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92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92화
92화
“왜 놀라나? 항상 그를 말할 때마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주군!”
생전 안 하던 사도철군의 농담에 백리도운이 빽 소리를 질렀다. 아마 그가 전마성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사도철군을 향해 지른 고함일 것이다.
“어허! 이 사람이 이제 나에게 대들기까지 하는구먼!”
“그게 아니오라…….”
“흠, 그게 아니면 뭔가? 내가 한 말이 사실이다, 그건가?”
백리도운이 쩔쩔매는 것이 재미있는지 사도철군은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자네의 취향을 알 것 같군.”
그런데 백리도운이 한숨까지 쉬며 말했다.
“후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의외의 대답. 사도철군의 눈이 슬며시 벌어졌다.
“그런 것 같다고?”
“전에는 주군께 반해서 전마성에 들어왔는데, 주군께서 계속 속하를 놀리시니 이제는 자꾸 그가 좋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사도철군의 벌어지던 눈이 멈췄다.
“거, 말로 한번 이겨보려고 했더니, 허엄!”
짐짓 눈을 흘기며 큰기침을 하는 사도철군을 백리도운이 빤히 응시했다.
“그를 절대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주군.”
“정말 그 정도의 인물이라 생각하나?”
작심한 듯 백리도운이 자신의 속마음을 다 꺼냈다.
“셋째 공자의 일이 있을 때 겪었지 않습니까? 그냥 있는 그대로 보십시오. 나이를 떠나, 마주 앉은 자리의 위치 그대로 말입니다.”
어찌 생각하면 사도철군에게 모욕이 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이제 강호에 나온 지 몇 달 되지도 않는 애송이를 산전수전 다 겪은 전마성의 주인과 같은 높이에 놓다니!
하지만 현실은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사도철군의 표정도 신중해졌다.
백리도운은 결코 헛소리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기에 전마성을 움직이는 군사의 자리에 올려놓은 것이 아니던가.
“그렇단 말이지?”
“혹시라도 주군 나름의 어떤 계획이 있으시다면, 잠시 뒤로 미뤄주셨으면 합니다.”
정곡을 찔렸는지 사도철군이 앞에 놓인 찻잔을 잡으며 딴청을 피웠다.
백리도운이 넌지시 물었다.
“있으셨지요?”
“뭐 계획이라기보다, 그냥 머리 굴릴 필요 없이 남자답게 해결하는 것도 괜찮다 생각했을 뿐이네.”
여차하면 힘으로 눌러 버리려 했다는 말.
백리도운이 또다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후우, 사실 이 말씀을 드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뭔데 그러나?”
넌지시 묻는 사도철군의 눈에 궁금함이 가득하다.
백리도운은 고개를 들고 그날, 좌소천이 한 말을 살짝 비틀어 옮겼다.
“저희가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한다면 자신도 끝장을 볼 생각이 있으니, 각오를 하고 시작하라 하더군요.”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인가?”
사실은 거기에 한두 마디가 더 붙었다.
하지만 그리 말하면 성질이 불같은 사도철군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 사도철군이 물었다.
“설마 가만두지 않겠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겠지?”
백리도운이 최대한 평정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그가 어찌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신 전마성도 문 닫아야 할 거라고 했지요.’
백리도운의 대답이 못 미더웠지만, 사도철군도 괜히 기분 나쁜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 언제 만나기로 했나? 일단 만나보고 결정하세.”
그제야 백리도운도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닷새 후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군.”
사도철군은 식은 차를 한입에 털어 넣고 눈을 반쯤 감았다.
‘대체 어떤 놈인데 셋째나 도운이나 놈을 만나고 나서 다 풀이 죽나 그래? 만일 마음에 안 들면, 내 이놈을 그냥……!’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반쯤 감은 눈으로 백리도운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자네 뜻에 따르겠네만, 한 가지만은 내 뜻대로 하겠네. 그에 대해선 막을 생각 말게나.”
백리도운은 어렴풋이 사도철군의 생각을 눈치 채고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순순히 자신의 말대로 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사도철군이 그리 나오기를 바랐을지 몰랐다.
“알겠습니다, 주군.”
4
아침이 되자 처음 보는 무사들 열 명이 잠강 지부로 찾아왔다.
그들이 어느 문파의 사람들인지는 알 것도 없었다.
“좌 공자를 찾아왔소.”
선두에 선 중년 무사에게서 그 말이 나오자, 정문을 지키던 위사들 중 수장인 오삼기는 두말하지 않고 그들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미리 그들이 찾아올 거라는 언질을 받았던 것이다.
