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0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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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0화
100화
“알 것 없다. 예쁜 아이가 하나 있는데, 그 아이에게 주려는 거니까.”
“혼자 남아서 투덜대고 있을 시비 주려고.”
“그냥 저 늙은이가 사기에 나도 하나 샀지 뭐.”
“방에 하나 걸어놓았으면 싶어서 샀다네.”
2
와락 구겨진 서신이 손 안에서 으스러져 가루로 변했다.
“젠장!”
사공은환의 비틀린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 따위 자객 놈들을 믿은 내가 잘못이지.”
좌소천은 멀쩡히 잠강에 이어 천문에 도착한 반면, 기천승과의 연락은 두절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 소식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암살 실패!
암살이 무리임을 알고 그냥 물러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돌아오든지, 아니면 연락이라도 와야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천하제일의 살수라는 기천승의 위명을 믿고 일을 맡겼는데, 실패했다면 긁어 부스럼을 만들 꼴이 되어버렸다.
더구나 잠강 지부와 천문 지부에 심어놓았던 밀천단의 비찰 넷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얼마 전부터는 다른 지부의 비찰들도 연락이 두절되었다.
골이 지끈거렸다.
‘혹시 이놈이 내가 암살을 지시했다는 걸 알아챈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식욕도 나지 않았다.
사실이라면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궁주는 여전히 좌소천을 주머니 안의 구슬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만 자신의 생각은 궁주와 달랐다.
좌소천은 주의해야 할 자가 아니라, 싹을 미리 쳐내야 할 위험한 자였다.
문제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증거가 없이 궁주에게 놈을 쳐야 한다고 해봐야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은 뻔한 일.
하물며 자신이 허락도 받지 않고 암살을 시도했다는 것을 궁주가 안다면?
일이 잘못될 경우 모든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 써야 할 것이다.
‘당분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호북에 묶어놔야 돼. 자세한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생각을 정리한 그가 막 돌아서려 할 때였다.
전서구 한 마리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밀천단의 비찰들이 이용하는 전용 전서구였다.
사공은환은 재빨리 전서구의 다리에서 전서통을 떼어냈다.
전서통의 표식을 보니 호북에서 온 것이 분명했다.
마개를 빼고 서신을 펼친 사공은환의 눈이 깨알만 한 글자들을 향했다.
굳이 끝까지 읽을 필요도 없었다. 단 몇 줄을 읽는 사이 그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이, 이, 이 자식들이 대체 무슨 짓을……!”
[황파의 호북 총지부장 혁련무성 사망. 초특급살수에 의해 당한 것으로 보임. 사인은…….]
서신을 다 읽은 사공은환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천하에 초특급살수가 몇이나 될 것인가.
거기다 사인으로 밝혀진 얇은 검에 의한 흔적. 그 흔적의 넓이가 한 치 닷 푼이라 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은 기천승이 주무기로 쓴다는 연검에 의한 상흔이었다.
“아냐, 아닐 거야.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기천승의 짓처럼 여겨졌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미친놈! 죽이라는 놈은 죽이지 않고 엉뚱한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서성거렸다. 평소의 그라면 보일 수 없는 모습.
그러나 연이은 충격이 그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흔들자, 부동심을 자랑하는 그조차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입술을 깨물고 주위를 서성거리던 그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래,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면, 흐르는 대로…….’
사공은환이 자신의 집무실을 나와 제천전으로 향했다.
서신을 받은 지 한 시진만이었다.
사공은환은 제천전에서 반 시진을 기다린 후에야, 운공조식을 마치고 지하 연무관을 나선 혁련무천을 만날 수 있었다.
혁련무성의 죽음이 전해지자 혁련무천의 고함이 제천전을 뒤흔들었다.
“뭐야?! 무성이가 죽어? 어느 놈이 감히! 자세히 말해봐라!”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어젯밤 침실에서……. 아침에서야 시비가 발견했사온데…….”
보고를 받는 동안 혁련무천은 입을 꾹 닫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외로 그는 별다른 표정 변화도 없이 듣기만 했다. 처음의 외침이 과연 그의 입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였다.
사공은환은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한 시진마다 소식이 오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옵니다, 주군.”
그의 말이 끝난 뒤에야 혁련무천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성이가 죽은 게 확실하단 말이지?”
분노가 뭉뚱그려진 기이한 목소리였다.
“예, 주군.”
혁련무성이 사촌 아우라 하나 특별한 정이 있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막상 죽었다는 말을 듣자 마치 친형제가 죽은 것처럼 분노가 끓어올랐다.
어쩌면 그간 알게 모르게 쌓인 분노가 숨구멍을 찾아 터져 나온 것일지도 몰랐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를 대서라도 쌓인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다.
“범인에 대해선 밝혀졌느냐?”
“조사 중이니 곧 밝혀질 것이옵니다.”
“꼭 밝혀내라. 어느 놈이 감히 본좌의 아우를 죽였는지!”
“예…….”
사공은환은 좌소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목구멍 밑으로 밀어 넣었다.
분노가 극에 달한 혁련무천이다.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혁련무천도 아우의 죽음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때쯤 말을 꺼내도 충분했다.
‘내일 아침까지는 별일이 없겠지.’
3
혁련무성이 자객에게 당했다는 소문은 천리마보다 더 빠르게 호북 전체에 퍼졌다.
그리고 하루해가 지기도 전에 각 지부의 지부장들이 황파로 달려왔다.
