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천화 33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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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2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귀환천화 331화
331화
그들 같은 절대경지의 고수에게 검은 무기라기보다 진기를 전달하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검을 사용하는 것은 적수공권일 때보다 진기를 응축시키기가 더 낫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단단한 검일수록 더 강한 강기를 응축시킬 수 있었다.
검으로 검강을 펼치는 것보다 맨손으로 장강(掌罡)을 펼치는 것이 더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었다.
콰아앙!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굉음이 허공에서 터졌다.
일대에서 치열하게 싸우던 무원장과 정혈단 무사들조차 멍멍한 충격에 잠시 잠깐 공방을 멈췄다.
훌훌 날아가서 내려선 철명군이 비틀거렸다.
사마신도 공중제비를 한 바퀴 돌고 내려서며 순간적으로 흔들렸지만 바로 중심을 잡았다.
겨우 몸을 세운 철명군의 입술 사이로 핏기가 보였다. 백짓장처럼 창백해진 안색만 봐도 상당한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지켜보기만 했던 혁무천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생각하고 몸을 날렸다.
“철 노사 어른, 이제 저에게 맡겨주시지요.”
단걸음에 철명군 앞에 선 그가 무심한 눈으로 사마신을 바라보았다.
철명군은 쓴웃음을 지으며 검을 늘어뜨렸다.
두 번째 패배였다.
‘아무래도 이제는 저 젊은 친구들의 세상인 것 같구나.’
그가 씁쓸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이, 혁무천이 사마신을 향해 날아갔다.
앞으로 뻗은 그의 검에서 한 마리 청룡이 솟구쳤다.
콰우우우우!
사마신은 날아드는 청룡을 보며 혈광이 일렁이는 두 눈을 치켜뜨고 마주쳐갔다.
그의 검에서 핏빛 수라가 날개를 펼쳤다.
찰나의 순간, 청룡과 혈수라가 뒤엉키며 뇌음이 일었다.
쿠구구구궁!
콰르릉!
두 사람의 대결은 인간의 싸움이 아니었다.
사마신과 철명군의 대결이 보는 이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었다면, 혁무천과 사마신의 대결은 보는 이의 심장을 얼려버렸다.
그렇게 강호사에 없던 대격돌이 벌어지던 그때, 뒤쪽에서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정혈단원을 몰아붙이는 은설을 향해 하얀 복면을 쓴 정혈단원 하나가 날아들고 있었다.
복면인은 경공신법만 봐도 일반 단원보다 훨씬 고수처럼 느껴졌다.
은설을 향해 뻗는 검에서 피어난 강기의 길이만 해도 석 자가 넘었다.
상대의 공격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은설은 나비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며, 벼락처럼 날아드는 검을 피했다.
하지만 복면인의 공격은 은설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강했다.
“흥! 날뛰는 것도 거기까지다, 계집!”
냉랭히 소리친 복면인의 검이 칠성의 방위를 점했다.
검 끝에서 흘러나온 검기가 허공에 점점이 일곱 개의 검화(劍花)를 그렸다.
그 일곱 개의 검화는 마치 살아있기로도 한 듯 나풀거리며 은설에게 쇄도했다.
은설은 복면인이 펼친 검법의 정체를 눈치 채고 눈이 커졌다.
“무당의 칠성비검?”
화산파에 매화가 있다면 무당파에는 칠성이 있다는 말이 있다.
무당파의 칠성검은 다시 셋으로 나뉘는데, 그 중 가장 높은 경지의 검이 바로 칠성비검이었다.
은설은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세차게 검을 떨쳤다.
쉬쉬쉬쉭!
은설의 검첨에서 뻗은 강기가 그물처럼 펼쳐지더니, 유성처럼 날아드는 검화를 차단했다.
떠더더더덩!
맑은 충돌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은설은 단 하나의 검화도 통과시키지 않았다. 하지만 공력이 문제였다.
은설도 영단과 혁무천의 도움으로 생사현관이 뚫리면서 이 갑자의 공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상대인 허운은 비슷한 공력임에도 마기로 공력이 증폭된 상태였다.
그 차이가 은설을 짓눌렀다.
검을 통해 전해지는 가공할 충격으로 인해 손목이 시큰거리고, 어깨까지 짜르르 울렸다.
