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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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67화
67화
동천옹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하, 하! 그냥 바람 좀 쐬려고 나왔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지 뭐냐.”
등소패도 어물거리며 핑계를 댔다.
“나는 그냥 죽기 전에 장강에 사는 조카들이나 보려고 나왔지 뭐.”
위지승정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두 노인을 바라보았다.
“두 노인네만 보내놓고 안심이 되어야지.”
그때, 위지승정이 단청호를 알아보았다.
“이게 누군가? 자네, 단청호가 아닌가?”
덕분에 무안함을 모면할 수 있게 되었으니 진심으로 반가운 마음이었다.
위지승정을 쳐다보던 단청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 혹시, 검왕 위지 선배님이 아니신지요?”
“허허허, 반갑구먼. 그래, 제천신궁에 들어왔다는 말을 듣긴 했네만, 이곳까지 어인 일인가?”
단청호가 급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황파에서 지원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등소패가 위지승정과 단청호를 번갈아 돌아다보았다.
“아는 사이야?”
“예, 등 선배. 이십 년 전쯤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호오, 그래?”
단청호는 기절할 듯이 놀라서 등소패를 바라보았다.
검왕이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할 사람이 천하에 얼마나 될까.
‘대체 저 노인이 누군데……?’
그때 동천옹이 손을 저었다.
“위지 꼬마야, 애들 좀 쫓아내라. 내 저 아이와 이야기 좀 나눠야겠다.”
“예, 어르신.”
순간 단청호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세상에, 검왕을 꼬마라 부르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그는 그래도 나았다.
단청호의 입에서 검왕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평완동은 입이 달라붙어서 열리지가 않았다.
그러다 검왕을 ‘꼬마’라 부르고, 검왕이 순순히 어르신이라 부르며 고개를 숙이는 순간에는 오줌을 지릴 뻔했다.
위지승정이 고개를 돌리자 단청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저희들은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노선배.”
“그래주겠나?”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혹시 몰라 말하는데, 우리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게.”
“예? 예, 알겠습니다.”
단청호와 평완동은 억지로 발을 떼어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방문이 막 닫히려 할 때 좌소천이 동천옹에게 물었다.
“동천옹 어르신, 어르신께서 여기에 오신 것을 궁주께서도 아십니까?”
“킁, 그냥 바람 좀 쐬러 나왔다니까?”
밖으로 나간 단청호는 하마터면 억! 소리를 내지를 뻔했다.
‘도, 도, 동천옹? 그럼… 동천자? 맙소사!’
세 노인이 자리에 앉자, 도유관과 공손양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동천옹이 밝게 웃었다.
“햐아, 저놈들도 제법인데? 둘 다 한가락 하겠는걸?”
“그리 보셨습니까?”
“도끼를 감추고 있는 놈도 그렇고, 저 이화산장의 아이도 조금만 더 크면 굉장하겠어.”
단숨에 두 사람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동천옹이다.
좌소천은 새삼 동천옹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 말씀하시니 안심이군요. 제 목숨을 맡길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클클, 아무리 그래도 너만은 못해. 하늘이 무슨 일을 벌이려고 너 같은 놈을 세상에 내놨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웃는 동천옹의 눈이 가늘어진다.
맑은 웃음 속에서 신광이 번뜩인다.
마치 자신의 속이 다 내보이는 것만 같다.
좌소천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혹시 같이 오신 분이 또 계시지 않습니까?”
등소패와 위지승정의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누군지 알고 있는 눈치다.
“글쎄다. 밤이슬 맞는 걸 즐기는 늙은이가 하나 있는 것은 안다만……. 설마 여기까지 따라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아마 그냥은 나오지 않을 것이고, 흠… 네 도가 그 늙은이를 나오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동천옹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밖에 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고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좌소천의 도를 바라보았다.
좌소천은 그의 말뜻을 바로 알아들었다.
자신의 도를 한번 보고 싶다는 말.
보여줘도 괜찮을까?
그러나 망설임도 잠시.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요.’
좌소천의 우수가 무진도를 잡아갔다.
순간이었다.
스윽!
소리없는 묵빛 섬광이 창문을 갈랐다.
아무런 기세도 느껴지지 않는 가운데 뻗어나가는 검은 선 한줄기!
등소패도, 위지승정도 눈을 홉떴다.
