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6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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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62화
62화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왔나? 그냥 지나가다가 옛 스승들을 만나러 온 것 같지는 않은데.”
“곧 출정을 나갑니다. 해서 떠나기 전에 뵈려고 왔습니다.”
“출정?”
헌당은 물론이고, 위지승정과 등소패도 좌소천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부 설립을 위해서 호북으로 가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위지승정과 등소패의 표정이 굳어졌다. 헌당만 여전히 흥미로운 표정일 뿐.
등소패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부 설립을 위해 호북으로 간다? 설마 서벌을 한다는 말인가?”
“현재로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
“흠, 그럼 적지 않은 인원이 출정하겠구나.”
“제가 패천단 삼백을 데려가고, 혁련호승 형님이 제천단 이백과 무천단 일부를 이끌게 될 것 같습니다.”
“수장들이 너희 둘이란 말이냐?”
의외인 듯했다. 하긴 막대한 임무에 비하면 수장들이 너무 젊었다.
보좌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누구나 그리 생각할 일이었다.
혁련무천이 무슨 생각으로 젊은 두 사람을 수장으로 내세운 것일까?
그때 위지승정이 침중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젊음, 그 자체를 내보이고 싶은 것처럼 보이는군요.”
“젊음?”
“제천신궁 자체가 아직 젊다는 것, 자질만 있으면 젊어도 누구든 수장이 될 수 있는 곳이 제천신궁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천하의 기재들은 그 사실만으로도 피가 끓을 겁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혁련무천이 정말로 그 생각을 하고 두 사람을 내세운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위지승정의 말대로, 천하의 청년 기재들 마음은 분명 그러할 것이었다.
좌소천은 새삼 혁련무천의 벽이 높게 느껴졌다.
‘궁주, 진정 그러한 생각으로 나와 혁련호승을 내보내려는 것이오?’
또한 그럴수록 좌소천의 피도 끓었다.
‘그의 벽을 넘을 것이다. 반드시!’
그때였다. 헌당이 넌지시 물었다.
“언제 출발한다던가?”
좌소천이 무심코 대답했다.
“사흘 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
헌당의 눈빛이 묘한 빛으로 물들었다.
꼭… 장에 가는 어머니 뒤를 몰래 따라가려는 아이 같은 눈빛.
위지승정과 등소패가 그런 헌당을 보고 속으로 혀를 찼다.
‘쯔쯔쯔, 저 영감이 또 무슨 엉뚱한 짓을 저지르려고…….’
원로원에서 돌아온 좌소천은 곧바로 악청백을 찾아갔다.
이제 그도 정확한 사정을 알아야 했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그가 아는 것이 많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좌소천이 그를 만나고자 하는 것은 꼭 그 이유만이 아니었다.
‘그는 같은 길을 함께 가기에 부족하지 않은 사람…….’
바로 그러한 이유였다.
패천단의 넓이는 근 일만여 평. 건물만도 십여 채에 달했다. 지난 이 년간에 걸친 공사로 이제 일천의 무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진 것이다.
단주의 집무실은 패천단 가장 안쪽에 있었다. 그곳에는 단주와 단주의 직속 호위무사 삼십여 명이 함께 기거했다.
좌소천이 집무실로 다가가자, 몇 사람이 하던 일을 멈추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이었다면 조소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포규상이 패하고, 혈심부 도유관마저 패배를 자인하고 직속무사가 되었다는 말에 조소가 호기심으로 바뀐 상태였다.
“무슨 볼일로 오신 것이오, 천 대주?”
“단주께 상의할 일이 있어서 왔소. 말씀 좀 드려주시오.”
말을 건 자는 텁수룩한 수염이 거칠게 자라 있는 삼십대 장한이었다. 그는 좌소천에게 다가오더니 쓱 주먹을 내밀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도 주먹 좀 쓴다오. 포 대주를 주먹으로 이겼다던데, 언제 한번 붙어봅시다.”
자잘한 상처로 뒤덮인 주먹이다. 그 상처만 봐도 그가 얼마나 고련하며 권법을 익혔는지 알 만했다.
상대할 가치가 있는 주먹.
