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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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60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39화
239화
주광천은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굳이 더 물을 것도 없었다. 들을 것도 없었다.
환비, 그가 자신의 친부인 주광천을 공격해 중상을 입힌 게 분명했다.
이무환의 두 눈에서 삼색광이 번들거렸다.
“좋습니다. 당신 부탁대로 그 말을 전해주죠.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다른 부탁은 아예 할 생각 마쇼.”
“그 아이의 잘못만은 아니네. 결국은 내 업보인 것을…….”
“그만! 당신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하쇼. 나는 내 방식대로 할 테니까.”
“이보게…….”
“젠장! 내가 그냥 손을 썼어야 했는데!”
이무환은 스스로에게 화가 난 듯 버럭 소리치고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때 주광천의 몸이 스르르 옆으로 쓰러졌다.
그가 쓰러지며 입을 열었다.
“목숨만이라도…….”
정원에서 울어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보다 작았다. 하지만 이무환이 못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 양반아! 화도 안 나?”
이무환은 쓰러진 주광천의 어깨를 붙잡고 소리쳤다.
그러나 주광천은 희미한 미소만 지었다.
흉악하게 보일 정도로 그물처럼 갈라진 얼굴이다.
하지만 이무환의 눈에는, 그저 아들을 위하는 여느 아버지의 얼굴과 똑같게 보였다.
일순간, 주광천의 손이 가슴에서 떨어졌다.
동시에 빠져나갈 곳을 찾고 있던 핏물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환비! 이 개자식!”
이무환은 버럭 욕을 퍼부으며 다급히 주광천의 혈도를 점했다.
심장 부위에 구멍이 뚫렸다.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했다.
이무환은 손으로 구멍을 막고, 내력을 끌어올려 주광천의 실낱같은 기운을 이어놓았다.
“정신 차려! 당신 아들을 패륜아로 만들 거야?”
순간 주광천의 감긴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이무환이 다시 소리쳤다.
“만일 당신이 죽으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이무환은 주광천의 가슴에서 피가 멎은 다음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남궁산산이 들어오는 게 보인다.
이무환은 옆으로 다가온 제갈신걸과 공손척에게 주광천을 부탁했다.
“이 사람 좀 방으로 옮겨주쇼. 조심해서 다루어야 할 거요.”
남궁산산은 이무환이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다가오자, 힐끔 주광천 있는 곳을 바라보고 물었다.
“오빠, 그 사람이 누군데 그렇게 화가 났어요?”
“무면검마.”
남궁산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가 왜 여기에 나타난 거죠?”
이무환은 한숨부터 쉬고 입을 열었다.
“휴우우우. 그게 말이다. 환비라는 놈이 바로…….”
이무환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남궁산산의 표정이 몇 번이나 변했다.
진짜 구미호가 변신을 하는 것 같았다.
슬픔, 안타까움, 분노…….
그러더니 이무환이 섬뜩해할 정도로 싸늘하게 말했다.
“죽어도 싼 자예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떻게 할 거예요? 그 사람의 부탁을 들어줄 거예요?”
“나도 그게 고민이다. 목을 부러뜨려서 죽이고 싶은데, 목숨만은 붙여달라고 하니……. 에이…….”
“그럼 살려줄 거예요?”
“무면검마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놈의 생사를 결정할 생각이야. 물론 환비를 만났을 경우에. 그가 어디론가 멀리 도망갔다면, 쫓아가서 죽일 생각까지는 없어.”
일단 급한 대로 손을 쓰긴 했지만, 생사를 확신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자신이 한 말만큼은 반드시 지킬 생각이었다.
“살려주더라도 다시는 무공을 익힐 수 없게 만들어 버려요.”
“그거야 당연하지.”
이무환과 남궁산산의 무거운 표정이 그 말을 끝으로 펴졌다.
“들어가자. 앞으로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닌데, 네 생각을 들어봐야지.”
“그래요, 오빠. 근데 내상은 어때요?”
“조금 안 좋아.”
“그럼 음양구전공으로 치료해드릴까요?”
“음, 그게 나을 것 같아.”
3
양주에 소천장 괴멸에 대한 보고가 올라간 것은, 위지창화가 무너진 지 네 시진 만이었다.
“소천장이 무너지고 위지창화가 쓰러졌다?”
반문하는 우문적태의 주름진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좌태상 사종위가 침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예, 방주.”
“살아남은 사람은 얼마나 되느냐?”
“삼공자와 우태상, 적운단주가 살아남은 삼백 무사와 함께 위지가의 식솔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우문적태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삼백이라……. 하아……. 그래, 천강문은?”
