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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52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5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52화

 

52화

 

 

 

 

 

 

그는 무덤 앞에서 두 가지를 다짐하고는 밤 부엉이 울음소리를 뒤로한 채 황강산을 내려왔다.

 

하늘에 총총히 박혀 있던 찬란한 별들이 제천신궁으로 쏟아지는 듯 보였다.

 

아니, 자신의 가슴으로 쏟아지는 듯 느껴졌다.

 

 

 

 

 

4

 

 

 

 

 

이틀 동안 제천신궁의 현황에 대해 보고받았다.

 

보고는 세 명의 전직 조장이 돌아가며 할 때도 있었고, 필요하면 함께하기도 했다.

 

못마땅해도 대주는 대주, 좌소천의 명을 내놓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현재 본 궁의 세력권은 남쪽으로 장강까지, 동쪽은 안휘와의 경계까지, 북쪽은 여남까지, 그리고 서쪽은 한천과 수주까지 뻗쳐 있습니다. 현재 삼대주 여랑휘 대주가 여남 지부에, 사대주 반호 대주가 안휘 경계인 추양 지부에 지원을 나가 있는 상탭니다.”

 

이자광의 설명에, 관추릉이 떫은 표정으로 보충 설명을 했다.

 

“그 안에 이십여 개의 문파가 있는데, 모두 본 궁에 충성을 맹약했소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반 시진쯤 오갔을 때다. 언자홍이 미적거리며 입을 열었다.

 

“제가 오전에 들은 바로는, 곧 새로운 지부를 세우기 위해서 제천단과 무천단이 움직일 거라고 하오. 어쩌면 우리 패천단도 그 일에 동원될지 모르겠소.”

 

묵묵히 듣고 있던 좌소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새로운 지부?”

 

“그렇소. 제천단에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에게 듣자 하니… 새로운 지부를 설립하기 위해서 며칠 후에 황파 총지부로 갈 거라고 했소이다.”

 

황파 총지부는 호북의 모든 지부를 총괄하는 곳으로, 과거 신월맹의 총단에 위치해 있다.

 

어디에 지부를 설립하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걸까?

 

남쪽일까?

 

하지만 그곳은 장강에 막혀 있다. 사천련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그럼 서쪽?

 

그럴 가능성이 훨씬 컸다.

 

전마성이 신비의 여인들로 인해 서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상황. 제천신궁으로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럴 경우 구포봉이 힘을 키우는 데 걸림돌이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궁주를 좀 더 일찍 만나야 할 것 같군.’

 

 

 

 

 

5

 

 

 

 

 

사흘째 되던 날.

 

좌소천은 패천단원의 복장을 하고서 방을 나섰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운이 좋아 들어온 첫날 대주가 된 청년. 그게 좌소천이었다.

 

와중에는 악청백이 좌소천을 사위로 삼으려고 대주로 임명했다는 헛소문도 돌고 있었다.

 

좌소천은 그들의 눈길을 무시하고 내궁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대로를 따라 백여 장을 걸었을 때였다. 좌측 저 멀리 선약당이 보였다.

 

좌소천은 멈칫하더니 몸을 돌려서 선약당으로 향했다.

 

선약당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늘다 보니 이용자가 그만큼 많아진 듯했다.

 

그런데 좌소천이 선약당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안쪽에서 한 사람이 나왔다. 

 

‘저 사람은?’

 

그였다. 신양의 용평객잔에서 봤던 혈심부 도유관.

 

도유관이 왜 선약당에서 나오는 걸까? 그때의 부상 때문인가?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기에 당한 내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일반 의원은 손도 대기 힘들다. 내상을 최대한 빠르게 치료하기 위해선 강호의 대문파에 속한 의원에게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선약당에서 아무나 치료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천신궁의 무사가 아니라면 엄청난 돈을 써야만 한다. 아니면 강호의 명숙이든지.

 

그러나 도유관은 제천신궁의 무사도, 강호의 명숙도, 그렇다고 돈이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좌소천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오직 하나.

 

‘혹시……?’

 

그때 도유관도 좌소천의 눈길을 느꼈는지 눈을 돌려 좌소천을 쳐다보았다.

