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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룡기 245화

무료소설 광룡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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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광룡기 245화

 

245화

 

 

 

 

 

 

 

 

“예, 태상!”

 

두 명의 중년인이 절도있게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취하고 선창가에 정박한 배에 올랐다.

 

“배를 출발시켜라!”

 

여덟 척의 배가 먼저 선창을 출발했다.

 

한 척당 무사 오십 명이 탄 배였다. 그들은 사오십 장의 거리를 두고 불화살을 쏴 적선을 불태울 계획이었다.

 

그 후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들을 향해 강궁을 쏘면 대부분의 적은 물고기밥이 될 수밖에 없었다.

 

등평도수를 펼칠 수 있는 초절정 경지 이상의 고수들이 문제긴 한데, 그들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배에는 그들을 상대할 고수들이 타고 있으니까.

 

“물에서의 싸움은 결코 무공만으로 해결 나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한 네놈들이 갈 곳은 지옥뿐이지. 그것도 불지옥, 물지옥으로 말이야. 후후후후.”

 

그가 냉소를 흘리며 쳐다보는 사이 여덟 척의 배가 멀어졌다. 그즈음 진강 쪽에서 오는 열두 척의 배는 오 리 넓이의 장강 한가운데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네 척씩 두 줄로 늘어선 묵운방의 배가 오십여 장 정도 나아갔을 때였다.

 

‘응? 왜 저러지?’

 

사종위가 눈살이 찌푸렸다.

 

앞쪽에서 나아가던 서너 척의 배가 왠지 모르게 약간 기운 듯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물살 때문에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배가 기울어진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배에 물이 샌다!”

 

“구멍을 막아!”

 

배에서 난데없는 소란이 일었다.

 

사종위가 배를 향해 소리쳤다.

 

“무슨 일이나?!”

 

“배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태상!”

 

한두 척이 아니었다. 네 척이 모두 같은 상황인 듯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한 채 물살에 휘말려 아래로 흘렀다.

 

“무사들은 즉시 다른 배로 갈아타라!”

 

사종위가 다급히 소리쳤다. 뒤쪽에 있던 배들이 앞에 있는 배를 향해 빠르게 접근했다.

 

하지만 곧 그 배들조차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헉! 우리 배도 구멍이 뚫렸다!”

 

“물이 차오른다! 빨리 밖으로 나가!”

 

 

 

조약생은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두 손을 불끈 쥐었다.

 

반쯤 기울어진 묵운방의 배를 향해 열두 척의 배가 다가가는 게 보였다.

 

“흐흐흐흐……. 제대로 처리했군.”

 

물에 익숙한 사람들을 시켜 밤새도록 묵운방의 염선 바닥을 깎아냈다. 마지막 얇은 피막만 남겨놓은 채.

 

가만히 있을 때야 괜찮겠지만, 장강의 물살에 저항하며 움직이면 압력을 받아서 터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물에 빠졌다고 죽을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도강하는 배를 공격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크크크, 일인당 백 냥씩 모두 팔백 냥이 들었는데, 여덟 척의 배를 가라앉혔으니 괜찮은 수익이군.”

 

그곳에 탄 사백의 무사 중 얼마나 죽을지는 모르지만, 그에 대한 계산은 따로 해야 했다.

 

지난 몇 년, 힘이 없어 묵운방의 하수인들에게 죽은 사람이 천 명이 넘었다. 오늘 죽는 자들은 그들의 몫이었다.

 

“개자식들,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을 거다!”

 

 

 

3

 

 

 

그 시각.

 

이무환은 제갈신걸, 모용상명, 순우경과 함께 서쪽의 갈대숲에 숨어서 전방을 바라보았다.

 

저 앞에 길게 늘어선 무사들이 보였다. 얼핏 봐도 이백 명은 될 듯했다.

 

일대를 짓누르는 싸늘한 기운. 지나가던 물새들이 피해갈 정도의 가공할 기운이 그들에게서 피어나고 있었다.

 

하나같이 정예고수들이라는 말.

 

문제는 저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는 자들까지 합할 경우 적어도 배는 된다고 봐야 했다.

 

‘제기랄! 우리 넷이서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해야 한단 말이지?’

 

모용상명은 이를 악물고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그런데 광룡은 왜 저리 태연하단 말인가?

 

설마 저들을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이무환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묵운방의 무사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묵운방 무사들 너머 쪽, 야트막한 구릉을 향하고 있었다.

 

‘올 때가 다 되었는데…….’

