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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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4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48화
248화
묵운칠십이귀는 묵운백령보다 훨씬 강했다. 그러나 그들이 진정 무서운 것은 강한 무공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은 팔다리가 뭉개져도 멈칫거리지 않았다.
심장이 부서지고, 목이 잘리고, 머리가 터지기 전에는 손을 멈추지 않고 달려들었다.
고통을 모르는 괴물!
칠절매화검으로 칠십이귀 중 한 놈의 가슴을 관통시킨 명종자가 방심했다가 팔이 잘렸다.
제갈도도 상대의 가슴을 가르고 멈칫했다가 옆구리에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그러나 폭령잠마단을 복용한 자들과 싸워본 사람들은 조금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칠십이귀의 목을 자르고, 머리를 두 쪽 내서 완벽하게 죽였다.
드넓은 마당이 순식간에 피로 물들었다.
이무환은 칠십이귀 중 여섯을 죽이고는 우문적태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우문조현이 또 한 번 명을 내렸다.
“삼십육혈에게 허락한다! 저들의 피로 목을 축여라!”
그때까지도 석상처럼 서있던 혈포인들이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몸을 날렸다.
이무환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허공으로 솟구쳐서 곧장 우문적태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혈포인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밀천회의 절대고수들과 광룡단과 정천무림맹에서 선별된 고수들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설령 그들이 막지 못해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이 싸움은 우문적태와 우문조현을 잡아야만 끝난다.
혈포인들을 상대하며 공력을 소진하면, 둘을 잡기가 그만큼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말이다.
“흥! 네놈은 내가 상대해 주마!”
우문조현이 코웃음 치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러나 우문적태가 한발 먼저 이무환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일순간 그의 쌍장에서 검은 구름이 일렁거렸다.
“클클클, 어디, 얼마나 강한지 보자꾸나!”
광룡에 대해선 말만 들었을 뿐이다. 자신과 싸우는 것을 보면, 손자가 광룡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광룡의 공력이 소모되면 그만큼 상대하기 편해질 것이다.
이무환이야 누가 먼저 덤벼들던 상관없었다.
“늙은이, 일찍 죽고 싶다면 소원을 들어주마!”
그는 묵린도를 회수하고는 천광지령의 기운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상대는 삼악 중 하나, 묵운방의 방주다.
어설픈 공격은 통하지 않을 고수 중의 고수.
게다가 그의 뒤에는 우문적태 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우문조현이 있지 않은가.
여유를 부릴 상황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해서 한 사람이라도 빨리 무너뜨려야 했다.
콰르릉!
천광무벽이 떨어지며 우문적태를 짓눌렀다.
묵운이 출렁이며 방원 삼 장 넓이로 퍼져 나가고, 우문적태는 다섯 걸음을 물러선 채 눈을 부릅떴다.
청석에 여섯 치 깊이로 찍힌 다섯 개의 발자국.
늘어진 볼의 주름이 파르르 떨렸다.
바로 그때, 삼 장 허공으로 튕겨진 이무환의 양손에서 빛의 광채가 구를 형성했다.
우문적태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서, 설마 천광……?!”
우문조현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훌쩍 몸을 날렸다.
“조부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그 순간.
번쩍!
이무환의 양손 사이에 형성된 천광주가 우문적태를 향해 쏘아졌다.
우문적태는 쌍장을 휘둘러서 묵운의 벽을 겹겹이 둘러쳤다.
찰나!
콰과광!
묵운의 벽에 천광주가 부딪치며 산산이 터져 나갔다.
천광폭멸주!
파천삼법 중 두 번째 능력이 펼쳐진 것이다.
천광주가 폭발하자 묵운의 벽이 거짓말처럼 소멸되고, 우문적태가 기다란 고랑을 파며 죽 밀렸다.
동시에 이무환이 좌수를 흔들었다.
십성 공력이 실린 무영뢰가 우문적태를 향해 날아갔다.
고오오오…….
소리 없는 뇌전!
천광폭멸의 충격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부푼 우문적태는 피할 생각도 못한 채 묵운천라수로 무영뢰에 맞섰다.
쾅!
일장 충격에 진로가 틀어진 무영뢰 하나가 우문적태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음…….”
우문적태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린 순간!
퍼벅!
두 번째 무영뢰가 옆구리를 뚫고, 세 번째 무영뢰가 가슴에 틀어박혔다.
“조부님!”
우문조현이 악쓰듯이 외치며 우문적태의 머리 위를 넘어서 이무환을 공격했다.
“이놈!”
