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5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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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53화
53화
좌소천은 자책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 그럼 속히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당주님만 뵙고 바로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허, 이거 궁주님께서 알면 야단치실지도 모르겠구나. 궁주님보다 나를 먼저 찾다니.”
황연송이 호들갑을 떨며 어깨를 추켰다.
좌소천은 조용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전에 제가 찾아뵈어야지요.”
황연송도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어서 가보아라. 어쨌든 네가 이리 건강하게 자랐으니 내 마음이 다 가벼워지는구나.”
좌소천은 황연송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이고 돌아섰다.
그렇게 문을 열려고 할 때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좌소천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황연송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공령초라는 것에 대해서 누구에게 말씀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글쎄다……. 그걸 어디 천하에 나만 알고 있겠느냐?”
황연송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별것 아닌 듯 말을 이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아마 대여섯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좌소천은 황연송의 나직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순간 우뚝 멈춰 선 좌소천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맞아, 공령초에 대해 아는 사람은 황 당주님만이 아니다.’
만일 공령초에 대해 아는 사람이 제천신궁에 또 있다면? 그가 아버지의 상태를 알고 있다면?
공연히 부풀려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 아래 대여섯 명만이 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직 혁련호승이 한 말의 의문이 풀리지 않은 것이다.
2장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1
거대한 제천전은 예나 지금이나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웅장함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좌소천은 호성당 무사의 안내를 받으며 제천전 안으로 들어갔다.
대전의 저쪽, 커다란 태사의에 몸을 묻고 있는 혁련무천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몸을 일으킨다.
삼 장 앞에 멈춰 선 좌소천은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소질이 백부님을 뵙습니다.”
“마침내 왔구나.”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다. 십 년 안에 온다고 했는데 칠 년 만에 오지 않았느냐? 사매도 잃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이렇게 찾아온 것만으로도 반갑기만 하구나.”
“들어오자마자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혁련무천의 입가에 진한 웃음이 걸렸다.
“패천단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예, 백부.”
“대주가 되었다고?”
역시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마치 너는 내 손안에 있다는 듯.
“운이 좋았습니다.”
“어쨌든 그 일로 한동안 웃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혁련무천은 정말로 즐거운 듯 웃음을 지우지 않고 팔을 벌렸다.
“어쨌든 잘 왔다. 하하하하! 이렇게 기쁜 날 그냥 보낼 수가 있나? 오늘은 우리 가족과 함께 식사나 하자꾸나.”
그때 좌소천이 물었다.
“호승 형님은 잘 계십니까?”
혁련무천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지워졌다. 대신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왠지 장난기 가득한, 혁련무천이 지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물론 잘 있다. 제천동에 두 번이나 들어갔다 나오더니 이제 무공도 제법이다.”
“저를 반기실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그 아이도 이제 다 큰 어른이다. 공과 사를 구분 못할 정도로 어린아이가 아니란다.”
그럼 다행이었다. 자신이 아닌 혁련호승에게.
그러나 천성이 그리 쉽게 바뀔까?
좌소천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혁련무천을 향해 다시 한번 허리를 숙였다.
“그럼, 선우 백부님께 향을 올리고 돌아오겠습니다.”
“이런! 내 깜박했구나. 그래, 다녀오너라.”
좌소천은 돌아서서 대전을 나갔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혁련무천의 얼굴에서 서서히 웃음이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혁련무천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찌 보았느냐?”
“역시 보통 아이가 아니옵니다.”
사공은환이 옆의 휘장을 젖히고 걸어나오며 답했다.
혁련무천이 잠시 생각하더니 불쑥 물었다.
“호승이와 비교하면 어떠냐?”
사공은환이 혁련무천의 앞에 서더니 좌소천이 나간 문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둘째도련님이 조금 못 미치옵니다.”
“흠…….”
혁련무천이 눈살을 찌푸리고 숨을 내쉬었다.
하나 그것이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란 것을 사공은환은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이었으니까. 그걸 모를 혁련무천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 차이가 미미해서 오히려 둘째도련님이 앞선다고 할 수 있사옵니다.”
“둘째가 앞선다?”
“그렇사옵니다. 둘째도련님에게는 좌소천에게 없는 냉혹함이 있사옵니다. 그것만으로도 비슷하다 할 수 있는데, 거기에 더해서 천하제일의 부친까지 계시지 않사옵니까?”
혁련무천의 입가에 보일락 말락 미소가 번졌다.
“과연 자네다운 평가군.”
“하온데 어이해 물어보시는지요?”
혁련무천이 태사의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
“황파에 패천단도 보내면 어떻겠는가? 잘하면 지부 두 개를 설립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공은환이 혁련무천을 바라보았다.
“둘째도련님이 위험할 수도 있사옵니다.”
“그 정도도 못 이겨낸다면 호랑이가 될 수 없지. 그래도 염려된다면 붙여놓지 않으면 될 일이 아닌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는 사공은환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하긴 경쟁을 붙이는 방법도 괜찮을 듯싶사옵니다.”
“좋아, 그 일은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고. 태백산에서 답은 왔는가?”
2
향 내음이 가득하다.
그동안 꺼지지 않고 타오른 듯 재가 수북하다.
절을 올리고 나서 향로를 바라보는 좌소천의 눈매가 일순간 잘게 흔들렸다.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이건 한순간에 탄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적어도 몇 년을 빠짐없이 피웠다는 말이다. 누가 피웠을까?’
단순히 사당을 관리하는 사람이 피워놓은 것이 아니다.
오기 전에도 몇 개의 향이 타오르고 있었다. 모두 크기가 달랐다. 그만큼 신경을 써서 향을 피웠다는 말이다.
