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6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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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61화
61화
좌소천이 멈칫하자 혁련미려는 제천전 쪽을 힐끔 쳐다보고는, 고개를 쑥 내밀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번에 그자의 사형을 봤는데, 그자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더라구. 소름이 끼쳐서 혼났어.”
그자, 순우무궁의 사형이라면 천외천가의 대공자, 순우무종을 말함이다.
“눈동자가 파란 것이 꼭 먹이를 노리는 뱀 같았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그가 나를 원하는 것 같아.”
마지막 말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좌소천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등줄기를 타고 얼음물이 내려가는 듯했다.
혼처가 정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순우무종에 대해 말한다. 그것도 남이 들을까 조심스럽게.
‘설마……?’
“그리고… 큰오빠가…….”
혁련미려가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머뭇거렸다.
그때 제천전의 문이 열리며 혁련호승이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나누느냐?”
입술을 씹으며 혁련미려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소천이가 출정한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인사나 하려고. 소천아, 조심해서 갔다 와.”
“예, 누님.”
혁련호승이 다가오며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일의 성패는 지원을 어떻게 잘하느냐에 달려 있지. 너는 최대한 힘을 내서 내 뒤를 받쳐 줘야 할 것이다.”
“제천단이 출동하는데 굳이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하긴, 그 말도 일리가 있군. 그래도 혹시 아느냐? 때로는 미천한 힘도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인데. 하하하하하!”
“이제부터 바빠질 것 같으니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럼.”
좌소천은 고개를 까딱 숙이고 몸을 돌렸다.
그렇게 제천전에서 멀어질 즈음, 바람에 실린 혁련호승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스며들었다.
“미려야. 너 내가 확실하게 말하는데, 앞으로는 저따위 비천한 거지새끼하고 가깝게 지내지 마. 알겠어?”
“흥! 오빠나 잘하셔.”
좌소천은 혁련미려의 코웃음소리를 뒤로한 채 원로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려 누님 말대로 너나 잘해라, 혁련호승.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2
원로원은 제천신궁의 맨 뒤쪽에 천화원과 나란히 있었다.
그곳에 머물고 있는 장로는 모두 열둘.
좌소천은 등소패와 위지승정을 만나기 위해서 곧바로 원로원으로 향했다.
출정을 나가면 다시 돌아올 것인지 그 자신조차 알지 못했다. 그만큼 강호의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다.
떠나기 전 두 사람을 만나보지 않으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가 없었다.
좌소천이 원로원으로 다가가자 호성당의 무사 셋이 앞을 막았다.
“정지, 이곳은 원로원이오. 무슨 용무로 온 것이오?”
“등소패 장로님과 위지승정 장로님을 만나뵙고자 하오.”
호성당의 무사들은 좌소천의 위아래를 재빨리 훑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복장을 보면 패천단의 무사다. 그것도 대주.
하지만 내궁에서 일개 단의 대주는 그리 높은 지위라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함부로 하지 못했다. 일개 패천단의 대주가 내궁의, 그것도 심처인 원로원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한 사유가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이름을 밝혀주시오.”
좌소천은 자신의 이름만 밝혔다.
“소천이라 말씀드리면 그 두 분이 알 것이오.”
호성당의 무사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천?”
“그렇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니 서둘러 주었으면 좋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고개를 갸웃거리던 호성당의 무사가 동료들에게 눈짓을 하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밖으로 뛰어나오더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시구려, 등 장로님이 기다리고 계시오.”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당장 데려오라고 쫓아내다시피 했다.
대체 저자가 누군데 천하의 등소패가 엉덩이를 들썩인단 말인가.
어디 그뿐인가?
위지승정은 난을 치다 말고 붓을 멈추는 바람에 그림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섰다.
‘아무리 봐도 별거 아닌 놈처럼 보이는데…….’
등소패는 많이 늙은 모습이었다.
얼굴에 주름도 더 많아졌고, 이도 몇 개 빠져 있었다.
“허허허허, 죽기 전에 너를 보다니.”
그는 진정으로 즐거운 듯 환하게 웃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지내기야 잘 지냈다. 힘이 좀 딸려서 그렇지.”
“아직 정정하게 보이십니다. 얼마 전에는 포규상 대주와 주먹까지 나누셨다면서요?”
“클, 그거야 주먹 좀 쓴다는 놈이 들어와서 한번 만나봤지. 알고 보니 내가 알던 사람의 제자더구나.”