이무환은 무영뢰를 회수하지도 못한 채 천광수뢰공으로 우문조현의 공세를 차단했다.
콰과과광!
순식간에 오 초의 공방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공방으로 인한 강기의 회오리가 방원 오 장을 휩쓸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먹구름처럼 일렁이던 우문조현의 양손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쩌저적!
묵운의 기운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공격.
“헛! 뭐야?”
이무환은 생각지도 못한 우문조현의 공격에 훌쩍 뒤로 몸을 뺐다.
기선을 잡았다 생각한 우문조현은 연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
이무환은 우문조현의 공세를 막으며 머리를 굴렸다.
‘그랬어! 어쩐지 뇌의 무공이 나타나지 않는다 했더니, 우문적태가 두 가지를 얻었던 거야!’
그렇다면 우문조현이 강한 것도 이해가 갔다. 한 가지를 익히기도 힘들 텐데 두 가지를 익혔다. 그리고 자유자재로 사용한다.
우문적태가 얼마나 심하게 수련을 시켰을지 짐작이 갔다. 아마 우문조현도 자신만큼이나 지옥을 넘나드는 수련을 쌓았을 것이다.
‘좋아! 그렇다면 그만한 대우를 해주지!’
이무환은 우문조현을 바라보며 천광지령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대우라고 해봐야 별것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상대해 주면 될 일!
이무환은 천광주가 형성된 두 손을 내밀었다.
연이은 격전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벌떡거렸다. 하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천광주를 휘돌렸다.
풍운뇌우의 극성인 천광주가 빛을 발하자 우문조현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순간, 천광회회탄이 펼쳐지며 빛의 회오리가 일었다.
양손에서 시작된 빛의 회오리는 찰나간에 우문조현까지 집어삼켰다.
우문조현은 공력을 극성까지 끌어올린 채, 우수로는 묵운천라수를, 좌수로는 뇌령장을 펼쳤다.
하지만 빛의 회오리는 그의 두 가지 기운을 모조리 끌어들여 소멸시켜 버렸다.
우문조현은 그제야 우문적태가 왜 그렇게 힘없이 당했는지 깨달았다.
그때 빛의 회오리 중심에서 커다란 구슬이 하나 튀어나왔다.
콰아아아!
우문조현은 이를 악물고 쌍장을 털어냈다.
콰아앙!
천광폭멸주가 우문조현의 기운과 부딪치며 터져 나갔다.
우문조현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금방이라도 피를 쏟아낼 것 같은 표정.
“이놈! 죽어라!”
전신이 피로 물든 우문적태가 노성을 내지르며 이무환에게 달려들었다.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듯 단호한 눈빛!
우문조현도 일갈을 터뜨리며 함께 몸을 날렸다.
“죽여 버리겠다!”
바로 그때였다. 건물 지붕에서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도망친 줄 알았던 환비였다.
그가 양손을 휘두르며 천풍장을 펼치자, 대기가 비틀리며 강기의 회오리가 일었다.
“크하하하! 죽어라, 광룡!”
이무환은 하늘과 땅에서 펼쳐지는 절대고수들의 공격에 이를 갈았다. 우문적태와 우문조현만이라면 어떻게든 몸을 빼고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환비마저 합세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삼재진에 갇힌 형국!
부딪치지 않고서는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빌어먹을! 저 족제비 같은 놈, 정말 밥맛이군!’
천광회회탄과 천광폭멸주를 연이어 펼친 바람에 공력이 썰물처럼 밀려 나간 상태다.
세 사람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내기에는 좋지 않은 상황.
문제는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좋아! 이판사판!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이무환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리고는, 마음을 비우고 오직 하나만을 떠올렸다.
그 순간만큼은 달려드는 적조차 잊었다. 자신이 무얼 하고자 하는지조차 잊었다. 그러고는 오직 하늘과 하나가 되기만을 원했다.
그사이 묵운과 뇌정의 기운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바위조차 으스러뜨릴 천풍의 회오리가 이무환의 등줄기를 덮쳤다.
찰나였다!
화아아악!
이무환의 전신에서 빛무리가 터져 나왔다.
극한의 상황에서 천광무무동천(天光無無動天)이 펼쳐진 것이다.
눈부신 빛무리는 소리 없이 방원 십 장을 뒤덮었다.
빛무리에 뒤덮인 사람들은 입을 쩍 벌린 채 뒤로 튕겨졌다.
가장 근접했던 우문적태는 온몸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며 오 장을 날아가고, 우문조현은 삼 장가량 튕겨진 후 바닥에 나뒹굴었다.
