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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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6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97화
97화
좌소천이 떠나고 아침이 밝자 공손양도 패천단의 일부와 함께 동호장을 출발했다.
잠강과 천문 지부에서 뽑은 패천단의 숫자는 삼백여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들은 패천단 최강의 정예. 능히 패천단의 칠 할에 달하는 무력이었다.
공손양은 그들을 각 조별로 일이십 명씩 움직이도록 했다.
신경이 곤두선 관병들과 마찰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일. 불필요한 상황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나았다.
게다가 패천단의 대대적인 움직임이 알려져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그렇게 공손양이 동호장을 출발할 즈음, 좌소천은 무창이 바라다 보이는 장강가의 구산(龜山) 아래에 도착했다.
장대한 강물 저편, 사산(蛇山) 서쪽에 우뚝 솟은 황학루가 눈에 들어왔다.
강 양편으로 솟은 두 산으로 인해 근처에서는 이곳만큼 장강을 건너기 좋은 곳이 없었다. 하기에 오랜 옛날부터 이곳을 쟁탈하기 위한 싸움이 끊이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좌소천이 일행과 함께 강가의 선착장으로 가자 수십 척의 배가 늘어서서 짐을 내리고 손님을 태우며 북적였다.
도강(渡江)하는 배를 찾아 승선하자 사람들의 눈이 좌소천 일행을 향했다.
젊은 무사 셋에 노인 넷이라는 조합도 그렇고, 알게 모르게 풍기는 기운이 그들의 시선을 잡아끈 것이다.
특히 무영자는 모자를 썼는데도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었다.
좌소천은 하는 수없이 일행들과 함께 선미 구석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다. 두 손을 옷소매에 넣은 채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사람이 슬쩍 고개를 들더니,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오십대의 나이. 그자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날카로운 눈빛이 광기처럼 일렁거렸다.
그때 동천옹이 그를 힐끔 쳐다보고 중얼거렸다.
“그놈, 눈빛 한번 사납군.”
“킁, 그래 봐야 저 죽을 줄 모르고 설치다 죽을 놈이지 뭐.”
무영자마저 비꼬듯 말하자 그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거친 수염이 들썩거렸다.
뭔가 입을 열려던 그가 목에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 주고는 참았다.
일순간 좌소천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디서 본 사람 같은데……?’
머리카락으로 인해서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 속에 아스라이 남아 있는 그런 얼굴이었다.
좌소천은 기억을 더듬으며 강바람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배가 강안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하선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린 후에야 좌소천 일행도 배에서 내렸다.
한이 서린 눈빛을 지닌 중년인은 맨 마지막이 되어서야 절룩거리며 내려왔다.
배에서 내린 그는 좌소천 일행의 뒤를 스쳐 장강을 따라 올라갔다.
좌소천은 물끄러미 그의 뒤를 바라보고는 무창성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는 사람이냐?”
등소패의 질문에 좌소천이 미간을 좁혔다.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만, 언젠가 봤던 사람 같습니다.”
“뭔가 맺힌 것이 많은 자 같던데.”
광기가 일렁이던 눈빛. 그것은 한이 서린 눈빛이었다.
‘장하경도 저자와 같은 눈빛이었지.’
그랬다. 그도 저 중년인과 비슷한 눈빛으로 객잔에서 제갈세가의 고수들을 죽이기 위해 기다렸었다.
저자는 어떤 한이 있기에 저런 눈빛을 지닌 걸까?
좌소천은 미간을 좁힌 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일행과 함께 성문으로 다가갔다.
그때 한 사람이 옆에서 접근했다.
키가 커서 말라 보이는 체격. 그래서 긴 얼굴이 어울려 보이는 그는 무창으로 떠났던 삼백 무사의 수장 중 한 사람인 북궁창이었다.
그는 이 장의 거리에서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눈짓을 주고 전음으로 말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러고는 좌소천 일행을 모르는 사람처럼 스쳐 가더니, 성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성벽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북궁창이 일행을 안내한 곳은 무창 남쪽 외곽의 제법 큰 장원이었다.
대나무에 둘러싸인 장원은 잘살았던 사람의 장원인 듯 운치있게 꾸며져 있었다.
좌소천이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육부경과 수장들이 정원에 모두 나와서 맞이했다.
개중에는 처음 보는 자도 다섯이나 있었는데, 악양에서 새로 온 자들인 듯했다.
“어서 오시오, 대주.”
