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7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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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71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71화
71화
좌소천은 그들이 행여나 엉뚱한 짓을 저지를까 봐 떠나기 전 신신당부했다.
“금방 돌아올 것이니 어르신들은 이틀만 천문에서 기다리십시오. 어르신들의 존재를 알면 혁련호승이 트집을 잡을 겁니다.”
네 노인은 돼먹지 못한 혁련호승과 말싸움하고 싶지 않았다.
마침 비도 오는데다가 길도 진창길일 것이 분명한 일.
노인들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손만 흔들었다.
“허허허, 우리야 향주의 말을 들어야지.”
“비만 오면 왜 이리 허리가 뻐근한지 원…….”
“저는 무릎이 쑤셔서 걷기도 힘듭니다.”
그렇게 떠난 좌소천 일행이 한수를 십 리 남겨놓았을 때, 먼저 보낸 선발대에서 첫 번째 보고가 올라왔다.
“모장에서 치열한 접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향주!”
“모장? 잠강이 아니라 모장이란 말이오?”
“남향이 모장에서 후속대를 기다리는데, 잠강 지부의 무사들이 몰래 달려와서 기습을 한 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각 차이로 후속대가 도착하긴 했습니다만, 그 피해가 상당해 보입니다.”
선발대의 보고를 받고 좌소천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혁련호승, 네가 스스로 무덤을 팠구나. 하긴 급하기도 했겠지. 나에게 질 수는 없었을 테니까.’
알맞은 시간에 도착했다.
한수를 건너 모장까지 가는 데 반 시진 정도.
그때쯤이면 뒷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황일 터. 북향이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을 탓할 여유도 없을 것이다.
“배는 준비되어 있소?”
“예, 향주!”
3
혁련호승은 이를 갈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객잔 안이 온통 사상자들로 가득 차 있다.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신음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온다.
황파와 한천 지부의 무사들을 비롯해 제천단의 무사들까지 이백에 가까운 무사가 죽거나 다쳤다. 심지어 무천단의 무사 중 두 명이 죽고, 세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상태다.
그나마도 후속대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을 게 분명했다.
혁련호승은 욕지거리를 씹어뱉으며 서쪽을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새끼들! 비겁하게 기습을 하다니!”
분노가 끓어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전쟁에서 기습은 하나의 병법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막상 당한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더구나 접전을 벌이던 놈들이 물러간 이유가 그를 더 화나게 했다.
천문을 함락시킨 북향이 모장으로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놈들이 슬금슬금 물러서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철수한 것이다.
좌소천은 천문을 함락시켰다.
그런데 자신은 뭐란 말인가!
잠강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기습이나 당하는 꼴이라니!
“중상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속히 부상을 손봐라! 바로 잠강을 칠 것이다!”
한 소리 내지른 혁련호승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흘러나왔다.
그때, 두 사람이 혁련호승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당장 잠강을 치는 것은 어렵지 싶소이다.”
조용익의 말에 혁련호승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중상자들을 제외하고도 숫자가 사백이오. 놈들도 상당한 수가 이곳에서 죽었는데 뭐가 무서워 놈들을 치지 못한단 말이오?”
그때 조용히 서 있던 오십대 중반의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혁련 공자, 선도 지부에 남은 후속대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겠나? 하다못해 북향이라도 오면…….”
그는 제무전의 부전주로, 후속대를 이끌고 온 진혼검객 황창안이었다.
혁련호승은 차마 그에게는 심하게 말을 쏘아붙이지 못하고 입술을 씰룩였다.
―북향 따위의 도움은 없어도 됩니다!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그들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내가 그 거지새끼의 도움을 받아야 하다니!’
다시 화가 끓어오르자 그는 공연히 황창안에게 화풀이를 했다.
“대체 왜 이리 늦은 것입니까?”
황창안은 혁련호승의 책임 추궁하는 듯한 말투에 얼굴을 굳혔다.
“본래는 내일쯤 공격할 계획이 아니었나? 내가 늦은 게 아니라 혁련 공자가 빨랐던 것이네.”
“북향은 더 빨랐지 않습니까?”
“그래도 그는 성공했지 않은가?”
혁련호승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길, 우리도 후속대만 제때에 도착했다면 성공했을 겁니다.”
황창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혁련호승을 노려보았다.
‘돼먹지 못한 놈.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떠넘기다니.’