좌소천은 그렇게 생각하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장한은 기분 좋게 씩 웃고는 안에다 대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오대의 천 대주가 뵙자 합니다, 단주!”
그러고는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상평문이라 하오. 기대하겠소이다.”
한쪽에 고요히 서 있는 창이 보인다.
방금 갈아놓은 칼날처럼 예리하게 번쩍이는 두 자 길이의 창두. 그리고 먹을 깎아 만든 듯 보이는 다섯 자 길이의 묵빛 창대.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반질반질한 묵빛 창대에 희미한 손자국이 나 있다. 얼마나 많이 만져야 저 단단한 나무에 저런 자국이 날까 싶을 정도다.
“좋은 창이 좋은 주인을 만났군요.”
좌소천이 불쑥 내뱉은 말에 악청백이 피식 웃었다.
“나와 삼십 년을 동고동락한 사이지.”
그사이 시비가 차를 따르고 물러갔다.
“궁주께 들었네. 천소라는 이름이 진짜가 아니라고 하더군.”
일개 신참 대주에게 패천단의 삼백 무사를 맡기는 이유를 설명해 줘야만 했을 터. 아마 자신의 이름, 정체를 밝힌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이름은 어떨지 몰라도 사람은 그대롭니다.”
“그런가? 허허허허.”
가볍게 웃음을 터뜨린 악청백이 고요히 가라앉은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태군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들었네. 참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지.”
“바보 같은 분이었지요.”
좌소천의 단호한 말에 악청백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네. 정해진 죽음을 가치 있게 쓴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저는 그래도 제 선친과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실수라 한다. 신유 좌유승의 죽음을 실수라 할 사람이 강호에 얼마나 있을까.
악청백이 담담히 웃으며 좌소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침에 명이 떨어졌네. 자네를 부단주로 삼아서 삼 개 대, 삼백 명의 무사를 출정시키라 하더군.”
“죄송합니다. 전에 말씀이 있으셨는데, 기밀인지라 단주님께도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궁주께서도 그러시더군. 너무 마음 쓸 것 없네. 일이란 것이 때로는 윗사람도 모르게 진행되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그건 그렇고… 무리한 일일지 모르는데, 괜찮겠나?”
“호북의 각 지부에서 모아진 삼백의 무사가 저희를 지원할 겁니다. 합이 육백이지요. 계획만 제대로 세운다면 그리 부족한 인원은 아닌 듯합니다.”
“상대는 전마성이네. 아무리 정한거로 인해 그들의 힘이 북쪽에 집중되었다고 해도 쉽지 않을 일이네.”
“강호에서 쉬운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지.”
악청백이 모호한 눈빛을 지으며 찻잔을 집어 들었다.
한 모금 마신 그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어릴 때 떠났다고 들었네. 왜 떠난 건가?”
“세상을 보고 힘을 얻기 위해서였지요.”
“제천신궁에서 얻지 못할 힘이라면 밖에서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다른 분도 그리 말씀하셨지요. 하나 세상은 넓었고, 그곳에서 저는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었지요.”
“흠, 하긴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지. 좌우간 뜻대로 되었다니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악청백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는 좌소천을 바라보고는 잠시 시간을 두고 입을 열었다.
“그래, 젊은 나이에 그만한 힘을 얻었다면, 단순히 제천신궁의 무사로 지내기 위해서 돌아온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하네만…….”
좌소천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단주께선 제천신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악청백이 좌소천을 직시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건방지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열여섯 살 때 힘을 얻기 위해서 제천신궁을 떠난 다음에야 알았지요. 천하가 넓다는 것을, 제천신궁이 결코 천하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걸 말입니다.”
악청백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말투에 실린 기운이 알게 모르게 주위를 긴장시킨다.
‘제천신궁이 천하의 모든 것이 아니다라…….’
시간이 지날수록 악청백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좌소천은 못 본 척 말을 이었다.
어차피 속마음을 꺼낸 마당, 본론까지 치닫기로 작정했다.
선택은 그가 알아서 할 일이다.
“원래는 복수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한데 복수하려면 하늘을 무너뜨려야겠더군요.”
“하늘을 무너뜨린다? 천외천가를 무너뜨리겠다는 건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듯하다.
