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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94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44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94화

 

94화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렇다면 좀 더 좋은 쪽으로 흐르도록 돕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전날 저녁, 네 노인이 머리를 맞대고 신중한 토론 끝에 낸 결론이었다.

 

비록 결론을 내기 위해 말을 나눈 시간은 일각에 불과하고, 멋진 결론을 냈다며 술잔을 부딪친 시간은 세 시진이 넘었지만.

 

좌우지간, 좌소천은 네 노인의 대답만으로도 이미 하늘을 얻은 기분이었다.

 

‘이제 그와의 담판만 남았군.’

 

 

 

 

 

3

 

 

 

 

 

안개가 자욱한 새벽 무렵.

 

좌소천은 직속무사 열 명만 대동한 채 사양(沙陽)으로 가기 위해 한수를 건넜다.

 

미리 마중을 나와 있던 백리도운이 좌소천과 그의 일행을 사양에서 오 리가량 떨어진 작은 장원으로 안내했다.

 

장원은 그리 크지 않았다. 건물이라고 해봐야 대여섯 채에 불과한 소규모 장원이었다.

 

정문을 통과한 좌소천 일행이 정원을 지나서 중앙의 건물로 다가가자 방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좌소천은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정말 사도진성과 닮았군.’

 

살만 조금 빠지고 수염만 없으면 영락없이 사도진성인 자가 혼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다, 철혈마제 사도철군.

 

거리가 가까워지자 사도철군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백리도운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떠올랐다.

 

일 장의 거리. 좌소천이 걸음을 멈추고 먼저 포권을 취했다.

 

“좌소천입니다.”

 

사도철군도 손을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사도철군이라 하네.”

 

그가 포권을 취한 손을 가볍게 미는 찰나, 묵직한 기운이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훗, 그래서 백리도운이 그런 표정을 지었나?’

 

좌소천도 담담한 표정으로 마주 기운을 밀어냈다.

 

후우웅!

 

사람들이 멈칫한 순간, 바람도 없는데 옅은 안개가 둥글게 구(球)를 만들더니 점점 부푼다.

 

뒤늦게 상황을 짐작한 공손양 등이 뒤로 급히 물러섰다.

 

두 사람을 둘러싼 구는 일 장 정도 커지더니 더는 커지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의 옷이 잘게 떨리며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람들의 고막을 진동시켰다.

 

절대의 경지에 달한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친다.

 

일반 사람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가공할 기운의 충돌!

 

내력이 약한 몇 사람은 뒤로 이 장 이상을 더 물러나고,

 

퍼버벅!

 

안개의 구 바로 옆에 있던 바위가 가루로 변해 주저앉는가 싶더니, 수목이 누렇게 마르며 먼지처럼 스러진다.

 

예상치 못한 격돌에 양쪽의 사람들이 모두 초조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특히 백리도운은 사정을 짐작하고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어지간히 하시지…….’

 

사실 시험만 하고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급박하게 변한 것은 순전히 오기 때문이었다. 

 

사도철군의 오기!

 

그도 처음에는 한계를 팔성까지 정해놓고 시험을 하려 했다. 그 정도면 좌소천을 누를 수 있을 거라 봤으니까.

 

하지만 공력을 팔성이나 끌어올리고도 좌소천을 누르지 못하자, 구성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옆에서 제지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막상막하!

 

사도철군은 눈을 부릅뜨고, 좌소천은 거꾸로 눈을 가늘게 좁힌 채 두 손을 내밀고 있다.

 

먼저 상황을 직시한 것은 좌소천이었다.

 

조금만 더 계속되면 두 사람 다 내상을 입을 게 분명한 상황.

 

이를 지그시 깨문 좌소천은 왼발을 천천히 뒤로 뺐다. 여차하면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물러서기 위해서다.

 

계속한다면 지지는 않을 듯했다. 그러나 자신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다. 시험은 시험으로써 끝나야 한다.

 

이겨도, 져도 좋을 게 없지만, 그보다 더 안 좋은 것은 두 사람이 심각한 부상을 입는 것이다.

 

‘성질 하나는 듣던 대로군.’

 

그런데 좌소천이 반걸음 정도 발을 뺀 순간. 가공할 역도가 해일처럼 밀려들며 그의 전신을 짓눌렀다. 

