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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80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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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80화

 

80화

 

 

 

 

 

 

“그 일은 본 궁과 아무런 관련이 없소, 신녀. 아무래도 누군가가 우리들을 흉내 낸 것 같구려.” 

 

“그게 누구든, 범인은 본 궁을 욕보이는 짓을 했어요. 파파, 그 짓을 저지른 범인이 누군지 알아보세요.”

 

“알겠소이다, 신녀.”

 

“그리고 당분간 마차는 이곳에 놔두고 움직이겠어요.”

 

뜻밖이었는지 한령파파의 주름진 눈꺼풀이 위로 올라갔다.

 

“신녀?”

 

“무림맹까지 움직였어요. 두려워할 일은 아니지만, 번거로움을 자처할 필요는 없어요. 제 뜻에 따라주세요.”

 

“어찌 신녀의 명을 어기겠소? 하나 신녀께서 힘들지나 않으실지 그게 걱정이오.”

 

“본 궁의 모든 제자들이 걷고 있어요. 나 하나 몸 편하자고 제자들을 어렵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에요.”

 

“알겠소, 신녀.”

 

신녀는 고개를 숙이는 한령파파의 하얀 머리를 바라보며 얼음이 쏟아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흘 후 무당으로 갈 거예요. 제자들에게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세요.”

 

한령파파의 숙여졌던 머리가 번쩍 들렸다.

 

“너무 빠르오. 무림맹의 추적대까지 와 있는 마당에 무당을 치는 것은 너무 위험하오, 신녀!”

 

“내일이면 추적대는 운현으로 떠날 수밖에 없어요. 아마 무당에서도 상당한 숫자가 움직일 거예요.”

 

그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내일이면 오십여 명의 제자가 운현의 곽가장을 칠 테니까.

 

“그래도 상대는 무당이라오. 비록 이곳에 사백이나 되는 제자가 모여 있다고는 하나, 무당을 감당하기는 힘들다오, 신녀.”

 

“그들을 멸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지. 그래서 절대 무리하지 말라는 것이에요. 무당의 제자들과 싸움이 시작되면 반 시진을 넘겨서는 안 돼요. 반 시진이 되면 무조건 후퇴하라고 하세요.”

 

“신녀, 이 늙은이를 생각해서 무당을 치려는 뜻은 고마우나, 곧 죽을 늙은이 때문에 굳이 그러실 필요까진 없소. 다 늙은 이 노파가 어찌 궁에 누를 끼친단 말이오?”

 

“꼭 그 이유만은 아니에요. 천하에 알리고자 함이에요. 우리 정한궁이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설령 무림맹이라 해도 두렵지 않다는 것을 말이에요.”

 

신녀의 몸에서 서리가 뻗쳤다.

 

은은히 피어오르는 한기가 연화암의 주 전각인 연화전을 싸늘하게 뒤덮었다.

 

한령파파는 전신이 얼음 동굴에 빠진 기분에 이를 악물었다.

 

“신녀의 깊은 뜻을 미처 몰랐으니, 이 늙은이, 이제 정말 죽을 때가 되었나 보오.”

 

신녀는 차갑게 뻗치는 기운과 달리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에요. 파파는 더 오래 살아서 제 곁을 지켜줘야 해요.”

 

나이 먹은 여인인 자신이 보기에도 아찔한 모습이다.

 

한령파파는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말이 떨려 나왔다.

 

“신녀시여…….”

 

그런 한령파파를 바라보는 신녀의 눈에서 영롱한 빛이 흘러나왔다.

 

“사흘 후, 쌓인 한을 마음껏 풀도록 하세요.”

 

 

 

 

 

2

 

 

 

 

 

유월이 시작된 지 이틀째 되던 날. 운현 곽가장에 정한의 혈풍이 불었다.

 

그 직후 무당에 비상이 걸렸다.

 

무림맹의 추적대가 먼저 떠나고, 무당파에서도 급히 조사단과 추적대를 따로 조직했다.

 

장로인 현양자가 이끄는 조사단에 열 명의 정 자 배 제자와 삼십 명의 송 자 배 제자가 따라가고, 현궁자와 현수자가 이백 제자를 데리고 정한궁을 쫓기 위해 하산했다.

 

장문인인 현고자는 조사단만 보내려 했다. 그러나 장로들의 성화가 워낙 심했다.

 

특히 곽가장주 곽중보의 스승이나 다름없는 현궁자는, 현고자가 불허하면 혼자라도 제자들을 데리고 떠나겠다며 강경하게 대들었다.

 

제자를 잃은 마음을 어찌 모를까.

 

현고자는 고심 끝에 열흘의 말미를 주고 그들을 내려 보내야만 했다.

