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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79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6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79화

 

79화

 

 

 

 

 

 

5

 

 

 

 

 

사공은환이 데려간 곳은 내궁의 서쪽 구석, 한적한 연못가에 있는 작은 정자였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십 장 안으로 다가오는 사람이 모두 보이는 곳. 두 사람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정자의 난간에 기대선 순간, 연못 속 정자 기둥 주위에서 노닐던 잉어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좌소천이 물끄러미 달아나는 잉어들을 바라만 보자 사공은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천외천가에 복수를 할 생각이겠지?”

 

“물론입니다.”

 

아니라고 하면 더 이상할 일. 좌소천은 순순히 대답했다. 눈빛까지 싸늘하게 굳힌 채.

 

“천외천가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아나? 하다못해 그들의 위치라도.”

 

“아직은 모릅니다. 하지만 알고자 노력하면 곧 알게 되겠지요.”

 

“복수의 대상이 천외천가 전체인가?”

 

“무슨 뜻으로 묻는 겁니까?”

 

사공은환이 좌소천을 직시한 채 얇은 입술을 벌렸다.

 

“본 궁의 역량을 총동원한다 해도 태백산까지 쫓아가서 그들을 치는 일은 쉽지 않네. 아마 그 정도는 자네도 잘 알 거라 생각하네만.”

 

모르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마음은 없었다. 아마 사공은환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터.

 

“그 정도야 저도 알고 있지요.”

 

“일전에 선우 대협이 돌아가셨을 때, 궁주께선 천외천가를 치시겠다고 했네. 그런데 내가 말렸지. 왜 말렸는지 아나?”

 

좌소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다시 모여드는 잉어들만 바라보았다.

 

“대규모 무사대가 그곳까지 가는 것도 쉽지가 않고, 간다 해도 적을 찾을 수 없었을 거네. 하나… 그것이 다는 아닐세.”

 

나직이 말을 잇던 사공은환이 고개를 돌렸다.

 

모여들던 잉어들이 움찔거리며 몸을 돌린다.

 

“천외천가는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강하다네. 그리고 구대문파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

 

마치 뭔가를 아는 듯한 말투.

 

좌소천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기만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들이 왜 그러한 힘을 지니고도 천년 동안 태백산을 나오지 않았는지 의문일 정도라네.”

 

“그들만의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지, 이유가 있겠지. 다만 분명한 것은, 그토록 오랜 세월 누구도 그들을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네.”

 

별것 아닌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숨은 뜻이 하나 있다.

 

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치지 못했다는 것.

 

그러니 당연히 좌소천 너도 어차피 칠 수가 없다는 말을 하고자 함일 것이다.

 

“때로는 대의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가 있네. 어쩌면 지금이 그런 때일지도 모르는 일이지.”

 

마침내 사공은환의 입에서 본격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좌소천이 사공은환을 바라보았다.

 

“어느 것이 대의입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게. 복수를 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네. 하나 복수를 하겠다고 해서 복수 대상의 가족들을, 그 동료들을,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을 모두 복수 대상으로 삼을 필요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말인즉, 틀린 말은 아니다. 

 

복수할 대상과 연관된 모든 사람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억지다. 그러면 천하를 없애 버려야 할 테니까.

 

그러나 교묘한 말장난에 불과했다. 그의 말뜻에는 또 다른 숨은 목적이 있었다.

 

좌소천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제가 모르는 사이 천외천가와 오간 이야기라도 있습니까?”

 

사공은환의 표정이 처음으로 슬며시 굳어졌다.

 

“선우 대협의 장례식 때 천외천가에서 조문단이 왔었네. 아들의 잘못으로 인해 선우 대협이 돌아가셨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큰아들을 보내 사죄했지. 만일 복수만 생각했다면, 그때 온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 했을 거네. 자네라면 그들을 죽였겠나? 어머니의, 선우 대협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좌소천의 눈빛이 깊어졌다.

 

과연 죽였을까?

 

사공은환은 숨을 두어 번 쉴 동안 말을 멈추었다. 그러다 좌소천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말을 이었다.

 

“아마 죽이지 않았을 것이네. 그렇다고 천외천가로 달려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가?”

