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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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47화
47화
“하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지요.”
“그건 그렇지. 그래, 뭐부터 할 건가? 녹림이 돕는다 해도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텐데.”
이미 대왕채에 대한 일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구포봉은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선우궁현의 발이 천하에 뻗쳐 있다는 걸 알고, 좌소천이 하는 일이기에 곧 그러려니 했다.
좌소천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구포봉이 정말 좋았다.
“일단 사람을 먼저 모아야겠지요.”
밑도 끝도 없이 막연한 말이다.
갑자기 사람을 어디서 모은단 말인가? 그것도 하늘을 무너뜨릴 수 있는 사람들을.
그런데도 구포봉은 당연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 어떤 사람들을 모을 것인가?”
“강한 자, 신의 있는 자, 목숨을 아끼지 않는 자. 우선은 그런 사람들을 모을 생각입니다.”
그 역시 애매모호한 말이다.
그래도 구포봉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좋은 생각이네. 당연히 그런 사람을 모아야지.”
좌소천도 웃으면서 구포봉을 직시했다.
“제일 먼저 아저씨에게 제 사람이 되어달라고 부탁할 생각입니다.”
얼굴이 환해진 구포봉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였다.
“만일 그 말을 안 했으면 진짜 서운했을 것이네.”
알고 보면 참 순진한 사람이었다. 하긴 그래서 수적질을 때려치운 것인지도 몰랐다.
“내일 아침에 무은도를 다녀온 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요.”
무은도라는 말이 나오자 구포봉의 눈이 반짝였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되겠나?”
좌소천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구포봉, 그는 무은도에 함께 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장하경은 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좌소천은 장하경을 향해 둘 중 하나를 결정하라고 했다.
“이곳에서 몸을 치료하고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떠나든지 남든지.”
“나는 갈 데가 없소.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시구려.”
한마디로 잘라 말한 장하경은 죽어라 머리를 굴렸다.
대왕채에서 본 눈빛.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다면, 좌소천이 대왕채에 간 것은 대왕채의 주인인 북리환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많은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말.
잘하면 은혜도 갚고, 원수도 갚고, 새로운 인생을 불태울 수 있을지도 몰랐다.
‘까짓것, 어차피 죽은 목숨, 다 맡겨보자고!’
장하경은 자신의 판단을 믿고 적극적으로 달려들기로 마음을 정했다.
“혹시 해서 드리는 말씀이오만, 내가 아는 사람이 꽤 되오. 모두 신의가 있고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오. 단, 정이니 협이니 그런 고리타분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소. 만일 공자가 힘을 키우시겠다면 내가 그들을 부르겠소. 물론 받아들이든 말든 그건 공자가 보고 결정하시오.”
사람에 대한 판단은 구포봉이 좌소천보다 훨씬 고수였다.
한때 천 명의 수적을 거느렸던 그의 눈으로 봤을 때, 장하경은 정말 멋진 얼굴이었다.
상처투성이 얼굴도 그렇고, 특히 한이 맺혀 있는 두 눈은 전형적인 투사의 눈이었다.
사람을 배반하지 않을 사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사람. 장하경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많은 사람이 따르는 법이었다.
하기에 구포봉은 봉 잡았다는 마음에 눈을 빛냈다.
“그러잖아도 사람을 모을 생각이었는데……. 그래, 몇 명이나 모을 수 있겠나?”
장하경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얼굴마저 인상을 쓰는 거 같아서 구포봉은 나름대로 대책을 생각해 보았다.
‘저 친구도 인피면구 하나 구해줘야 하나?’
하지만 곧 생각을 바꿨다.
장하경은 상처투성이 얼굴, 그대로가 딱 좋았다.
“아마 사오십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그들에게 딸려 있는 식구들도 꽤 될 겁니다만.”
사오십!
구포봉이 보기에 장하경은 일류고수였다. 아마 자신이 데리고 있는 사람들의 실력과 비교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고도 남았다.
그런 고수가 공짜로 품에 들어오려 한다. 거기다 사오십의 동료까지 데리고.
