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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41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0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41화

 

41화

 

 

 

 

 

 

겉으로 보기에는 볼품없는 초옥일 뿐이다. 하나 그곳이 과거 제갈량이 공부하며 천하로 나아갈 때를 기다렸다는 곳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곳에 기문진학에 있어 천하제일이라는 제갈진우가 머물러 있다면, 그곳은 절대 평범한 곳이 될 수 없었다.

 

측백나무 숲을 지난 좌소천은 대숲을 빙 돌아갔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걸음을 멈춘 그는 좌우를 살펴보았다.

 

사방이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다. 마치 안개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방위를 분간하기가 힘들 정도. 

 

단순한 대숲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대로 진이 펼쳐져 있군.’

 

아마 사람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설치한 듯했다.

 

하나 거기에는 융중산에서 누가 감히 자신을 침범하랴 하는 오만이 담겨 있기도 했다.

 

진의 이름은 청죽만상진(靑竹萬象陣). 비록 그 진이 대단한 진이라고는 하나, 결코 무은도의 진세에 비견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제갈진우라면 더 고절한 진세를 수십 가지는 알고 있을 터. 그런 그가 이러한 진을 펼쳐 놨다는 것은 결국 드나들기 쉽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진세에 대해 배우고, 거기에 무은도에서 삼뇌자가 남긴 책을 보며 어지간한 진은 파훼할 수 있는 좌소천이었다.

 

그가 보기에 청죽만상진은 시간이 걸릴 뿐 풀 수 없는 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진을 풀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다. 백부에게 해를 끼친 제갈진우의 같잖은 학식을 힘으로 무너뜨리고 싶었을 뿐이다.

 

 

 

‘내가 서 있는 쪽이 남서(南西)니 이곳이 바로 곤(坤)이다. 때가 봄[春]이니 오행(五行) 중 목(木)이오, 천간(天干) 중 갑(甲)이라.’

 

좌소천의 싸늘하게 빛나던 눈이 어느 한곳을 향했다.

 

‘그대가 호수 속의 기둥을 뽑아 천승운무진을 파훼했다면, 나는 내 주먹으로 그대의 진을 부술 것이다!’

 

찰나, 좌소천이 두 주먹을 교차시키더니 그곳을 향해 세차게 내쳤다.

 

콰르릉!

 

순간 폭풍에 휘말린 듯 대숲이 거세게 일렁였다.

 

좌소천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두 주먹에 팔성의 내력을 담아 반대편을 향해 연달아 내질렀다.

 

쿠구구궁!

 

만 근 화약이 터지기라도 한 것마냥 대숲이 통째로 들썩이더니 대나무들이 광풍에 휘말려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좌소천은 그것이 다 허상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숨을 서너 번 쉬는 사이 휘몰아치던 광풍이 가라앉는다.

 

바로 그때!

 

무진도의 도병을 잡은 좌소천의 우수가 천천히 움직였다.

 

그런데 채 한 치도 뽑힌 것 같지 않는데 갑자기 전면이 길게 갈라졌다. 

 

암절단광(暗切斷光)!

 

어둠을 가르고 빛을 자른다는 절대의 도식이 펼쳐진 것이다.

 

찰나, 허공이 쩍 갈라지더니 일순간 대숲이 일 장 넓이로 사라졌다.

 

뒤늦게 이는 굉음.

 

콰아아앙!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 대숲이 갈라지며 붉은 땅이 깊고 길게 속살을 드러냈다.

 

우르르르!

 

으르렁거리던 대지가 점차 울음을 그치고 잦아들었다.

 

굉음이 완벽히 가라앉을 즈음, 안쪽에서 대경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웨, 웬 놈이냐?!”

 

좌소천은 대답 대신 일 장 넓이로 갈라진 길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저만치 초려(草廬)에서 나와 있는 사람이 보였다. 단정한 학창의를 입은 노인이.

 

‘제갈진우…….’

 

한편 노인은 좌소천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 절로 몸이 떨렸다.

 

자신이 펼친 진세가 무너지고 구멍이 뻥 뚫렸다.

 

진세가 무너진 것은 그리 큰 충격이 아니었다. 문제는 힘에 의해서 뭉개지고 갈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빗장이 틀어져서 입구가 일부 열린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나온 터이니까.

 

그러나 아직도 세 겹의 방어막이 남아 있던 터였다.