그것 또한 잘못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복수의 대상이 모두 결정된 것 또한 아직은 아니었다.
좌소천은 거기에 대해 굳이 더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악청백을 직시했다.
“해서 결심을 했습니다.”
좌소천의 눈이 무저의 심해처럼 깊어졌다.
억만 근 무게의 목소리가 악청백을 짓눌렀다.
“제 자신이 하늘이 되고자 말입니다.”
순간 악청백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하늘이 되겠다고 한다.
참으로 가소로운 말이다. 치기 어린 청년의 말이라 치부한다 해도 지나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화산처럼 끓어오른다.
자신은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을 했던가?
숨이 거칠어진다.
‘하아, 하늘이라…….’
굳은 표정의 악청백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천신궁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눈빛이 창날이 되어 꽂혔다.
좌소천은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고 악청백을 마주 보았다.
“제천신궁은 당금의 여러 하늘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악청백의 눈초리가 잘게 떨렸다.
그 말이 뜻하는 바는 분명했다. 하기에 듣는 자신조차 제대로 들었는지 다시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 왜 좌소천은 자신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걸까?
그 말이 혁련무천의 귀에 들어가면 좋을 것 없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이유는 단 하나!
자신더러 선택하라는 것이다.
과연 좌소천이 자신에게 그러한 선택을 강요할 만한 자격이 있을까?
전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말이다.
자신이 누군가?
중원칠기 중 한 사람, 파혼신창 악청백이 아니던가!
감히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할 사람이 천하에 몇이나 있을까!
잘게 떨리던 악청백의 눈에서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그 불길이 폭풍에 번지는 들불처럼 그의 온몸으로 번진다.
이미 눈앞에 있는 좌소천의 나이는 그의 머릿속에서 떠난 지 오래.
악청백의 입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세상에 나가서 생각지도 못한 힘을 얻었다 했던가? 모 아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무척 궁금했지. 대체 어떤 도이기에 모 아우가 일격에 손을 들었을까 해서 말이야. 일단 그 궁금증부터 풀고 싶군.”
마침내 그가 마지막 선택을 위한 답을 청했다.
자격을 시험하겠다는 뜻이다.
강호의 율법, 강자존(强者存)의 법칙대로!
좌소천은 식은 차를 마저 비우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남과 동시에 악청백이 우수를 뻗었다.
벽의 병기대에 세워져 있던 묵창이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악청백의 방이 넓다 해도 창과 도를 부딪치며 비무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장소가 좁은 것은 어차피 두 사람 다 마찬가지 상황. 더구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의 경지에 이른 두 사람이다.
마주 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두 사람 주위로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아지랑이 같은 기운은 직경 이 장의 크기로 늘어나더니 더 이상 커지지 않고 멈췄다.
순간이었다. 악청백이 창을 앞으로 숙였다.
좌소천도 좌수 엄지로 무진도를 밀어 올리고 우수로 도병을 잡았다.
찰나, 묵룡과 묵뢰가 이 장 반경 안에서 뒤엉켰다.
우르릉!
쩌저저저적!
6장 폭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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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치고는 무덥게 느껴지던 사월 말 경의 어느 날.
동이 트기도 전에 패천단 삼백여 명의 무사는 각 대별로 이각의 간격을 둔 채 제천신궁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제천단이 움직인 것은 패천단이 모두 제천신궁을 빠져나간 지 두 시진이 더 지나서였다.
혁련호승은 제천단이 모두 출발한 이후에야 열 명의 무천단 고수와 함께 제천전을 나섰다.
그렇게 요란하지 않은 출정은 반나절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리고 제천신궁이 조용해진 오시 무렵, 세 사람이 제천신궁의 뒷담을 넘었다.
“글쎄, 그냥 바람 쐬러 간다는데 자네들은 왜 따라오는 건가?”
“나이 드신 분 혼자 어떻게 보냅니까? 조금이라도 젊은 제가 보살펴 드려야지요.”
“딱 하나 있는 조카가 장강 가에 사는데, 죽기 전에 한번은 봐야지 않겠수?”
각자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노인들의 외출이었다.
하지만 세 노인조차 자신들의 뒤를 따라 누군가가 움직였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