구포봉은 좋아서 입이 벌어지려는 것을 꾹 참고 진중하게 물었다.
“실력이 어느 정도나 되나? 너무 약한 사람은 부담만 될 뿐이네.”
장하경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나보다 강한 사람도 있소. 그리고 비슷한 사람도 상당수고 말이오.”
끝내 구포봉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는 좋아하는 표정을 감추기 위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호오! 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장하경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과거 신월맹에 있던 사람들이오.”
끝내 구포봉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이 그렇게 끌어들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회유해도 쉽게 끌려오지 않던 사람들이 잘하면 통째로 굴러오게 생긴 판이었다.
하지만 좌소천은 장하경의 말에 침중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누군가? 과거 제천신궁이 신월맹을 무너뜨릴 때 가장 큰 공을 세운 군사 좌유승의 아들이 아닌가?
과거 신월맹의 무사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상황. 그들이 대거 유입되면 자칫 혼란만 가중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도 싫었다.
‘풀 것은 풀고 매듭을 지어야 할 것은 지어야겠지.’
마음을 결정한 좌소천의 눈이 장하경을 향했다.
“장 형은 내가 누군지 알고 있소?”
무당에서 사 년 넘게 살다 나온 강호 초출의 절정고수.
그게 장하경이 아는 좌소천이다.
하지만 그는 대답을 머뭇거리지 않았다.
“좌 공자가 누구든 상관없소. 내 목숨은 좌 공자 것이니까.”
“그래도 장 형이 데려오려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될지 모르오.”
장하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구포봉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도 좌소천이 선우궁현의 조카라는 것, 그 이상은 아는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두 사람을 향해 좌소천이 말했다.
“일단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서는 안 됩니다.”
“킁, 그거야 당연하지.”
“못 믿겠으면 목을 치고 말하시오.”
좌소천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고는 조용히 선친의 이름을 털어놓았다.
“선친께선 유 자, 승 자 이름을 쓰셨던 분이오.”
“좌… 유…….”
이름을 하나하나 이어가던 구포봉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선우궁현과 제천신궁, 거기에 천외천가. 그러한 이름이 이어지면서 떠오르는 사람은 오직 하나다.
“서, 설마… 신유 좌유승?”
그 이름이 튀어나오자, 장하경의 상처투성이 얼굴이 닭 벼슬처럼 붉게 주름졌다.
잠시 숨을 고른 좌소천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과거 제천신궁의 군사였던 그분이 바로 선친이십니다. 만일 장 형이 신월맹의 무사들을 데려오려 한다면, 그전에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좌소천은 그 말만 하고 장하경의 대답을 기다렸다.
장하경의 입이 바로 열렸다. 조금은 들뜬 목소리였다.
“좌 공자가 뭘 모르는 게 있소. 신월맹의 진정한 무사들은 좌유승이라는 분에게 큰 원한이 없소. 무사 된 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천하를 도모한 그분을 누가 욕할 수 있단 말이오? 신월맹이 무너진 후 좌 군사의 죽음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자, 우리 초혈단 무사들은 피에 절은 술잔을 들어서 좌 군사의 충정을 외치며 건배를 했소.”
좌소천은 갑자기 가슴이 막혔다.
‘아버지!’
장하경이 열기 가득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히려 그런 분 밑에서, 그분 못지않은 좌 공자 밑에서 힘을 쓸 수 있다면 모두가 만 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올 것이오.”
“정말 그리 생각하시오?”
“물론……. 아! 조금 전에 내가 잘못 말했소.”
장하경이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신중한 표정으로 자신의 말을 수정했다.
“이제는 사오십이 아니라 백 명은 끌어들일 수 있을 것 같소.”
구포봉의 입이 턱뼈가 빠질 정도로 벌어졌다.
대왕채에 이어 신월맹이 몰려온다.
봉이 떼로 몰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좋았어! 완전 길조야!’