그리고 환비는 건물의 벽에 처박힌 채 선홍빛 피를 게워냈다.
빛무리는 나타날 때만큼이나 빨리 사라졌다.
이무환은 천천히 손을 내리고는, 청석 깊숙이 파고든 발을 빼내며 오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심장 부위가 텅 빈 느낌. 온몸이 해초처럼 흐물거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턱까지 치켜들고 눈에 힘을 주었다.
우문적태는 즉사한 듯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우문조현이 꿈틀거리긴 하는데, 그 역시 살았다고 말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천광지령의 기운이 그의 공력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혈맥을 가닥가닥 끊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환비의 상태가 두 사람보다 나아 보였다. 뒤늦게 달려든 덕분에 목숨만은 구한 듯했다.
하지만 선천진기가 깨어진 듯, 창백한 얼굴의 입가에서 선홍빛 핏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죽지는 않았으니 약속은 지킨 셈인가?’
이무환은 세맥 곳곳에 퍼진 기운을 모으면서 접전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우문적태와 우문조현, 환비를 처리하는 동안, 묵운방의 괴물 같은 자들도 대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와중에 정천무림맹과 항주 연합세력의 고수들도 상당수가 죽임을 당했다.
명종자를 비롯한 간부급 고수들 십여 명에, 심지어 우내혁과 소천득도 심각한 부상을 당한 듯 온몸이 피로 범벅되어 있고, 호연청이나 황보광마저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삼십육 명의 혈포인, 삼십육혈을 상대하다 입은 부상이었다.
이제 남은 혈포인은 십여 명. 상황은 마무리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후우,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잠깐 사이 삼성 정도의 내력이 돌아왔다. 자신이 직접 싸우지만 않는다면 큰 위험을 없을 듯했다.
이무환은 주먹 쥔 손에 힘을 주고 무설강을 불렀다.
“형님, 광룡단 사람들 좀 데리고 이리 와보시죠.”
그때였다. 제갈신걸과 접전을 벌이던 창무옥이 허둥지둥 건물 쪽으로 도주했다. 사마강과 싸우던 위지호천도 그의 뒤를 따라서 몸을 날렸다.
“어? 저놈들이……!”
창무옥은 기관을 움직이는 자.
이무환이 다급히 소리쳤다.
“저놈들을 잡아!”
순간 근처에 있던 헌원숭이 활을 튕겼다.
퉁!
“컥!”
위지호천이 허리를 활처럼 휘더니 그 자리에 무너졌다. 그사이 무설강과 제갈신걸과 사마강이 창무옥이 도주한 곳을 향해 날아갔다.
이무환은 입 안에 가득 고인 핏물을 꿀꺽 삼켰다.
약세를 보이면 누가 달려들지 몰랐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묵운방의 적뿐만이 아니었다. 밀천회의 고수들도, 정천무림맹의 사람들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절대사천을 두려워하며 삼백 년을 살아온 자들이 아닌가.
그 시절이 다시 오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 분명했다.
‘제길, 하여간 무 형님은 눈치도 없다니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무설강을 다시 부를 수도 없는 일. 이무환은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남모르게 소주천에 집중했다.
그때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이무환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뒤를 바라보았다.
남궁산산이 순우경과 엽상, 종리난경, 신기영의 호위를 받으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주위를 살펴보았다.
‘저 자식이, 아직도 위험한 곳인데…….’
하지만 속마음은 반갑기만 했다.
특히 몸이 최악인 상황에서의 만남이라 더 반가웠다.
이무환은 남궁산산이 다가오자 슬쩍 눈짓을 하고는 입을 살짝 벌렸다 닫았다.
다가오던 남궁산산이 눈을 반짝였다.
붉은 입안이 보였다. 핏물이 이 사이에 끼어 있다. 그것을 보였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그녀는 곧 상황을 눈치채고, 품속에서 깃발을 꺼내 이무환 주위에 모조리 꽂았다. 그리고 몇 마디 톡톡 쏘며 이무환에게 바짝 다가갔다.
“혹시 사악한 자들이 또 나타날지 모르니까 운기부터 해요, 오빠.”
남궁산산이 눈앞을 가린 사이, 이무환은 손을 품속에 넣어 대나무통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고는 두 개의 단약을 꺼내서 입술을 닦는 척하며 입 안에 집어넣었다.
호연청과 황보광이 고개를 돌리더니 이마를 좁혔다.
두 사람의 눈에서 의심의 눈빛이 떠올랐다.
‘수상한데?’
‘저 자식이 왜 저러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