 

미처 좌소천의 뜻을 파악하지 못한 사도철군이 끝내 십성의 기운을 끌어올린 것이다.

 

‘이, 이런!’

 

터져 나갈 듯한 압력에 비명을 지르며 요동치는 혈맥!

 

포권을 취하고 있는 두 손에 툭툭 불거진 핏줄기!

 

그 모든 것들이 당장이라도 피화살을 뿜으며 터질 것 같았다.

 

‘이 양반이! 정말 끝장을 보자는 건가?’

 

좌소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약간의 손해로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혼자만 심각한 부상을 입으면 죽도 밥도 아닌 상황.

 

까짓것 하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결국 좌소천도 남겨놓았던 내력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려 사도철군의 내력에 대항했다.

 

바로 그때다. 가슴에서 원인 모를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투두두두두.

 

몸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터지는가 싶더니, 손끝 발끝을 비롯해 온몸의 구석구석에서 쾌감에 가까운 짜르르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간 전혀 움직이지 않아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세맥 깊숙이 숨은 기운들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 요동치는 혈맥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영허 진인이 죽기 직전에 세맥을 타통시키며 남겨놓은 기운이었다.

 

하나하나는 낙엽에서 떨어지는 미미한 낙숫물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만 줄기의 낙숫물이 도랑을 타고, 골짜기로 흘러들더니, 강으로 모여든다.

 

그리 오랜 시간도 필요 없었다. 

 

숨을 몇 번 쉬는 사이 낙숫물이 모여 거대한 물줄기로 변했다.

 

고오오오!

 

서서히 들끓던 혈맥이 안정을 되찾고, 창백하던 안색도 정상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 광경을 코앞에서 지켜보던 사도철군은 부릅뜬 눈을 파르르 떨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 상대는 더 할 뜻이 없어 물러서려는 듯 보였다.

 

자신도 물러서야 했지만, 그와 동시에 기운을 더 끌어올린 터라 물러서지도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놈의 자존심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기왕이면 우세를 보이고 물러서자는 알량한 자존심.

 

한계에 가깝게 끌어올린 기운으로도 애송이 하나를 누르지 못하다니! 하는 자존심 말이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밀릴 것 같던 애송이가 오히려 자신의 내력을 밀어내고 있지 않은가.

 

‘제기랄!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좀 전에 그냥 함께 물러섰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후회막심했다. 하지만 때늦은 후회였다.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이 자신의 내력을 석 자 앞까지 밀어낸 터다.

 

그때 좌소천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사도철군도 그 행동이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우둔하지는 않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사도철군이 슬쩍 손을 당겼다.

 

동시에 좌소천도 내민 손을 당기며 내력을 조금씩 회수했다.

 

반 각.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눈 지 반 각 만에 안개의 구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안개의 구가 완전히 사라짐과 동시 갑자기 강한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쓸고 지나갔다.

 

사도철군이 얼굴을 씰룩이더니, 첫인사의 말을 마저 이었다.

 

“만나서 반갑군.”

 

이름을 밝힌 지 무려 반 각 만이었다.

 

왠지 퉁명한 목소리. 

 

좌소천은 그 마음을 알기에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좀 소란스럽긴 했습니다만, 오늘의 일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단순히 사도철군과 내력을 겨루었기 때문이 아니다.

 

십성의 내력을 끌어올린 덕분에 영허 진인이 남겼던 기운의 일부를 얻었다.

 

그것도 상대가 자신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지 않았다면, 위기 본능을 느끼지 못했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거늘 어찌 오늘의 일을 잊을 것인가.

 

그제야 십 장이나 떨어져 있던 양편의 사람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한 채 두 사람 뒤로 다가왔다.

 

소란스런 인사.

 

그건 그랬다. 인사 한번 한 것치고는 엄청난 결과가 남았다.

 

두 사람을 중심으로 삼 장 안에 있던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고 가루로 변해 버렸으니까.

 

‘두 번만 인사를 나누었다가는 장원이 통째로 없어질지도 모르겠군.’

 

공손양은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저었다.

 

천하제일을 다툰다는 오제 중의 한 사람, 철혈무제와 대등한 내력 대결을 펼쳤다.

 

천하의 누가 이 사실을 믿을 것인가!