3
무은도가 가까워지면서 좌소천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상하다. 분명 떠나기 전에 진세를 보강해 놓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지간한 사람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하거늘 입구 쪽으로 다가가자 희미한 안개 사이로 어슴푸레하니 섬이 보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설마 적이 또 왔었단 말인가?
섬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구포봉이 좌소천의 감정을 눈치 채고 물었다.
“아무래도… 제가 없는 사이 누군가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구포봉의 눈이 커졌다.
“섬에 기진이 설치되어 있어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지 않은가?”
“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제가 임시로 막아놓은 입구를 찾았을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들어가 보면 알 일이다.
좌소천은 묵묵히 노를 저어 무은도로 다가갔다.
잠시 후.
언덕으로 다가가는 좌서천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 이런……!”
그날, 양지 바른 언덕 위에 백부의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 백부의 명복을 비는 목비(木碑)를 꽂고서 하루 종일 통곡했었다.
그런데 무덤이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높은 곳에 있으니 비에 씻겨 내려갈 리도 없다. 흙이 비에 씻겼다면 하다못해 깊게 박힌 목비라도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좌소천의 몸이 단숨에 언덕 위로 날아갔다.
순간 좌소천의 몸이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맙소사! 백부님!”
무덤이 있던 자리에 구덩이가 파여 있다.
흙에 묻혀 반쯤 썩어버린 목비.
누군가? 누가 무덤을 파헤쳤단 말인가?
“백부니이이임!”
좌소천의 외침이 무은도는 물론이고 동정호를 뒤집을 것처럼 울려 퍼졌다.
섬을 둘러싼 산이 터질 듯이 울어댔다.
“좌 공자, 저걸 보게!”
그때 목옥 쪽으로 내려가던 구포봉이 다급히 좌소천을 불렀다.
“시신을 가져간 자들이 남긴 것 같네!”
구포봉이 말을 이으며 손으로 목옥을 가리켰다.
순간 좌소천의 몸이 언덕 위에서 사라졌다.
단숨에 이십여 장을 날아가서 목옥 앞에 도착한 좌소천은, 목옥의 나무문을 파서 적어놓은 글을 보고 이를 악물었다.
[만패철검 선우 대협의 시신을 본 궁으로 옮기고자 하오. 좌 공자께선 이 글을 보는 즉시 제천신궁으로 와주시기 바라오.]
“제천신궁에서 선우 대협의 시신을 가져간 것 같군.”
구포봉이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좌소천은 이를 지그시 깨물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무천은 선우궁현이 천외천가에 의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제천단을 파견했었다. 그런 사람이 무은도에 사람을 보내지 않았을 리 없다.
거기다 혁련무천이라면 진이 설치되었다는 것까지 알았을 터, 분명 진을 풀 수 있는 사람까지 함께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선우궁현의 시신을 가져갔다.
‘나더러 오라는 말이겠지.’
어쨌든 제천신궁에 선우궁현의 위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신까지 모두 있다는 뜻.
이제는 오지 말라고 해도 가야 했다.
‘돌아갈 것이오. 그러나 당신의 생각과는 조금 다른 회궁이 될 것이오, 혁련 백부!’
4
장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인 청하(靑河) 하류의 장양(長陽).
한 무리의 여인들이 그곳에 나타난 것은 삼월 말경이었다.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면사로 얼굴이 가려졌지만, 그녀들은 뒷모습만으로도 보는 이의 눈을 휘어잡을 만큼 아름다웠다.
모두 열두 명.
하나같이 무기를 등에 멘 그녀들은 장양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한곳으로 향했다.
그녀들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장양에서 가장 세력이 큰 토호이자, 일대를 호령하는 강호 세력인 장춘장원(長春莊園) 앞이었다.
제일 먼저 그녀들을 발견한 장춘장원의 수문위사는 침을 질질 흘리며 그녀들에게 접근했다.
“이봐, 아가씨들! 본 장을 찾아오셨수?”
그게 그가 생에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툭!
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여전히 침을 질질 흘리는 표정으로.
그때부터 정한의 혈풍이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