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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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화
“이놈들! 우리와 무슨 원수를 졌다고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죽이는 것이냐!”
분노에 찬 목소리가 음가장에서 들려왔다.
아마도 음혼문 사람인 듯했다.
곧 그에 대한 대답이 들렸다.
“우흐흐흐흐! 세상을 좀 먹는 놈들을 죽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하단 말이냐!”
가슴이 섬뜩하게 느껴질 정도로 살기가 짙은 목소리였다.
공력이 약한 사람은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사이한 기운마저 느껴졌다.
“지독한 마기군.”
철명군이 이마를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선두 쪽에서 이동하던 우문척과 철혈마련 무사들이 속도를 높였다.
“놈들을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하오!”
“우리가 좌측을 맡겠네!”
뒤이어 공손두가 소리치며 몸을 날리자, 마천문과 귀천교 무사들도 철혈마련 무사들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하지만 사야와 마존대는 오히려 속도를 줄이면서 무원장과 보조를 맞추었다.
“우린 무 공자의 명을 듣겠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성주님께서 저에게 무 공자의 명령을 따르라고 했거든요.”
무천이 묻기 전에 사야가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무천은 쓴웃음을 지을 뿐 마다하지는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하며 말싸움할 시간도 없었다.
“알았다. 그럼 우리와 함께 움직이자.”
짐짓 무심한 어조로 사야의 말을 받은 무천은 속도를 조금씩 높였다.
선두에 선 철혈마련 고수들이 이미 음가장의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정혈단이 강하다는 것만 알 뿐 얼마나 강한지는 모르는 듯했다.
물론 그들도 일전에 정혈단과 싸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그 강함의 정도가 달랐다.
담장을 넘어간 우문척은 저만치서 가공할 기운을 흘리고 있는 사마신을 발견하고는, 즉시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사마신! 내가 상대해주마!”
사마신도 붉은 광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우문척을 바라보았다.
“와하하하! 우문척! 네놈이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죽을 자리를 제대로 찾아왔구나!”
“정혈단 놈들을 쳐라!”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이시오!”
철혈마련의 뒤를 이어 담장을 넘어온 공손두와 악사광은 일행들을 향해 소리치고는 적진 속으로 몸을 날렸다.
두 사람은 정혈단 내에서 자신들을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사마신 뿐이라고 생각했다.
절대경지에 들어서서 사대천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고수들이니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혈단에는 그들 정도의 고수가 최소한 네 명은 되었다.
그 중 한 사람, 복면을 쓴 허운이 몸을 날리며 공손두를 상대했다.
“마의 종자야! 너는 내가 상대해주마!”
“오냐, 이놈! 네놈이 누군지 몰라도, 내가 친히 목을 잘라주마!
뒤이어 또 다른 복면인이 악사광을 향해 날아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검을 뻗었는데, 폭이 좁은 검에서 강기가 다섯 자나 쭉 뻗어 나왔다.
악사광도 방심하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서 복면인에 맞섰다.
쿠과과광!
콰과광!
장원 안에서 절대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대결을 벌이자 더욱 참혹한 광경이 벌어졌다.
드넓은 연무장에 널브러져 있던 시신들이 가공할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으로 날아갔다.
잘린 팔다리와 몸뚱이가 핏덩이와 함께 튀는 광경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도의 고수들조차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정혈단원들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이 마도의 고수들을 공격했다.
수백 명이 뒤엉켜서 싸우고, 그 와중에 시신들이 훼손되며 지옥이 펼쳐졌다.
장원 안으로 들어간 무천은 그 광경을 보고 표정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맙소사…….”
옆에 내려선 은설의 얼굴도 하얗게 변했다.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에 구역질이 났다.
“어, 어떻게 좀 해봐요, 오빠.”
오죽하면 그녀의 입에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일단 전장을 밖으로 유인하는 게 좋겠어요.”
사야가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말했다.
무천도 그녀의 말에 찬성했다. 처참지경인 광경은 사천의 만인혈사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멈ㆍ춰ㆍ라!!!!”