싱글벙글하던 등소패가 지나가듯이 물었다.
“언제 왔더냐?”
“열흘이 조금 넘었습니다. 찾아뵌다 해놓고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찾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클클클, 죄송하긴. 며칠이 무슨 상관이누, 만났으면 된 것이지.”
실실 웃으며 말하던 등소패가 주름진 눈을 가늘게 뜨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어린아이처럼 뭔가가 잔뜩 궁금한 눈빛이었다.
“그래, 건곤신권은 얼마나 익혔느냐?”
“건곤을 합일(合一)시켰습니다.”
“…….”
등소패의 눈이 점점 커졌다.
“지금 ‘합일’이라고 했느냐?”
“예, 스승님.”
“허어!”
“하지만 아직 한주먹으로 펼쳐 내지는 못합니다.”
등소패의 커진 눈이 파르르 떨렸다.
“토, 통천(通天)을 말하는 것이더냐?”
“아직 때가 되지 않았나 봅니다.”
“허, 허, 허허허허! 내가 보기는 잘 봤구나. 건곤합일을 하고, 그도 모자라 통천이라……. 허! 허!”
웃음을 터뜨린 등소패가 눈을 반짝거리며 좌소천의 눈을 직시했다.
“한번 보여주겠느냐?”
좌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선 좌소천이 두 손을 들어 올린다.
건곤을 가리킨 주먹이 천천히 휘돌고, 허공이 비틀리며 소용돌이처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두 주먹이 하나로 보였다.
동시에 하나가 된 주먹에서 묵빛 권영이 앞으로 쭉 뻗었다.
찰나였다.
바람에 흔들거리던 얇은 휘장에 주먹 형태의 구멍이 뻥 뚫렸다.
그런데도 휘장은 변함없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짝!
등소패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좋구나, 정말 좋아!”
그때 문이 열렸다.
“소천이가 왔다던데…….”
위지승정이었다. 그의 거처는 더 안쪽에 있어서 등소패를 만난 후에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고고하기가 학 같다는 그가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등소패의 거처로 찾아온 것이다.
“소천이 스승님을 뵙습니다.”
“허허허, 정말 네가 왔구나.”
“킁! 거, 늙은이 엉덩이가 언제부터 그렇게 가벼워졌누?”
못마땅한지 등소패가 콧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둘이 보낼 시간을 위지승정 때문에 뺏겼다 생각한 듯했다.
“허허허, 마침 바람을 쐬러 나오려는데 소천이가 왔다지 뭡니까?”
당연히, 그래서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오래 머무를 좌소천이 아닐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더 보려면 직접 찾아오는 게 나았다. 그것이 자신의 방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곧바로 등소패의 방에 찾아온 이유였다.
문득, 웃으면서 탁자로 다가가던 위지승정의 눈이 주먹 모양으로 구멍이 뚫린 휘장에 고정되었다.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것을 보는 위지승정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그가 좌소천에게 물었다.
“네가 한 것이더냐?”
“약간의 얻음이 있었습니다.”
기광을 번뜩인 위지승정이 좌소천의 옆구리를 바라보았다.
실망감이 그의 눈에 떠올랐다 찰나간에 사라졌다.
“도를 택했더냐?”
“예, 스승님.”
“으음……. 그럼 내가 말해준 검결은 익히지 않았겠구나.”
익히지 않았다 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으니까.
그때 좌소천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매달렸다.
“이 도가 저를 편하게 해줘서 주무기로 삼았습니다. 마침 이 도에 맞는 도법도 하나 얻었고 해서요.”
위지승정의 눈에 활기가 떠올랐다.
“그럼, 내가 알려준 검결을 익히긴 익혔단 말이냐?”
“완벽히 제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럭저럭 기(氣), 화(和), 정(靜)의 흐름을 하나로 뭉치기는 했습니다.”
위지승정의 눈이 커졌다. 등소패나 다름없는 반응이었다.
“허, 허허허, 그래?”
“커험! 이제 보니 엉큼한 늙은이였군. 몰래 절기를 전하다니.”
“허허허, 그거야 등 선배도 별다를 게 없잖소.”
“나야 늙어서 물려줄 사람이 없었으니 그랬지.”
“저도 환갑 지난 지 오랩니다. 그때도 제천신궁을 나가서 제자를 찾기에는 늦은 나이였지요.”