“놈들이 기세만 올리고 그냥 물러갔다 합니다!”
“으음, 정파 놈들이 그런 잔머리를 굴리다니…….”
우문적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옆을 바라보았다.
“놈들이 곧장 이곳으로 올 거라 보느냐?”
그의 옆에는 이십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었다. 굵은 눈썹에 꾹 다문 입술이 두터워 전체적인 인상이 무척 강인해 보였다.
그가 바로 우문적태의 손자인 우문조현이었다.
“아무래도 놈들 역시 피해가 많으니 당장 움직이기는 힘들 걸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조치는 취해야 할 것 같다만.”
“장강만 막으면 놈들은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양주로 오기 위해선 장강을 건너야 한다.
장강을 건너지 못하는 한 양주는 그림에 떡일 뿐.
“흠, 그건 그렇지. 좌태상, 그 일은 자네가 맡아주게.”
사종위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방주.”
“염상들을 철저히 이용하게. 공을 세우는 자에게는 충분한 보상을 해주지만, 놈들을 도와주는 자는 멸족을 각오하라고 해.”
“그들 중 누가 감히 본 방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양주의 염상은 결코 묵운방의 명을 거역할 수 없다. 거역하면 소금매매는 물론 가족이 씨몰살을 당할 테니까.
그들을 이용한다면, 강소 일대의 장강 사정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었다.
우문적태는 사종위에게 명을 내리고 손자를 바라보았다.
“네가 삼십육혈(三十六血)과 칠십이귀(七十二鬼)를 지휘해라. 다른 사람은 나에게 맡기고, 오로지 광룡을 죽이는 일에만 전념해라. 알겠느냐?”
우문조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조부님.”
하지만 속에선 호승심이라는 악마의 불꽃이 점점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광룡, 네놈이 얼마나 강하기에 조부님을 위축시키는지 몰라도, 결국은 내 손에 죽게 될 것이다.’
제6장. 양주로 가는 길, 봄바람은 얼음꽃조차 녹이고…….
1
아침이 되어서야 사상자에 대한 정리가 끝났다.
죽은 사람만 오백이 넘는다.
소주를 떠날 거라면 몰라도 뒷정리를 해야 했다.
단순한 시신을 처리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강호의 싸움에 관이 개입하지 않는다지만, 수백 명이 죽어간 일은 단순하게 해결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소천장은 관과 나름대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세력. 그나마 다행이라면, 소주의 관청 역시 항주의 일을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 일은 경험이 많은 사마성문이 백혜대사와 함께 관을 찾아가 해결하기로 했다.
사마성문이 백혜대사와 함께 소천장을 나설 즈음.
소천장 사람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조사를 하던 제갈도가 이무환을 찾아왔다.
“대충 파악해 봤네.”
“남아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죠?”
“백 명 정도네. 대부분이 오갈 데 없는 하인들인데, 노인과 아이, 그리고 여자들이더군.”
“위지창화의 가족은요?”
“방계 가족이 열 명 정도 되는 거 같네.”
“흠, 그럼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십시오. 오래 있지 않을 테니, 우리가 있는 동안 허튼 생각 말고 일을 열심히 하라고요. 그럼 떠날 때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는 말도 꼭 하시고요.”
얼마나 머물지 몰라도 머무는 동안 식사와 잡일을 해결할 사람이 필요했다. 당장만 해도 여인들 중 몇 명에게 간단히 먹을 아침을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오지 않았던가.
제갈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대충 급한 상황이 정리되자, 이무환은 아침을 먹기 전에 각 단체의 간부들을 소집했다.
광룡단, 밀천회, 정천무림맹, 항주 연합 세력의 간부 이십여 명이 중천각에 모였다.
“위지창화의 가족이 열 명 정도 된다고 했죠?”
이무환의 질문에 제갈도가 대답했다.
“맞네.”
“위지가를 대표할 만한 사람이 있습니까?”
“위지창화의 직계가족은 없지만, 숙부 되는 위지문이라는 사람이 있네.”
“그럼 위지창화가 깨어날 때까지 이곳 문제는 그에게 맡기면 되겠군요. 그에게 말하세요. 순순히 협조하면 조용히 물러갈 거라고요.”
“그렇게 하지.”
무사들에게 소천장의 물건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했다.
약탈을 위해 소천장을 친 것이 아니었으니까.
검운장과 정천무림맹의 피해에 대한 보상은 적절하게 받아내되, 무작정 위지가의 재물을 탐할 생각은 없었다. 그 일은 위지창화가 정신을 차린 후 처리하면 될 테니까.