귀청을 찢을 듯한 일성 외침이 음혼문의 하늘을 뒤흔들었다.
공력이 약한 자들은 충격을 받고 몸이 휘청거렸다.
절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조차 안색이 변한 채 공격하던 손길을 늦추었다.
“사마신! 밖으로 나가서 싸우자!”
무천이 다시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 깃든 것은 단순한 내공의 힘만이 아니었다.
극성에 이른 무진일선공과 지옥명화공이 섞여 있어서 사람들의 정신을 억압했다.
마기가 폭주한 정혈단원들조차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미완성의 지옥혈천공은 겁화가 명화로 화한 지옥명화공을 버텨내지 못했다.
“와하하하하! 무천! 너도 왔구나!”
“사마신! 이 피구덩이 속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 밖으로 나와라!”
“하긴 넓은 곳에서 싸우는 것도 좋지!”
사마신은 광기가 일렁거리는 눈으로 소리치고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십 장 높이로 솟구친 그는 이십여 장을 날아서 단숨에 장원 밖으로 나갔다.
우문척도 그를 따라서 몸을 날렸다.
“모두 장원에서 나가시오!!!”
무천이 다시 한 번 외치자, 그러잖아도 미칠 것 같던 마도의 고수들이 일제히 땅을 박찼다.
장원 밖으로 나간 정혈단과 추적대는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도의 고수들은 이미 자만심을 내던진 상태였다.
정혈단원들은 대부분 이삼십 대의 새파란 애송이들이었다. 하지만 실력만큼은 결코 자신들의 아래가 아니었다.
거기다 마기가 폭주한 정혈단원들은 치가 떨릴 정도로 잔혹하고, 끈질겼다.
사도맹이 왜 단숨에 무너졌는지 절실하게 깨달은 마도고수들은 전력을 끌어내서 정혈단원들을 상대했다.
죽이지 못하면 자신들이 죽을 테니까!
콰과광!
고막을 먹먹케 하는 굉음이 울리고, 사마신과 대적하던 우문척이 이를 악문 채 땅에 내려섰다.
두 사람이 격전을 벌인 직경 십 장 일대는 벼락이라도 떨어진 듯 초토화된 상태였다.
“빌어먹을…….”
강해도 너무 강했다.
각성한 힘을 모조리 끌어냈음에도 우세하기는커녕 밀리는 게 역력했다.
단 십여 초식 만에 내상마저 입은 듯 비릿한 피냄새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우문척은 검을 쥐고 공력을 집중시켰다.
한편, 공손두는 허운을 상대하면서 접전을 벌였다.
말 그대로 막상막하였다.
두 사람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이 지닌 실력을 모두 발휘했다.
이십여 초식이 지나갔을 때는 몰아지경에서 검을 휘둘렀다.
허운은 칠성비검과 태극혜검을 자유자재로 펼치면서 공손두를 몰아붙였다.
마기를 폭주시켰음에도 공력은 공손두에게 미미하게나마 밀렸다. 하지만 검법의 뛰어남으로 그 차이를 극복했다.
공손두도 허운의 천의무봉한 검법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당파의 검이 그토록 대단할 줄은 몰랐구나!”
각성 이후 내심 천하에 적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천하에 무슨 놈의 고수들이 그리 많은지……
허운 역시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였다.
사마신과 무천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데 일개 마천문 문주의 아들 따위도 어쩌지 못하다니.
그러던 차에 공손두가 무당 운운하자, 분노에 찬 광소가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 마도의 무리 따위가 어찌 무당의 검을 논한단 말이냐!”
“그래봐야 마도에 밀려서 백 년 동안 숨도 못 쉰 무당 아니더냐!”
“죽일 놈! 네놈의 머리를 베어서 마천문에 보내주마!”
허운이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눈으로 공손두를 노려보며 검을 뻗었다.
공손두도 커다란 거검을 뻗으며 마주쳐갔다.
폭풍 같은 검기의 회오리가 두 사람을 중심으로 휘돌았다.
그렇게 삼파의 고수들이 정혈단과 뒤엉켜서 혈전을 벌일 때, 무천과 무원장의 고수들, 만마성 마존대는 퇴로를 봉쇄하는데 주력했다.