당시 오십대 후반의 그였다. 제자를 찾아 강호를 돌아다니기에 어정쩡한 나이. 더구나 혁련무천이 놓아주지 않았을 터였다.
“안에서 찾아봤으면 됐잖아?”
“소천이만 한 아이가 있어야지요.”
“킁, 그러니까 결국 소천이가 욕심나서 전했다는 거군.”
좌소천은 두 사람의 말다툼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가슴이 아프다.
이런 분들이 있는 제천신궁과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가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곳이 제천신궁이 아니던가.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리더니 둥근 얼굴의 노인이 고개를 쏙 내밀었다.
“무슨 일인데 싸우고 있어? 어? 위지 꼬마도 있잖아?”
나이 예순일곱의 위지승정을 꼬마라 부르는 노인이다.
그런데도 위지승정은 별 불만 없이 노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인 일이십니까, 어르신?”
“나야 돌아다니기 좋아하니 그렇다 치고, 자네는 웬일인가? 무슨 일인데 저 주먹잽이 등가하고 말다툼하는 거야?”
“예전에 등 선배와 함께 가르쳤던 아이가 찾아와서 얼굴 좀 보려고 왔습니다.”
“그래?”
노인이 살짝 눈을 돌려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마치 ‘너 누구냐?’ 하고 묻는 것 같은 눈빛.
좌소천이 먼저 노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소천이라 합니다.”
노인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좌소천의 이모저모를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리다가 휘장의 구멍을 발견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거… 등가, 네가 한 짓이냐?”
등소패가 콧소리를 내며 고개를 슬쩍 쳐들었다.
“큼, 내가 무슨 힘이 남았다고 저렇게 할 수 있겠수?”
“그럼……?”
노인의 눈이 슬며시 좌소천을 향했다.
“설마 저 머리꼭대기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가……?”
등소패가 음충맞은 웃음을 흘렸다.
“우흐흐흐, 내 건곤신권을 저 아이가 익혔수다.”
위지승정이 입을 달싹거리더니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제가 쉰 넘어 깨달은 삼천화(三天和)도 익혔지요.”
고고한 성품 탓에 남이 뭔 말을 해도 그저 웃어만 넘기던 위지승정이 제자 자랑을 한다.
등소패와 노인은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위지승정을 흘겨보았다.
“위지 꼬마도 이제 늙긴 늙었군. 입이 근질거리는 걸 못 참는 걸 보면 말이야.”
“얼마 안 있으면 칠십이 됩니다, 어르신.”
“헹! 내 자식도 살아만 있으면 칠십을 벌써 넘었어.”
좌소천은 새삼스런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자식이 칠십이 넘었다면 백 살이 다 되어간다는 말이 아닌가?
얼굴을 보면 등소패와 비슷해 보인다. 아니, 등소패가 주름은 오히려 더 많았다.
저 노인은 누굴까?
좌소천이 노인을 바라보자 등소패가 깜박했다는 듯 노인을 소개했다.
“인사드려라. 이제 곧 갈 때가 다된 분이지만, 알아두어서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동천옹 어른이시다.”
동천옹?
좌소천의 담담하던 표정에 서서히 경악이 떠올랐다.
둥근 얼굴, 기다란 눈썹,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웃음. 갈 때가 다된 백 살에 가까운 나이. 그런데다 신권 등소패가 어려워할 정도다.
그런 사람이 강호에 얼마나 될까?
‘설마… 사십 년 전에 모습을 감췄다는 팔신(八神) 중에 동천자?’
정확한 별호와 이름은 동천자(東天子) 헌당.
그는 영허 진인과 동시대의 인물이었는데, 정사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워낙 성격이 괴팍한데다가 무공은 하늘조차 농락할 만큼 강해서 누구도 그와 마주치는 것을 꺼려할 정도였다.
그런 동천옹이 제천신궁에 있었다니.
제천신궁의 원로원이 복마전보다 더한 곳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막상 사실을 알고 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좌소천이 정중히 예를 취했다.
“좌소천이라 합니다, 동천자 어르신.”
빙긋이 웃는 헌당이다. 그런 헌당의 눈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신비한 안광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손에 뭘 쥐고 있나?”
“아직 쥐지도 못했습니다.”
담담하게 답하는 좌소천이다.
‘어쭈?’
헌당의 눈이 반짝였다. 개구쟁이 꼬마 같은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