육부경을 비롯 잠강에서 만났던 자들이 먼저 나서서 포권을 취했다.
좌소천이 마주 인사를 받고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바라보자, 육부경이 그들을 소개했다.
수염이 호랑이처럼 까칠한 자가 칠살권(七殺拳) 조공인.
옆에서 동천옹이 ‘먹다 버린 대추’ 같다고 했더니 눈을 부라린 자가 팔상마조(八相魔爪) 염상적.
한 자루 벼린 칼처럼 생긴 턱수염을 기른 자가 귀도(鬼刀) 무등혁.
검을 등에 멘 채 석상처럼 무뚝뚝한 자가 철주검(鐵柱劍) 임자군.
각진 얼굴에 단창 두 자루를 등에 메고 있는 자가 단벽쌍창(斷壁雙槍) 황보격이었다.
그중 조공인과 염상석은 신월맹의 사람들이었고, 나머지 세 사람은 구포봉이 끌어들인 자들이었다.
특히 황보격은 선우궁현과 친분이 있는 자로 무위가 절정에 달한 고수였다.
‘구 아저씨가 얼마나 동분서주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는지 알 만하군.’
그때 몸을 돌리려던 육부경이 뒤쪽에서 어슬렁거리는 노인들 중 한 사람을 보고 몸이 굳었다.
“귀하…… 는?”
그의 눈길 끝에는 뒷짐 진 위지승정이 조용히 웃으며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검왕께서 왜 여기에……?”
그의 말이 흘러나오는 순간, 장원 안에 있던 모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검왕 위지승정!
이제 은퇴하다시피 했지만, 십 년 전만 해도 제천신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는 삼왕(三王) 중 한 사람이 바로 그다.
설마 그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경악은 시작에 불과했다.
위지승정이 옆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좌 단주는 바쁜 몸이 아닌가. 하여 세 분 어르신을 돌봐 드릴만 한 사람이 없어서 내가 모시고 왔다네.”
그러자 옆에서 세 노인이 앞 다투어 핀잔을 주었다.
“나는 아직 혼자 다녀도 끄떡없다니까? 걱정 말고 자네 걱정이나 해.”
“썩을 놈, 내가 애냐? 돌봐주게?”
“네 목이나 걱정해, 위지 꼬마야.”
“……!”
순간, 한여름인데도 찬바람이 휭 하니 불더니, 열다섯 개의 굳어버린 석상을 쓸고 지나갔다.
좌소천이 피식 웃으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들어가시지요.”
네 노인이 졸졸 그 뒤를 따라갔다.
“어? 그래. 가자구.”
“뭐 해? 가자니까. 좌 단주 가잖아.”
석상들이 그 뒤를 따라서 어정쩡하니 걸음을 옮겼다.
탁자 위에 지도가 펼쳐졌다.
구포방의 방도들이 만든 지도는 그야말로 상대의 속을 다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했다.
삼십여 개의 건물군과 장원의 형태가 완벽하게 그려진데다, 어디에 어느 정도의 경비가 있는 지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경비의 숫자가 많군요.”
“무엇 때문인지 신검장의 경비가 강화 되어서 평소보다 두 배 정도 됩니다.”
북궁창의 설명에 사람들이 지도에 눈을 고정시켰다.
육부경이 눈살을 찌푸린 채 물었다.
“원인에 대해선 알아내지 못했나?”
“자세한 건 알아내지 못했습니다만, 저희 때문에 경비가 강화된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합니다.”
무심한 눈으로 지도를 바라보던 좌소천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상관없소. 이미 수레바퀴는 굴러가기 시작한 상황이오. 오늘 밤 계획대로 신검장을 접수할 거요.”
이미 예상했던 일이기에 별다른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원하는 것은 신검장의 멸망이 아닌 합병이오. 대항하는 적은 무력화시키되, 꼭 죽여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죽이지 마시오. 단, 그들 속에 스며 있는 제천신궁의 비찰들, 그들만큼은 철저히 색출해서 제거해야 하오.”
좌소천의 눈이 구포봉을 향했다.
“그들이 누군지 알아내셨습니까?”
구포봉이 씩 웃었다.
“두 명 있더군. 골머리를 앓긴 했지만, 다행히 찾아냈다네.”
그때 한쪽에서 따로 놀고 있던 네 노인 중 무영자가 불쑥 물었다.
“이번에도 따라가려면 복면을 써야 하냐?”
