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7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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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72화
72화
좌소천이 직속무사들과 함께 중앙에 서고, 단청호와 평완동을 비롯한 황파 지부 무사들이 우측을, 포규상과 모이산이 이끄는 패천단의 정예들이 좌측을 맡았다.
그들과 잠강 지부 무사들 간에는 힘의 격차가 너무나 컸다.
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비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순식간에 쓰러진 숫자만 오십여 명. 대부분이 적들 중 강해 보이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기선을 잡기 위해 멋모르고 달려들었다가, 몇 초도 견디지 못하고 낫에 베인 잡초처럼 쓰러졌다.
결국 북향이 담을 넘은 지 반 각이 채 지나기도 전, 잠강 지부의 북쪽을 지키던 이백의 무사가 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도 뒤로 물러서기에 정신이 없었다.
북향은 그들을 급박하게 쫓지 않았다. 마치 벽이 밀려가듯이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
대신 달려드는 자들은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죽였다.
그것이 몇 차례 이어지니 잠강 지부의 무사들도 함부로 덤비지 않고 뒤로만 물러났다.
언뜻 보면 서로 대치한 상황에서 천천히 밀리는 것처럼 보이는 괴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만일 좌소천이 쓸어버리라는 한마디만 하면 모든 상황이 일각 안에 끝날 것이었다.
그러나 좌소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한편, 북쪽에서 묘한 대치가 이어지는 사이, 정문과 남쪽의 격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마종각과 혈전각의 무사들은 전마성의 핵심 전력이다.
제천신궁의 제천단과 무천단에 비교되는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숫자는 이백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들과 잠강 지부의 무사 사백이 합세하자, 혁련호승이 이끄는 남향과 남쪽을 치고 들어온 후속대를 막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마종각이 잠강 지부 무사들과 정문을 막고, 혈전각이 나머지 무사와 함께 남쪽을 막았다.
그러한 형국은 이각 가까이 이어졋다.
특히 마종각의 무사들은 남향이 그들에게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종의 싸움으로 아는 것이다. 남향이 선도 지부를 몰살시킨 주범이라는 걸.
그렇게 정문의 싸움이 치열하게 흐르는데도 좌소천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적을 압박했다.
전격적인 공격을 하면 일각 안에 전체적인 싸움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리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결심만 하면 이길 수 있는 싸움. 약간 차이의 빠른 승리는 좌소천에게 별반 의미가 없었다.
혁련호승의 처참한 승리!
그것이 더 중요했다.
대계를 위하여!
이각 후.
좌소천은 연무장 쪽으로 잠강 지부 무사들을 몰아넣고 북쪽을 틀어막았다.
그즈음에는 남향과 후속대의 무사들이 대부분이 담장을 넘어온 상태였다.
좌소천 일행이 나타나자 격렬하게 저항하던 마종각과 혈전각의 무사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반면에 남향과 후속대는 사기가 솟구쳤다.
그 미미한 차이로 인해 승부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좌소천은 멈춰 서서 전마성의 무사들을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은 볼 것도 없었다.
갈의노인 한 명과 다섯의 사십대 적포중년인.
그들은 다른 자들과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특히 손에 월륜이라 불리는 반달처럼 생긴 기형 병기를 들고 있는 노인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강해 보였다.
그는 진혼검객 황창안이 상대하고 있었는데, 겨루기 시작한 지 수십 초가 흐른 듯 두 사람의 옷은 군데군데가 찢겨져 있었다.
‘종후전과 비슷해 보이는군.’
종후전이 자신에게 오 초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다고는 하나, 당시 좌소천이 아니었으면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저 노인이 누군지 아십니까?”
좌소천의 물음에 단청호가 이를 지그시 깨물고 말했다.
“월영신마 전호라는 작자네. 종후전과 함께 팔대호법 중 하나지.”
“그럼 저쪽에 있는 자들도 아십니까?”
“으음, 그들은 전마성 최강의 자랑이라는 이십팔전마들로 보이는군.”
이십팔전마(二十八戰魔).
전마성이 심혈을 기울여서 키워냈다는 스물여덟 명의 인간 병기를 말함이다.
그들은 혁련호승과 조용익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왜 보고만 있는 것이오?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하지 않겠소?”
평완동이 불만인지 툭, 한마디를 던졌다.