어쨌든 고마운 일.
좌소천은 향로에서 눈을 떼고 위패를 바라보았다.
‘백부님,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다시 오는 그날에는 령매와 함께 오겠습니다.’
그때 문득,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가벼운 발걸음. 남자가 아니다. 여인이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데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세요?”
혁련미려의 목소리다. 오래되었지만, 듣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린 좌소천의 눈에 아름다운 여인이 들어왔다.
사당의 입구에 서 있는 여인.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귀품이 있는 모습.
그랬다. 혁련미려, 정말 그녀였다.
“미려 누님…….”
“서, 설마… 소, 소천이?”
“예, 접니다, 누님.”
“왔구나, 왔어. 마침내 왔어.”
“오랜만에 뵙습니다.”
“흑!”
갑자기 혁련미려가 울음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흑흑흑…….”
순우무궁이 혁련미려와 어울렸다고 했다.
혁련미려의 말을 듣고 나서야 좌소천은 순우무궁에게 무은도를 알려준 사람이 혁련미려라는 것을 알았다.
‘왜, 왜 그에게 무은도에 대해 말했습니까?’
소리쳐 따지고픈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어찌 혁련미려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그 모든 원인은 자신 때문이 아니던가.
“그냥… 소천이가 보고 싶어서 무심결에 말했는데, 그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어. 미안해, 소천아.”
그냥 지나치듯 말한 한마디가 무은도에 피바람을 몰고 왔다는 뜻.
그것도 자신이 보고 싶어서 한 말이라니.
‘결국 그 또한 나 때문이었던 건가?’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누님이 향을 피웠습니까?”
“너무 미안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용서를 빌고 싶었어.”
좌소천은 위패를 바라보았다.
‘백부님, 백부님은 제가 어떻게 할지 아시죠?’
고개를 돌린 좌소천은 주저앉아 있는 혁련미려를 내려다봤다.
“그만 일어나세요.”
“흑, 흑… 소천아…….”
“사람들이 봐요. 누님이 자꾸 그러면 제가 곤란해져요.”
사람들이 보면 소문이 퍼진다. 그것은 좌소천에게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좌소천의 말을 깨달은 혁련미려가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누님은 그저 보고 싶은 동생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죄를 지은 사람은 순우무궁이지, 누님이 아니에요.”
“하지만…….”
“일일이 파고들면 선우 백부님께서는 저 때문에 놈들에게 당한 것이 되죠. 무슨 말인지 아시죠?”
혁련미려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제천전으로 가봐야 되요. 식사를 같이하자고 했으니 나중에 뵐 수 있을 거예요.”
혁련미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밝아진 표정이었다.
좌소천은 조용히 웃어 보이고는 사당을 나섰다.
뒤에서 혁련미려가 불렀다.
“소천아…….”
걸음을 멈추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정말… 미안해. 너에게도, 숙부님께도, 그리고 네 사매에게도…….”
3
용서를 했다. 그런데 정말 완전히 용서를 한 것일까?
그렇다면 가슴이 답답한 것은 왜일까?
‘그래도 그자에게 무은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걸.’
미련이라면 미련이었다. 하지만 되돌릴 수 없는 미련이었다.
더구나 혁련미려는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이번 일이 평생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있을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제천전으로 향했다.
호성당의 무사가 조금 전과 달리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좌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그가 알림과 동시에 좌소천이 제천전 안으로 들어갔다.
평소라면 잠시 쉬었다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혁련미려와의 일로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곧바로 문턱을 넘었다.
제천전에 들어가자 두 사람이 보였다.
혁련무천이 태사의에 앉아 있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중년인이 그 옆에 서 있었다.
문사복을 입은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중인 듯했다. 자신이 들어가자 거의 보이지 않게 흔들리며 말을 멈춘다.
“음, 그럼 그 일은 그렇게 하기로 하지.”
“예, 주군.”
고개를 돌린 혁련무천이 가볍게 웃으며 반겼다.
“허허허허, 다녀왔느냐?”
“예, 백부님.”
“미려의 일은 정말 미안하구나.”
“사당에서 누님을 만나 들었습니다. 누님께는 너무 마음 쓰지 마시라고 했습니다. 죄를 진 자는 천외천가의 둘째공자지, 누님이 아니니까요.”
“허허허, 그리 말해주었다니 정말 고맙구나. 그러잖아도 미려가 너무 가슴 아파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말이다.”
“앞으로는 나아지실 겁니다. 그러다 보면 웃음도 볼 수 있을 것이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백부님.”
“그러면 얼마나 좋겠느냐.”
담담히 말하며 쓴웃음을 짓던 혁련무천이 눈을 들었다.
“그건 그렇고… 내 너에게 하나 물을 것이 있다만, 네가 대답해 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말씀하시지요.”
“네 어머니에게 얻었던 금판에 대해서 너도 알 거다.”
좌소천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마침내 혁련무천이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각오하고 있던 질문이기에 대답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대답이 혁련무천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는 그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예, 백부님.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팔 년간 풀어보려 했는데, 내가 어리석어서 도저히 풀 수가 없구나.”
유명한 학자들을 초빙해서 보여주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사공은환에게도 보여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풀지 못했다.
이제 마지막 희망은 좌소천뿐이었다.
“저도 어머니께 들었습니다. 아버님께서 그것을 풀려다가 몸이 그리되었다 하였습니다. 하늘과의 인연이 닿지 않으면 풀 수 없는 물건이니 저더러 욕심내지 마라 하셨지요. 하여 어린 저는 감히 그것을 풀 생각도 못했습니다. 백부님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으실 거라 생각했사온데…….”
혁련무천의 눈매가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