동천옹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너만 쓰면 될 거야.”
“흥! 쓰려면 같이 써야지. 만일 나만 쓰라고 하면, 내가 너희들의 정체를 다 말해 버릴 것이야.”
좌소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젓고 말했다.
“복면을 쓰지 않으실 거면 이곳에 계셔야 합니다. 처음부터 우리의 정체를 드러내면, 자칫 저들이 신양으로 전서구를 날릴지 모릅니다. 그리되면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물론 나중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저들이 우리를 구포방의 무사 정도로 알아야 합니다.”
“흐흐흐! 그럼, 그럼!”
무영자의 얼굴에 어른거리던 검은 안개가 출렁였다. 무척 즐거운 듯했다.
그러나 좌소천만 조용히 웃을 뿐, 다른 사람들은 웃고 싶어도 웃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들이 누군지 알기 때문이다.
특히 동천옹과 무영자의 정체는 그들로 하여금 눈도 마주치기 힘들게 했다.
3
신검장(神劍莊).
과거 신월맹의 제일지부였으며, 신월맹이 멸망한 이후로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무창제일의 세력.
하나 십 년이 지난 지금, 그들이 신월맹의 지부였다는 것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비록 그들이 신월맹의 지부였다고는 하지만, 그전부터 그들은 무창제일의 힘을 지닌 독자 문파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신월맹이 멸망한 것에 분노를 표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월맹을 멸망시킨 제천신궁과 거래를 터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까지 한 터였다.
해시 초.
밤이 깊어지자 좌소천은 도유관과 능야산만 대동한 채 신검장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살짝 깎인 만월이 드넓은 장원을 비추었다.
저 멀리 검은 호수를 향해 치달리는 기다란 담장은 끝도 보이지 않았다.
담장 안에 들어선 신검장의 주 건물 숫자는 삼십여 채. 건물은 하나하나가 크고 웅장했다.
‘신검장만 손에 넣으면 제천신궁의 남쪽 세력은 완전히 무력화된다.’
그랬다. 그것이 바로 좌소천이 신검장을 합병시키려는 이유였다.
그런데 신검장을 향해 다가가던 좌소천의 얼굴에 의아한 표정이 떠올랐다.
신검장의 안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결코 자신들 때문이 아니었다.
간간이 들리는 비명, 고함 소리!
또 다른 누군가가 신검장을 침입한 듯했다.
“선객이 있나 봅니다, 단주.”
도유관이 눈살을 찌푸리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끄덕인 좌소천의 걸음이 빨라졌다.
많은 사람이 침입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기껏해야 한두 명이다.
‘그들 때문에 경비가 삼엄했던 건가?’
좌소천이 두 사람과 함께 정문으로 다가가자, 그들을 발견한 네 명의 위사가 굳은 표정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정지! 무슨 일로 본 장을 찾아온 것이오?”
“장주를 뵙고자 하오.”
“지금은 아무도 본 장에 들어갈 수 없소! 꼭 볼일이 있다면 내일 아침에 다시 오시오!”
네 명의 위사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강경한 목소리로 거부했다.
그때 도유관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 들어가야겠다면?”
창!
위사들이 검을 뽑더니 도유관을 가리켰다.
“다치기 전에 순순히 물러가라!”
순간이었다. 도유관의 도끼가 품에서 빠져나와 위사들의 검을 후려쳤다.
따다다당!
“흡!”
“허억!”
강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위사들이 뒤로 다급히 물러섰다.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간 도유관의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 죽이고 들어갈 수도 있어. 그러길 바라나?”
위사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의 얼굴에 망설임이 떠올랐다.
도유관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안에 기별을 넣겠소.”
그때였다. 장원 안에서 비명과 호통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으악!”
“이놈, 소광섭! 네놈이 감히……!”
순간 좌소천의 뇌리에 두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오래전 포봉객잔에서 봤던 중년인과 아침에 봤던 흐트러진 머리의 중년인.
서서히 두 사람이 하나로 합해졌다.
‘그래, 그였어! 세운산장의 소광섭! 영령의 숙부!’
그가 신검장에 들어가 소란을 피울 이유가 복수! 그것 말고 또 뭐가 있을까?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좌소천은 몸을 훌쩍 날려 정문을 그대로 타넘었다.
“머, 멈추시오!”
위사들이 대경해서 소리치는 사이 도유관과 능야산도 좌소천을 따라 정문을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