 

그런데 세 겹의 방어막이 부서지고, 갈라지고, 터져 나가면서 일직선으로 길이 뚫렸다. 가공할 인간의 힘에 의해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때다.

 

“제갈진우, 맞소?”

 

좌소천의 입에서 음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제갈진우가 황망한 눈으로 난장판이 된 대숲과 좌소천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이네만,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무슨 짓?”

 

좌소천이 아무런 온기도 없는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다.

 

“동정호 속에 박힌 기둥을 뽑는 거와 뭐가 다르다고 그리 난리시오?”

 

제갈진우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나 곧 두 눈이 점점 커지고 입꼬리가 푸들푸들 떨렸다.

 

“동정호라면……?”

 

“나를 찾으러 온 사람들을 그대가 인도하지 않았소?”

 

“그, 그럼 네가 바로 성도에 갔다는 그 아이였단 말이냐?”

 

“성도?”

 

좌소천이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든 좌소천의 얼굴에 비감이 떠오르며 이가 악다물렸다.

 

악다문 그의 입에서 짓씹힌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백부께서 그리 말씀하셨소? 내가 성도에 갔다고? 하하! 으하하하하! 백부! 나를 살리기 위해 그런 거짓말을 하셨습니까? 그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까?”

 

갑자기 좌소천의 광소가 뚝 그쳤다.

 

천천히 고개를 내린 그가 우수에 들린 도를 홱 뿌렸다.

 

쩌적!

 

외줄기 시커먼 벼락이 허공을 쩍 가르더니, 삼 장 거리에 서 있던 제갈진우의 어깨마저 갈랐다.

 

서걱!

 

뭐가 뭔지도 모르는 사이, 피분수가 제갈진우의 왼쪽 어깨를 밀어내며 뿜어졌다.

 

“크억!”

 

곧이어 신음이 뒤따르고 좌소천의 목소리가 그의 귀청에 틀어박혔다.

 

“나는 그 섬에 있었다, 제갈진우! 오십 장 깊이 동굴 속에! 백부께서는 그런 나를 살리기 위해 고통을 자초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이 그토록 선량하신 백부를 죽였지. 팔을 자르고 심장을 부수어서!”

 

좌소천이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들리는 무진도가 악귀처럼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비틀거리며 물러서는 제갈진우를 향했다.

 

“그대만 아니었다면 무릉도원이었을 무은도다. 한데 그대의 알량한 머리가 그곳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갈.진.우!”

 

항거할 수 없는 기세!

 

제갈진우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푸들거리며 떨렸다.

 

“나, 난… 어쩔 수…….”

 

“어쩔 수 없었단 말인가? 왜!”

 

“그들에게 신세를… 빚을 갚으려 했을 뿐…….”

 

“백부를 죽음으로 몰아넣으면서 무은도의 평화를 깨뜨린 이유가 고작 그거란 말인가!”

 

쿵!

 

좌소천이 발걸음을 내딛자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울었다.

 

“빚이라 했지? 좋아! 그럼 나도 그대에게 한 가지 묻겠다. 그대는 나에게, 백부께 빚을 졌으니 대답해야 할 것이다.”

 

“뭐, 뭘……?”

 

“천외천가의 위치가 어딘가?”

 

제갈진우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처, 천외천가? 그, 그들은 태백산 천선곡에……. 하나 내가 아는 것은 그것뿐… 그들의 위치는 진세로 가려져 있어서 직접 눈으로 지형을 보기 전에는…….”

 

제갈진우조차 자세한 위치를 모르는 듯했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한 자들이다.

 

그나마 천선곡이라는 이름과 그들의 위치가 진세로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안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천선곡이라……. 그대는 반밖에 빚을 갚지 못했다, 제갈진우!”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였다.

 

번쩍!

 

무은도의 도첨에서 도광이 번쩍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나간 도광은 제갈진우의 심장을 관통하고 그의 뒤에 있던 바위마저 부수어 버렸다.

 

쾅!

 

“푸헉!”

 

제갈진우의 쩍 벌어진 입과 가슴에서 피 화살이 솟구쳤다.

 

“백부님께 진 빚의 반을 갚았으니 고통없이 죽이는 걸로 끝내겠다! 지옥에 가서라도 참회하라! 백부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만 배를 올려라!”

 

부들거리며 몸을 들썩이는 제갈진우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달싹이는 입이 붉게 물들어 있다.