“따라오시지요. 단주께서 기다리십니다.”
그들의 모습이 안쪽으로 사라진 것을 보고 나서야 남은 위사들이 수군댔다.
“대체 어디서 오는 자들이지? 엄청난 고수들 같은데.”
“난들 아나? 좌 단주께서 그만큼 발이 넓다는 말이겠지.”
“정말 제법인데? 나이도 얼마 안 되는데 저런 사람들을 알다니.”
“자넨 한천에서 와 잘 모르겠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좌 단주는 이거야, 이거.”
힘있는 목소리로 말을 맺는 위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정문위사들이야 단순히 그렇게 넘겼다.
하지만 소식을 듣고 전각을 나선 조용익은 그들을 보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좌 단주의 말이 허언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저자까지 오다니!’
아는 자가 그들을 이끌고 있다.
머리를 풀어헤친 자. 한때 신월맹 최강의 무력 단체 초혈단을 이끌었던 백월신마(白月神魔) 육부경이다.
오래전, 만월평의 싸움 때 미친 호랑이처럼 날뛰며 제천신궁의 무사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던 자.
주름이 몇 개 더 늘고 머리를 풀어헤쳐 언뜻 보면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당시 그와 마주쳤던 조용익으로선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그뿐이 아니다. 나머지 사람 중에서도 두엇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자신의 아래가 아닌 고수들.
‘시은형, 전만추……. 설마 신월맹의 무사들이 다시 모인 것은 아니겠지?’
“오랜만이군.”
육부경이 먼저 입을 열어 아는 척했다.
조용익도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십 년 만에 뵙는군요, 육 선배.”
“우리가 한 배를 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세상일이란 것이 참으로 우습군.”
“강호가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육부경의 입술이 슬쩍 말렸다. 쓴웃음이었다.
“하긴……. 좌 공자는 안에 계신가?”
“따라오시지요.”
대전 안에는 좌소천과 직속무사들, 패천단 오대의 대주들, 황창안과 무천단, 제천단의 대주들이 맨 앞의 좌석 열 개를 비워놓은 채 각자의 의자 앞에 서 있었다.
좌소천은 상석이 있는 자리 옆에 서서 들어선 자들을 뒷짐 진 채 맞이했다.
머리를 풀어헤친 자가 선두에 서 있다.
‘저자가 백월신마 육부경이란 자군.’
새벽녘, 장하경이 먼저 도착해서 구포방에 모인 군웅들의 수뇌에 대한 것을 말해주었다.
구포방에 모인 무사는 거의 칠백에 달했다.
신월맹의 무사였던 자들이 삼백여 명. 선우궁현과 친분이 있어 온 자들과 그들이 끌어들인 자들이 백여 명. 그리고 구포봉이 구포방의 이름으로 끌어들인 자들이 이백여 명이었다.
그들 중 일차로 삼백 명 정도가 열 명의 지휘 아래 악양을 떠나왔다.
육부경은 수뇌 중에서도 신월맹을 대표하는 두 사람 중 하나였으며, 신월맹 무사들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일 장 앞에 선 육부경이 천천히 손을 들어 포권을 취했다.
“육부경이라 하오.”
“좌소천입니다.”
좌소천이 뒷짐을 풀고 포권을 취하자, 육부경의 옆에 있던 사십대 후반의 중년인도 포권을 취했다.
“시은형이라 하오.”
“좌소천입니다.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인사를 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그중에는 호남의 고수 풍양객 양화천도 있었다.
그는 장사 근처에 거주하는 자였는데, 만패철검 선우궁현과 매우 가까운 사이의 절정고수였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좌소천이 상석으로 몸을 돌리며 손으로 자리를 가리켰다. 그때 시은형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전에 한 가지 청이 있소.”
고개를 돌린 좌소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미 그가 무슨 청을 할지 알고 있는 터였다.
“말씀하시지요.”
“한 사람의 무사로서 좌 공자의 실력을 알고 싶소. 신유 좌 군사의 충정에 반해서 함께하기로 하기는 했소만, 우리는 당최 머리로만 싸우는 건 질색이라서 말이오.”
그 말에 도유관이 나섰다.
“그거라면 굳이 좌 단주께서 나설 필요도 없소. 나와 한번 해봅시다.”
시은형의 미간에 두 줄기 주름이 깊게 파였다.
“그대가? 나는 이름없는 사람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은데?”
