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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45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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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45화

 

45화

 

 

 

 

 

 

녹림 총표파자 녹림왕 북리환.

 

그가 대왕채를 이끌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서른 중반이던 십오 년 전부터였다.

 

당시의 대왕채는 단순히 대홍산의 일곱 산채 중 하나에 불과했고, 북리환 역시 녹림 총표파자라 불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오 년이 지날 즈음, 그는 대홍산의 여섯 산채를 모두 굴복시키고는 스스로를 녹림왕이라 칭했다.

 

천하에 산재한 거대 산채들은 그의 건방진 호칭에 분노했다. 

 

대홍산의 산채를 제외한 열두 산채가 녹림대회를 열어서 그를 징치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북리환이 석인산에서 열리는 녹림대회에 달랑 수하 열두 명만을 대동한 채 참석한 것이다.

 

그러고는 천하를 대표하는 열두 산채의 채주들과 그들의 수하들을 모두 굴복시켜 버렸다.

 

이후 그가 자신을 녹림의 총표파자이자 녹림왕이라 칭해도 누구 하나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녹림의 구심점이 생겼다며 그에게 선물을 가져다 바치는 산채들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칠 년이 지나자, 녹림을 이전처럼 강호의 쓰레기통이라 부르며 무시하는 대문파는 거의 없게 되었다.

 

항상 강호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던 녹림을 강호의 세력 중 하나로 발돋움시킨 입지전적인 인물, 그가 바로 녹림왕 북리환인 것이다.

 

그런데 봄바람이 나른하게 불어오는 삼월의 어느 날, 그런 북리환의 이마에 골이 파였다.

 

‘저놈이 왜 저리 우거지상이지?’

 

살무당주 조필이 햇살을 등진 채 두 사람을 데리고 녹왕전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눈빛이나 표정이 한 시진 전의 그가 아니었다.

 

겉으로는 어깨를 펴고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오지만, 그 차이를 모를 그가 왜 모르겠는가.

 

항상 칼날처럼 번뜩이던 눈빛은 대체 어디에 팔아먹었단 말인가? 자신 앞에서도 가끔씩 대들던 그 기백은 어느 계집 치마폭에다 던져 놓고 왔단 말인가!

 

북리환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서, 조필을 따라오는 두 사람을 살펴보았다. 자신을 만나고자 대왕채까지 찾아왔다는 자들을.

 

순간, 그의 눈이 번뜩였다.

 

‘호오! 굉장하군!’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등에 진 햇살로 인해서 확실하게 보이지 않던 두 사람이 뚜렷하게 보였다.

 

‘완벽해! 선봉에 세우면 얼굴로 반은 먹고 들어가겠어!’

 

장하경의 그물처럼 갈라진 상처투성이 얼굴. 그것은 북리환조차 처음 보는 완벽한 산적의 상이었다.

 

한편, 좌소천은 북리환의 모습을 보고 눈빛을 빛냈다.

 

커다란 체구에 부리부리한 눈, 짙고 굵은 눈썹, 각진 턱, 두툼하면서도 꾹 닫힌 입술. 

 

갑옷을 입혀놓으면 능히 일국의 대장군이라 해도 백이면 백 모두 믿을 듯했다.

 

‘산적이 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군.’

 

서로가 잠시 살펴보는 사이 북리환과의 거리가 삼 장으로 줄어들었다.

 

조필이 걸음을 멈추더니 억지로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총표파자께 아룁니다! 초혼마검 장하경과 좌 공자를 모시고 왔습니다.”

 

북리환의 이마에 그어진 주름이 더욱 굵어졌다.

 

‘공자? 모시고 와? 저 자식이 언제부터 저런 말을 썼지?’

 

최대한 봐준다고 해도 ‘좌가 성을 쓰는 젊은이’,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말해야 조필다운 말투다.

 

‘흐음, 좌우간 두고 보면 알겠지.’

 

북리환은 이마의 주름을 펴고는 장하경에게 최대한 너그러운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멋진 얼굴에 대한 대우였다.

 

“장하경이 총표파자를 뵙습니다. 좌 공자께서 총표파자께 볼일이 있으시다기에 이렇게 모시고 왔습니다.”

 

차마 밥 한 끼 얻어먹으러 왔다고 할 수는 없는 일. 장하경은 일단 말을 돌려서 공을 좌소천에게 넘겼다.

