 

그들은 다섯 겹으로 된 일자형 진세, 일명 오선진으로 정파연합을 맞이했다.

 

정과 마, 두 세력은 바람이 세차게 부는 상주평원에서 마주쳤다.

 

휘이이이잉!

 

하늘이 오만한 인간들의 싸움에 짜증이라도 나는 듯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후우우웅!

 

뿌연 황사바람이 상주평원을 거칠게 휩쓸었다.

 

점점 줄어드는 거리.

 

말이 필요 없었다.

 

벼르고 별렀던 적이 코앞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굳은 표정으로 전진하던 정파연합 무사들은 천사교 무리와의 거리가 삼십여 장으로 줄어들자 무기를 빼들었다.

 

“놈들을 쓸어버려라!”

 

“악의 무리를 지옥으로 보내버리자!”

 

상주평원의 천공을 뒤흔드는 외침! 

 

누가 외치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무기를 든 정파연합 무사들은 땅을 박차고 일제히 내달렸다.

 

쏴아아아아아!

 

일자장사진의 중앙이 벌어지며 고수 삼십여 명이 학의 부리처럼 밀고 나왔다.

 

양 끝은 날개처럼 휘어지고, 그 중간중간에서 고수들이 날카로운 발톱처럼 튀어나왔다.

 

마치 거대한 독수리가 바람을 가르고 먹이를 향해서 몸을 날리 듯 거센 기세였다.

 

학익진(鶴翼陣)이라기보다는 응익진(鷹翼陣)이 더 어울리는 광경.

 

둥둥둥둥둥!

 

천사교 쪽에서도 급박한 북소리가 울렸다.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정파의 위선자들 피로 평원을 붉게 물들여라!”

 

오 열로 늘어서 있던 천사교 무리도 땅을 박차고 마주 달려갔다.

 

그리고 그 직후!

 

두 세력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수장들의 멋진 대결?

 

웃기는 소리였다. 그럴 마음도, 정신도 없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전쟁!

 

적당히 싸우다가 끝날 싸움이 아니었다.

 

―사악한 자들을 제거해서 강호의 정의를 지키리라!

 

―정파의 위선자들 피로 강호를 물들여서 천사교의 세상을 이루리라!

 

죽여라! 죽여라!

 

수천 자루 무기가 햇빛에 반사되어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으아악!”

 

“막아!”

 

“죽을 때 죽더라도 한 놈이라도 죽이고 죽어라!”

 

비명을 자양분 삼아서 피어난 혈화가 순식간에 상주평원을 뒤덮기 시작했다.

 

뿌옇던 황사바람이 핏빛 혈풍으로 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시간이 제법 지났건만 어느 한쪽도 크게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팽팽한 접전!

 

선두에서부터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잠깐 사이, 쓰러진 사람의 숫자만 양쪽 합해서 칠팔백에 이르렀다. 

 

부상자는 그 배도 더 되었다.

 

그럼에도 양측의 무사들은 광기에 젖은 사람처럼 미친 듯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특히 천사교도들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지독했다.

 

그들은 죽기 직전까지 천사의 세상을 외치며 달려들었다. 

 

갈라진 배에서 쏟아지는 내장을 한 손으로 움켜잡은 채 칼을 휘두르는 자도 있었고, 팔다리가 잘린 자들조차 피를 뿜어내면서 죽기 전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살기가 충천한 정파연합 무사들도 그들 못지않았다.

 

광기에 물들어 핏발이 선 눈을 부릅뜬 그들은 살을 가르고 목을 베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목을 쳐!”

 

 

 

그 즈음,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격전을 지휘하던 숙야돈은 변성에 대한 소식을 듣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야? 변성이 무너져?”

 

“예, 사교령! 새벽에 화산파와 종남파를 비롯한 섬서의 정파 놈들이 쳐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들이 움직일 거라는 예상을 못 한 것은 아니다. 변성에 남은 전력이 약하다는 것도 익히 아는 일이고. 그렇다 해도 예상보다 너무 쉽게 무너져 버렸다.

 

뭔가가 뒤틀린 느낌. 느낌이 더럽다.

 

“제기랄! 골치 아프게 흐르는군.”

 

이마를 잔뜩 찌푸린 숙야돈이 전령에게 물었다.

 

“교주님께선 뭐라 하시더냐?”

 

“살을 주고 뼈를 취해서라도 놈들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히라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숙야돈의 눈빛이 독랄하게 번뜩였다.

 

 

 

한편, 영허진인은 중앙에서 기련검마 위지완과 혈왕 나종백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토록 격렬한 혈전의 와중에도 세 사람 주위 방원 십 장 안으로는 아무도 들어서지 못했다.

 

감숙제일고수라는 기련검마의 검은 삭풍처럼 사나웠고, 혈왕의 장력은 사천의 산악처럼 무겁고 독했다.

 

영허진인은 하늘을 품듯이 고요한 검세로 그들의 공격을 아우르며 한 치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천지를 뒤엎을 것 같은 공세도 영허진인이 검으로 구궁을 짚고 태극을 그리면 기세를 꺾고 순한 양처럼 변했다.

 

기련검마와 혈왕의 실력이 천지를 진동한다 해도 일대일이라면 영허진인의 삼십초 상대였다.

 

하지만 자존심을 버린 두 사람의 합공은 도성 영허진인이라 해도 한눈을 팔 수 없을 만큼 사납고 강력했다.

 

사실 자존심이 강한 두 사람이 합공을 하는 것 자체가 의외였는데, 그 뒤에는 호연도광의 권유 아닌 권유가 있었다. 지금은 그들도 영허진인의 강함을 인정하고 있지만.

 

“정말 대단하구나, 말코!”

 

기련검마가 이를 갈면서 전 공력을 검에 주입하고 영허진인의 검세를 부수려 했다.

 

혈왕 역시 자신의 독문무공인 혈천장법을 펼쳐서 기련검마의 공세와 손발을 맞췄다.

 

콰과광! 쩌저저적!

 

대지와 하늘이 쩍쩍 갈라지고 터져 나갔다.

 

초원의 풀들이 가루가 되어서 녹색 바람이 회오리쳤다.

 

천하에 그들의 합공을 막아 낼 자 몇이나 되랴!

 

그럼에도 영허진인은 두 사람의 거센 공격을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막아 냈다.

 

그의 검은 형(形)이 없었다. 형을 버리고 의기(意氣)만으로 검을 펼치는 절대의 단계.

 

푸르른 검신에서 뻗어 나간 강기는 무당산의 바람처럼 부드럽게 공간을 지배했다.

 

기련검마와 혈왕은 그러한 영허진인의 검에 자신들의 강력한 공격이 맥없이 스러지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빌어먹을! 곧 죽을 늙은 말코가 이렇게 강하다니!’

 

‘어떻게 해서든 이 늙은이를 죽여야 돼!’

 

그렇게 세 사람의 격전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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