문제는 그가 당장 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를 대신해서 소천장을 대표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위지창화의 숙부라면 자격이 충분했다.
설령 원한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다른 식구들을 생각하면 허튼짓은 하지 못할 것이었다.
‘흥! 피해 보상을 하려면 모든 것을 다 내놓아야 할 거다, 위지창화!’
이무환이 내심 코웃음을 칠 때다. 호연청이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어떻게 하긴요? 부상자들이 나을 때까지 기다려야죠.”
황보광이 이마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중상을 입은 사람도 꽤 되는데, 기약없이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남궁산산이 간단하게 답을 내놓았다.
“중상자들은 응급치료를 해서 운하를 통해 검운장으로 보내면 되요.”
배를 통째로 전세 내면 중간에 서지 않고 곧장 항주까지 갈 수 있다. 흔들림도 적을 테니 중상자를 옮기는데 그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그럼 경상자만 남는데, 열흘 정도면 팔구 할가량 부상을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시간이면 맹의 무사들도 도착할 수 있을 테고요. 그다음에 본격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요.”
“놈들이 흔들렸을 때 조금이라도 빨리 몰아붙이는 것이 낫지 않겠나?”
우내혁이 자신감이 생긴 듯 단번에 묵운방을 박살 낼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상황만 봐도, 묵운방은 현재의 전력으로 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남궁산산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저들은 분명 우리의 움직임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을 거예요. 조급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저들의 그물에 걸릴지도 몰라요.”
이무환이 고개를 끄덕이고 좌중을 향해 물었다.
“말 들으니까, 양주로 가려면 장강을 건너야 한다고 하던데요?”
그걸 모르는 사람은 방 안의 사람 중 이무환뿐이었다.
“맞네.”
호연청이 그것도 모르냐며 혀를 찰 것 같은 표정으로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가보지 않았으니까, 처음으로 들었으니까 모르는 것뿐.
그런데도 모른다고 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나쁜 것이었다.
이무환은 속으로 ‘그러는 당신은 비룡도가 어디 있는 줄 알아?’ 그렇게 되물으며,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고 우내혁을 바라보았다.
“그럼 놈들이 장강을 막고 있을 게 분명한데, 건널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우내혁이 이마를 좁히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돌아서 가는 방법도 있네.”
이무환이 우내혁을 흘겨보았다.
“어디로 돌아가죠?”
“남경과 마안산 사이로 돌아서 가면 되지 않겠나? 그럼 정천무림맹의 나머지 사람들과도 합류할 수 있고 말이야.”
“부상자들을 데리고 말이죠?”
“그건…….”
반은 부상을 당한 상태다. 그들을 데리고 남경 쪽으로 움직이다가는 자칫 역공을 당할 수도 있었다.
우내혁은 어물거리다 입을 닫았다.
그제야 이무환이 좌중을 둘러보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일단 적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부상자들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죠. 열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말을 길게 끈 이무환이 제갈도를 바라보았다.
“전숙으로 사람을 보내서, 우리와 발맞춰 천강문을 칠 준비를 하라고 하십시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네만, 놈들이 또 속겠나?”
이무환이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이번엔 진짜 공격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움찔하며 이무환을 쳐다보았다.
이무환이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의 전력으로는 힘든 일이겠죠. 하지만 열흘의 시간이 있는 만큼 전력을 증강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정천무림맹 총단에 전서구로 연락하면, 지원을 받기에 충분한 시간일 거 같은데요.”
그때 남궁산산이 보충하듯이 말했다.
“정천무림맹의 무사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금천신문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그럼 본가에서도 무사들이 움직일 수 있어요, 오빠.”
만족한 듯 이무환이 담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흠, 황산검문은 어떻습니까? 지금 연락하면 제자들을 파견할 수 있을까요?”
담환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네. 그 일에 대해선 걱정 말게. 내 즉시 사람을 보내도록 하겠네.”
“하, 하. 고맙습니다. 꼬맹아, 그럼 천목산장에도 사람을 보내라. 이 기회에 모을 수 있는 사람들 몽땅 모아서 놈들을 때려잡자!”
“예, 오빠.”
좌중의 사람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무환과 남궁산산을 번갈아 보았다.
장난처럼 오간 말 몇 마디에 수백 무사가 보충되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산을 따져봐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때 이무환이 일어나며 말했다.
“자! 이제 아침 먹으러 갑시다!”
어느새 사시가 넘어 오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이 아니라 점심을 먹어야 할 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