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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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7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43화
343화
둘로 나누어진 추적대는 곧장 숲까지 내달렸다.
풀잎을 스치듯 바람처럼 달린 그들은 순식간에 숲 앞에 이르렀다.
그제야 그들을 발견했는지 숲 안쪽에서 부산스런 움직임이 일었다.
숲 안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동대안이 말했다.
“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
다른 사람들은 눈을 뒤집어까고 봐도 그게 그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울창한 나뭇잎과 가지에 가려져서 뭔가를 분간한다는 게 말도 안 되는 개소리 같았다.
하지만 동대안은 나뭇잎과 가지 사이로 보이는 정혈단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잡아냈다.
“우측으로 꺾어지고 있어!”
정말일까?
의문을 가진 사람도 있었지만, 지금은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 정혈단원들은 우측으로 꺾어져서 이동하고 있었다.
뒤이어 숲 속으로 진입하자마자 동대안이 다시 소리쳤다.
“놈들이 나무 뒤와 위에서 암습을 노리고 있어! 조심해!”
추적대는 눈에 힘을 주고 나무 위와 나무 뒤를 유심히 살폈다.
그제야 정말로 적이 나무 위와 뒤에 숨어 있는 걸 안 사람들은 새삼 동대안이 자신들 편이라는 걸 고맙게 생각했다.
만약 적이었다면…… 등골이 오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반말로 빽빽 소리치는 것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수십 명이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치며 나무 위의 적을 공격했다.
다른 자들도 바짝 긴장해서 전진하며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도검을 뻗고, 휘둘렀다.
절정고수의 일격은 아름드리나무를 단칼에 자르며 뒤에 숨어 있던 자들마저 공격했다.
절대 경지에 오른 고수가 뻗은 검은 아름드리나무와 뒤쪽에 있는 자를 동시에 꿰뚫기도 했다.
쾅! 펑!
검강의 기운을 버티지 못한 나무는 중동에서 터져 나가며 나뭇조각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러나 정혈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정혈의 세상을 위해!”
“마를 물리치리라!”
“피로써 세상을 정화하니!”
“천하에 정심만 가득하리라!”
번뜩이는 혈안.
광기 어린 목소리.
그들은 목숨을 내던지며 상대의 공격 속으로 달려들어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공격은 그 어떤 절기보다 추적대에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특히 정파의 무사라 할 수 있는 밀소림의 제자들은 정혈단원들이 내지르는 말에 순간적으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바람에 몇 명이 속절없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운정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정신 차려! 그들은 마에 물든 마귀다! 마귀를 제거하는 것이 선인을 살리는 길이라는 걸 명심해!”
밀소림 제자들은 이를 악물고 살검을 뻗었다.
곳곳에서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는 동안, 무천은 숲 깊숙이 들어갔다.
그가 전진하자, 앞을 가로막은 나뭇가지들이 기에 밀려 휘어지거나 부러지며 길이 터졌다.
무천이 향하는 방향은 강력한 마기가 이동하고 있는 곳.
사마신과 정혈단의 주요인물들이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삼백여 장을 달려가자, 저만치 앞에서 날 듯이 달려가는 자들이 보였다.
모두 십여 명. 그들 역시 우거진 숲을 거침없이 통과하고 있었다.
뒤에 있는 정혈단원보다 더 뛰어난 움직임을 보이는 자들이었다.
무천은 그들이 정혈단의 간부들임을 확신하고는 땅을 박차고 솟구쳤다.
등천을 펼쳐서 오 장 높이 나무 위로 솟구친 그는 나무 꼭대기를 발로 차며 초월영을 시전했다.
나무 끝을 밟고 날아가는 그는 비조(飛鳥)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무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정혈단 간부들을 따라잡은 그의 기감에 사마신이 잡히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사마신에게 이상이 생겼을 리는 없었다.
정혈단원들이 있는 곳에서도 사마신의 기운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럼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백양나무 끝을 발로 찬 그는 한 마리 수리처럼 날아서 정혈단 간부로 보이는 자들 머리 위로 낙하했다.
하늘이 내려앉기라도 하듯 가공할 압력이 머리 위를 짓누르자, 정혈단원 중 서너 명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하늘에서 검강으로 이루어진 청룡 몇 마리가 포효하며 사납게 내리꽂히고 있었다.