 

북리환이 다시 이마에 주름을 만들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장하경이라면 제법 이름이 있는 자다. 

 

얼마 전까지 대홍산에 머물렀다는 것도 양대곡에게 넌지시 들은 바가 있어서, 그가 자신을 찾아온 것에 대해 별 다르게 생각지 않았다.

 

문제는 그런 장하경 역시 ‘좌 공자’, ‘모시고’라는 말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놈들이 단체로 쥐약을 먹었나?’

 

북리환은 이마를 찌푸린 채 좌소천에게 물었다.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조필이 직접 데려왔는지 모르겠군. 그래, 나에게 볼일이 있다고?”

 

그제야 좌소천이 말문을 열었다.

 

“좌소천이라 합니다.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대체 뭘 물어보려고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모르겠군.”

 

“과거에 누군가와 약속을 한 적이 있는데, 약속한 사람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도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북리환의 표정이 서서히 변했다.

 

눈에 힘을 주고 좌소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서 곤혹이 분노로 바뀌었다.

 

“자네, 지금 나하고 장난하자는 건가?”

 

“만일 그 약속이 술 한 잔 하다가 취중에 나온 약속이라면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까, 아니면 지키지 않아도 됩니까?”

 

쾅!

 

북리환이 원목으로 만들어진 팔걸이를 내려치고 벌떡 일어섰다.

 

“보자 보자 하니까! 삼랑(三狼)!”

 

그의 외침에 좌우로 늘어서 있던 여섯 사람 중 셋이 즉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예, 주군!”

 

“저자를 끌어내라!”

 

세 사람이 고개를 들더니 좌소천에게 다가갔다.

 

“주군께서 끌어내라 하신다! 나가자!”

 

하지만 좌소천은 그들을 보지도 않고 북리환을 향해 다시 물었다.

 

“당신은 당신의 친구가 억울하게 죽었다면 복수를 하겠습니까, 아니면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니 잘되었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뭐라? 네놈이 감히!”

 

북리환이 부르르 떨더니 홱 손을 저었다.

 

“모두 물러서라! 내 직접 저 애송이의 입을 찢어놓을 것이다!”

 

막 좌소천의 몸을 잡아가던 삼랑이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동시에 북리환이 단걸음에 좌소천의 일 장 앞에 섰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에서 불길을 쏟아내며 한마디 한마디 씹어뱉듯이 말했다.

 

“네놈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다! 그 하나는 나를 약속도 지키지 않는 불의한 자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 번 한 약속은 죽어도 지키는 사람이니라! 그리고 두 번째는, 나를 친구의 복수도 하지 않을 부덕한 자로 봤다는 것이다! 그 두 가지를 잘못한 죄로 네놈은 입이 찢기고 개밥이 될 것이니라!”

 

쏴아아아!

 

북리환의 전신에서 분노에 찬 기운이 넘실거렸다.

 

처음 보는 그의 분노에 조필과 여섯 명의 수하는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순식간에 북리환의 기운이 좌소천을 뒤덮었다.

 

하지만 좌소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북리환을 노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왜 친구의 죽음에 침묵하고 있었던 거요?”

 

순간적으로 북리환의 기운이 주춤했다.

 

동시에 좌소천의 무심한 목소리가 싸늘하게 흘러나왔다.

 

“나는 그런 자에게 신의가 있다는 것을 조금도 믿을 수 없소.”

 

“뭐, 뭐라고? 네놈이 감히!”

 

“다시 한번 묻겠소. 당신은 약속한 사람이 죽었어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소? 친구의 복수를 할 생각은 있소?”

 

단 몇 마디에 북리환의 기세가 완연히 잦아들었다.

 

“네놈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

 

“지금 이 자리에서 답을 주면 좋겠소.”

 

북리환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일류고수라 해도 자신의 기운에 휘말리면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애송이는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처음과 다름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뻔한 답을 계속 요구한다.

 

북리환의 가라앉았던 분노가 다시 끓어올랐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마저 뒤섞인 분노였다.

 

“답은 조금 전에 말했다! 내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이놈!”

 

그가 선언이라도 하듯이 외치고는, 좌소천을 향해 분노에 찬 일장을 밀어냈다.

