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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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화
묵광이 일렁이는 안개에 휩싸여 있던 무천이 사마신을 향해 돌아섰다.
고오오오오!
사마신은 검에 전 공력을 다 쏟아 부어서 무천을 공격했다.
핏빛 혈광으로 이루어진 검세가 무천을 향해 해일처럼 밀려갔다.
그리고 곧, 두 사람의 검세가 뒤엉키자, 묵혈광이 직경 십여 장의 원을 그리며 출렁거렸다.
근처에 있던 정혈단원 몇 명이 그 여파에 휘말려서 몸이 산산조각 나며 죽어갔다.
그렇게 십여 초의 공방이 이어지고,
쩡!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이 울렸다.
두 사람의 검이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 난 소리였다.
사마신의 검은 다른 사람들의 무기처럼 잘리지 않았다. 대신 사마신이 허공을 날아서 십 장 밖으로 튕겨나갔다.
땅에 내려선 사마신은 쿵쿵거리며 다섯 걸음을 물러났다.
이 장 간격, 발자국이 다섯 치 깊이로 새겨졌다.
갈가리 찢겨진 옷자락.
치켜뜬 눈에서는 혈광이 넘실거렸고, 악다문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이런…….”
믿을 수 없다는 표정.
입술이 벌어질 때마다 핏물이 울컥거리며 튀었다.
무천은 그런 사마신을 향해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그 순간, 좌우에서 여덟 명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오직 천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몸을 던졌다.
잠력까지 모조리 끌어올린 듯 눈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핏빛으로 시뻘겋게 변한 모습이었다.
광폭한 기운이 무천이라는 한 점을 향해 팔방에서 집중되어 밀려들었다.
무천은 빙글 몸을 돌리며 천망검을 휘젓고, 좌수로는 허공을 내갈겼다.
허공이 겹겹이 이지러지고,
아수라가 두 팔을 펼친 채 솟구쳤다.
날아들던 자들의 눈에 공포가 드리워졌다.
목숨마저 내던진 자들이건만 반사적인 본능은 어쩔 수가 없었다.
두 팔을 펼친 채 덮쳐드는 아수라와 마주친 순간 심혼마저 짓눌렸다.
“아, 악마……!”
“오, 아수라여……!”
개중에는 탄성을 터트리며 절망과 경외의 표정을 동시에 지은 자도 있었다.
불길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무천을 향해 달려드는 자들도 있었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벌벌 떠는 자들도 있었다.
콰과과광!
쩌저저저적!
몸이 터져 나가고, 신체가 몇 조각으로 잘리며 피의 압력에 의해 튀듯이 분리되었다.
찰나에 삼초 공격을 펼쳐서 이십여 명을 쓰러뜨린 무천은 곧장 사마신을 향해 날아갔다.
목덜미에 드러난 그의 생명선은 이제 온전한 줄이 두 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마저도 하나는 빠르게 줄어드는 상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몸 안에서 벌어지는 지옥화와 빙정의 극렬한 융화가 그에게 극한의 고통을 안겨주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
하지만 그에게는 반드시 해야만 할 일이 있었다.
“사ㆍ마ㆍ신!!!”
무정곡을 무너뜨릴 것처럼 울리는 섬뜩한 일성.
사마신은 아연한 표정으로, 날아드는 무천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묵빛 아수라가 덮쳐오고 있었다.
아수라의 손짓에 하늘이 수십 조각으로 쪼개지고 있었다.
어디로 피하든 그 범위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사마신은 그 아수라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도대체…… 너는… 누구냐…… 무천……!”
콰아앙-!
퍽-!
사마신의 몸이 십 장을 날아가서 단단한 절벽에 한 자 깊이로 박혔다.
쿨럭! 푸하아악!
절벽에 박힌 사마신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심장이 피를 모조리 쏟아내는 듯했다.
사마신의 삼 장 앞에 내려선 무천은 빛을 잃어가고 있는 사마신의 붉은 눈을 직시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네가…… 누군데…… 지옥의 아수라를……?”
사마신은 죽어가면서도 궁금증을 풀지 못하면 영원히 눈을 감지 못할 것처럼 절실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얻은 혈천유록에서 간간이 ‘지옥의 아수라가 현신하면 만마가 앙복하리라!’라는 문장을 봤었다.
하지만 지옥혈천공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아수라를 현신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마천제가 본인의 꿈을 적어 놓은 것이라 여겼거늘!