 

그때였다. 북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렸다.

 

비록 아스라이 들렸지만, 그것은 분명 격전이 벌어지는 소리였다.

 

“왔군! 갑시다!”

 

이무환은 짧게 소리치고는, 갈대숲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즈음 묵운방의 무사들도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

 

갈대숲 사이로 밀려가는 그들의 모습은 해안을 휩쓰는 해일 같았다.

 

이무환은 겁도 없이 그들의 중앙을 향해서 빠르게 나아갔다.

 

순식간에 백 장의 거리가 삼십 장으로 줄어들었다.

 

스릉!

 

이무환의 우수가 묵린도를 잡아 뺐다.

 

그사이 거리는 이십 장으로 줄어들고, 이무환의 좌수에 무영뢰가 들렸다.

 

쒜에에엑!

 

시퍼런 창공을 찢어발기는 귀곡성과 함께 무영뢰가 날았다.

 

북쪽을 향해 달리던 자들 중 몇이 고개를 돌렸다.

 

세 발의 무영뢰는 한낮의 벼락이 되어 그들을 휩쓸었다.

 

“컥!”

 

“허억!”

 

“뭐, 뭐야? 켁!”

 

찰나간에 일곱 명이 쓰러졌다. 그 옆에 있던 자들은 당황하지 않고 이무환 일행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무환은 무영뢰를 회수하며 십여 명이 몰려 있는 한가운데로 신형을 날렸다.

 

쩌저저정!

 

핏물과 갈대와 부서진 도검의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뒤따라가던 모용상명과 제갈신걸과 순우경도 이를 악문 채 적을 향해 뛰어들었다.

 

묵운방 무사들이 아무리 정예라 해도 이무환 일행은 그들과 비교되지 않는 고수들이었다.

 

묵빛 도광이 번쩍이고, 검광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 사이에서 간간이 하얀 소수가 번쩍이며 적의 심장을 부수었다.

 

“으악!”

 

“크억!”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처절한 비명!

 

숨을 두어 번 쉴 짧은 시간. 이십여 명이 고혼이 되어 쓰러졌다.

 

“뒤에도 적이 있다! 놈들을 막아!”

 

묵운방 무리의 중간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수십 명이 북쪽으로 달리다 말고 네 사람을 에워쌌다.

 

그러나 이무환 일행은 상대가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공격을 퍼부었다.

 

바람 소리에 섞인 비명이 갈대숲을 뒤흔들었다.

 

잘라진 갈대들이 흩날리며 눈처럼 내렸다.

 

십여 명이 더 쓰러지며 갈대숲에 곳곳에 혈화가 피어났다.

 

그사이 더 많은 자들이 몰려들었다. 힐끗 본 것만으로도 백 명은 될 듯했다. 개중에는 절정의 기운을 지닌 자들도 상당수 끼어 있었다.

 

“나를 따라오쇼!”

 

이무환이 빽 소리치고는 뒤쪽으로 달려갔다.

 

이무환이 갑자기 몸을 빼자, 세 사람은 잠자다 물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황급히 뒤로 물러나서 이무환을 따라갔다.

 

“놈들을 쫓아라!”

 

“놓치지 마!”

 

백수십 명의 무사가 이무환 일행을 쫓았다.

 

삼십여 장을 달린 이무환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자, 이제부터는 흩어져서 놈들을 공격하는 거요! 갈대숲을 철저히 이용하고! 갑시다!”

 

완전히 북 치고 나발 불고 혼자 다했다.

 

그러나 대충 던진 그의 말이 최선이라는 걸 알기에 세 사람은 좌우로 흩어졌다.

 

‘어쩌면 성공할지도 모르겠군!’

 

‘저 정도 숫자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그들의 가슴에서 희망이 피어났다.

 

 

 

싸움이 벌어진 지 이각.

 

이무환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갈대를 흔들었다.

 

“이제 그만 빠져나오쇼!”

 

그는 일갈을 내지르고 갈대숲을 빠져나왔다.

 

무려 오십여 명이 그의 손에 쓰러졌다. 이제는 적들이 그의 곁으로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일일이 쫓아다닐 수도 없는 상황. 이제 이곳을 벗어나서 진강에서 오는 자들을 도와야 할 때였다.

 

그런데 우거진 갈대숲을 빠져나가던 이무환이 멈칫했다. 

 

저만치 순우경이 보였는데, 하얀 백의가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거기다 다리 쪽은 옷까지 찢어져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적의 피가 묻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부상을 당한 듯했다.

