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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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843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47화
247화
백여 장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선두를 달리던 자들은 이를 악물고 상대의 진영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제 양쪽 다 물러날 곳이 없는 상황.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벼랑 끝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뒤쪽에 처져 있던 사종위와 경충문은 눈을 부릅뜬 채 전장을 바라보았다.
적의 숫자가 예상보다 많았다. 분명 육백 정도라 했거늘, 일천이 넘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사종위가 당황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제길, 정보가 잘못되었어!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많아!”
외장(外莊)의 고수 팔백을 모조리 이끌고 나왔다. 공우전을 비롯한 장로 셋과 묵운백령을 모조리 데려왔다.
적어도 숫자에서는 적을 앞설 거라 생각했다. 총 전력에서도 크게 밀리지 않을 거라 여겼다.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숫자에서도 밀리고, 전체적인 전력도 뒤지는 상황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뿐. 놈들에게 최대한 타격을 줘서 발걸음을 돌리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반만 무너져도 양주를 칠 수 없을 거다!’
결정을 내린 그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죽을 때 죽더라도 상대를 철저히 물고 늘어져라! 적의 피를 보기 전에는 쓰러지지 마라!”
하지만 경충문은 사종위와 생각이 달랐다. 그는 숫자보다 한 사람이 더 걱정되었다.
광룡을 막지 못하면 숫자가 많아도 소용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내가 장로들과 함께 광룡을 상대하겠네! 사 형은 묵운백령을 데리고 밀천회 놈들을 맡으시게! 환비! 자넨 나를 도와주게!”
고개를 끄덕인 사종위는 이를 빠드득 갈고 묵운백령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나를 따라와!”
싸움은 시간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그것은 싸움이 아니라 광란이었다.
누구라 할 것도 없었다. 모두가 아비규환의 지옥 속에서 날뛰는 수라귀가 되어 상대의 심장에 검을 꽂고 목을 쳤다.
순식간에 들판 가득 피어난 시뻘건 혈화!
처절한 비명. 공포에 질린 신음. 광기 들린 악다구니.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는 숨조차 쉬기 힘들 지경이다.
그 광경이 어찌나 살벌한지 대지가 진저리를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 이무환은 경충문과 묵운방 장로들의 합공을 상대했다.
절대고수가 포함된 네 명의 합공. 게다가 환비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보니 이무환도 바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렇게 십여 초. 이무환의 이마에 핏줄이 돋았다.
‘이것들이 정말!’
분노가 솟구친 이무환은 십성 공력을 끌어올려서 무영뢰 하나를 발출했다.
고오오오!
그림자도, 소리도 없이 날아간 무영뢰가 묵운방 장로인 공우전의 등을 관통했다.
“크억! 이, 이게 무슨…….”
또 다른 장로 강명이 공우전의 가슴이 뚫린 것을 보고 기겁해서 주춤거렸다.
그 순간, 묵린도가 번쩍이며 강명의 목을 갈랐다.
쩌저적!
“커억!”
두 사람이 쓰러지자 상황이 급변했다.
이무환은 선회한 무영뢰를 회수하고는,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백가위를 그대로 덮쳤다.
공포에 질린 백가위는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내 이무환의 공격을 막았다.
그러나 이무환의 구성이 실린 도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쾅! 쩌정!
백가위의 검이 산산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고, 그의 입에서 핏줄기가 뿜어졌다.
이무환이 그를 향해 도를 그었다.
묵빛 광채가 번뜩인 순간, 백가위의 허리가 반으로 접혔다.
“끄어어억.”
이무환은 앞으로 꼬꾸라지는 백가위를 놔둔 채 경충문을 향해서 파천묵린광을 펼쳤다.
묵린도의 도첨에서 묵빛 비늘이 번쩍이며 폭발했다.
콰르르르릉!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 경충문은 전력을 쏟아 검을 휘둘렀다.
“이노오오옴!”
청광이 번뜩이며 석 자 길이의 검강이 뻗어나갔다.
환비도 합세해서 이무환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죽어라, 광룡!”
‘빌어먹을 자식!’
이무환은 극성의 수류보로 환비의 공세를 피하고는, 경충문을 향한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묵빛 비늘이 천지를 가르며 쏟아졌다.
퍼버버벅!
묵빛 비늘 수십 개가 경충문의 몸을 관통했다.
경충문마저 온몸에서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자, 공포에 질린 환비가 다급히 뒤로 몸을 뺐다.
“환비! 어딜 가려고!”