콰우우우우!
그들이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위!”
“무천이 왔다!”
기다렸다는 듯 네 사람이 동시에 허공의 무천을 향해 검을 뻗었다.
나머지 열 명은 사방으로 퍼졌다.
콰르르르릉! 콰광!
우지끈! 쿠르릉, 쩌저적.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일대의 나무들이 폭발하듯 부서지며 터져 나갔다.
무천을 공격했던 자들도 삼사 장 밀려나서 눈을 치켜뜨고 검을 들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피 묻은 옷자락이 갈가리 찢겨진 상태에서도 두 눈만큼은 붉은 혈광을 쏟아냈다.
무천은 밑동이 터져 나간 나무들이 쓰러지며 생긴 공터에 내려서서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천이 왔다!”
분명 저들 중 하나가 그렇게 소리쳤다.
자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뜻.
그렇다면 저들이 자신을 유인했다는 말이었다.
이유는 물어볼 것도 없었다.
사마신이 없지 않은가.
아마도 사마신에게 거리를 벌릴 시간을 벌어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마신은 어디로 갔지?”
무천이 무심한 어조로 물으며 검을 들었다.
“흐흐흐흐, 천주께서는 진즉 이곳을 떠나셨다. 네놈은 헛물만 켠 셈이지.”
복면을 쓴 정혈단원 하나가 음울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헛물만 켠 셈인지 아닌지는 곧 알게 되겠지.”
무천은 냉소를 지으며 몸을 날렸다.
“사마신이 없음으로 해서 너희들이 모두 죽을 테니까.”
“크크크, 누가 죽는지 해보자, 무천!”
정혈단의 간부로 보이는 자들이 합공을 해서 무천을 상대했다.
모두 열네 명.
개개인이 최소한 절정급 고수였고, 초절정 경지의 고수도 서너 명이나 되었다.
거기다 그들이 펼쳐낸 마기가 하나로 뭉치면서 무천조차 상대하기가 쉽지 않은 엄청난 기운이 형성되었다.
고오오오오!
마기의 융화는 무천도 미처 생각지 못한 현상이었다.
콰르르르릉!
콰광!
번천지복(飜天地覆)의 굉음이 연이어 숲을 뒤흔들었다.
무천은 대천룡구검세로 정혈단 간부들을 상대했다. 하지만 융화된 마기가 사슬처럼 이어져서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죽음을 불사한 정혈단 간부들도 놔줄 생각이 없는 듯 모든 공력을 끌어올려서 대항했다.
초수가 더해질수록 융화된 마기는 더욱 끈끈해지며 강력해졌고, 무천의 공력 소모량도 점점 더 늘었다.
태산처럼 굳건하던 무천조차 당황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사마신을 놓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위기 상황마저 올지도 모른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마음이 조급해진 무천은 이를 악다물었다.
답답한 현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일순간 망설였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결심을 굳혔다.
“죽고 싶다면…… 모두 죽여주마!”
화르르르르!
그의 몸에서 이전과 다른 기운이 폭사했다.
봉인시켜 놓았던 지옥명화공을 끌어올린 것이다.
그토록 끈질기게 그를 괴롭히던 마기가 도망치듯 밀려났다.
끼아아아악!
귓전에 마기의 비명이 들리는 듯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던 정혈단원들의 혈광이 번뜩이던 눈에도 경악과 공포가 드리워졌다.
순간, 무천의 검에서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검세가 펼쳐졌다.
그의 검에서 튀어나온 것도 청룡이 아닌, 검은 구름을 장포처럼 뒤집어 쓴 아수라였다.
구천지옥검, 일명 지옥팔검이 펼쳐지자, 사슬처럼 이어져서 융화된 마기가 아수라의 손짓에 종잇장처럼 갈가리 찢겨졌다.
등활, 흑승.
팔열지옥 중 두 개의 지옥 이름을 딴 아수라의 검은 정혈단 간부 셋의 몸마저 찰나에 몇 조각으로 잘라버렸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사지와 머리 등이 분리된 자들의 몸뚱이가 피를 쏟아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지옥에 가거든, 나를 원망하라!”