좌소천은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앞만 바라보았다.
그걸 원했다면 혁련호승은 진즉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온 것을 알고도 입을 꾹 다문 채 조용익과 함께 다섯 명의 전마를 상대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마도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뜻일 터.
아니나 다를까, 평완동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혁련호승이 소리쳤다.
“소천! 북향은 나서지 말고 그곳에서 후방을 지켜라!”
좌소천은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팔짱을 끼어 자신의 뜻을 보여주었다.
“아니, 대체 왜 저러는 것이오?”
평완동이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다.
자신과 혁련호승과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먼저 사실대로 모든 것을 밝힐 수도 없는 일. 좌소천은 상황을 돌려서 말했다.
“적들 중 우리를 의식해서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는 자들이 백수십 명이오. 악에 바치면 그들 역시 동귀어진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오. 불필요한 싸움 때문에 수하들을 죽일 수는 없지 않소?”
불필요한 싸움.
혁련호승이 들었으면 미쳐 버렸을지도 몰랐다.
자신은 승리를 위해서 사력을 다하고 있는데 불필요한 싸움이라니!
평완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불필요한 싸움이란 말이오?”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목적은 상대를 많이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은 피해를 내고 지부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시오.”
“그래도 우리가 가세하면 더욱 빨리 싸움을 끝낼 수 있지 않겠소?”
‘혁련호승은 바로 그게 싫은 거지.’
좌소천의 생각을 읽은 듯 공손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혁련 향주가 왜 향주님을 견제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어릴 때부터 나를 죽이지 못해서 안달했지요.’
공손양이 고개를 돌려서 좌소천을 돌아다보았다.
“혹시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가 아닙니까?”
어차피 공손양에게는 말해줄 생각이었으나,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좌소천은 보일 듯 말 듯 미미한 미소만 지었다. 그 정도만으로도 공손양은 뭔가를 눈치 챌 것이 분명했다.
역시나 뭔가를 눈치 챘는지 공손양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좌소천의 눈에서 기광이 번쩍이더니, 입술이 실처럼 열렸다.
<월영신마, 그대가 신월맹의 한을 잊지 않았다면, 일단 후퇴하시오.>
황창안과 대치하고 있던 전호의 어깨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순간 황창안이 빛살처럼 검을 내질렀다.
두 자가량 뻗은 검강이 창날처럼 날아든다.
쩡!
월륜을 휘둘러서 황창안의 검을 막아낸 전호는 그 충격을 이용해서 재빨리 뒤쪽으로 삼 장을 물러섰다.
그도 좌소천 일행이 나타났을 때부터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느꼈던 터였다.
자존심이 아니었다면 벌써 물러났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차에 들려온 전음은 한가닥 남았던 그의 망설임조차 돌아서게 했다.
누구의 전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간다! 후퇴해라!”
전호가 갑자기 소리치며 뒤로 몸을 빼자, 황창안은 앞으로 달려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동시에 전마 다섯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그대로 몸을 날려서 서쪽 전각 사이로 달려갔다.
마종각과 혈전각의 살아남은 무사들은 물론이고, 전마성 잠강 지부의 무사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서 죽어라 달렸다.
“놈들을 쫓아! 쫓아가서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 버려라!”
잠시 멍하니 서 있던 혁련호승이 악에 바쳐 소리쳤다.
황창안이 얼굴을 찡그리며 혁련호승을 바라보았다.
“이미 끝난 싸움이네. 그냥 놔두는 게 낫지 않겠나?”
“도망가는 적을 치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쳐들어올 겁니다.”
일방적인 승리라면, 저들을 쫓아 제거할 경우 모든 상황이 끝날 거라면 그리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도망치는 적은 결코 몰살을 당하고 남은 패잔병이 아니다.
적의 주력 중 반 가까이가 살아서 도망치고 있었다. 도망갈 길마저 막으면, 그들은 분명 돌아서서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적은 악에 바쳐 있네. 지금 쫓아서는 오히려 수하들의 피해만 커질 뿐이네. 무리한 명은 거둬주게나.”
그러나 혁련호승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뭐 하느냐?! 놈들을 쫓아라!”