 

“하, 한 가지… 천외… 천해… 그들… 어쩔 수…….”

 

좌소천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는 눈으로 제갈진우를 직시했다.

 

“천외천가 그들도 곧 그대의 뒤를 따를 것이다. 내가 그리할 테니까.”

 

“그, 그게 아니… 처… 천해… 그들…….”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연이어 흘러나오는 이름, 천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기에 죽기 전에 악착같이 그 이름을 말하는 건가.

 

좌소천의 무심한 얼굴이 꿈틀거렸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도 왠지 짙은 어둠처럼 느껴져 가슴을 짓누른다.

 

천해(穿海).

 

구멍 뚫린 바다라는 말이다. 천하에 그런 이름을 지닌 곳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천해라…….’

 

그때였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긴 진세에 가려져 있을 때는 굉음이 흘러나가지 않았겠지만, 진세가 부서진 후에는 제법 크게 들렸을 것이다.

 

좌소천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제갈진우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천천히 뒤를 돌아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오는 자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영허 진인의 목소리가 뇌리에서 울렸다.

 

 

 

“일을 행함에 있어 항상 한 번쯤 뒤를 돌아다보았으면 싶구나.”

 

 

 

좌소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백여 장 아래까지 다가온 게 느껴진다.

 

‘어르신, 지금은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미련없이 몸을 돌려 초려(草廬) 뒤쪽 대나무 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제갈진우의 손끝이 떨리며 미미하게 움직였다.

 

 

 

* * *

 

 

 

제갈세가의 정보망을 책임지고 있는 현위당의 당주, 제갈조릉.

 

그는 제갈승의 서신을 받자마자 급한 대로 멸사검대 삼십을 대동한 채 초려로 달려왔다.

 

그런데 눈앞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청죽으로 둘러싸인 대숲이 일 장 넓이로 갈라져 있다.

 

그 너머 저편에 한 사람이 바위에 등을 기댄 채 쓰러져 있다.

 

제갈진우, 기문진학에 있어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그가 한 팔이 잘리고 가슴이 피범벅으로 물든 채 쓰러져 있다.

 

보고 있는 지금도 가슴에서는 핏물이 뭉클거리며 쏟아진다.

 

‘핏물이 아직도?’

 

그걸 본 제갈조릉의 눈이 번뜩였다.

 

“숙부님께서 당하셨다! 모두 주위를 수색해라! 범인은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다!”

 

멸사검대의 대주 제갈추가 좌우를 향해 손짓하며 명을 내렸다.

 

“예, 당주! 모두 흩어져서 주위를 수색한다!”

 

멸사검대의 대원들이 부챗살처럼 퍼지며 흩어졌다.

 

제갈조릉은 현위당의 무사 셋만 데리고 구멍 뚫린 대숲 안으로 들어갔다.

 

“숙부님!”

 

소리쳐 불러보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제갈조릉은 급히 무릎을 꿇고 제갈진우의 목에 손을 대어보았다.

 

실낱같은 기운만이 남아 있을 뿐, 이미 죽은 거와 다름없는 몸이다.

 

그때 뭔가가 자꾸 신경을 거슬렸다.

 

고개를 모로 꼰 제갈조릉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 진이……!”

 

진세가 강제로 부서졌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제갈승의 전서에 의하면, 초려에 은거하고 있는 숙부를 찾고 있던 자는 젊다고 했다. 

 

기껏해야 이십대 초, 중반. 그런 적에게 제갈광과 제갈호, 제갈민이 죽었다고 했다.

 

그것도 오 초를 전후해서.

 

자신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무리 무정효 제갈승의 말이라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다면 적은 제갈승이 생각한 것보다 더 무서운 자일지도 몰랐다.

 

적은 멸사검대가 잡을 수 없는 자. 잡을 수 없는 자를 쫓아가봐야 불필요한 희생만 커질 뿐.

 

그는 굳은 얼굴로 서 있는 현위당의 무사 세 명에게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멸사대원들을 돌아오라고 해!”

 

“예?”

 

“어서! 수색을 중지하고 돌아오라고 신호를 보내란 말이다!”

 

무사들이 다급히 밖으로 나가고, 회귀 신호음인 짧은 소성이 연달아 울렸다. 

 

제갈조릉은 그 소리를 들으며 다시 제갈진우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한껏 커졌다.

 

제갈진우의 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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