검은 안개에 뒤덮인 무천이 음울한 목소리로 말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으으으으, 그건 도대체…….”
두려움을 모르는 정혈단원들의 붉은 눈이 공포로 흔들렸다.
그것은 본능이었다.
호랑이와 마주친 늑대새끼가 겁에 질리는 것처럼.
무천은 그들을 향해 몸을 날리며 재차 지옥팔검을 펼쳤다.
“마, 막아!”
누군가가 공포에 질려서 악을 썼다.
“으아아아아!”
“죽어라, 이놈!”
천하를 떨게 만든 정혈단 고수들이 비명 같은 악다구니를 내지르며 무천의 공격에 맞섰다.
가가가가각!
천망검에서 튀어나온 아수라가 허공을 찢어발기며 정혈단원들의 몸마저 갈라버렸다.
피가 안개처럼 뿜어지는 가운데 서 있는 무천의 모습이 정혈단원들에게는 아수라처럼 느껴졌다.
“아, 아수라야! 저놈은 아수라야!”
“으으으으으, 도망쳐!!!”
공포에 질린 정혈단원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리며 도주했다.
아마 누군가가 그 모습을 봤다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천과 정혈단원 외에는 그 광경을 본 이가 아무도 없었다.
“후으으으읍.”
혼자 남은 무천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지옥명화공을 억눌렀다.
겁화가 명화로 바뀌긴 했지만 아직 완전치는 않았다.
혼돈의 기운을 각성했음에도 지옥명화공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했다.
그동안 금제가 두 줄이나 더 풀리면서 지옥명화의 기운이 더욱 강해진 탓도 있지만, 꼭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후으으으으으으읍.”
재차 숨을 무저갱 저 깊은 곳까지 들이쉰 무천은 이를 악물었다.
정혈단원 일곱을 단숨에 제거했다.
그들이 저지른 짓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천은 자신이 손을 쓰고도 미치도록 답답했다.
그것으로 확실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된 것이다.
저들은 피에 미쳐서 사람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살귀여서도 아니었다.
원인이 마기 때문임은 분명하지만, 그것 역시…… 지옥혈천공의 본능일 뿐이었다.
지옥명화공에서 파생된 살기 본능.
자의도 아니고, 타의도 아닌…….
그래서 마기에 먹힌 정혈단원들을 제거하려는 것이긴 하나, 미묘한 그 차이가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결국, 정혈단원들이 저지른 혈겁은 자신에게 최소한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말이었다.
‘할아버지, 당신이 원망스럽군요. 왜 저를 그런 괴물로 만드셨습니까.’
어쨌든 지금은 지옥명화공을 안정시켜서 봉인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때, 빠르게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장주!”
“오빠!”
은설과 무원장 고수들이 자신을 찾아 나선 듯했다.
무천의 모습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직 지옥명화공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여서 일단 자리를 피한 것이다.
곧 그곳에 십여 명이 나타났다.
은설과 동대안, 철명군, 천위 등 무원장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황폐화된 대지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맙소사……!”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대지만 황폐화 된 것이 아니었다.
최소한 칠팔 명 분량의 분리된 신체가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신체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개중에는 초절정경지의 고수로, 자신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자의 머리도 있었다.
“…….”
***
무천이 눈을 떴을 때는 사위가 어두워져 있었다.
그가 있는 곳은 협곡의 절벽 중간에 뚫린 동굴 안이었다.
문득 자신이 이곳에서 운공하게 된 이유를 떠올린 무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무원장 사람들과 마주치는 걸 피하기 위해 도륙의 현장을 벗어났다.
물론 자신이 없다 해도 사람들은 상황을 유추했을 것이다. 그곳의 참혹한 현장이 자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걸.
결국 자신은 참혹한 현장과 자신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도망친 거지. 사람들의 눈이 무서워서.’
무천은 지옥명화공이 안정되게 봉인된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줄 남았던 생명의 금제가 세 줄 반으로 줄은 상태. 하지만 이번에는 아쉬워하지 않았다.
하늘의 별을 보니 시간이 상당히 흘러서 곧 새벽이 올 듯했다.
잠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던 그는 결심을 굳혔다.
‘나로 인해 시작된 일…… 내가 끝낸다.’
은설과 함께 지내는 시간이 조금 짧아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