 

죽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을 거라는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대로 보내지는 않았을 거라는 점이다.

 

“궁주께선 그 모든 것을 생각하시고, 천외천가 가주의 사죄를 받아들이기로 하셨네. 그렇다고 자네 개인의 복수까지 말릴 생각 또한 없으시네. 하나 그 이상은 안 되네. 본 궁의 힘을 자네 복수에 이용해선 안 된다, 그 말이지.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진 않겠지?”

 

“저도 제천신궁의 이름을 빌어서 복수할 생각은 없습니다. 말씀대로, 그 일은 제 일이니까요.”

 

사공은환의 표정이 펴졌다.

 

거치적거리는 게 있으면 치우고 가는 게 제일 간편하다. 그러나 치워야 할 대상이 의외로 크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좌소천이 그러한 상태였다. 

 

제천신궁에서 좌소천은 지난 영웅의 아들임과 동시에 새로운 영웅이기도 했다.

 

치우자니 지나치게 커져 있고, 놔두자니 심하게 거치적거리는 존재.

 

천외천가가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하게 되면 분명 좌소천의 존재가 더욱 문제될 상황. 사공은환으로선 어느 쪽으로든 결론을 내려야만 했다.

 

더 커지기 전에 무리를 해서라도 치워 버리던가, 아니면 최대한 이용하고 상황에 따라 처리하던가.

 

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하나둘이 아니다.

 

전마성과의 싸움, 천외천가와의 합작, 무림맹에 속한 거대세력들을 견제하는 일. 모두가 제천신궁의 앞날을 좌우할 중요한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급한 문제가 전마성과의 싸움이다.

 

좌소천은 그 싸움에 선봉을 설 수 있는 인물.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러던 차에 좌소천이 사당에 자주 간다는 말이 들렸다.

 

그는 혁련무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좌소천과 담판을 짓기 위해 찾아왔다. 

 

그런데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잘 풀리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때 좌소천이 물었다.

 

“호정 형님이 그 일 때문에 가신 겁니까?”

 

어떤 목적인지, 어딘지조차 말하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던진 질문이다.

 

사공은환이 무심결에 대답했다.

 

“꼭 그 일 때문만은 아니네.”

 

순간 대답을 마친 사공은환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이 여우새끼가……!’

 

넘겨짚은 말에 넘어가 버렸다.

 

나름대로 모략에 자신이 있다는 자신이!

 

반면에 좌소천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먹이를 요구하는 잉어들만 바라보았다.

 

‘천외천가에 간 것이 확실하단 말이군. 뭔가를 상의하기 위해서.’

 

이제 얼마 안 가서 그에 대한 정확한 내용이 드러날 터. 나머지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곧 돌아오시겠군요.”

 

사공은환은 일그러지는 얼굴을 최대한으로 펴고 대답했다.

 

“그, 그럴 거네.”

 

“궁금하군요.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사공은환이 목구멍까지 차오른 화를 씹어뱉었다.

 

“이거 하나만은 명심하게. 본 궁의 일과 자네의 일을 결부시켜서는 안 된다는 걸.”

 

좌소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사공은환을 돌아다보았다.

 

“약속하지요.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제천신궁의 이름을 빌어서 그들과 맞서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약속은 지켜질 것이다.

 

자신 역시 제천신궁의 이름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어차피 나는 스스로 하늘이 되어 복수를 할 생각이다, 사공은환. 너는 그걸 먼저 알아야 했다.’

 

 

 

 

 

6

 

 

 

 

 

제천신궁에 돌아온 지 보름.

 

그동안 패천단의 인원이 팔백에 가까워졌다.

 

지난 보름, 대주들이 대원들을 얼마나 닦달했는지 패천단은 외인단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벽히 변해 있었다.

 

달라진 것은 일반 무사들만이 아니었다.

 

직속무사들 역시 보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특히 홍려운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귀환한 지 닷새 후부터 아무나 붙잡고 대련을 부탁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볍게 몸이나 푼다는 생각으로 홍려운을 상대했다.

 

하지만 홍려운은 이전의 그가 아니었다.

 

전이었다면 오 초도 견디지 못했을 관추릉의 공격을 백 초나 막아냈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눈에 불을 켜고 수련에 열중했다. 