머뭇거리던 무사들이 도망가는 전마성의 무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나 반 시진 동안의 치열한 격전을 벌이며 지칠 대로 지친 몸들. 성의를 다해 쫓는 사람은 일부분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반해 적은 사력을 다해 탈출하려는 자들.
더구나 잠시의 머뭇거림으로 인해 그 간격이 더욱 넓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이를 부드득 간 혁련호승이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소천! 뭐 하느냐? 너희도 놈들을 쫓아!”
좌소천이 서쪽 전각 사이로 도망치는 자들을 보았다.
전마성의 무사들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뒤에 남은 사람들은 부상자들뿐이었다.
“이미 늦었습니다. 그냥 마무리하시지요.”
“뭐야? 네놈이……!”
혁련호승은 눈을 부릅뜨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좌소천의 말대로 그냥 마무리한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가라앉지 않은 자신의 분노를 그들에게 풀고 싶었을 뿐.
생각 같아서는 자신의 명을 거부한 좌소천을 당장 혼내주고 싶었다. 좌소천의 무공이 자신의 생각보다 강하다는 것만 아니라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력도 좌소천이 자신보다 위고, 직위도 같았다.
‘씹어 먹을 새끼! 어디 두고 보자!’
분노를 씹어 삼킨 혁련호승은 한 걸음에 일 장씩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부상을 입은 채 신음하고 있는 전마성 무사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좌소천에 대한 분노가 그들에게 떨어진 것이다.
“죽어, 이 새끼! 너도 죽어!”
순식간에 목이 잘리고 심장이 뚫린 채 다섯 명의 부상자가 죽임을 당했다.
“뭐 하는 짓인가!”
황창안이 화들짝 놀라서 소리쳤다.
“흥! 이놈들에게 수하들이 죽었습니다. 당연히 죽여야지요!”
혁련호승은 냉랭히 코웃음치며 또다시 부상자 하나를 죽였다.
팍!
“컥! 이 개새…….”
황창안이 분노한 표정으로 혁련호승을 향해 다가갔다.
“아무리 그래도 움직이지 못하는 자들을 죽인단 말인가?!”
“말리지 마십시오! 명령권자는 나지, 황 부전주가 아닙니다! 뭣들 하느냐? 모두 적들을 죽여!”
눈이 벌게진 혁련호승이 사방을 쓸어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북향의 무사 누구도 그의 명령에 움직이지 않았다.
“이 자식들이! 감히 명령에 불복하겠다는 것이냐?”
버럭 소리친 혁련호승이 근처에 있는 북향의 무사를 향해 다가갔다.
“이미 검을 던진 자들입니다, 향주.”
“감히 내 명령을 거부해?”
순간이었다. 혁련호승의 검이 번개처럼 북향 무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미처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었다.
누가 말릴 새도 없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심하게 손을 쓸 줄은 꿈에도 모르고 고개를 숙인 무사의 심장에 검이 꽂혔다.
푹!
“허억! 이, 이……!”
혁련호승이 무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명령불복종은 죽음이란 것을 몰랐느냐?”
“무, 무사의 도도 모르는 노… 옴…….”
“이런 개새끼가!”
혁련호승은 눈을 부라리며 무사의 배를 걷어찼다.
퍽!
일 장 밖으로 나가떨어진 북향 무사의 심장에서 붉은 선혈이 뿜어졌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황창안이 벌게진 얼굴로 대노해 소리쳤다.
홱, 고개를 돌린 혁련호승이 살기 띤 눈으로 주위를 쓸어보았다.
“또 누가 감히 내 명을 거부할 것이냐?”
무사들이 일제히 분노한 눈으로 혁련호승을 노려보았다.
혁련호승이 검을 든 채 앞으로 걸어가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충혈된 눈에서 혈광이 쏟아지는 듯했다.
“내가 누구냐? 내가 바로 제천무제, 궁주의 아들이다! 너희들의 주인이란 말이다! 그런데 하인 놈들이 감히 주인의 명을 거부하겠다는 거냐!”
그의 앞에 서 있던 무사 하나가 소리쳤다.
“아무리 그대가 궁주의 아들이라 해도 우리를 이렇게 대할 수는 없소!”
“뭐야?”
혁련호승이 소리친 무사르 향해 나아가며 검을 움켜쥐었다.
“어디 죽이려면 죽여보시오!”
무사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다가오는 혁련호승을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