“도유관이라 하오. 강호의 친구들은 혈심부라 불러주고 있소. 나를 이기면 아마 단주께서도 청을 받아줄 것이오.”
시은형의 표정이 그제야 굳어졌다.
혈심부 도유관. 그도 그 이름을 들어본 것이다.
그는 도유관을 노려보고는 좌소천에게 눈을 돌렸다.
좌소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유관의 말대로 하겠다는 뜻이었다.
“좋네. 그런데 여기서 할 건가?”
시은형이 대전을 둘러보며 응낙하자, 도유관이 얇은 입술을 말아 올렸다.
“밖으로 나갑시다. 이 뒤쪽에 괜찮은 곳이 있으니까.”
두 사람이 밖으로 나가자 좌소천이 다시 걸음을 옮겨 의자에 앉았다.
그의 좌우로 공손양과 능야산이 시립하자 육부경을 비롯한 나머지 수뇌들도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치 도유관과 시은형의 대결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그사이 시비가 와서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달그락, 달그락.
조용한 가운데 찻잔을 들었다 놨다 하는 소리만 들렸다.
도유관과 시은형이 들어온 것은 반 각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두 사람은 여기저기 옷이 찢겨진 상태였는데, 찢겨진 옷자락 사이로는 간간이 선혈마저 보였다.
그래도 큰 상처는 없는 듯 걸어 들어오는 모습에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도유관은 전과 다름없이 차가운 표정인 반면 시은형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시은형이 육부경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순간 육부경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때 시은형이 좌소천에게 물었다.
“일초에 혈심부를 꺾었다 들었소. 정말이오?”
좌소천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도 형과는 겨뤄본 적이 없소. 그냥 가볍게 손만 한 번 나눠봤을 뿐이지. 그러니 믿지 마시오.”
그러자 도유관이 입을 열었다.
“한 번이면 족하지요. 상대가 도끼로 찍어 넘어갈 사람인지, 아닌지 정도는 저도 판단할 줄 압니다, 단주. 솔직히 단주가 저를 죽일 작정을 하면, 제가 일초도 막아낼 수 없는 건 분명한 사실 아닙니까?”
서로가 아니라고 하는 두 사람이다.
육부경은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시은형이 좌소천의 호위무사인 도유관에게 졌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반 각 만에.
‘으음, 어쩔 수 없나?’
그때였다.
공손양이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께서 이 자리에 왔을 때는 좌 공자님을 모시고 천하를 도모하겠다는 마음으로 오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공손양의 시선이 좌중을 쓸어보았다.
밖에서 부는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대전 안이 고요해졌다.
시선이 멈춤과 동시 그의 입에서 좀 더 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의 명예를 걸고! 좌 단주님께 충의(忠義)를 맹세해 주십시오!”
육부경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마침내 올 것이 왔다.
그러나 여기까지 온 마당이다. 게다가 시은형을 내세운 시험조차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
이왕지사 하기로 한 것. 육부경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육부경, 좌 공자께 충(忠)과 의(義)를 바칠 것을 맹세하오이다!”
육부경의 외침이 대전을 울리자 나머지 아홉 사람도 일제히 일어났다.
돌아서기에 늦었음을 모두가 아는 까닭이다.
“시은형, 좌 공자께 충의를 맹세하오이다!”
“장사의 양화천, 좌 공자께 충의를 맹세하오이다!”
“전만추가 좌 공자께 충의를 바쳐……!”
“용수강이 좌 공자께 충의를 바칠 것을……!”
“소리승문이 좌 공자께 충과 의를 바치리다!”
“차조양이 좌 공자께……!”
“연자호가 좌 공자께……!”
“낙소교가 좌 공자께…….”
“북궁창이 좌 공자께 충의를 바칠 것을 맹세하오이다!”
충! 충!! 충!!!
열 사람이 충의의 맹약을 한다!
마지막으로 나이가 가장 적은 북궁창의 맹세가 끝난 순간! 뜨거운 열기가 대전을 회오리처럼 맴돌았다.
태풍의 전조였다!
마침내 천하를 향한 일보가 본격적으로 내딛어진 것이다!
좌소천도 포권을 취해 답례를 했다.
“고맙소! 우리 함께 새로운 하늘을 열어봅시다!”
그러고는 반쯤 허리를 숙인 사람들을 향해서 양손을 뻗었다.
부드러운 기운이 밀려가는가 싶더니, 앞에서부터 육부경을 시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허리가 펴졌다.
심지어 삼 장여 떨어져 있던 북궁창마저 허리를 펴고 두 눈을 파르르 떨었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