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룡기 2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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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광룡기 232화
232화
“왜 말을 끊으십니까? 끝까지 들어봐야 할 거 아닙니까? 제가 그냥 돌아가자고 할지도 모르잖아요?”
호연청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어지간하면 이무환과 말상대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다. 그런데 또 버릇처럼 말상대를 했다.
그런 자신에게 짜증이 났다.
기분이 그러다 보니 말투에서도 짜증이 묻어 나왔다.
“그럼 나머지도 말해보게.”
이무환은 피식 웃으며 전음으로 말했다.
<짜증은 내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어디 합동작전이 잘되겠어요? 나이 드신 분이 좀 대범하셔야지…….>
호연청은 귓구멍을 막고 싶었다.
이제는 짜증 정도가 아니라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자네, 정말……!”
그가 벌게진 얼굴로 막 소리치려는 순간, 이무환이 아무 일 없다는 듯 입가에 여전히 웃음을 달고 말했다.
“발 빠른 사람들이 먼저 가서 저들을 막고 양동 공격을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사람들이 힐끔거린다. 이무환은 담담한데 자신만 화를 내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호연청은 생사대적을 눈앞에 둔 눈빛으로 이무환을 노려보았다.
‘감히 나를 놀리다니! 괘씸한 놈! 똥물에 튀겨 죽일 놈! 사흘을 굶겼다 덜 익은 고기를 억지로 처먹여 죽일 놈!’
손이 근질거렸다. 거리라고 해봐야 일 장도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광룡이라 해도 자신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을 듯했다.
그의 손가락이 펴지고, 손바닥이 점점 하얗게 물들 때였다.
이무환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칫한 호연청은 급히 기운을 흩어버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군.’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무환의 질문에 반문을 던졌다.
“이 숫자로 말인가?”
“어차피 발이 느린 사람과의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도 않을 텐데요, 뭐. 열 명 정도가 가서 반 각 정도만 막아도 될 거 같은데 말이죠.”
“그럼 열 명이 이백을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군.”
“폭이 좁은 곳을 이용하면, 직접적인 상대는 일 인당 대여섯 명 정도겠죠.”
모사는 아니어도 구룡성에서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며 살아온 사람이 호연청이다. 계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두어 번 반문하다 보니 자신이 언제 화를 냈는지조차 잊었다.
더구나 이무환이 말한 방법대로 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고, 반 각 이상의 시간도 벌 수 있을 듯했다.
적의 대규모 지원 무사가 있을 경우 반 각의 시간은 생사를 가르고도 남았다.
“그럼 그렇게 하세.”
이무환이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자, 신법에 자신 있는 분 앞으로 나오세요.”
이무환이 고개를 돌린 후에야 호연청의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빌어먹을, 저 여우 같은 놈에게 또 당한 것 같군.’
이무환을 비롯해서 호연청과 황보광, 헌원숭, 소천득, 우내혁, 모용상명, 무설강, 제갈신걸, 공손척이 앞을 막기로 했다.
“자네는 뒤에 남아서 나머지 사람들을 지휘하는 게 어떻겠나?”
호연청이 이무환을 떨치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지만, 이무환이 간단하게 틀어버렸다.
“고수가 한 사람이라도 더 앞에 가야 피해가 줄죠.”
광룡의 고집을 꺾을 자신이 없는 호연청은 더 말하지 않았다.
결국 이무환이 정한 대로 열 명의 고수가 먼저 출발했다. 나머지 인원도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5
바람이 왠지 눅눅하게 느껴진다.
기분 나쁜 느낌.
환비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동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사방이 수로와 호수다. 큰비라도 온다면 오도 가도 못할 판이다. 하지만 그가 느낀 기분 나쁜 느낌은 결코 비 때문이 아니었다.
‘너무 지체했어.’
자신의 느낌은 사부인 천세도인이 인정할 정도로 섬세하고도 정확했다. 이러한 느낌이 들 때면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곤 했다.
부상자 치료를 위해서 반 시진을 쉬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각을 더 쉬었다.
추격대가 있다면 그만큼 가까워졌다는 말.
소주에서 지원 나온 자들과 합류한 상태라면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그는 좌우에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둘러보았다. 총 일흔다섯 중 마흔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그중 잠풍십마가 다섯.