그때였다. 밖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북향의 향주께서 지원군을 이끌고 도착하셨습니다!”
일그러진 혁련호승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좌소천, 이 새끼. 오려면 좀 더 빨리 오던지 하지.’
좌소천은 부상자들 사이를 걸어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저만치 서 있는 혁련호승이 보였다. 벌겋게 달아오른 채 일그러진 얼굴. 분노를 억지로 씹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멀었다, 혁련호승. 너는 더 당해야만 돼.’
좌소천이 걸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단숨에 응성 지부를 삼키고, 그 다음날 천문 지부를 함락시킨 자.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사람들이 그를 놀란 눈으로 주시할 이유가 없었다.
총 피해가 칠팔십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나마도 죽은 사람은 삼십 명 내외.
가히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일궈낸 사람이 바로 좌소천이었던 것이다.
말단 무사들에게는 그러한 사람 밑에 속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야 더 오래 살 수 있을 테니까.
“조금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늦었습니다.”
모든 것을 비 탓으로, 하늘 탓으로 돌리는 좌소천이다.
혁련호승은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겉으로는 분노한 표정마저 지워 버렸다.
마음에서마저 지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늦게라도 와서 다행이다. 오지 않아도 되었는데, 공연한 걸음을 시킨 것 같구나.”
“아닙니다. 그런데… 피해가 많은 것 같군요.”
혁련호승이 썩은 땡감을 씹은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뭐, 그렇게 많은 피해는 아니다. 적들도 우리만큼 피해를 입었으니까. 그래, 몇 명이나 왔느냐?”
“이백을 데리고 왔습니다. 사상자가 칠팔십 명이나 생겨서, 나머지는 후속대가 올 때까지 천문 지부를 지키라 했습니다.”
혁련호승은 주먹을 움켜쥐고 천천히 몸을 돌렸다.
‘빌어먹을 새끼!’
남향은 삼백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고도 정작 목표인 잠강은 아직 구경도 못해본 상태다. 그런데도 칠팔십 명의 피해를 많은 것처럼 표현하다니.
그거야말로 자신을 놀리는 소리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혁련호승이 몸을 돌리자, 조용익과 황창안이 좌소천에게 말을 걸었다.
“무천단의 조용익이오. 말은 들었소. 참으로 대단한 일을 했더구려.”
“제무전의 부전주인 황창안이네. 허어, 그렇게 적은 피해로 응성과 천문을 차지하다니. 궁주께서 왜 그대를 향주로 임명했는지 이제야 알겠구먼.”
마치 혁련호승에게 들으라는 듯 제법 커다란 목소리다.
좌소천은 속으로 웃음이 나왔지만, 담담한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북향을 맡은 천소라 합니다. 두 분을 뵈어서 반갑습니다.”
그때 조용익이 한술 더 떴다.
“천 향주, 남향의 향주께서 곧바로 잠강을 치자 하시는데, 그에 대한 천 향주의 생각을 듣고 싶소.”
좌소천이 간단하게 그의 말에 답했다.
“남향의 향주는 혁련 형입니다. 저는 그저 지원을 왔을 뿐이지요.”
혁련호승이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그건 네 말이 맞다. 너는 지원군일 뿐이니 절대 멋대로 나서서는 안 될 것이다, 소천.”
“당연한 일이지요.”
황창안이 기이한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소천? 이름이 천소라 하지 않았나? 혁련호승이 거꾸로 알아들었나?’
그사이 혁련호승이 좌소천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했다.
“나는 곧바로 잠강을 칠 것이다. 나와 남향이 정면을 맡고, 황 부전주와 후속대가 남쪽을 맡을 거다. 그러니 네가 북쪽을 맡아라.”
“그리하겠습니다.”
여전히 담담한 좌소천의 대답에 혁련호승의 눈빛이 강해졌다.
“명심해라, 지휘자는 나라는 것을. 알겠느냐, 소천?”
“걱정 마십시오. 저희 북향은 북쪽에서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좋아. 이각 후에 출발할 것이니, 수하들에게 명을 전하고 대기해.”
좌소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조용익과 황창안이 거의 동시에 입을 달싹였다.
“나중에 이야기 좀 합시다.”
“언제 조용히 좀 만났으면 싶군.”
좌소천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혁련호승은 고집대로 이각 후에 출발을 알렸다.
좌소천은 묵묵히 북향의 무사들을 이끌고 한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했다.