심지어 동천옹조차 눈이 휘둥그레져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순간 창문이 미미하게 열리는가 싶더니 그림자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안개에 감싸여 얼굴조차 확연히 보이지 않는 흑의노인이었다.
흑의노인은 나타나자마자 화풀이라도 하려는 듯 동천옹을 향해서 카랑카랑한 말투로 쏘아붙였다.
“돼먹지 못한 늙은이 같으니라고. 뭐? 밤이슬 맞는 걸 즐겨? 내가 도둑인 줄 아나?”
좌소천이 해연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동천옹에게 ‘돼먹지 못한 늙은이’라고 말할 사람이 하늘 아래 몇이나 될까?
“사람 목숨 도둑질하는 놈이 도둑놈 아니면 뭐냐?”
“흥! 고매한 살행을 감히 도둑질에 비교하다니. 늙은이가 이제 미쳐 가는구나.”
살행?
그 말에 좌소천은 언뜻 한 사람을 떠올렸다.
동천옹과 같은 연배, 자신조차 감지하기 어려운 신법, 안개처럼 흔들려 제대로 볼 수 없는 얼굴. 그리고 살행을 고매하게 여기는 사람.
‘혹시… 흑살신 무영자?’
“왜 따라왔냐?”
“늙은이들이 작당해서 몰래 담을 넘기에 어디를 가나 궁금해서 따라왔다.”
“헹, 그게 아니라 우리끼리 어디 가서 재미 보는 줄 알고 따라왔겠지.”
찔끔한 흑의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인 줄 아나? 나도 겸사겸사 사문의 아이들이 잘 지내는지 알아볼 겸 나왔다고.”
그러고는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자신의 종적을 눈치 챈 것만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중 일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도의 기운이 다가오는 순간, 무영자는 가슴이 섬뜩해서 하마터면 체면 불구하고 적이 아니라며 소리칠 뻔했다.
그리고 단 한 번의 칼질에 자신의 옷이 잘렸다. 지금은 보이지 않게 살짝 감추었지만.
저 땅딸보 꼬마늙은이가 보면 약 올릴 테니까.
‘젠장, 뭐 저런 꼬마가 다 있어?’
그때 좌소천이 허리를 숙였다.
“좌소천이 삼가 무영자 어르신을 뵙습니다.”
무영자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커엄, 그래도 어른을 알아보는 눈은 있군.”
속으로는 ‘네가 감히 내게 도를 휘둘러?’ 하고 윽박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자신의 꼴만 우습게 될 뿐이란 걸 그 자신도 잘 알았다.
무영자는 입만 벙긋거리다가 말을 돌렸다.
“그 칼질, 뭐라는 것이냐?”
“무진(無瞋)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네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단순한 도법의 이름을 말한 것과는 뜻이 달랐다.
이름을 붙였단다. 자신이 만들었다는 말.
세상에! 뭐 저런 게 다 있어?
네 노인이 그런 눈으로 괴물 바라보듯 노려보자 좌소천이 급히 변명처럼 말했다.
“원래 저를 구해준 고인께서 전해준 것을 제가 알고 있던 무공에 맞게 바꾼 것뿐입니다. 살기가 너무 짙어서…….”
그거나 저거나!
네 노인은 입맛을 다시며 눈을 돌렸다.
―흐흐흐, 저 괴물의 스승이 나라고.
―허허허, 역시 내가 보긴 잘 봤어.
등소패와 위지승정은 그런 마음이었고,
―조금만 빨리 만났으면…….
헌당과 무영자는 그런 마음에 안타까움을 떨치지 못했다.
그때 좌소천이 넌지시 물었다.
“궁으로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까?”
동천옹이 콧소리를 내며 구시렁거렸다.
“킁, 가면 뭐 하누. 늙은이들끼리 잡담이나 나누면서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데.”
등소패는 찻잔만 돌리고, 위지승정은 근엄한 자세를 유지한 채 빈 찻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무영자가 입술을 씰룩이더니 툭 던지듯이 말했다.
“혼자 돌아가면 혁련 꼬마한테 나만 욕먹을 텐데, 내가 미쳤다고 혼자 가냐?”
죽어도 같이 죽고, 놀아도 같이 놀자는 투였다.
7장 그대는 전하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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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까지 늘어진 흑염으로 인해서 각진 얼굴이 더욱 강맹하게 보이는 자.
철혈마제(鐵血魔帝) 사도철군.
천하사패 중 하나, 전마성의 주인.