이무환이 소리치며 환비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고수 넷을 무너뜨리며 상당한 공력을 소모한 그였다. 하지만 환비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잠풍련 고수 셋이 이무환의 앞을 막았다.
“광룡! 주군을 쫓으려면 우리를 죽여야 할 것이다!”
“흥! 죽여달라면 죽여주마!”
이무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오 초 만에 그들을 거꾸러뜨렸다. 그러고는 능공비를 펼쳐서 허공으로 날아오른 후 환비를 찾았다.
빌어먹게도 환비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쥐새끼처럼 잘도 빠져나가는군.’
혈전이 극에 달한 상황. 이무환은 하는 수 없이 환비를 포기하고 항주 연합세력 무사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신형을 날렸다.
한편, 호연청은 사종위와 접전을 벌이고, 황보광을 비롯한 밀천회의 고수와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은 묵운백령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정천무림맹의 간부들은 묵운백령을 상대해본 후에야 왜 광룡이 미친 듯이 날뛰며 자신들을 다그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제10장. 따라가고, 남고, 떠나가고…….
1
혈전은 시작한 지 반 시진 만에 끝이 났다.
싸움이 멎은 전장은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승리를 했다지만, 정천무림맹과 연합세력 무사들도 이백여 명이 죽은 상황이었다. 거기다 부상자들은 더 많았다.
적아의 시신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내가 되어 흘렀다. 걸음걸음마다 발바닥에 진득한 핏물이 묻었다.
비릿한 피비린내와 역겨운 악취에 후각이 마비될 지경이다.
정천무림맹과 연합세력 무사들은 창백하게 질린 채, 입을 꾹 닫고서 동료들의 부상을 돌보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곳에서 부상자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무환은 반 시진이 지나자 호연청과 원화도장을 재촉했다.
“쉴 만큼 쉬었으면 그만 출발하죠.”
명종자가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
“그럼 부상자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때였다. 명종자의 질문에 답하듯, 언덕 너머에서 황두영이 조약생과 함께 칠팔십 명의 장한을 데리고 나타났다.
외곽을 감시하던 무사가 그들을 막으려 하자 영호승이 소리쳤다.
“우리를 도우러 온 사람들입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
황두영은 곧장 이무환에게 다가왔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사람들을 최대한 모으느라 조금 늦었네.”
이무환의 눈이 명종자를 향했다.
“이분들이 뒤처리를 해줄 거요. 부상자도 돌봐주고, 시신도 정리하고. 그래도 가기 싫으면 여기 남으쇼.”
몸이 성한 사람은 모두 오백 정도 되었다. 경상자 이백여 명까지 합쳐 모두 칠백여 명.
계산대로라면 십오형제장에 남아 있는 적의 숫자는 오륙백 가량. 숫자에선 밀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야말로 묵운방의 최고 정예라는 것이다.
이무환은 적의 최고정예가 얼마나 무서운 놈들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단 이백의 잠풍련 고수에게 구룡성이 무너질 뻔하지 않았던가.
‘천세 늙은이을 내가 막지 못했다면 무너졌지 뭐.’
사우천은 또 어떠했던가.
묵운방의 진정한 전력이 그들보다 약하란 법은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 상황만 봐서는 더 강할 듯했다.
‘우문조현인가 하는 자식만 봐도 알만 해. 어쩌면 다른 곳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지도 모르겠어.’
2
우문적태는 시시각각 보고를 받으며 눈빛이 차가워졌다.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종위와 경충문은 죽었고.
이제 곧 놈들이 십오형제장으로 몰려올 것이다.
“준비는?”
“모두 끝나 있습니다, 조부님.”
“놈들은 곧 본 방의 무서움을 절절히 느끼게 될 겁니다, 사부님.”
우문적태는 우문조현과 창무옥의 대답을 들으며 주름진 입술을 비틀었다.
‘오랜만에 마음껏 붉은 피를 구경할 수 있겠군.’
차갑게 식었던 피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가서 놈들을 맞이해라.”
이무환은 십오형제장을 보며 짧게 소리쳤다.
“갑시다!”
그의 말이 떨어진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서른세 명의 고수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선두에 선 이무환은 빠르게 십오형제장으로 접근하며 우수를 들어 올렸다.
뇌정갑을 낀 손에 영롱한 광채가 맺히는가 싶더니 벼락이 번쩍였다.
쩌저적, 쾅!
십 장의 거리를 둔 채 외장 중 청심장의 정문이 터져 나갔다.