3
비가 가늘어지더니 부슬비로 변했다.
한수에서 피어오른 희미한 안개가 강둑을 거슬러 오르자 마치 안개비가 내리는 듯했다.
그 덕에 백 장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강 북쪽, 한수를 따라 움직인 북향의 무사들에게는 천행이었다.
북향의 무사들이 야트막한 모래 언덕에 몸을 숨기고 잠강 지부의 북쪽 담장을 바라볼 무렵, 혁련호승의 남향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제천신궁 놈들이다!”
“막아! 죽여 버려!”
“선도 지부를 몰살시킨 놈들이다! 동료의 원수를 갚아라!”
챙! 차차창! 콰광! 쩌저저정!
“으악!”
“물러서지 마라!”
“크억!”
“단숨에 쓸어버려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처절한 비명이 안개비를 뚫고 음울하게 울렸다.
동쪽의 정문 쪽과 남쪽이 전장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즈음에서야 북향의 무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직임은 빠르고 조용했다.
선두는 이백의 무사 중 고수라 할 만한 자들이 섰다.
그들이 기러기가 날개를 편 모양을 한 채 달려가자 담장 위에서 주위를 감시하던 무사가 소리쳤다.
“적이다! 적이 몰려온다!”
그의 목소리가 안개비를 뚫고 울릴 즈음 담장과의 거리가 이십여 장으로 줄었다.
그 순간 담장 위로 오십여 명의 무사가 나타났다.
동시에 그들의 손에 들린 활이 당겨졌다.
쉬쉬쉬쉭!
수십 발의 화살이 날아들고, 날아든 화살이 달려가는 북향의 무사들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또다시 활이 튕겨졌다.
오 장의 거리를 가는 사이 백여 발의 화살이 날아든다.
그러나 선두에 선 고수들에게 이십 장 거리에서 날리는 화살은 큰 위협이 되지 못했다.
티디디딩!
화살이 안개비 속으로 튕겨졌다.
튕겨진 눈먼 화살에 서너 명이 약간의 부상을 입은 것을 빼고는 거의 피해가 없었다.
더구나 워낙 빠르게 다가가는데다 좌우로 흩어지며 달려가는 탓에 조준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거리가 십 장 안으로 줄어들자, 위기를 느낀 담장 위의 무사들이 활을 집어 던지고 담에서 날아내렸다.
곧이어 이십여 명의 무사가 더 담장을 넘어왔다.
동시에 선두를 치달리던 삼십여 명이 일제히 몸을 날렸다.
“막아!”
“놈들이 담을 넘지 못하게 해! 어헉!”
가히 폭풍의 질주였다!
소리없이 전진하는 삼십여 명의 고수!
그들이 스쳐 가는 곳에선 여지없이 피가 솟구쳤다.
“으악!”
“크아악!”
삽시간에 삼사십 명이 베어진 짚단처럼 쓰러졌다.
선두의 고수들이 다시 서너 걸음 옮기는 사이에 또 이십여 명이 무너져 내렸다.
좌소천은 단 두 번의 칼질로 다섯 명을 쓰러뜨리고는 담장을 향해 훌훌 날아갔다.
곧이어 일순간에 오십여 명을 쓰러뜨린 선두가 일제히 몸을 날렸다.
남은 자들은 바로 뒤따라온 북향의 무사들이 파도처럼 쓸어버렸다.
삼십여 명이 담장을 넘어가는 소리가 기와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보다도 더 작았다.
선두가 바닥에 내려서자마자 뒤따라온 무사들이 담장을 넘어왔다.
거칠 것 없는 빠름!
가공할 위세!
놀란 전마성 잠강 지부의 무사들이 다급히 몰려들었다.
“놈들을 죽여!”
누군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그즈음에는 이백 명의 무사가 모두 담장을 넘은 후였다.
잠강 지부의 북쪽 담장을 지키던 적들은 모두 이백오십 정도. 그러나 이미 밖에서 칠십여 명이 쓰러진 상황이었다.
남은 자들 중 그럭저럭 고수라 할 자들은 오십여 명에 불과해 보였다.
모장의 남향을 기습했던 자들 중에 마종각과 혈전각의 무사들이 섞여 있다 했는데, 그들은 정문 쪽과 남쪽에 집중된 듯 보이지 않았다.
약간의 시차를 둔 것이 결국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들을 향해서 이백 무사가 횡으로 두 겹을 이룬 채 천천히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