 

그렇게 무림맹의 추적대와 제자들이 갑자기 빠져나가자, 무당이 마치 빈 곳간처럼 조용해졌다.

 

 

 

* * *

 

 

 

그 일을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의성의 한가장 무사였던 사람이 패천단에 들어왔다.

 

그는 하은적이라는 자였는데, 한가장에서 무사 스무 명을 거느린 간부였다고 했다.

 

좌소천은 그의 신상 내력에 대한 걸 보고받고 즉시 그를 불렀다.

 

 

 

“그녀들은 영락없이 나찰이었습니다. 그래도 힘없는 사람들이나 여자들은 거의 죽이지 않았지요.”

 

말을 하면서도 그때의 공포가 떠오르는지 하은적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들이 남하를 건너서 무당으로 갔다고 했소?”

 

“소문이 그렇게 났습니다, 단주. 솔직히 말씀드리면, 부끄럽게도 그 소문을 듣고 나서 섬서로 가려다 방향을 틀어서 하남으로 왔습니다.”

 

“그녀들이 무당으로 간 것은 확실하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소문만 들어서…….”

 

“알겠소. 가보시오.”

 

“예, 단주.”

 

하은적이 나가자 공손양이 다가왔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십니까?”

 

좌소천이 식은 찻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당과 인연이 있습니다. 작지 않은 인연이지요.”

 

목숨을 구해준 영허 진인이 무당의 어른이다. 그걸 어찌 작은 인연이라 할 수 있으랴.

 

“아무래도 자세한 상황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아닙니다. 보다 깊은 내용을 알려면 천이당의 호연 당주에게 직접 들어야 합니다. 그러니 내가 직접 그를 만나야겠습니다.”

 

공손양이 걱정되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의 경우, 무당에 일이 있으면 어찌하실 겁니까?”

 

좌소천이 그를 바라보았다.

 

“가봐야겠지요. 하나 너무 걱정 마십시오. 아무리 늦어도 기간 안에는 돌아올 테니까.”

 

공손양이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일에 철저한 좌소천이다. 그가 그리 말한 이상 그리 큰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좌소천은 그 길로 천이당주 호연금을 만났다.

 

호북의 일, 그것도 무당과 정한거의 일은 제천신궁에 큰 영향이 없는 일이었다.

 

호연금은 그때만 해도 그리 생각했다. 하기에 그는 별 생각없이 호북에서 들어온 정보를 좌소천에게 모두 건네주었다.

 

“대체 왜 그 일을 알려고 하는 것이오?”

 

호연금은 나중에서야 궁금했는지 좌소천에게 그렇게 물었다.

 

좌소천은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일전에 무당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해서 그곳의 일이 궁금해서 그럽니다.”

 

정보는 하은적이 말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나중에 벌어진 청봉의 일이 추가되었고, 무림맹의 추적대가 무당에 있다는 내용만이 다를 뿐이었다.

 

그의 말을 듣던 좌소천은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청봉의 장원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여인들마저 모두 죽었다고 한다.

 

‘이상하군. 전에 그녀들이 저지른 일도 그렇고, 하은적의 말에 의하면 그녀들은 여인들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고 했는데…….’

 

어쨌든 그 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범인이 정한궁이든 다른 사람이든 자신이 관여할 일은 아니니까.

 

좌소천은 두어 장 남은 서찰을 살펴보았다.

 

서찰은 한수를 오르내리며 정보를 수집하는 천이당의 정보원에게서 온 서신으로 최근의 것이었다.

 

일순간, 서신을 읽던 좌소천의 표정이 굳어졌다.

 

 

 

[유월 이일 오전, 한수를 건너 운현으로 가는 수상한 여인들 발견. 두어 명씩 떨어져 있지만 같은 무리로 보임.]

 

[운현의 곽가장이 오전에 발견한 여인들에 의해 공격당함.]

 

 

 

유월 이일이라면 어제다. 

 

운현까지는 천 리 길. 서신은 전서구로 전해진 것이었다.

 

좌소천이 호연금에게 물었다.

 

“이게 마지막 서신입니까?”

 

“그렇다네, 오늘 점심 때 들어온 따끈따끈한 소식이지.”

 

“대단하군요, 천 리 떨어진 곳의 소식을 이렇게 빨리 받다니 말입니다. 거기다 이렇게 좋은 정보를 알아내다니, 정보원들의 실력이 대단하군요.”

 

“재수가 좋았다고 봐야겠지. 마침 운현을 지나가던 정보원이 그걸 봤으니. 아마 지금쯤은 호북 일대에 다 알려졌을 테지만 말이야. 곽가장이라면 무당파의 속가제자인 곽중보가 장주로 있는 곳인데. 쯔쯔쯔…….”

 

그 말에 좌소천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무당파의 속가제자가 장주로 있는 곳이 정한궁에 당했다.