 

어디서 본 듯한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듯 그가 살짝 고개를 모로 꺾었다.

 

“나를 아나?”

 

“도유관. 혈심부라 불리는 사람. 며칠 전 신양의 용평객잔에서 봤지요.”

 

도유관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자신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부른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이상한 일이었다.

 

“자넨 누군가?”

 

“천소. 한데 어쩐 일이시오? 내가 알기로는 제천신궁에 계신 분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람은 하루만 안 봐도 달라지는 법이지. 어제부로 제천신궁 사람이 되었다네.”

 

좌소천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사라졌다.

 

“어디에 계시오?”

 

“패천단 제일대에 있네.”

 

패천단 제일대?

 

그 말인즉, 제일대주 휘하에 있다는 말이다.

 

좌소천은 속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고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패천단에 있소. 그럼 다음에 봅시다.”

 

“그런가? 뭐, 그러지.”

 

도유관은 순순히 답하는 자신이 이상할 지경이었다.

 

객잔에서 봤다지만 그건 이유가 되지 않았다.

 

‘내가 변한 건가?’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천소라고 했지?’

 

 

 

좌소천은 도유관과 헤어진 후 바로 황연송의 거처를 찾아갔다.

 

좌소천이 황연송의 방문 앞에 서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데, 이제 열대여섯쯤 된 시동 하나가 좌소천을 보더니 소리쳤다.

 

“무사님, 거기는 의방이 아니라 당주님의 거처입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은 좌소천이었다.

 

“걱정 마라. 당주님을 만나려고 왔으니까.”

 

“예? 당주님을요?”

 

“그래, 안에 들어가서 뵙잔다고 전해다오.”

 

“뉘시라고 전해드릴까요?”

 

“소천. 칠 년 전에 떠난 사람이라고 하면 아실 거다.”

 

하지만 시동이 안으로 들어가서 전할 것도 없었다.

 

덜컹!

 

방문이 거세게 열리더니 머리가 하얀 황연송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너, 너는……?”

 

전에 비해 훨씬 늙은 모습이다.

 

세월이 얹어진 머리에선 이제 검은 머리를 찾기 힘들 정도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당주님?”

 

뭐라 할 건가.

 

황연송은 솟구치는 격정을 억눌러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는 가늘게 떨리는 눈을 진정시키려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런데 빌어먹을, 눈가에 왜 물기가 어린단 말인가.

 

‘주책바가지 늙은이 같으니라구!’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황연송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들어오너라.”

 

좌소천은 묵묵히 안으로 들어갔다.

 

방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돌아선 앞에 황연송이 빙그레 웃으며 서 있다. 눈가에 어린 물기가 여전하다.

 

‘고마우신 분. 당신 같은 분이 있기에 제가 있는 겁니다.’

 

“많이 컸구나.”

 

떠날 때에 비해 많이 컸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그러나 황연송이 컸다는 것은 키를 말함이 아니다.

 

“그리 보이십니까?”

 

“고생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내가 아는 소천이라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하늘로 날아오를 거라 생각했지.”

 

조용히 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황연송의 눈가에 어렸던 물기가 방울져서 맺혀 있었다. 자신이 입을 열면 그 충격에 금방 떨어질 것 같았다.

 

황연송도 그걸 아는지 슬쩍 고개를 돌리며 눈가를 소매로 찍었다.

 

“자, 저리 앉자.”

 

좌소천이 의자에 앉자 시동이 차를 내왔다.

 

차를 한 모금 하고, 시간이 지나자 격동이 가라앉았는지 황연송이 차분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언제 들어왔느냐?”

 

“사흘 되었습니다.”

 

“선우 대협의 일 때문에 들른 것이더냐?”

 

선우궁현의 시신이 제천신궁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아는 눈치다. 하긴 황연송은 선약당의 당주, 충분히 알 수 있는 위치였다.

 

“그 일도 있고, 다른 일을 두어 가지 알아보기 위해서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선우 대협의 시신은 내가 손을 봤다.”

 

좌소천의 눈이 잘게 떨렸다.

 

황연송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최대한 손을 봐서 묻었으니 너무 걱정 말아라.”