무천이 어떻게 지옥의 아수라를 현신 시킬 수 있단 말인가!
후으으으읍.
무천은 숨을 깊게 쉬어서 고통을 억누르고 전음을 보냈다.
<지옥혈천공은…… 내가 만든 것이다, 사마신.>
다 죽어가던 사마신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불신이 역력한 표정.
<과거, 사람들은 나를…… 마천제라고 불렀지. 너희들의 죽음도 결국 내가 남긴 잔재 때문에 비롯된 것. 그러니 지옥에 가거든…… 나를 원망해라.>
사마신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린 채 몸만 떨었다.
그러다 흐릿해지는 정신을 가까스로 붙잡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저, 정말 네가…… 당신이……?”
무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런…… 개 같은…… 하늘이…… 장난을…….”
결국 사마신은 무천이 아닌, 하늘을 원망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무천은 숨이 끊어진 사마신을 씁쓸한 표정으로 쳐다본 후 몸을 돌렸다.
이제는 마지막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적의를 품고 달려들든가, 아니면 도주할 거라 생각했던 정혈단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모두 백 명은 될 듯했다.
‘뭐지?’
무천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정혈단의 살아남은 대주 하나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아수라의 주인이시여! 저희를 이끌어 주십시오!”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떼창을 했다.
“아수라의 주인이시여!”
“저희를 인도해주소서!”
“…….”
그제야 무천은 상황을 짐작하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기의 지배를 받는 정혈단원들은 사마신보다 더 강한 지옥의 아수라가 사마신을 죽이자, 아수라의 주인인 무천을 하늘로 인정한 것이다.
무천으로서도 생각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들을 다 죽여야 하나?
이미 머릿속까지 마기로 물든 자들 아닌가.
하지만 절대복종의 자세로 엎드려 있는 자들을 무작정 죽일 수도 없었다.
고민하던 무천은 고개를 돌려서 절벽을 바라보았다.
절벽에 적힌 글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며 비웃는 듯 느껴졌다.
‘저 빌어먹을 것부터 없애야겠군.’
휘잉!
허공으로 이십 장이나 솟구친 그는 절벽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삼 장 넓이의 절벽이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깎여 나갔다.
멀리서 보면 장관이었지만, 당사자인 무천은 전신의 살이 조각조각 찢겨지는 고통 때문에 죽을 맛이었다.
‘끄응, 사마신, 죽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너무 곱게 죽였어.’
무천은 절벽의 지옥혈천공 구결을 다 지우기 위해서 세 번이나 더 날아올라야 했다.
당연히 절벽을 향해 무지막지한 공력도 쏟아 부어야 했고.
그렇게 구결을 다 지운 무천은 땅에 내려선 다음 운공을 해서 고통을 가라앉히며, 들끓고 있는 기운도 억눌렀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하루 운공으로 가라앉지 않을 것 같군.’
씁쓸한 표정으로 천망검을 검집에 넣은 그는 몸을 돌렸다.
살아남은 정혈단원들이 여전히 엎드려 있었다.
절대자에 대한 앙복의 표정.
어느 누구의 눈에서도 원망이나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무천은 씁쓸함을 달래며 머리를 흔들었다.
“후우, 일단 이 미친 기운부터 다스린 다음에 생각해보자.”
***
어느 날, 무정곡의 대지가 뒤집어졌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짙은 먼지구름이 가라앉았을 때는 넓은 분지 한가운데에 거대한 동산이 하나 생겨나 있었다.
그로부터 나흘 후…….
어둠이 내려앉은 자시 초, 만가장 내원.
이사명은 무거운 표정으로 차를 마시며 보고서를 읽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그림자 하나가 탁자에 드리워져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무 장주? 여긴 어떻게……?”
무천이 황촛불을 가리며 서 있었다.
항상 담담하던 그의 표정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난 십여 일 간의 소문을 떠올린 이사명은 긴장한 표정으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건가? 정혈단을 쫓아갔다 들었네만.”
무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이사명의 맞은편에 앉았다.
“총군사라면 제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짐작하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무슨……?”
“한때는 정은맹이 최후의 보루로 생각했던 곳에 갔지요.”
이사명은 의아해하며 앉다가, 무천의 말을 듣고 눈이 점점 커졌다.
“설마…… 정혈단의 총단이 만장곡에? 아냐, 그럴 리가……. 만장곡은 모두 비웠는데…….”