무창을 떠날 때와 비교하면 반도 되지 않는 인원이었다.
그는 속으로 광룡을 씹으며 전음으로 명을 내렸다.
<무슨 일이 벌어지면 절대 흩어지지 말고 방어에 치중하도록.>
잠풍십마 중 수장이나 다름없는 혈양마(血陽魔)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열 명의 추적대는 모두가 절대고수거나 그에 근접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앞은 수로라 해도 막지 못했다.
등평도수의 신법으로 물 위를 스치고 날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물새가 감탄할 정도로 날렵했다.
사십 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간 그들은 야트막한 야산에 올라 전면을 바라보았다.
그리 높지 않은 야산이었지만 전면이 탁 트여 있어서 삼십 리 앞까지 보였다.
“저기 있군요.”
이십여 리 정도 되는 곳에서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자들이 있었다. 먼 거리지만 그들의 정체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들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도 사십 리는 더 가야 한다.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과의 거리는 오 리 정도. 결국은 십 리 정도 간격이 벌어질 듯했다.
일각은 싸워야 한다는 소리.
이무환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맺혔다.
‘어디, 십 대 이백의 싸움을 시작해 볼까?’
사람들은 단순히 적을 견제하기 위해서 나선 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적과 마주치면 어차피 싸우게 될 터, 미리부터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았을 뿐.
이무환은 하얗게 웃으며 뒤를 돌아다보았다.
“자, 가서 한번 붙어볼까요?”
함께 지낸지 어디 하루 이틀인가?
호연청은 그 웃음을 보고서야 이무환의 본뜻을 눈치챘다.
‘깜박했군. 광룡이 그냥 남의 뒤나 쫓겠다고 나올 놈이 아니거늘.’
하지만 어쩌랴, 이미 이곳까지 왔는데.
전력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이무환 일행은 백 장의 거리를 둔 채 묵운방 사람들을 앞지른 후, 수로 옆의 갈대숲에서 기다렸다.
한쪽은 십여 장 넓이의 수로, 한쪽은 진흙탕 농지다.
수로와 농지 사이의 공간은 십오륙 장 정도. 소수의 적으로 다수의 적을 막기에 적당한 지형이었다.
이무환 일행은 묵운방 무리가 이십여 장 앞까지 다가온 다음에야 갈대숲에서 나왔다.
이무환이 뒷짐을 진 채 세 걸음을 옮길 즈음, 맨 앞에서 걸음을 옮기던 자가 이무환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광룡이다!”
콰광!
벼락이 떨어진 듯했다.
달리던 묵운방의 이백 무사가 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멈춰 섰다.
이무환은 턱을 치켜들고 씨익 웃었다. 그의 눈이 전면에 서 있는 환비를 향했다.
“그냥 가면 검운장에서 죽은 사람들이 섭하지. 안 그래, 환비?”
환비는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자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흥!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무환이 싸늘한 웃음을 매단 채 나직이 대답했다.
“못할 것도 없지.”
환비의 눈이 떨렸다. 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더 이상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주위에도 없는 듯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열 명이 전부라는 말. 그 열 명이 아무리 절대고수라 해도 자신들을 전부 막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고작 열 명으로 말이냐? 웃기는 소리!”
환비의 말에 묵운방 무사들도 정신을 차리고 무기를 뽑았다.
그렇다. 상대는 고작 열 명이다. 미리부터 겁먹을 필요가 없다.
환비가 그들을 부추겼다.
“추격대가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 하오! 놈들을 공격하시오!”
“놈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쳐라!”
묵운방 무사 이십여 명이 무기를 들고 신형을 날렸다.
그 뒤를 따라 환비와 잠풍련의 무사들이 달려들었다.
순간 이무환과 아홉 명의 고수에게서 가공할 기운이 퍼져 나왔다.
철벽이 따로 없었다. 열 명에게서 흘러나오는 절대의 기운은 철벽보다도 더 단단하고 강력한 장애물이었다.
쉬이익!
헌원숭의 손에서 세 발의 기어시가 날아가는 것으로 십대 이백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호연청의 하얗게 변한 손이 백령천존공을 쏟아내고, 소천득과 황보광이 우뚝 선 채 쌍장을 휘둘렀다.