 

주먹을 움켜쥔 공손양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좌소천은 이미 하늘이 되어 있었다.

 

‘하늘 바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는 행복한 놈이다, 공손양.’

 

그뿐이 아니다.

 

도유관이나 능야산 등 패천단의 무사들뿐만이 아니라, 전마성의 사람들조차 경이의 눈빛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좌소천이 자신들의 적이 아닌 것만도 다행이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마주 않았다.

 

마주 앉은 두 사람의 눈빛은 정반대였다.

 

한 사람은 담담하고, 한 사람은 상대의 속을 다 꿰뚫어 보겠다는 듯 강렬했다.

 

강렬한 눈빛의 주인, 사도철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내 아들을 곱게 보내줘서 고마웠네.”

 

“저야말로 한 달의 기간을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원래 빚지고는 못사는 성미지.”

 

‘그걸 알기에 돌려보낸 것이라오.’

 

좌소천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뛰어난 군사를 두셨더군요. 제 속을 빤히 보는 것 같아서 뜨끔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자네에게 반한 도운이 말인가?”

 

뜻밖의 말에 백리도운이 황급히 소리 질렀다.

 

“주군!”

 

“왜? 반했다며? 사실이라며? 진성이 놈도 그렇고, 자네까지 마음이 넘어갔으니 이제 전마성을 어떻게 꾸려가야 할지 모르겠군. 크흠!”

 

좌소천은 의외의 모습을 보이는 사도철군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주 간단하게 해결될 방법이 있습니다, 성주.”

 

사도철군이 미간을 찌푸리며 좌소천을 흘겨보았다.

 

“방법이 있다고? 그것도 간단하게 해결될 방법이?”

 

“그렇습니다.”

 

“그래? 어디 한번 말해보게. 어떤 방법인지.”

 

“성주께서도 제게 마음을 주시면 됩니다.”

 

사도철군의 표정이 굳어졌다.

 

“마음을 달라? 그럼 자네는 나에게 뭘 주겠나?”

 

좌소천이 사도철군을 직시한 채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저도 제 마음을 드리지요.”

 

“훗, 나에게 자네 마음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소용이 있지요, 그것도 아주 큰 소용이. 곧 천하가 소용돌이에 휘말릴 텐데, 그때 진심으로 손을 잡아줄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아주 큰 차이가 아니겠습니까?”

 

사도철군의 굳어진 표정에 싸늘한 기운이 흘렀다.

 

“전마성이 소용돌이에 빠지면 자네가 내 손을 잡아주겠다는 건가? 훗, 우습군. 천하사패 중 하나라는 전마성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도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정말 우리 전마성이 남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로 약해졌다고 보느냐?”

 

백리도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주군.”

 

“그래? 정말 아니란 말이지?”

 

“하나, 손을 잡을 사람이 하나 정도 있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고 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난세에는 친구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친구라…….”

 

사도철군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주 단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네. 하기에 위기 속에서 손을 잡아줄 친구라면, 그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지. 물론 자네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아네만, 전마성과 함께하려면 혼자의 힘만 강하다고 되는 것은 아니거든. 묻겠네, 일개 단의 주인인 자네에게 내 친구가 될 정도의 힘이 있다고 보나?”

 

좌소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느 정도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도운의 말에 의하면, 일단 우리에게 뺏은 지부를 먼저 거둘 거라 하더군. 친구가 될 것인지는 그 일이 끝나고 나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네만.”

 

좌소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번졌다.

 

“그거라면 이미 끝난 일입니다.”

 

사도철군의 짙은 눈썹이 바늘에 찔린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백리도운도 놀란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좌소천이 강하고 패천단의 무력이 강력하다 해도 네 곳의 지부 역시 약하지 않다. 

 

설령 좌소천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천문 지부를 뺀다 해도 세 곳의 지부가 남아 있다.

 

특히 잠강 지부의 주력은 제천무제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무천단과 제천단이 아니던가.

 

하기에 한바탕 큰 싸움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직 아무런 징조도 느껴지지 않았거늘, 좌소천은 벌써 그 일이 마무리되었다 한다.

 

백리도운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좌 단주, 설마 잠강 지부까지 손에 넣었단 말이오?”

 

“열흘, 그 안에 제천신궁의 호북 세력이 모두 저를 지지하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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