“물론 만장곡에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후우, 그럼 그렇지. 그럼 어디에……?”
“무정곡에 갔지요.”
“무정곡?”
“정말 몰랐습니까?”
이사명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무정곡은 만장곡에서 사십여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산세가 험하고 은밀함만큼은 만장곡보다 더했다. 하지만 장소가 수천 명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비좁았다.
최대 수용 인원은 일천 명 정도.
반면 정은맹은 최대 일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장곡을 선택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정예를 키우려 한 정혈단이라면 무정곡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더니…….
이사명은 씁쓸한 표정으로 무천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정말 정혈단이 있던가?”
“있었지요. 이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그게 무슨 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던 이사명의 눈이 다시 커졌다.
“서, 설마……?”
“밖으로 나가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주력은 이제 사라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사명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그, 그럼…… 사마신은……?”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천의 담담한 말에 이사명은 이를 악물었다.
사마신은 의형인 사마진웅의 하나뿐인 아들 아닌가.
의형이 비록 사마신의 목숨을 거두어달라고 했지만, 사마신을 자신이 죽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무천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마신이 그에게 죽었다는 말.
자신이 손을 쓰지 않아도 되니 다행인가 싶기도 하고, 의형의 핏줄이 끊어졌다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만큼 안타까웠다.
더구나 정혈단이 비록 마기에 물든 살귀라 해도 대정맹에 피해를 끼친 건 거의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무천이 그의 마음을 눈치 채고 무심한 얼굴로 말했다.
“저도 사마진웅 맹주를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일입니다.”
“하아, 내가 왜 모르겠나. 그런데 그곳에는 사마신 외에도 많은 자들이 있었을 텐데……?”
“그랬지요. 다행히 추적대와의 싸움에서 부상당한 자들이 많아 겨우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상당한 내상을 입긴 했습니다만.”
무천이 진실과 거짓을 섞어서 말했지만, 이사명으로서는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랬군.”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이사명이 조금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혈단이 사라졌으니, 마도 놈들이 좋아하겠군.”
“그들도 피해가 너무 커서 좋아하고 있을 정신이 없을 겁니다.”
그 점은 이사명도 인정했다.
사실 사마신의 죽음이 아쉽다 해서 무천을 탓할 수도 없었다.
탓하기는커녕, 자신 대신 마인이 된 사마신을 제거해 주었으니 시름을 던 셈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독에 중독되기 전에는 독의 무서움을 모르는 법이었다.
“이제와 하는 말이네만, 정혈단이 마도 놈들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은가?”
이사명이 그리 말한 것도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무천도 그의 말을 어느 정도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마기의 무서움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었다.
“마도인도 결국은 인간입니다. 하지만 마령에 먹힌 자는 결코 인간이라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 죄 없는 중소문파의 남녀노소와, 작은 마을의 무도관에서 수련을 마치고 나오던 아이들을 죽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들 눈에는 그 사람들이 그저 죽여야만 하는 존재로 보일 뿐이었으니까요.”
사실 그 일만 해도 그들은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정혈단원에게 무기를 든 자를 모두 죽이라고 지시한 사람이 사마신 아닌가 말이다.
“총군사께서 뭐라 하든, 죽어야 할 자들이 죽은 것뿐입니다.”
무천은 무심한 목소리로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어차피 정파의 편을 들어줄 생각도 없었고, 마도의 편에 설 생각도 없었다.
마도의 악랄함도 싫었지만, 정파가 자신들의 기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재단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은 이쪽도 저쪽도 이기적일 뿐.
“판단은 알아서 하십시오. 저를 원망하고 싶으면 원망하시고.”
이사명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쉽긴 해도 무천을 원망할 생각까진 없었다.
“내가 왜 자네를 원망하겠나? 어쨌든 정혈단이 그리 되었다니, 이제는 정은맹에 대한 처리가 남았군.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목적이 정은맹입니까, 아니면 신도명산입니까?”
단도직입적인 무천의 질문에 이사명이 이마를 씰룩이고 답했다.
“신도명산과 그자의 측근들 정도면 되네.”
아직 마도가 건재했다.
정은맹 자체가 붕괴되는 건 대정맹에도 이익 될 게 없다.
문제는 욕망을 품은 자들이지 정은맹 자체가 아니었다.
“저희가 처리하지요. 대정맹은 적당한 때에 움직여서 정은맹을 수습하십시오.”
이사명의 표정이 처음으로 밝아졌다.
“알았네. 기다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