 

이무환은 신형을 날려서 순우경의 옆에 내려섰다.

 

“괜찮아요?!”

 

순우경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견딜 만해요.”

 

작은 상처를 몇 군데 입었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 절정고수 몇 명을 상대하하다 보니 조금 지쳤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때 갈대숲 저 너머에서 제갈신걸의 목소리가 들렸다.

 

“단주, 뭐 하는 거요? 안 갈 거요?”

 

자신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갈대숲을 빠져나간 듯했다.

 

“되게 빠르네. 갑시다.”

 

순간 이무환이 순우경의 손을 잡아챘다.

 

순우경이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 하자, 이무환은 그녀의 손을 잡은 손에 내력을 불어넣었다.

 

“지금은 촌각을 다투는 때요. 그냥 내 기운을 받아들여요.”

 

순우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항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술을 씹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4

 

 

 

사종위는 급히 배를 보내서 사람들을 끌어 올렸다.

 

그리했는데도 여덟 척의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구해낸 자는 이백여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이백여 명은 강에 떠내려가거나, 열두 척의 배에서 쏜 쇠뇌에 맞아 죽어갔다.

 

개중 이십여 명은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탄 배 위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하기에는 배에 탄 사람들이 너무 많고, 강했다.

 

곧 배 위로 올라간 자들이 피를 뿌리며 배에서 다시 떨어졌다.

 

사종위는 부릅뜬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다.

 

적은 오백이 넘는데다가, 그중에 절대고수가 대여섯 명이나 된다고 했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전력.

 

그렇다고 이제 배를 구해서 타고 나가 싸울 수도 없는 일.

 

그의 입에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들이……!”

 

배만 침몰하지 않았어도 자신들의 승리가 분명했거늘!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 없는 이상 후회해 봐야 죽은 자식 불알만지기였다.

 

적들을 실은 배가 백 장 앞까지 다가오자, 그는 이를 악물고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장으로 돌아간다!”

 

 

 

5

 

 

 

“그래서, 삼백이 넘는 무사들을 수장시키고 물러났단 말이지?”

 

우문적태는 고개를 푹 숙인 사종위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

 

사종위는 참담한 표정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어느 놈이 배에 구멍을 내놓는 바람에……. 면목이 없습니다, 방주.”

 

우문적태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내가 그토록 신중하게 상대하라 일렀거늘.”

 

사종위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하늘에서 먹구름이 내려와 온몸을 짓누르는 듯 거대한 압박감에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는 겨우 고개를 들고 으드득, 이를 갈았다.

 

“선봉에서 놈들을 막아 실수를 만회하겠습니다, 방주!”

 

“당연히 그래야지. 만일 또 같은 실수를 한다면… 그대라 해도 용서치 않을 것이야.”

 

사종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태상의 지위에 오른 지 팔 년. 그동안 평온한 세력이 지속되는 바람에 우문적태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 잊었다. 자신의 아들이라 해도 실수를 하면 용서치 않는 사람이 우문적태라는 것을.

 

그는 무릎을 꿇으며 허리를 숙였다.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방주.”

 

“종위와 충문이 함께 가서 놈들을 막아라. 막지 못하면, 그냥 그곳에서 죽어라.”

 

냉혹한 명령. 사종위는 그나마도 고마워하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예, 방주.”

 

경충문도 급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방주!”

 

 

 

사종위와 경충문이 결사의 각오로 장원을 나서자, 환비도 그 뒤를 따라갔다.

 

우문적태가 차가운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우문조현을 향해 물었다.

 

“저들이 막을 수 있을 거라 보느냐?”

 

“힘들 것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보냈는지 아느냐?”

 

“저 때문에 정리를 하시려는 것 아니셨습니까?”

 

우문조현이 담담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우문적태는 그 말에 조용히 웃었다. 북풍한설처럼 느껴지는 차가운 웃음이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주인 위에 올라서려는 놈들은 필요가 없어. 조금 힘들어도 나중을 위해선 그게 나은 법이니라.”

 

손자를 위해 제자도 제거한 그다. 주인에겐 하인이 필요할 뿐, 숙부는 필요 없다 생각했으니까.

 

대신 그는 새롭게 어린 제자를 받아들였다. 손자의 하인으로 삼기 위해서.

 

하거늘, 태상이 대수랴.

 

그 일에 대해선 우문조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역시 조부의 의견에 동의했다.

 

“저 역시 제 위에 올라서려는 자들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문적태는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환비라는 놈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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