공손양과 합류한 좌소천이 패천단을 이끌고 황파에 도착한 것은, 지부장들이 모두 도착한 직후였다.
“비켜라! 패천단의 좌소천 단주시다!”
이자광의 커다란 목소리가 만월평에 울렸다.
정문을 막고 있던 무사들은 패천단이라는 말에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그들로서는 감히 패천단의 앞을 막을 배짱도 없었고, 막을 이유도 없었다.
거침없이 만월평의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좌소천의 뒤를 패천단 삼백 무사가 따랐다.
패천단의 갑작스런 출현은 만월평을 뒤집어놓고도 충분했다.
더구나 이어진 좌소천의 일성에 만월평이 뒤흔들렸다.
“총지부장의 죽음에 대한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오늘부터 누구도 개별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한 시진 후.
만월평의 대전에 황파 총지부를 관리하는 중견 간부들과 잠강, 천문, 응성, 선도 지부의 지부장을 제외한 각 지부에서 달려온 지부장 일곱이 모였다.
그 숫자는 모두 서른여섯. 두 줄로 길게 늘어선 탁자 양편에는 그들과 패천단의 간부들이 앉아 있었다.
제일 상석에 앉은 좌소천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분간 패천단이 총지부를 관리할 것이오.”
좌소천의 입에서 선언에 가까운 말이 흘러나온 순간, 서너 사람이 벌떡 일어나더니 경쟁하듯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외다! 지부장께서 돌아가셨다고 모든 것을 패천단에 넘길 수는 없소이다!”
“그렇소! 황파 총지부는 나름대로 운영 방식이 있소이다! 이곳은 본 성에서 새로운 지부장이 올 때까지 우리가 맡아서 관리할 것이오.”
“단주, 우리를 너무 무시하는 것 아니오?”
반면에 좌소천의 생각에 동조를 하는 자들도 있었다.
“당분간이라지 않소?”
“좌 단주보다 지위가 높은 분도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자는 말인가?”
“비상시에 지위가 높은 사람이 지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던가?”
예상했던 반응.
찬반이 갈려 설전이 벌어진다.
반대하는 자들은 제천신궁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찬성하는 자들은 외부에서 유입된 고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관악과 연관된 자들은 좌소천을 지지하고, 장만학을 따르는 자들은 반대의 입장을 보였다.
그렇게 설전이 한참 벌어질 때 벽수양이 일어섰다.
“벽 모는 좌 단주의 뜻에 따르겠소.”
단순한 그의 말 한마디가 설전을 벌이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엽평이 미간을 찌푸리며 반문했다.
“벽 지부장, 경험도 없는 좌 단주가 총지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다고 보시는 거요? 총지부는 무공만 높다고 끌어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외다.”
“응성과 천문 지부를 단 이틀 만에, 그것도 피해를 최소화하며 점령한 좌 단주요. 누가 좌 단주에게 경험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이오?”
“그거야…….”
“지금은 말싸움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총지부를 안정시키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때요. 나는 좌 단주야말로 그 일에 가장 적임자라 보고 있소. 아니 그렇소?”
반대하던 사람들도 그 말에는 토를 달지 못했다.
그때 묵묵히 앉아 있던 관악이 묵직한 저음으로 좌소천의 손을 들어주었다.
“본인 역시 좌 단주가 이끄는 게 옳다고 보오. 반대하시는 분들도 어디 좌 단주보다 더 적임자라 생각하시는 분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
“허엄!”
“커음. 거 뭐, 좌 단주라면야…….”
여기저기서 나직한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바로 그 순간, 전각의 문이 부서질 듯 거세게 열리고, 반대파들의 심장에 마지막 비수를 꽂기 위한 주인공들이 등장했다.
“누구야? 어떤 놈들이 좌가 꼬마에게 지휘를 맡기지 못하겠다는 거야?”
“설마 소천이가 상급자인 걸 몰라서 그랬겠습니까? 아무래도 나이들이 있다 보니 나이 어린 소천이에게 밀리기 싫은 거겠지요.”
“아하! 나이로 하자 이건가? 그럼 나보다 나이 많은 놈 나와 봐!”
“뭘 그리 귀찮게 나오라 마라 하는 거야? 그냥 죽여 버리면 되는데.”
유령처럼 날아간 무영자가 엽평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좌가 꼬마를 우습게본 놈이 너냐?”
“그, 그게…….”
엽평은 갑작스런 상황에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나마 장만학이 정신을 차리고 소리쳐 물었다.
“당신들은 누군데 이곳에 와서 엉뚱한 소리를 하는 거요? 이곳이 어딘지나 알고 오신 거요?!”
다행히 장만학은 상대의 나이가 많다는 것, 이곳까지 들어왔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함부로 말하지는 않았다.
“저놈은 또 누구냐?”
동천옹이 장만학을 동그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장만학이라고, 제가 조금 압니다, 어르신. 저 친구는 제가 해결하지요.”
뒤쪽에 서 있던 위지승정이 점잖은 말투로 대답하고는 장만학에게 다가갔다.
상황이 괴이하게 흐르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위지승정을 바라보았다.
위지승정은 장만학을 보고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네. 십여 년 만에 보는데, 나를 기억할지 모르겠군.”
동천옹의 ‘저놈’이라는 말에 얼굴이 벌게져 있던 장만학의 표정이 기이하게 이지러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이 점점 커지더니 입이 슬쩍 벌어졌다.
“거, 검왕, 위지 선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