콰르르릉!
먼저 달려들었던 이십 명의 무사는 근처에 접근도 못하고 튕겨나갔다.
그러나 뒤따라 달려든 잠풍련의 고수들은 서너 명씩 합공을 하며 철벽을 두들겼다.
모두가 절정에 이른 고수들이다.
그들의 합공은 절대고수라 해도 방심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우내혁과 무설강과 제갈신걸, 공손척, 모용상명이 검을 뽑아 들었다.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들 다섯은 모두가 검을 주무기로 쓰는 사람들이었다.
검강의 벽이 펼쳐지며 잠풍련 무사들의 공세가 막혔다.
일순간, 열 명의 고수가 일제히 적을 향해 쇄도했다.
“막아!”
백가위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선두에 선 이무환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묵린도를 휘둘렀다.
검은 벼락이 떨어지며 부딪치는 모든 것을 부수었다.
숫자는 단 열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백 무사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위세였다.
“침착하게 상대하라! 놈들은 열 명에 불과하다!”
백가위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환비도 다수라는 이점을 최대한 강조했다.
“합공하면 놈들을 죽일 수 있다! 철저히 합공해!”
묵운백령은 대여섯 명이, 잠풍련의 고수는 서너 명이 한 사람씩 맡아서 협공했다.
그도 안 되면 십여 명이 함께 달려들었다.
묵운방과 잠풍련의 무사들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절정고수가 수십이고, 초절정에 달한 자들도 칠팔 명이나 되었다. 게다가 환비와 백가위는 절대지경에 달한 고수였다.
헌원숭과 소천득, 황보광, 무설강, 제갈신걸이 합공에 휘말려서 더 이상 전진을 하지 못했다.
공손척과 모용상명도 잠풍십마에게 가로막혔다.
백가위는 우내혁을 상대하고, 환비는 호연청을 막아섰다.
이무환은 좌충우돌하며 자신을 둘러싼 이십여 명의 고수 사이를 누볐다.
‘쳇, 숫자의 차이가 너무 컸나?’
짧은 시간에 삼십여 명의 적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한 사람, 한 사람, 합공을 당하더니 손발이 묶여 버렸다.
비세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우세를 점하지도 못한 상황. 팽팽한 접전이 이어졌다.
이무환은 그 와중에 다섯 명을 더 쓰러뜨리고 정말 미친놈처럼 적진을 누볐다.
“다 덤벼!”
광풍이 따로 없었다.
누구도 그의 앞을 막을 수 없었다.
열 명이 달려들든, 스무 명이 달려들든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끊임없는 공격이 이무환의 행동반경에 제약을 가져왔을 뿐.
경충문과 위지호천은 그 틈을 이용해서 삼십여 명의 무사와 전장을 벗어났다.
뒤에서 쫓아오던 서른네 명의 고수가 도착한 것은, 이무환의 손에 이십여 명이 더 쓰러진 뒤였다.
“왔군! 좋아, 이제 확실하게 정리해 볼까?”
환비는 백혜대사가 이끌고 오는 고수들을 보고 대경했다.
열 명을 상대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수십 명의 고수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가세하면 전세가 변하는 것은 순식간일 터.
‘빌어먹을 새끼! 먼저 와서 시간을 끌었구나!’
그제야 이무환의 계획을 간파한 환비는 이를 갈았다.
그는 호연청을 향해서 전력을 다한 천풍장을 쏟아냈다.
콰과광!
호연청의 백령천존수가 천풍장과 정면충돌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가루가 되어 흩어져 있던 갈댓잎들이 회오리바람에 휘말리며 솟구쳤다.
환비는 그 반동을 이용해 십여 장을 벗어나고는 악을 쓰듯이 외쳤다.
“이곳을 벗어나라!”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었다.
묵운방과 잠풍련의 무사들은 상대를 놔둔 채 전력으로 신형을 날렸다.
미리 전장에서 벗어나 있던 위지호천과 경충문은 지원무사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백 수십 장을 도주한 후였다.
추격대는 미처 벗어나지 못한 자들을 향해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썼다.
그때 이무환의 귓전에 무면검마의 전음이 울렸다.
“환비는 내가 맡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