 

이러다 홍려운에게 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낯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덕분에 신난 사람은 동천옹을 비롯한 네 노인이었다.

 

네 노인은 시간이 날 때마다 패천단에 놀러왔는데, 얼마 전부터는 아예 살다시피 했다.

 

고통도 마다않고 가르침을 청하는 착실한(?)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것이 원로원에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노인들까지 패천단을 기웃거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걸 보고 지나가던 무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패천단에 경로당이 생겼나?”

 

 

 

그렇게 보름째 되던 날 저녁.

 

좌소천은 한 장의 서신을 써놓고 장하경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단주.”

 

“장 형, 대홍산에 가줘야겠소.”

 

장하경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대홍산이라면, 대왕채에 말입니까?”

 

“그렇소. 가서 더도 말고 백 명만 추리라고 전해주시오.”

 

“쓸 만한 놈들이어야겠지요?”

 

“물론이오. 대왕채가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그리해야 한다고 전하시오.”

 

장하경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렇게 말하면 나만 작살나는 거 아냐?’

 

그러나 좌소천의 말이다. 어길 수는 없었다.

 

“저… 꼭 그렇게 말해야 합니까?”

 

좌소천이 피식 웃었다.

 

“마음에 안 들면 내가 직접 가서 문을 닫게 해준다고 하더라고, 그렇게 말해도 괜찮소.”

 

장하경이 화들짝 놀랐다.

 

“아이고! 그럼 정말로 저를 때려죽일 겁니다.”

 

“걱정 마시오. 백 명만 추리라고 해도 그 양반이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러면 다행입니다만…….”

 

“그들을 경산에서 대기시키라 하시오.”

 

경산이라면 천문 지부에서 백 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만약의 경우 그들을 움직이기 위함이었다.

 

“알겠습니다, 공자.”

 

장하경이 대답하자 좌소천이 서신을 내밀었다.

 

“그 후 악양으로 가서 구 방주께 이 서신을 전하도록 하시오.”

 

장하경은 서신을 받아 들고 눈을 반짝였다.

 

“시작하시는 겁니까?”

 

“장 형의 임무가 막중하니 몸조심하시오.”

 

서신을 바라본 장하경이 고개를 들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주.”

 

 

 

 

 

 

 

3장 무당(武當), 그리고 신녀(神女)

 

 

 

 

 

1

 

 

 

 

 

무당파가 술렁거렸다.

 

정한거로 추정되는 백색 마차가 남하(南河)를 건넜다고 한다.

 

단지 소문뿐이었지만,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길게 뻗은 무당산의 남쪽 줄기가 남하까지 닿아 있다. 남하를 건넜다는 말은 곧 무당파의 권역에 들어왔다는 말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무당은 소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서 제자들을 남하로 내려 보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록 정한거를 발견했다는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사흘째 되던 날. 정한거가 무당산 쪽으로 다가온다는 소문이 또다시 들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무당산 서남쪽 청봉에 사는 무당파의 속가제자 단리공선의 작은 장원에서 이십여 명의 식솔이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밤늦은 시각에 벌어진 일이어서 그 일은 다음날 아침 무렵에서야 알려졌다.

 

처참한 살육, 무자비하게 쓴 손속.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 죽인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사람들은 앞뒤를 가리기도 전에 결론부터 내렸다.

 

“마녀가 또 살겁을 저질렀군.”

 

“그 무시무시한 계집들이 아니면 누가 이들을 죽였겠는가?”

 

“어째 장주님의 손자손녀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장원의 사정을 잘 아는 마을 사람 하나가 미적거리며 말했지만, 그의 말은 상황 판단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뒤늦게 무당에 도착한 무림맹의 추적대는 무당파 제자들과 함께 인근 수백 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오리무중, 사람들은 정한거의 바퀴 자국조차 찾지 못했다.

 

결국 닷새간의 수색에도 정한거를 찾지 못하자, 무림맹의 추적대와 무당파 제자들은 다시 무당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또 다른 소식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즈음, 청봉에서 북서쪽으로 수백 리나 떨어진 죽산의 비구니 암자, 연화암에선 의문에 찬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상한 일이군요. 본 궁의 제자들이 청봉으로 간 적이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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