 

자신은 나무판 몇 개만 대고 묻었다. 손을 본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좌소천은 그저 황연송이 고맙기만 했다.

 

“감사합니다, 당주님.”

 

“네가 하려는 다른 일에 대해서 물어봐도 되겠느냐?”

 

좌소천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그 일 중 하나는 황연송이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몰랐다.

 

좌소천은 미지근하게 식은 차로 입술을 적시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중 하나가 아버님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황연송이 차를 비웠다.

 

“혹시… 네 아버지의 병에 의문이 있어서 그런 것이더냐?”

 

“아버지의 몸이 병 때문에 아팠던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정말 아버지가 삼 개월밖에 살 수 없었습니까?”

 

황연송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 다행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못 진맥하지 않았다면. 그 일에 대해선 의심할 것이 없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네 아버지의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거든.”

 

황연송의 말이다. 좌소천으로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혁련호승이 한 말은 무슨 뜻일까? 정말로 어차피 죽을 운명이어서 사석지계에 썼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혁련무천을 원망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목숨으로 은혜를 갚은 것이니까.

 

‘후우, 그냥 그런 것이었나?’

 

좌소천은 한 가지 의문을 가슴속 깊이 파묻었다.

 

혁련호승의 말만 듣고서 아버지의 뜻을 곡해하는 것도 불효를 저지르는 것 아니겠는가.

 

쪼르르르…….

 

그때 황연송이 차를 한 잔 따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 가지 약재만 더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었단다.”

 

찻잔이 채워지는 것을 보던 좌소천의 눈이 굳었다.

 

“문제는 구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그렇지.”

 

“그게 무엇이었기에 제천신궁에서조차 구할 수 없었습니까?”

 

“공령초의 열매란다.”

 

“그게 그렇게 귀한 것입니까?”

 

“귀하지. 아니, 그냥 귀하다는 것만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저 말로만 전해질 뿐, 누구도 실물을 봤다는 사람이 없으니까.”

 

“당연히 제천신궁의 보고에도 없었겠군요.”

 

“그럴 거다.”

 

그럴 거다? 

 

황연송의 어정쩡한 답변에 좌소천이 황연송을 쳐다보았다. 황연송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볼 것 없다. 나도 보고에 있는 약재를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니까.”

 

“죄송합니다, 당주님. 제가 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은…….”

 

“저, 그런데 공령초의 열매가 왜 필요했던 것입니까?”

 

황연송이 곧바로 대답을 못하고 물끄러미 찻잔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뒤엉킨 혈맥이 워낙 심하게 훼손되어서 그 어떤 것으로도 몸이 약한 네 아버지를 치료할 수 없었지.”

 

좌소천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갑자기요?”

 

황연송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갑자기 그리되었다. 원래 그렇게까지 뒤엉키지는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급작스럽게 혈맥이 뒤엉키기 시작하더구나. 급히 손을 봤지만 그때는 이미 늦어서 공령초가 아니고는 대라신선이 온다고 해도 엉킨 혈맥을 풀 수가 없었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리 갑자기 혈맥이 뒤엉켰을까.

 

그러나 물어본다 해서 알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계속 추궁하듯이 황연송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알았다면 이미 말했을 것 아닌가.

 

좌소천이 입을 다물자 황연송이 그제야 물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왔느냐?”

 

 

 

한 시진 가까이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

 

소영령을 쫓던 이야기, 영허 진인에게 구함을 받은 이야기, 제갈세가와의 이야기…….

 

그러나 좌소천은 자신에 대한 것 중 몇 가지는 말하지 않았다.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 혼자만이 아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입을 떡 벌린 채 좌소천의 이야기에 탄식과 탄성을 터뜨리던 황연송이 어느 순간 대소를 터뜨렸다.

 

“그래? 하하하하! 그러니까 네가 패천단의 대주가 되었단 말이냐?”

 

“예, 운이 좋았지요.”

 

“허허허, 그게 어디 운으로만 될 일이더냐? 그래, 가명으로 들어왔다면 궁주께서는 모르실지 모르겠구나.”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득, 그가 어쩌면 자신의 입궁에 대해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서늘해졌다.

 

‘바보같이. 상대를 경시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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