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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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63화
63화
그의 움직임은 마치 검은 연기가 흘러가는 듯했다.
“저 늙은이들이 어디로 놀러가는 거지? 흥! 감히 나를 빼놓고 놀러 가다니!”
세 노인이 티격태격하며 제천신궁의 뒷담을 넘던 그 시각, 좌소천은 직속무사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신양 백 리 남쪽의 무승관을 넘었다.
무승관(武勝關)은 험준한 대별산맥을 넘어가는 주요한 고개였다. 신양에서 호북으로 가는 길은 무승관 외에도 대승관과 평정관이 있었지만, 무승관이 장강으로 가는 지름길이었기에 좌소천은 그곳을 택했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았다.
하남에서 장강으로 가는 지름길인 만큼 그곳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단순한 군병들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그들에게 제천신궁은 하늘과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신양이 백 리밖에 되지 않기에, 군병들 중 제천신궁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서 파견된 각파의 제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제천신궁이 대대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당연히 자파에 연락을 취할 터. 그만큼 피가 많이 흐를 수밖에 없었다.
좌소천은 무승관을 지날 때 조별로 움직이도록 했다. 그것도 대여섯 명씩 나누어서 넘어가라는 명을 내렸다.
나중에는 알아챌지도 모르지만, 그만큼의 시간은 벌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무승관을 넘은 좌소천은 효창(孝昌)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늦췄다. 석양이 짙게 깔리고, 어스름이 하늘을 회색으로 물들이던 시각이었다.
삼백 리 험로를 한나절 만에 주파한 것이다.
2
효창에 들어선 좌소천은 직속무사 여섯 명을 데리고 제천신궁의 호북성 팔대지부 중 하나인 효창 지부로 곧장 향했다.
사인학과 종리명한, 관추릉은 좌소천의 명을 받고 따로 움직였기에 보이지 않았다.
검인보(劍仁堡).
효창 지부인 검인보는 한때 신월맹의 지부 역할을 했던 곳이기도 했다.
지부장은 보주인 인의검(仁義劍) 벽수양.
그는 본래 신월맹의 사람이었으나, 혁련무천이 신월맹을 치면서 검인보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자 순순히 제천신궁에 백기를 들었다.
힘에서도 지고 마음 씀씀이에서도 졌다는 것이 그의 항변이었다.
인의검 벽수양은 호북성 동북부 일대에서 신망을 얻은 인물이었던 만큼, 제천신궁은 그 이후 힘을 안 들이고도 호북에 팔대지부를 설립할 수 있었다.
가히 혁련무천의 심기가 엿보이는 대목으로, 천하인이 감탄해 마지않았다.
좌소천 역시 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새삼 혁련무천의 심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둠이 밀려드는 시각.
좌소천 일행이 검인보로 다가가자 수문위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누군데 본 보를 방문하신 것이오?”
좌소천 뒤를 따라가던 이자광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이자광의 거대한 체구에 수문위사들이 움찔하며 물러섰다.
“본궁에서 온 패천단 사람들이오. 이미 통보가 되었을 것으로 알고 있소만.”
수문위사 중 하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이자광을 바라보았다.
“내일쯤 온다는 걸로 알고 있는데……?”
“걸음을 서둘렀을 뿐이오. 들어가도 되겠소? 죽어라 달렸더니 좀 쉬고 싶소.”
말을 하는 도중에도 걸음을 옮기는 이자광이다.
그 기세에 수문위사가 뒷걸음질치며 옆으로 비켜났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안에 통보를 하겠소.”
와중에 한 사람이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좌소천 일행이 문 안으로 십여 걸음 옮길 즈음 십여 명이 몰려나왔다.
앞장선 서른 중반의 장한이 먼저 포권을 취했다.
“벽화웅이라 하오. 예상보다 빨라서 미처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소이다.”
좌소천도 마주 포권을 취하며 짧게 인사를 했다.
“천소라 합니다. 밤에 찾아와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상외로 젊은 좌소천이 먼저 인사를 하자 벽화웅의 눈이 일행들을 둘러보았다.
공손양이 속으로 웃으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패천단의 부단주십니다. 북향의 향주시지요.”
두 개의 지부를 설립하는 일이다. 천문과 천문 서남쪽의 잠강 지부를.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각 지부에는 지부 설립을 위한 출정단의 명칭이 북향과 남향으로만 알려져 있는 상황이었다.
