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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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47화
347화
무겁게 가라앉았던 무원장에 활기가 돌았다.
언제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날이 서 있던 고수들 때문에 숨도 제대로 못 쉬었던 사람들은 무천이 돌아오자 표정부터 달라졌다.
질문도 쉴 새 없이 쏟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어딜 갔다 온 거야?”
“정말 정혈단을 쫓아간 건가?”
“설마 설아 놔두고 다른 여자 만나러 간 건 아니지?”
심지어 동대안은 눈치도 없이 그렇게 물었다가 은설에게 옆구리를 꼬집히기도 했다.
무천은 그 많은 질문에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사마신을 제거했습니다.”
“…….”
“정혈단원 중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 백오십 명쯤 되는데, 앞으로는 저를 주인으로 모시겠다고 하더군요.”
“……!!”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오죽하면 철명군조차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세상에! 혼자 정혈단을 쫓아가서 사마신을 죽이다니!
뭐? 살아남은 그 미치광이 혈귀들이 무천을 주인으로 모신다고 했다고?
그 말인 즉, 정혈단도 완전히 끝장났다는 말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반각쯤 지나자, 질문이 배는 더 많아졌다.
결국 은설이 나섰다.
“그만 좀 해요! 오빠 옷 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요? 좀 쉬어야 한다구요!”
요 며칠 은설은 얼음마녀 같은 모습이었다.
따뜻한 봄날의 날씨인데도 그녀 옆에만 가면 눈발이 날리는 듯했다.
누구도 그녀의 성질을 건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선지 그녀가 째려보자 모두 입을 닫았다.
하지만 무천은 옷을 갈아입은 후 바로 회의를 소집했다. 그동안 쌓인 일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무원장의 간부 외에도 비천과 밀소림의 수장들이 함께 했다.
은설은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무천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
주금화가 보낸 전령이 찾아온 것은 이틀 후였다.
무천은 전령이 건네준 전서를 읽어보고 냉소를 지었다.
[때가 된 것 같군. 자넨 자네 일을 하게. 나는 사흘 후 황궁으로 가기 위해 남양을 떠날 거네.]
고개를 든 그가 전령에게 물었다.
“그대 주인에게 전해라. 주성유는 건들지 말라고. 나와 친구 먹기로 한 사이니까.”
전령은 슬쩍 고개를 들었다가 바로 다시 숙였다.
“그대로 전하지요.”
“건드리면, 내가 얼마나 독한 놈인지 알게 될 거라고 전해.”
전령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정말 그렇게 말씀드려야 합니까?”
“그래. 한마디도 틀리게 전하면 안 된다. 원래 권력을 쥐게 되면 사람들이 엉뚱한 생각을 하거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황궁에 쌀 한 톨 들어가지 못하게 할 거야. 그리고 아마, 그 양반은 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게 될 거다.”
“……예, 알겠습니다, 대인.”
전령을 돌려보낸 무천은 이현과 목량을 불렀다.
이현과 목량은 무천의 이야기를 듣고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남황궁주가 황제의 동생이라고요?”
“그래. 그는 전대의 팔왕야고, 주성유는 현재의 팔왕야지. 목량, 네가 생각하기에는 그와 손을 잡을 경우 어떨 것 같냐?”
목량은 곤혹스런 표정이었다.
“기이하게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기만 해서 상황의 호불호를 짚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 내 앞날을 생각해 봐.”
“예? 아……!”
목량은 무천의 말뜻을 깨닫고 눈이 커졌다.
굳이 미래를 짚어내기 힘든 주금화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그 일을 실행으로 옮길 사람은 무천 아닌가. 무천의 앞날을 짐작해보는 게 더 확실했다.
그리고 목량은 이미 무천의 앞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최소한 십 년 동안은 무탈할 것입니다.”
무천은 속이 뜨끔해져서 넌지시 물었다.
“십 년? 왜…… 십 년이지?”
목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저도 이상합니다만, 갑자기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그 이후는?”
“그걸 저도 모르겠습니다. 뭔가를 생각해보려고 해도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습니다.”
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목에는 생명선이 한 줄 하고도 조금 더 남은 상태였다.
십 년에서 조금 넘어가면 그의 생명도 끝이 날지 몰랐다.
물론 그때 가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리 될 가능성이 컸다.
‘그래, 그 십 년 동안 은설과 재미있게 살자. 그럼 됐지 뭐.’
무천은 그래도 아직 십 년이 남았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 기간 동안 자식을 한 셋쯤 만들면…….
‘맞아! 그게 좋겠어!’
그때 마침 은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세요?”
깊은 생각에 잠겼던 무천은 갑작스럽게 들리는 은설의 말에 무심코 입을 열었다.
“어, 자식을 셋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무천은 재빨리 말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은설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흘기는 눈매에도 열기가 가득했고.
“그런 이야기는 밤에 해요.”
이번에는 목량과 이현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정말 못 말리는 한 쌍이었다.
무천은 상황이 더 이상하게 변하기 전에 이현을 보며 말했다.
“험, 이봐, 이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가서 한번 생각해 보고 내일 보고해.”
“예, 장주.”
이현과 목량은 무천이 더 말하기 전에 후다닥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
그날 밤.
무천은 은설이 아니라 능우와 마주앉았다.
“무슨 일이우?”
능우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십여 일 동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장원에 처박혀 있었더니 좀이 쑤셨다.