허운은 칠성비검의 일곱 초식을 연환으로 펼치며 은설을 몰아붙였다.
은설은 이를 악다문 채 물러서며 방어에 치중했다.
비록 힘과 정묘함에서 밀리긴 했지만 그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허운도 은설의 무공이 보기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알고는 칠성비검에 이어 태극혜검마저 펼쳤다.
칠십여 년 동안 사라졌던 무당 최고의 비전인 태극혜검이 마침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고오오오오!
허운이 검을 들어 천천히 허공을 휘젓자, 허공이 이지러지면서 거대한 태극이 장막처럼 은설을 덮어갔다.
정심이 깃든 태극혜검과의 차이라면, 허공에 불그스름한 혈광의 태극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흐읍!’
숨이 턱 막힌 은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좌우는 이미 허운이 펼친 검세의 권역이었다. 자칫하면 빈틈을 보이면서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서면 물러서는 속도보다 더 빨리 날아들 터. 은설의 눈빛이 흔들렸다.
반면 허운은 승기를 잡았다 생각하고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자잘한 충격으로 중심이 무너진 은설이 몸마저 흔들렸다. 그 와중에도 유령환보를 펼쳐서 허운의 공세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허운의 검은 그녀가 짐작한 것보다 더 강하고 빨랐다.
검을 내지르는 허운의 복면 속 눈에 조소가 떠올랐다.
“끝이다, 계집!”
그 순간, 한 사람이 허운의 측면으로 날아들었다.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동대운이었다.
동대운은 부상으로 인해 가능한 한 방어에만 치중했다. 하지만 한두 번쯤은 전력을 다한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은설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본 그는 섬혼을 앞세우고 몸을 날렸다.
“개쉐이! 이거나 처먹어라!”
쉬아악!
허운도 동대안의 공격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느끼고 눈빛이 흔들렸다.
이대로 공격하면 여자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도 치명적인 중상을 입을 게 분명하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르고.
‘그럴 순 없지!’
허운은 은설에게로 향했던 검을 틀어서 허공에 원을 그렸다.
검기의 장막이 펼쳐지며 날아드는 섬혼을 차단했다.
쩌저정!
동대안은 허운의 강맹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튕겨졌다.
충격의 여파로, 구멍 났던 옆구리에서 극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겨우 아문 상처가 다시 터지기라도 한 듯했다.
‘씨바! 더럽게 강하네!’
그래도 이를 악다문 채 다시 섬혼을 들었다.
허운은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동대안을 노려보았다.
“쥐똥만 한 눈깔과 그 꼬챙이를 보니, 네가 섬전쾌검인지 뭔지 하는 웃기는 인간이군.”
말이라면 동대안도 뒤지지 않았다.
“네놈 눈은 피똥 싼 개눈깔 같은데?”
허운은 분노한 와중에도 하마터면 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네놈 눈깔을 캐서 쥐 눈깔과 비교해봐야겠다!”
나름대로 만족스런 표현을 한 그는 검으로 동대안을 가리키며 공력을 일으켰다.
그런데, 한쪽에서 광소 소리가 들렸다.
“와하하하! 무천, 너와의 대결은 다음에 하자!”
혁무천과 싸우던 사마신이 뜻밖에도 뒤로 훌훌 몸을 날렸다.
사마신은 자신의 힘만 믿고 형세를 좌시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
비록 이름 모를 고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자신 역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심한 내상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상대가 자신의 최대 난적인 무천이라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체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다.
철저히 단련되고 마기의 힘까지 빌린 정혈단원들이 밀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얼마나 살아남을지 알 수 없었다.
혁무천과 사오 초식 겨루는 동안 판단을 마친 그는 반탄력을 이용해서 단숨에 십오륙 장을 날아갔다.
“정혈의 형제들은 후퇴하라!”
그의 입에서 명령이 떨어지자, 무원장 무사들과 처절함이 느껴질 정도로 치열하게 싸우던 정혈단원들이 일제히 썰물처럼 물러났다.
동대안을 공격하려던 허운은 눈살을 찌푸렸다.
두어 수면 저 재수 없는 놈의 쥐 눈깔을 캐낼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검을 거두고 땅을 박찼다.
무천이 고개를 돌려서 자신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은설이라는 계집 때문인 듯했다.
