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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78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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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78화

 

78화

 

 

 

 

 

 

좌소천은 뜨겁게 달아오른 가슴의 열기를 식히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모두 짐작하고 있겠지만, 곧 임무가 떨어질 것이오. 그때까지 소속된 수하들을 강하게 단련시켜 놓도록 하시오. 힘들게 보낸 하루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줄 것이오.” 

 

“명대로 하리다, 단주!”

 

전이었다면 단주가 되었으니 그냥 위세를 떨기 위해서 하는 말이려니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좌소천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특히 포규상과 모이산은 전날 오만하게 굴었던 때를 생각할 때마다 목을 쓰다듬었다.

 

‘지미, 그때는 내가 미쳤었지. 겁도 없이 단주에게 칼을 휘두르라고 했으니…….’

 

‘이놈의 입을 조심하지 않으면 내가 제명에 못 죽지……. 제기랄.’

 

 

 

상견례가 끝나고 대주들이 돌아가자, 좌소천과 좌우장인 공손양과 도유관만이 방에 남았다.

 

좌소천은 맞은편의 방문을 바라보고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한 달 후에 출정 명령이 떨어질 것이오.”

 

“궁주께서 저희 패천단을 보낼 거라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소?”

 

공손양이 잠시 생각하더니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패천단은 외인들의 단체나 다름없다. 비록 충성을 맹세했다지만, 백 년간 제천신궁을 떠받쳐 온 삼단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마성과의 싸움에 패천단을 선발대로 내세우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단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뭉쳐야 할 것이오.”

 

공손양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무력을 키우기 위해서 마음을 뭉치라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예, 단주.”

 

좌소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천공에 뜬 만월이 유난히 붉게 보였다.

 

“여름이 오고, 폭풍우가 몰아치면 쉴 틈이 없을 것이오. 뭉치지 않으면 폭풍우에 휩쓸려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터. 폭풍우을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3

 

 

 

 

 

붉은 연산홍이 만발한 태백산 천선곡.

 

작은 연못 가운데 지어진 팔각정을 시원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참으로 아름답구려.”

 

“제천신궁만 하겠습니까?”

 

팔각정 안에는 삼십 초반의 장한 둘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나들이라도 나온 것처럼 한가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결코 한가한 사람들이 나눌 이야기가 아니었다.

 

“언제 움직일 거요?”

 

“유월이 시작되기 전에 한중이 우리의 수중에 떨어질 것입니다.”

 

“적당하군요.”

 

“제천신궁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리의 움직임도 달라진다는 점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물론이지요. 그때쯤이면 소림이나 화산은 우리를 주시하느라 섬서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것이오.”

 

“어쨌든 정한거가 때마침 나타났습니다. 그들 덕분에 계획이 반년은 앞당겨질 것 같습니다.”

 

“그러게 말이오. 정말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 같구려. 하하하하!”

 

헌칠한 키에 고요한 눈을 지닌 장한, 혁련호정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전염된 듯 순우무종도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건 그렇고. 혁련 형, 혁련 낭자와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혁련호정의 웃음이 잦아들었다.

 

“내가 보기에는 아버님께서도 큰 반대를 하지 않으시는 것 같소. 이번 일만 잘 풀린다면, 적당한 날을 잡아 미려를 이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소.”

 

순우무종의 눈이 반짝였다.

 

혁련호정의 말뜻을 모를 그가 아니었다.

 

‘흥! 일이 잘못되면 못 준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만 된다면 제가 뭘 못해 드리겠습니까? 혁련 형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당연히 도와줘야지요. 그런 사소한 일이 이제 곧 큰일을 할 분의 발목을 잡아서야 되겠소이까?”

 

“말만 들어도 힘이 납니다, 하하하!”

 

 

 

혁련호정과 순우무종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시각.

 

백의를 입은 오십대 후반의 초로인과 칠십 정도로 보이는 흑의노인, 두 사람이 그리 크지 않은 대전에 마주 앉아 있었다.

 

초로인은 칼날처럼 쭉 뻗은 눈썹만 아니라면 시골 서당의 훈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중후한 인상이었다.

 

반면에 흑의노인은 몸도 작은데다가 얼굴에 반점이 얼룩덜룩해서 길거리에서 전병을 파는 노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런 흑의노인을 대하는 초로인의 말투는 마치 높은 어른을 대하는 듯 공손했다.