“일거리가 있다.”
“일?”
능우의 표정이 환해졌다.
사람은 역시 일이 있어야 즐겁다. 아무리 쉬는 게 편하다 해도 하루 이틀이지, 십여 일 쉬다 보면 팔다리가 찌뿌둥한 법이다.
“백마곡에서 처리해줘야 할 자들이 있어.”
“누군데……?”
무천이 종이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이 사람들.”
능우는 무천이 내민 종이를 받아서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종이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이 사람들을 우리더러 제거하라고요?”
“그래. 아마 누군지 알 걸?”
물론 알고 있다. 그래서 놀란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서, 설마 신도명산을……?”
“그는 내가 처리한다. 백마곡은 신도명산의 주위만 정리하면 돼.”
“아, 그 정도라면 뭐…….”
그제야 능우의 표정이 펴졌다.
백마곡의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신도명산의 목을 몰래 따려면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를 무천이 맡는다면 위험부담이 그만큼 줄어들지 않겠는가.
“사흘 후 시작할 거야.”
무천도 그들의 능력에 맞춰서 제안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데…….
능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보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수.”
능우를 내보낸 무천은 목을 만지며 허공을 응시했다.
살짝 튀어 나와 있는 선이 손가락의 감각에 걸렸다.
선 한 줄에 십 년 삶이라는 귀령자의 말이 사실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제 남은 선은 달랑 한 줄이다.
그 금제마저 풀리면 지옥화와 빙정의 기운이 충돌해서 혈맥이 터질 거라 했다.
‘올해 안으로 마무리를 짓고 설아와 여행이나 떠나야지.’
사실 마지막 금제는 풀릴 일이 거의 없다.
아홉 번째 금제가 풀리면서 공력이 과거보다 더 강해진 상태.
자신이 생각해도 사기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강력한 공력이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금제까지 풀고 싸워야 할 상대가 천하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심지어 혼돈의 기운을 얻은 자들도.
더구나 초감각을 지닌 목량이 그랬지 않은가. 십 년은 무탈할 것이라고.
“오빠, 저예요. 들어가도 돼요?”
한참 생각 중일 때 은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왠지 콧소리가 섞인 듯했다.
‘고뿔이라도 걸렸나?’
무천은 상념을 접고 문을 바라보았다.
“어, 들어와.”
곧 문이 열리고 은설이 들어왔다.
그런데 무복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얼굴도 발그레해서 처음에는 은설이 아닌 줄 알았다.
“어…… 설아, 너……?”
***
새벽녘.
“으음…….”
침상에서 일어난 신도명산은 이마를 찌푸렸다.
뒤숭숭한 꿈이라도 꾸었는지 표정이 무거웠다.
“평아가 꿈에서 나오다니…… 한 동안 거의 보지 못했는데…….”
아들이 꿈속에 나타나서 울기만 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에게 고향으로 가자며 떼를 썼다.
비록 목적한 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정은맹의 주인이 되어 정파의 수장이 되었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인가.
그래서 된통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자신도 아버지 때문에 죽은 거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화가 난 그는 아들의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순간 뒤로 나뒹군 아들의 모습이 서서히 흩어졌다. 원망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불렀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제길, 하필이면 주금화가 떠난 날 그런 개꿈을 꾸다니…….”
짜증이 난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방을 나왔다.
시원한 새벽바람을 쐬자 정신이 맑아졌다.
‘아무래도 뭔가 수상해. 갑자기 떠나다니.’
주금화는 황궁에 갈 때가 되었다며 맹을 떠났다. 변복한 남황궁 무사 일천과 함께.
물론 아직도 정은맹에 남황궁 무사 삼천이 남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언제 떠날지 몰랐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정파의 무사를 최대한 끌어 모아야 해.’
무사 모집이 예상보다 더뎠다. 절반 이상이 대정맹으로 가기 때문이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만 할 듯했다.
‘정파의 비전무공을 미끼로 던져주는 수밖에 없나?’
사마진웅은 구문팔가 중 건재한 곳에 비전무공을 건네주었다. 그럼에도 보유하고 있는 무공이 십여 종 정도 되었다.
그 무공을 미끼로 내놓는다면 침을 흘리며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오천 명 정도만 더 모으면…….’
그때였다.
신도명산이 이마를 찌푸리며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스름이 밀려나면서 동이 터오고 있었다.
그런데 싸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뭐지?’
이상한 느낌이 든 그는 어둠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여문, 무슨 일이 없는지 알아봐라.”
“예, 맹주.”
어스름 속에서 대답이 들리더니 석상처럼 서 있던 장한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신도명산은 이마를 찌푸린 채 잠시 생각하다가,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방 안으로 들어서던 그가 움찔하며 멈춰 섰다.
방 안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상대의 얼굴을 바라본 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처음 보는 자였는데, 이상하게 눈에 익었다.
“너는…… 혹시……?”
“그러고 보니, 우리 처음 보는군요.”
“설마…… 진짜로 무천?”
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방 안에 있던 사람은 무천이었다.
눈을 치켜뜬 신도명산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네놈이 여길 어떻게……?!”
“악연을 끝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왔지요.”
마음을 가라앉힌 신도명산이 이를 드러내며 차갑게 웃었다.
“그래? 그거 좋지. 나도 네놈을 죽여서 아들의 한을 풀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