사마신조차 떠나버린 곳에서 무천마저 자신을 공격한다면 빠져나갈 수 없을지 몰랐다.
“쥐 눈깔! 다음에는 반드시 네놈의 눈깔을 파내주마!”
그래도 떠나는 마당에 분노의 일갈은 잊지 않았다.
동대안도 그 말을 듣고, 팔을 쭉 뻗어서 감자를 크게 먹였다.
“이거나 먹어라! 개눈깔아!”
나중에 보자는 놈은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혁무천은 사마신의 뒤를 쫓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평원에는 사백여 구의 시신만 남았다.
그 중 백오십여 구가 무원장 무사들이었다. 그리고 정혈단원이 이백오십 정도 되었다.
냉정히 따진다면 무원장 쪽의 승리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승리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밀소림의 제자 중에서도 삼십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천 역시 사십여 명이 시신으로 변했다.
검마보의 주요 고수 사십여 명 중 열 명이 목숨을 잃었고, 거기에 추리고 추린 무원장의 정예고수들이 팔십 명 정도 죽었다.
막대한 피해였다.
무엇보다 탕초양이 중상을 입고, 호광과 철호도 부상이 가볍지 않았다.
혁무천은 사마신을 제거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미련을 두진 않았다.
각성을 한 사마신은 철명군을 이길 정도로 강했다.
자신이 작정하고 죽이려 했다면 못 죽일 것은 없지만, 그러려면 최소한 생명선 하나를 포기해야만 했다. 십 년의 생명을 내놓아야만 하는 것이다.
심할 경우 이십 년의 삶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과연 그렇게까지 자신을 희생하며 사마신을 지금 죽일 필요가 있을까?
그런다 해서 누가 알아준단 말인가.
‘기회는 얼마든지 있어!’
사마신도 제법 심한 내상을 입었다. 정혈단도 막대한 피해를 입은 상태고. 당분간은 못 움직일 것이다.
그 사이 놈들의 비밀거점을 찾아낸다면 힘을 덜 들이고도 처리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혁무천은 부상자를 간단하게 치료한 후, 사상자를 정리해서 언덕 쪽으로 이동했다.
그때까지도 정은맹과 마도연합의 싸움은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전보다는 격전이 약화되었지만.
뿐만 아니라 멀리서 봐도 확연히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 숫자가 적게 느껴졌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정혈단은 양측이 최대한 피해를 보는 걸 바랐던 것 같습니다.”
목량의 목소리에서 착잡함이 묻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율이명도 짜증이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놈들이었다.
“제길! 정말 무천이 말한 것처럼, 무림인의 씨를 말리는 게 정혈단 놈들의 목적인가?”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무림인의 씨를 말리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아니, 그것이 가능하긴 한 일인가?
“사실이라면 제정신이 아닌 놈들이군.”
안색이 창백한 철명군이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혁무천이 씁쓸한 표정으로 답했다.
“문제는, 그들을 막지 못할 경우, 정말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겁니다.”
정혈단의 존재는 마도에게 공포였다. 그 점만 생각하면 굳이 나서서 막을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막지 못하면 훨씬 더 참혹한 상황이 닥칠 게 분명했다. 결국 그들은 정파마저 먹이로 삼을 테니까.
‘정작 두려운 것은 그 이후다. 마기가 의지를 잠식하면 피에 미친 마인이 되어 강호를 떠돌 테니…….’
“…….”
모두가 말문이 막혀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동안에도 저 멀리서 벌어지는 싸움의 불길은 줄어들 줄 몰랐다.
혁무천은 그 모습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고는 돌아섰다.
“일단 사진으로 돌아가지요.”
부상자들을 놔둔 채 불길에 뛰어들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
정은맹과 대정맹, 마도연합은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듯 해가 질 무렵까지 치열하게 싸웠다.
양측의 힘이 엇비슷하다 보니 어느 한쪽이 후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등을 보이고 후퇴하면 사기는 사기대로 떨어질 것이고, 피해도 더 많아진다는 걸 아는 것이다.
죽이고, 죽고, 죽이고, 죽고…….
“으아아아! 죽어!”
“죽여라! 목을 쳐!”
“으악!”
“몸으로라도 잡아!”
비명과 악다구니가 버무려진 격전의 소음은 해가 서쪽 지평선으로 떨어질 때까지 계속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