 

동시에 좌권을 들어 올린 좌소천이 북리환의 일장을 맞받아쳤다.

 

콰앙!

 

굉음과 함께 두 사람 사이에서 광풍이 일었다.

 

장하경과 조필이 정신없이 뒤로 물러서고, 좌우에 서 있던 수하들이 벽까지 밀려났다.

 

충격이 가라앉을 즈음,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은 좌소천이 북리환을 직시한 채 중얼거렸다.

 

“죽어도 변함이 없다라…….”

 

어이가 없는지 북리환이 말을 더듬었다.

 

“이, 이,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좌소천의 무심한 눈이 점차 가늘어졌다.

 

“그럼 죽어도 나를 원망하지는 않겠군.”

 

딸깍.

 

좌소천의 좌수 엄지가 무진도를 밀어 올렸다.

 

순간 대경한 장하경이 다급히 말렸다.

 

“좌 공자, 참으십시오!”

 

좌소천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왜? 내가 왜 참아야 하는 거요?”

 

“총표파자가 돌아가시면 대왕채의 사람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 겁니다. 설마 대왕채의 모든 사람을 죽일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나는 친구의 죽음을 도외시하고 녹림왕이라는 이름에 취해 사는 소인배의 목숨을 원할 뿐이오.”

 

마치 북리환의 목숨이 자신의 손안에 있다는 듯 말한다.

 

그뿐이 아니다.

 

“그런 자를 위해 복수를 하겠다면 어쩔 수 없지. 백이든, 천이든 죽이는 수밖에.” 

 

북리환은 어이가 없어서 몸이 굳었다.

 

“뭐, 뭐 이런 미친 새끼가…….”

 

그때였다. 조필이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처박았다.

 

“공자, 대왕채의 일만 식솔을 생각해서 부디 분노를 가라앉혀 주시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안다는 조필마저 황당한 행동을 하다니!

 

북리환은 환장할 지경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놈은 두 놈으로 충분했다.

 

“조필! 네놈이 미쳤……!”

 

“주군! 제발 진정하시고, 어찌 된 일인지, 그것부터 알아보십시오!”

 

“조필!”

 

북리환이 조필 먼저 때려죽이겠다는 듯 손을 들었다.

 

그런데도 조필은 겁을 상실한 사람처럼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진짜! 저 공자는 저를 한 손가락으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북리환이 부르르 떨고는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믿기가 힘들지만, 일 수 격돌로 눈앞의 젊은 놈이 자신보다 강할지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하다 해도 자신이 패해서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네놈이 정말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무인은 입으로 싸우는 게 아니오. 무기를 드시오.”

 

“흥! 나의 무기는 바로 이 두 손이다! 어디 마음껏 도를 휘둘러 봐라!”

 

찰나였다!

 

좌소천의 우수가 무진도를 잡아간 순간,

 

스으으으…….

 

기음이 흘러나오는가 싶더니 한줄기 검은 선이 장내의 허공을 두 쪽으로 갈랐다.

 

“허억!”

 

북리환의 경악성과 동시,

 

쩌렁!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듣는 이의 소름을 돋게 하는 소리가 울렸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앞만 바라보았다.

 

좌소천이 도를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 앞에는 이를 악다문 북리환이 부리부리한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두 손을 마주 내민 채 서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머리카락이 너풀거리며 떨어진다. 북리환의 머리 위에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다. 북리환이 도를 쳐내기는 했지만, 무진도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머리가 헝클어진 북리환의 모습은 좀 전의 위엄에 찬 그가 아니었다.

 

좌소천은 그런 북리환을 바라보며 천천히 도를 거두었다. 

 

도를 거둔 그의 입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좀 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목소리였다.

 

“백부님께선 세 사람을 말하며 평생 사귄 진정한 친구라 했습니다. 한데 백부님께서 돌아가시자 한 사람은 힘도 없으면서 발 벗고 나섰는데, 두 사람은 그 이름조차 들리지 않더군요. 그중 한 사람은 녹림을 호령하며 녹림왕이라 불린다 하더이다. 수만 식솔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그만한 사정이 있었을 터…….”

 

나직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북리환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마 백부님이었다면 웃으면서 그러려니 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내 마음속의 한이 너무나 컸지요. 해서 나는 백부님을 대신해 그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랐습니다. 이제 그 사람은 백부님께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자, 자네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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