공손양의 말에 벽화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패천단의 부단주면 지부장과 동급의 지위다. 게다가 북향의 향주라면 이번 일의 책임자 두 사람 중 하나라는 말.
거기다 현 상황을 생각하면 지부장보다 반 단계 위의 상급자라 할 수 있었다.
“미처 몰라뵈었소이다. 본 보의 진수당을 맡고 있는 벽화웅이외다.”
벽화웅이 좀 더 예의를 차린 태도로 좌소천에게 인사를 했다.
“과례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지부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아, 이런! 들어가십시다.”
벽수양은 이제 환갑이 막 지난 예순두 살의 나이였다.
그러나 좌소천이 본 그는 이제 겨우 오십 초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홍안이었다.
“효창 지부를 맡고 있는 벽수양이네. 허허, 이렇게 젊은 공자가 북향의 향주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구먼.”
“패천단의 천소라 합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이 마주 앉자, 공손양과 도유관이 좌소천의 옆에 앉고, 벽화웅과 또 다른 중년인 하나가 벽수양의 양쪽으로 앉았다.
장내가 조용해짐과 동시 벽수양이 벽화웅을 가리켰다.
“내 큰아들이라네. 이제 곧 본 보를 책임질 아이지.”
“좀 전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좋은 분이 검인보를 잇게 되어서 보주님께서도 마음이 편안하시겠습니다.”
“허허허, 그리 봐주었다니 고맙군. 그리고 이쪽은 본 보에 파견 나와 있는 부지부장 유걸이네.”
“유걸이외다.”
좌소천이 유걸과 마주 인사를 하고 공손양과 도유관을 간단하게 인사시켰다.
“저의 좌우장입니다.”
“호오, 언뜻 봐도 대단한 젊은이들로 보이는구먼.”
벽수양이 두 사람을 보고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이름까지 들었다면 놀람이 더했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좌소천은 두 사람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작전이 시작되기도 전이다. 만에 하나를 생각한다면, 조금이라도 늦게 알려지는 것이 나았다.
그때 문이 열리고 백의궁장을 한 여인이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스물이 조금 넘어 보였는데, 그 모습이 일반 시비로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등잔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월궁항아가 따로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데 문득, 그녀의 얼굴에 소영령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조용함과 활달함의 차이만 아니라면 혹시 자매가 아니냐고 물을 정도로 소영령과 닮은 구석이 있는 여인이었다.
‘령 매는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군.’
좌소천의 표정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벽수양은 그런 좌소천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많이 봐줘야 이제 이십대 중반인 좌소천이다.
천 리 이내 제일의 미녀라는 자신의 딸을 보고 동요를 않는다면 그게 어디 청춘이겠는가?
‘허허허, 혁련미려가 아무리 예쁘다 해도 내 딸만은 못하지, 아암!’
딸을 둔 팔불출 아버지의 마음은 인의검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내 딸이라네.”
찻잔을 내려놓던 여인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벽여령이라고 합니다.”
‘이름까지 비슷하군.’
그뿐이 아니다. 그녀의 볼에 피어난 보조개도 영락없이 비슷하다.
“천소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좌소천의 목소리가 미미하게 떨려 나왔다.
벽여령의 얼굴도 더 붉어졌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사이, 벽여령이 차를 따랐다.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신 벽수양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내일 아침에 올 줄 알았는데, 정말 대단하구먼. 그 험한 길을 이렇게 빨리 오다니.”
그제야 좌소천의 표정도 처음처럼 고요해졌다.
“곧 나머지 단원들이 모두 도착할 것입니다.”
멈칫한 벽수양의 눈이 커졌다.
“모두 말인가?”
“그렇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아마 두 시진 안으로 반 이상이 도착할 것입니다.”
모두에게 자시까지 도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아마 전부는 오지 못할지 모른다. 그렇다 해도 반 이상은 도착할 것이었다.
벽수양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밤길을 급히 달려와야 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서두르는 이유라도 있는가?”
좌소천이 본론을 꺼냈다.
“검인보에서 저희에게 지원 무사를 보내주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사실이네.”
“얼마나 보내주실 계획이신지요?”
“선별해서 백 명을 생각하고 있었네.”