 

“무궁이 놈은 좀 어떻습니까?”

 

초로인의 물음에 흑의노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그놈이 왜 그렇게 변한 것이오, 가주? 그놈에게 천해의 계집 둘이 만신창이가 되어서 빙설모모를 달래느라 보통 욕본 것이 아니라오.”

 

“단단히 혼을 좀 내지 그러셨습니까, 노야.”

 

“혼이야 냈지요. 독혼관에 집어넣었으니까 말이오.”

 

초로인이 움찔하며 흑의노인을 바라보았다.

 

“무궁이를 독혼관에 넣었단 말입니까?”

 

“세 번째 관문을 막은 상태에서 넣었으니 너무 걱정 않아도 되오.”

 

천해의 삼대수련관 중 하나인 독혼관은 세 단계의 관문이 있다.

 

독을 복용하며 고통을 참아내는 곳이 첫 번째 관문이고, 독물과 싸우며 독에 대한 저항력과 인내를 기르는 곳이 두 번째 관문이다.

 

문제는 세 번째 관문이었다.

 

그곳은 따로 심혼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독으로 인해 인성까지 바뀌는 곳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그곳을 통과한 자치고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누구든 그곳을 통과하고 나면 오직 천해의 명령만 받는 꼭두각시로 변했다.

 

초로인, 순우연은 그 점이 걱정되었기에, 세 번째 관문을 막아놓았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했다.

 

“제천신궁과의 협약에 대해선 들으셨지요?”

 

“들었소이다. 이무기가 용 흉내를 내려고 하는가 보더구려.”

 

“이무기치고는 제법 큰 이무기지요.”

 

“흥! 그래 봐야 승천하지 못할 이무기일 뿐이라오.”

 

혁련무천, 천하제일패라 불리는 그를 이무기로 비유하며 코웃음 친다.

 

그런데도 순우연은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그래도 저희에게는 고마운 이무기가 아니겠습니까?”

 

“클클, 그건 그렇지요. 천 년 만에 세상에 나갈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이니…….”

 

흑의노인은 말을 끌며 기이하게 일렁이는 눈빛을 쏟아냈다.

 

“어쨌든 그건 가주가 알아서 할 일이고……. 그래, 묵령천의 잔존 세력에 대해선 어찌 처리가 되었소?”

 

순우연의 눈이 칼날 같은 눈썹처럼 가늘어졌다.

 

“몇몇이 살아남은 것 같습니다만, 그리 우려할 만한 숫자는 아닙니다. 게다가 추적대가 지금도 그들을 쫓으며 찾는 대로 죽이고 있으니 곧 씨가 마를 겁니다. 다만…….”

 

말을 이어가던 순우연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흑의노인을 응시했다.

 

“동방 계집의 아들인 좌가 애송이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그놈이 보통이 아닌 것 같습니다, 노야.”

 

“보통 놈이 아니다?”

 

“이번에 제천신궁 패천단의 단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스물서넛에 불과한 놈이 자신의 실력으로 말입니다.”

 

“흐음… 그럼 혁련무천에게 놈의 제거를 부탁하면 어떻겠소, 가주?”

 

“그리만 되면 문제가 없는데, 자칫 그 일이 드러나면 혁력무천도 곤란하게 될 것이 분명한 만큼 쉽게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할 겁니다. 어쩌면 놈을 이용해서 오히려 우리를 견제하려 할지도 모르고 말이지요. 우리가 먼저 자청해서 혁련무천의 손에 칼을 하나 쥐어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 참…….”

 

“너무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놈을 제거할 사람을 보낼 생각이니까요.”

 

“제거라… 사람이 필요하면 말씀하시오, 가주.”

 

“아닙니다. 어린놈 하나 죽이겠다고 천해의 힘을 드러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역시 혁련무천이 눈치 채면 곤란하니까요.”

 

“하긴, 설령 놈이 암살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그깟 놈 하나가 뭘 할 수 있겠소? 허허허허.”

 

“아무래도 그렇지요, 하하하.”

 

두 사람은 표정을 풀고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혁련무천조차 이무기라 생각하는 그들이 아니던가.

 

그에 비하면 좌소천 정도는 미꾸라지에 불과했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4

 

 

 

 

 

좌소천은 읽던 서류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혁련호정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돌아왔을 때도, 단주 취임 후에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그를 보았다는 자가 없었다.