 

당연히 무당파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무당에 있는 무림맹의 추적대까지.

 

‘무당에서 상당수의 제자들이 달려갈 것은 분명한 일…….’

 

좌소천은 급히 정한궁의 움직임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보정, 의성, 청봉, 운현. 그리고 무당.

 

‘설마……?’

 

아직은 설마일 뿐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의 경우라도 자신의 생각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무당은 최악의 사태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잘 봤습니다, 당주님. 나중에 제가 한턱내겠습니다.”

 

좌소천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허허, 별말을. 단주의 지위면 이 정도 정보는 당연히 볼 권한이 있는데,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어쨌든 나중에 함 보세. 전의 일도 사과할 겸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럼.”

 

 

 

패천단으로 돌아온 좌소천은 품속에 묵령기환보를 꽂고 허리에는 무진도를 매었다.

 

공손양이 들어오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희들이 따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개인적인 일로 며칠 자리를 비우는 것입니다. 단원들이 움직이면 공연히 다른 사람들에게 트집만 잡힐 뿐입니다.”

 

하는 수 없다 생각했는지 공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십시오, 단주.”

 

“길어야 닷새 정도 걸릴 겁니다. 그동안 이곳을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단주.”

 

신시 초, 좌소천은 패천단주의 집무실을 나섰다.

 

 

 

 

 

3

 

 

 

 

 

유시 초, 신녀와 한령파파가 연화전에서 나왔다.

 

연화암의 제법 넓은 뜰에는 각 조를 이끄는 사십여 명의 정한녀가 무릎을 꿇은 채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들을 한차례 둘러본 신녀의 입에서 짧은 명이 떨어졌다.

 

“출발해요, 파파.”

 

“예, 신녀.”

 

무당산 자소궁까지 가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했다.

 

그러나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여야 하는데다가, 무당산이 워낙 험악해서 하루는 잡아야만 했다.

 

더구나 곧 어두워질 테니 시간이 더 걸릴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서두른다면 아침나절쯤에는 천주봉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신녀의 명령을 모두 들었을 것이다. 절대 개인행동이나, 무리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됨을 명심해라.”

 

“명심하고 있사옵니다!”

 

“가자!”

 

 

 

* * *

 

 

 

신양을 출발한 좌소천은 거의 쉬지도 않고 무당산을 향해 달렸다.

 

왠지 불길했다.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벌어졌다면 이미 늦었다고 봐야 했다.

 

그래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영허 진인과의 인연도 그렇고, 친구인 정은이 위기에 처했을지도 몰랐다. 

 

며칠을 허비하는 대가로 그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열 번이라도 가야 할 일이었다.

 

인시 무렵, 한수에 도착한 좌소천은 평지를 걷듯이 물을 박차고 강을 건넜다.

 

금환비영이 절정에 달한 그는 말 그대로 비조(飛鳥)였다.

 

 

 

유월 사일 새벽.

 

안개가 자욱한 무당산 천주봉 북쪽 골짜기 초입.

 

수백의 여인들이 바람에 흐르는 안개를 타고 소리없이 천주봉 중턱 자소궁을 향해 치달렸다.

 

마치 아침 안개가 흘러가는 듯했다.

 

그들은 미리 경비가 없는 길을 알아놨는지 움직임에 거침이 없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에 몸을 숨기고, 절벽 사이사이로 신형을 날리는 정한녀들.

 

그녀들은 무당파의 제자들이 아침을 먹고 있을 때, 자소궁이 보이는 능선에 올라섰다.

 

 

 

제일 먼저 정한궁의 여인들을 발견한 사람은 삼대제자인 송우였다.

 

그는 아침을 먹고 천주봉 능선에 있는 반일암에 가던 중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절벽 아래에 대고 방뇨를 하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였다.

 

고개를 쑥 내민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수백 명이 능선을 올라오고 있었다.

 

언뜻 봐도 여인인 듯한 수백 명의 고수.

 

순간 그의 뇌리에 그간 숱하게 들어온 정한궁의 마녀들이 떠올랐다.

 

능선만 넘으면 곧바로 자소궁이 지척인 상황.

 

그는 방뇨를 하다 말고 급히 바지를 추켰다. 그러고는 질질 흐르는 오줌에 바지가 젖든 말든 자소궁으로 달려갔다.

 

“마녀들이 몰려온다!”

 

이승에서 터져 나온 그의 마지막 외침이 무당산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메아리가 잦아들 즈음, 차가운 느낌이 그의 목을 스쳤다. 

 

휘익!

 

눈을 크게 뜬 송우의 머리가 힘없이 몸체에서 분리되어 떨어졌다.

 

동시에 능선을 넘은 사백여 명의 여인이 자소궁을 향해 쏟아져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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