검인보에는 검인보의 자체 무사 삼백과 유걸이 이끄는 제천신궁의 무사 백여 명이 있다. 그중 선별한 무사 백 명을 내준다는 말이었다.
“그들을 인시 말에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벽수양과 유걸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유걸이 조금은 불만스런 듯 쏘듯이 입을 열었다.
“굳이 그 시간에 갈 필요가 있겠소? 어차피 황파 지부에 나머지 무사들이 모두 도착하려면 내일 밤이나 되어야 할 텐데.”
“일단 제가 요구하는 대로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글쎄,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여전히 불만을 토로하는 유걸이다.
좌소천이 그를 직시했다.
“북향의 향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유걸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아무리 향주라 해도 그렇게 막무가내로 명을 내리면…….”
좌소천이 그의 말을 잘랐다.
“지금은 전시와 같은 상황이오. 만일 거부한다면 즉결 처리하겠소.”
“뭐라?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유걸이 발끈했다.
이름도 생전 처음 들어본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자신의 상급자라는 것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뭐가 어째? 즉결 처리?
‘건방진 놈! 네놈이 어떤 줄로 이번 일의 책임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쉽게 눌리지는 않을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으며 험난한 강호에서 살아난 그다. 새파란 놈에게 밀린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었다.
“그 말 취소하게! 내 이십 년을 강호에서 구르며 수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이네!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함부로 그리 말하는 것이 아니네!”
그때 도유관이 가느다란 눈으로 유걸을 노려보았다.
“경험을 엉터리로 했나 보군.”
“네놈들이 감히!”
유걸이 벌떡 일어섰다.
좌소천이 앉은 채 그를 쳐다보았다.
“우장, 하극상에 어떤 벌이 주어지지?”
공손양이 답했다.
“죽음입니다.”
유걸의 반응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세 사람이다.
그러더니 이제 죽음을 이야기한다.
그저 어떻게 나오나 지켜보던 벽수양은 가슴이 섬뜩해졌다.
“이보게, 충분히 말로 설명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나?”
좌소천이 무심한 눈빛으로 유걸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부장님의 체면을 생각해 한 번 더 말하겠소. 인시 말까지 모든 인원을 준비시키시오.”
“흥! 그렇게 못하겠다면?”
“도 형.”
좌소천이 도유관을 부른 순간!
쒜에엑!
은빛 번개가 등잔 불빛을 가르며 유걸을 향해 떨어졌다.
“헛!”
대경한 유걸이 몸을 뒤로 빼려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의 목에 닿아 있는 은빛도끼가 요사스런 빛을 발한다.
실처럼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진 곳에 핏방울이 맺힌다.
“움직이면 진짜 죽어.”
얼음장 같은 목소리가 유걸의 고막을 흔들었다.
도끼를 본 유걸이 뒤늦게 도유관의 정체를 눈치 채고 떨리는 입을 열었다.
“너, 너는… 혈심부 도유관?”
정식 대결이었다면 이리 쉽게 제압당하지 않았을 유걸이다. 아마 도유관의 정체만 미리 알았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때늦은 상황이었다.
이를 악문 유걸의 눈빛이 격렬히 떨릴 때다. 좌소천이 일어섰다.
“인시 말까지요. 그때까지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내일 아침 당신의 머리만 제천신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오.”
그러고는 벽수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어른 앞에서 함부로 움직인 점 죄송합니다. 이해해 주시길.”
“그야 유 부지부장이 잘못했으니 충분히 이해할 상황이긴 하네만, 대체 왜 그렇게 서두르는지 말해줄 수 없는가?”
“떠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정이 있다면 더 묻을 수도 없는 일. 벽수양은 놀람을 가라앉히고 벽화웅을 바라보았다.
“네가 향주를 쉴 곳으로 안내해 드려라. 그리고 함께 갈 본 보의 무사들도 미리 준비시키고.”
“예, 아버님. 따라오시지요, 향주.”
좌소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도유관도 유걸의 목에서 도끼를 떼며 냉소를 지었다.
“다행으로 아쇼. 만일 검이라도 뽑았다면 향주께서 직접 손을 썼을 텐데, 그럼 이렇게 내 말도 듣지 못했을 거요.”
도유관이 목을 쓱 손으로 가르는 시늉을 하고 좌소천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