 

그는 어디를 간 걸까?

 

 

 

“그리고… 큰오빠가…….”

 

 

 

그날 혁련미려는 말을 하다가 혁련호승 때문에 멈추었다. 분명 혁련호정에 대한 말이었거늘.

 

‘미려 누님을 만나볼까?’

 

문제가 없지는 않았다.

 

혁련미려는 천화전 깊숙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은 지 오래다. 자신이 무작정 찾아가면 혁련무천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좌소천은 선우궁현의 위패에 향을 피운다는 이유로 내전의 사당을 이틀에 한 번씩 들락거렸다.

 

그 일만은 혁련무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첫날은 사당을 지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두 번째 갔을 때 마침 천화원의 시비로 보이는 여인을 만났다.

 

“좌소천이라 합니다. 백부님의 위패가 있어서 이틀에 한 번씩 오고 있지요.”

 

좌소천은 당황한 시비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고는 얼굴이 빨개진 그녀를 놔둔 채 사당을 나왔다.

 

그리고 세 번째 되던 날, 마침내 혁련미려가 직접 향을 피우기 위해서 사당에 들렀다. 

 

좌소천이 이틀에 한 번씩 온다는 말을 시비에게 들은 것이다.

 

“패천단주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어. 축하해.”

 

“고맙습니다, 누님.”

 

혁련미려가 눈을 흘기더니 나직이 말했다.

 

“나 들으라고 시비에게 말한 거지?”

 

“제가 어떻게 누님의 눈치를 속이겠습니까? 예전부터 눈치 하면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누님인데요.”

 

좌소천의 농담에도 혁련미려는 웃지 않았다.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뛰어난 눈치로도 사람을 한번 잘못 보는 바람에 선우궁현이 죽지 않았던가.

 

그래도 그녀의 눈치는 여전히 절정의 경지였다.

 

“혹시 큰오빠 때문에 찾은 거야?”

 

좌소천이 조용히 웃으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멀리 가신 겁니까? 아니면 호승 형님 때문에 화나서 나오지 않으신 겁니까? 보이지 않으시던데요.”

 

혁련미려의 표정이 침울해졌다.

 

“어디 가셨어.”

 

“그러셨군요. 어쩐지…….”

 

그때 혁련미려가 입술 끝을 살짝 깨물고 나직하니 말했다.

 

“섬서에 간다고 했어, 태백산에.”

 

태백산이라면, 천외천가에 갔다는 건가?

 

좌소천은 굳어지려는 표정을 억지로 폈다.

 

“무엇 때문에 가셨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어. 아버지도 오빠 일에 대해선 가족에게도 아무 말씀을 안 하셔.”

 

순우무종이 혁련미려를 원하는 것 같다고 했다.

 

‘혹시 혼사 문제로?’

 

그러나 그 문제 때문이라면 굳이 혁련호정이 직접 갈 이유가 없다.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닐 테니 적당한 사람에게 서신을 써서 보내면 되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모종의 이야기를 하러 갔다는 말이다. 제천신궁의 후계자인 혁련호정이 직접 가서 나눠야 할 만큼 중요한 그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문제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갔느냐 하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나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에 따라 자신의 대처도 달라져야 한다.

 

‘백부, 당신이 끝내 악수를 두는군요. 저의 가족을 조금이나마 생각했다면, 그들과 절대 손을 잡아서는 안 되거늘…….’

 

좌소천이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긴 사이, 사당 쪽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소천아, 나 갈게.”

 

혁련미려가 다가오는 사람을 알아보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손을 살짝 들었다.

 

“예, 누님.”

 

좌소천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때 뒤에서 다가오던 자가 좌소천을 불렀다.

 

“여기 있었구먼. 내 잠시 할 이야기가 있어 찾았는데…….”

 

신형을 돌린 좌소천이 조금은 과장되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밀천단주 사공은환이 이 장 앞에 서 있었다.

 

“단주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겁니까?

 

눈만 살짝 돌린 사공은환은 멀어지는 혁련미려의 등을 바라보고 입꼬리를 살짝 추켜올렸다.

 

“잠시 조용한 곳으로 갔으면 싶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기회를 만들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먼저 달려드는 사공은환이다.

 

그만큼 마음이 급하다는 반증. 

 

좌소천은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겼다.

 

“앞장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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