그는 아침이 밝기도 전에 들려온 소식을 듣고 대노해서 침상을 박차고 대전마전(大戰魔殿)으로 나갔다.
“뭐야? 응성에 이어 선도 지부까지 넘어가?”
전마성이 발칵 뒤집혔다.
사도철군의 노성이 대전마전을 뒤흔들었다.
“혁련무천! 이 무식한 놈! 끝내 붙어보자 이거지?”
정한거로 인해 잠시 제천신궁의 야욕에서 눈을 뗀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렇게 전격적으로 치고 들어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결과는?!”
전혈각주(戰血閣主) 한무귀가 고개를 들었다.
“응성에선 황문과 우적생이 백오십여 명의 수하와 함께 죽고, 이백여 명은 그곳을 탈출해서 천문 지부로 피신했다 하옵니다. 또한 선도 지부에선 삼백여 명의 수하가 지부장인 오장서와 함께 분사했사오며…….”
“놈들은? 놈들의 피해는 어떠한가?”
보고를 듣는 사이 사도철군의 목소리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그러나 차갑기는 북풍한설보다 더했다.
“놈들은 북향과 남향으로 나누어져 응성과 선도를 쳤사온데, 응성 지부를 친 북향은 거의 피해가 없다고 합니다만, 선도를 친 남향은 백여 명의 사상자가 났다고 하옵니다.”
사도철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응성 지부의 무력은 선도 지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선도 지부는 천문과 잠강 지부가 바로 뒤를 받치고 있지만, 응성 지부는 외따로 떨어져 있어서 자체적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는 무력을 갖추어놓았던 것이다.
그곳에는 일류고수만도 오십여 명이 넘었다.
숫자상으로는 백여 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실질적인 무력 차이는 두 배에 가까웠다.
비록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적을 맞이했다지만, 적에게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백 명이 싸우지도 않고 후퇴하고, 나머지 백오십여 명은 순순히 투항했다고 한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남향과 북향의 향주라는 놈들은 누군가?”
한무귀가 급히 보고를 올렸다.
“남향은 혁련무천의 둘째 자식인 혁련호승이란 자옵고, 북향의 향주는 천소라는 자이온데…….”
그가 말을 길게 끌자 사도철군의 미간에 파인 골이 깊어졌다.
“말해봐라! 왜 말을 하다 마느냐?”
“속하도 믿을 수 없는 말을 들어서 그렇사옵니다.”
“무슨 소리냐? 믿을 수 없는 말이라니?”
“북향의 향주라는 자에게 황문이 십여 초도 안 돼 잡히고, 우적생이 일도에 튕겨져 피화살을 뿜었다고 하는데다가, 응성 지부의 중견 간부 수십 명이 그자의 칼을 반 각도 막아내지 못하고 죽었다는 보고인지라…….”
사도철군의 표정이 침중하게 굳었다.
그 정도 무위라면 제천신궁을 통틀어도 열 명 내외다. 원로원에 처박힌 장로들을 모두 합한다 해도 스무 명 정도.
그들 중 이번 일에 투입된 자들이 몇 명일지는 몰라도, 그들이 직접 나왔다면 일이 더 심각하게 흐를 것이었다.
“제천신궁의 장로들이나 사단의 단주 중 누가 직접 나왔나 보군.”
“그게 아니옵고…….”
“아니지, 그들 중 천소라는 이름을 가진 자는 없는데……?”
“성주. 보고에 의하면, 이제 이십대 중반도 안 된 젊은 놈이라 하옵니다.”
“이십……대?”
굳었던 사도철군의 표정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속하도 워낙 믿을 수 없어서 보고를 미루었던 것이옵니다. 아마도 다급히 보고를 올리느라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를 올린 것이 아닌가 하옵니다.”
이십대의 나이에 그 정도 무위를 지닌 자가 없지는 않았다.
당장 자신의 큰아들만 해도 그 정도 무위를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러나 천소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았다.
둘 중 하나였다.
보고가 잘못되었든지, 새로운 젊은 고수가 나타난 것이든지.
여하튼 당장 중요한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다. 정말 그런 고수가 있다면 그만한 고수를 보내면 되는 일이니까.
사도철군은 한무귀의 보고를 뒤로하고 즉시 명령을 내렸다. 그의 눈에서 살광이 맴돌았다.
“선도 지부를 친 놈이 혁련무천의 아들이라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