반원형으로 진을 형성한 그들은 정혈단원들을 차근차근 압박했다.
정혈단원들이 아무리 마기의 폭주로 인해 강해졌다 해도 철명군과 중리안을 위시한 고수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구나 무원장 고수들은 이미 정혈단원들과 싸운 경험이 있기에 냉정하고 확실하게 손을 썼다.
무천 역시 우문척이 사마신을 상대하고 있는 동안 정혈단원들을 최대한 줄이려 했다.
이미 절정고수를 맞상대할 수 있는 정혈단원 삼십여 명이 그의 손에 죽은 상태였다.
두려움을 모르는 정혈단원들도 무천을 알아보고는 공포에 물든 표정을 지었다.
반면, 마존대 대원들의 개개인 무위는 다른 세력의 고수들이나 정혈단원에 비해 밀렸다.
하지만 그들의 연수합공은 보는 이를 감탄케 했다.
칠팔 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다 보니 그들보다 두어 단계 강한 절정고수들도 그들의 합공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뜻밖인 것은 사야의 무공이었다.
길이가 두 자인 검 두 자루를 들고 펼치는 그녀의 쌍검술은 마치 한편의 검무를 보는 듯 아름다웠다.
단지 아름다운 것만이 아니었다. 상대가 실낱같은 빈틈을 보이면 치명적인 독침처럼 그 틈을 파고들어서 여지없이 숨통을 끊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결국, 미친 듯 날뛰던 정혈단원들이 한쪽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정혈단에서 누구보다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사람은 사마신이었다.
겉으로는 자신만만하게 소리쳤지만, 내심으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천에게 죽은 형제들만 해도 수십 명이다. 그 와중에도 놈의 시선은 자신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나를 노리고 있는 거겠지.’
지금은 우문척 때문에 손을 쓰고 있지 않지만, 기회가 생기면 공격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자신도 우문척과의 싸움을 길게 가져가고 있는 것이었다.
‘흐흐흐흐, 네놈 뜻대로는 안 될 거다, 무천.’
산서에 온 목적은 어느 정도 이루었지 않은가.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사마신은 생각과 동시에 지옥혈천공을 십성 끌어올려서 광폭한 기운을 폭사시켰다.
“와하하하! 우문척! 이것도 받아봐라!”
콰아아아아!
우문척이 경악해서 눈을 홉뜨고 전 공력을 다 끌어올려 대항했다.
무천은 갑작스럽게 강해진 사마신의 공격을 보고 흠칫했다.
자신이 있는 걸 알면서 우문척을 상대로 전력을 쏟아낼 사마신이 아니었다.
‘설마……?!’
순간적으로 사마신의 생각을 눈치 챈 그는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콰과과과광!
굉음이 천둥처럼 터져 나오더니, 우문척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흐트러진 머리, 찢어진 옷자락, 입에서는 피가 튀었다.
반면 사마신은 조소를 지으며 뒤로 훌훌 날아갔다.
“사마신! 어딜 가려고 하느냐!”
초월영을 펼쳐서 단숨에 이십여 장을 날아간 무천은 사마신을 향해 천망검을 뻗었다.
검신을 휘감고 있던 청룡이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허공을 날아가던 사마신이 이마를 찌푸리며 마주 검을 뻗었다.
시뻘건 혈룡이 용틀임을 하며 청룡에게로 마주쳐갔다.
쿠-웅!
일성 벽력음이 하늘을 뒤흔들며 울렸다.
사마신은 그 충돌의 반탄력을 이용해서 전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무천도 얼마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충돌 순간에 탄공을 흡공으로 전환시키며 충돌의 여파를 밖이 아닌 안으로 흡수했다.
공력을 구성 이상 끌어올린 상태. 사마신을 잡기 위해 생명선의 일부를 포기하기로 작정한 터였다.
절대의 힘을 지닌 청룡이 입을 벌려서 시뻘건 혈룡을 빨아들였다.
허공에 떠 있던 사마신의 몸이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으며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