동시에 이무환의 목소리가 십오형제장을 뒤흔들었다.
“우문 늙은이! 나와아아!”
우문적태는 장원을 뒤흔드는 외침에 주름진 눈꺼풀을 한껏 들어 올렸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인할 것도 없었다.
들은 대로라면, 저렇게 소리칠 놈은 하나뿐이었다.
“광룡이란 놈인가 보군.”
이무환은 정문을 통해 장원으로 들어가며 사위를 쓸어보았다.
서른세 명이 넓게 퍼져서 안으로 들어가는데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흠, 그럼 안쪽에 있다는 건가?’
곧 칠백에 가까운 무사들이 십오형제장의 담장을 향해 새카맣게 달려들었다.
콰과과광!
천둥소리가 사방에서 울리며 외장의 담장 백여 장이 무너져 내렸다.
그들이 자의적으로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이무환의 지시에 의한 행동이었다.
담장에 기관이 설치되어 있다면 함께 부서질 것이 아닌가.
좁은 곳도 확 트이고 말이다.
외벽을 무너뜨린 사람들은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안쪽을 향해 움직였다.
급할 것 없었다. 천천히 걸어도 반 각이면 중심 부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지, 자신들이 아니었다.
군웅들은 바짝 긴장한 채 아무도 없는 외장을 통과했다. 그러다 두 번째 담장이 나오자 공력을 한껏 끌어올려 담장을 향해 쏟아냈다.
콰르르르릉!
두 번째 벽이 무너지며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보고를 받은 우문적태는 어이가 없었다.
설마 담장을 무너뜨리며 밀고 들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그런 행동을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미친놈이라더니……. 허어…….”
이무환은 서른두 명의 고수와 함께 세 번째 담장을 날아 넘었다.
순간 우박이 하늘로 솟구치듯 수천 발의 화살이 허공에 떠 있는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초절정 이상의 경지에 오른 서른세 명의 고수는 호신강기로 화살을 튕겨내며 드넓은 정원에 내려섰다.
그와 동시, 이백여 명의 흑의인이 그들을 향해 구름처럼 밀려들었다.
이무환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뒤질세라 나머지 서른두 명의 고수도 이무환을 따라서 검은 구름을 향해 짓쳐들었다.
쩌저저적! 콰르릉!
따다당! 쾅!
온갖 굉음이 울리며, 흑의인들이 태풍에 휘말린 가랑잎처럼 무너졌다.
순식간에 오십여 명이 무너지자, 흑의인들이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콰르릉!
그때 세 번째 담장이 무너지며 연합세력의 무사들이 안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우문조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놈들에게 묵운의 힘을 보여줘라!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사방에서 이백여 명의 흑의인이 더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곧장 정천무림맹의 무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비록 이무환을 비롯한 서른세 명의 고수에게는 밀리긴 했지만, 그들의 무위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정천무림맹의 중견 무인들조차 그들과 일대일의 접전을 벌이며 우세를 잡지 못했다.
이무환은 서른두 명의 고수를 이끌고 흑의인들을 그대로 관통했다.
조금 전의 목소리는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렸다.
그곳에 우문적태와 그의 손자인 우문조현이 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건물 하나를 돌아 이십여 장을 나아가자, 눈앞이 확 트이더니 넓은 마당이 나왔다.
강호문파의 대연무장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은 곳이었다.
바로 그곳에 혈포인 삼십여 명과 갈의인 칠십여 명이 서 있었다. 네 사람을 호위한 채.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이었고, 두 사람은 우문조현과 위지호천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처음 본 자였다.
‘저 자식이 창무옥이군.’
그때 우문조현의 명이 떨어졌다.
“칠십이귀는 놈들을 쳐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네 사람을 호위하고 있던 자들 중 갈의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무환은 그들을 보고 이마를 찌푸렸다.
“빌어먹을! 여기에도 정신 나간 놈들이 많군.”
평범한 무사들이 아니다. 반쯤 혼이 나간 자들이다.
우문적태가 삼악 중 하나라 불린 것은 그의 사이한 무공 때문이 아니던가. 아마도 그가 자신의 사이한 무공을 이용해서 괴물들을 조련한 듯했다.
“방심하지 마쇼! 괴물 같은 놈들이니까, 죽일 땐 확실하게 죽이쇼!”
이무환이 소리치며 묵린도를 든 손에 힘을 준 순간!
갈의인들이 일제히 도검을 빼 들더니, 유령처럼 움직이며 서른세 명의 고수를 향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