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8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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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89화
89화
나머지 다섯 쌍의 눈이 흠칫하며 검은 눈동자의 주인을 응시했다.
검은 눈동자의 주인, 기천승이 미간을 찌푸린다.
처음 보는 모습. 다섯 쌍의 눈이 잘게 떨렸다.
“그렇게 강한 자입니까?”
“그걸 나도 정확히 모르겠다. 그래서 더 어려운 자야.”
어쨌든 잠강 지부로 들어가면 기회가 더 없어진다.
‘그전에 해치워야 돼.’
자신에게 일을 맡긴 사람은 기회가 나지 않으면 그냥 돌아오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귀영문의 재건이 걸린 일이다.
귀영천살의 자존심도 걸려 있고.
‘항상 함께 다니지는 않겠지. 저자도 사람인 이상 볼일은 봐야 할 테니까.’
5
하루가 지났다.
기천승은 좌소천을 쫓으며 그가 혼자 되기만을 기다렸다. 하다못해 서너 명으로 줄어들기만 해도 아쉬운 대로 기회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한천 지부를 지난 좌소천 일행이 분수(分水)에서 배를 타고 한수를 건너려 하자, 기천승도 아우들과 함께 같은 배를 탔다.
조금 위험했지만, 목표인 좌소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더구나 자신들은 평범한 상인, 농부, 떠돌이 낭인. 모두가 가지각색의 신분으로 완벽히 분장을 하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분장이 아니기에, 분장한 신분에 대한 것을 철저히 익혔기에, 누군가가 수상히 여기고 묻는다 해도 진짜 상인이나 농부로 알 것이었다.
‘접근해서 해치울까?’
기천승의 눈 깊은 곳에서 칼날 같은 섬광이 번뜩였다.
삼 장의 거리. 한 번 도약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그가 있었다.
자신은 선미, 좌소천은 선수에.
그 사이에 호위무사 십여 명이 끼어 있었다. 한 배에 모두가 탈 수 없어 나머지는 다음 배를 타고 건너려는 듯했다.
일반 손님처럼 접근한다면 적어도 일 장 거리까지는 접근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 장 안에서 자신의 급습을 피할 수 있는 자가 천하에 몇이나 될 것인가.
다섯? 열? 아무리 많아도 스물은 넘지 않았다.
그리고 목표는 그 스물에 들지 못하는 자였다. 자신의 판단으로는.
기천승은 선미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때 좌소천이 고개를 돌리더니 주위를 살펴보았다.
찰나간 스치고 지나가는 눈빛.
기천승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돌려서 강물을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지금 눈을 돌리다니.’
배에서 내린 좌소천은 나머지 인원이 건너올 때까지 마을의 객잔에서 식사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이 모두 건너오려면 한 시진은 더 지나야 했다. 더구나 그들에게 식사를 하고 오라 했으니, 자신들도 그들이 오기 전에 식사를 하는 것이 나을 듯했다.
좌소천은 먼저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자 생각할 것도 있고 해서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소.”
직속무사들이 함께 일어서려 하자 좌소천이 손을 저어 말렸다.
“마저 식사를 하시오.”
그러고는 엉거주춤 일어선 그들을 다시 앉히고는 객잔을 벗어났다.
객잔은 강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좌소천은 자갈이 깔린 강가를 거닐었다.
때로는 강을 바라보고, 때로는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그는 누가 봐도 한가로움을 즐기는 삼류무인 정도로 보였다.
그렇게 오십여 장을 걷던 그는 송림이 우거진 곳이 나타나자 발길을 그곳으로 돌렸다. 마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서 그늘로 들어가는 사람처럼.
그의 입술이 미미하게 비틀렸다.
‘손님을 맞이하기는 적당한 곳이군.’
강렬한 유혹!
기천승은 그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떨쳐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지를 못했다. 아니, 떨칠 수가 없었다.
사실 객잔에서 기회를 노려보려고 했다. 사람이 많은 곳일수록 기회가 더 많이 오는 법이니까.
그런데 교묘하게도, 목표는 기회를 포착할 때마다 털끝만큼 움직여서 기회를 무산시켰다.
그렇게 두 번의 기회가 지나가자, 그는 결국 객잔에서의 공격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러던 차에 목표가 객잔을 나선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선도 지부까지 칠십여 리. 잠강으로 바로 간다고 해도 이백 리 길이다. 밤이 되기 전에 도착한다는 말.
어쩌면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몰랐다. 잠강 지부에 도착한 후 또 기회가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날 거라고는 볼 수 없었다.
송림을 헤치고 십여 장을 들어가자, 그리 넓지는 않아도 자잘한 나무가 없이 초지가 펼쳐진 곳이 보였다.
좌소천은 초지의 가장자리에 있는 바위에 걸터앉았다.
반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은 마치 명상에 든 듯 고요했다.
바위와 하나가 된 듯 앉아 있는 그의 주위로 새들이 날아들었다.
지나가던 독사 한 마리가 그의 발에 머리를 부비고 발등을 타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초지에서 먹이를 찾던 새가 머리를 들고 푸드득 날아가고, 발등을 타넘던 독사가 머리를 꼿꼿이 들었다.
동시에 갑자기 바람이 불었다.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실바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실바람에 미미한, 비록 독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보다 더 미미한 기운일지라도, 살기가 섞여 있는 이상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다섯… 아니, 하나가 더 있군.’
하나는 그조차 바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무런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가 대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좋군, 아주 대단해!’
그가 내심 감탄을 하는 사이 독사가 슬금슬금 기어서 풀숲으로 몸을 감췄다.
그와 동시, 불어오던 바람이 조금 강해졌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는 듯 냉정하고 철저한 합공.
사방이 막히고 하늘이 막혔다.
일격필살의 기세!
천천히 일어선 좌소천의 우수가 옆구리의 무진을 잡은 것도 그때였다.
딸깍.
스스스스!
쉬이익!
거의 동시였다.
바람이 좌소천을 덮치고, 좌소천의 무진도가 바람을 갈랐다.
좌소천의 몸에서 다섯 줄기의 빛이 뿜어지는 것 같았다.
두 번의 기회를 주기에는 남은 한 사람이 너무 강했다.
최대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자신을 내보이는 한이 있어도!
암절단광과 절공참이 펼쳐진 순간!
다섯 줄기의 바람이 일시지간에 갈라졌다.
쩌저적! 따다당!
“흡!”
“허억!”
뒤따라 미약한 신음이 짧게 흘러나오며 초록의 대지에 피가 뿌려졌다.
그런데도 좌소천은 눈을 반개한 채 앞만 바라보았다.
우르릉!
다섯 줄기 바람과 함께 잘린 소나무들이 천천히 뒤로 밀려 쓰러졌다.
찰나!
하늘에서 소리 없는 벼락이 내리꽂혔다.
좌소천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듯 천천히 무진도를 들어 올렸다.
무진도의 도첨에서 밝은 묵빛 기운이 쑥 뻗쳤다.
무당산의 절벽에서 얻은 두 번째 무공, 무애일광(无涯一匡)이 펼쳐진 것이다!
쩌저저적!
벼락이 다섯 자 위에서 터져 나간다.
쿠웅!
뒤늦게 천둥이 쳤다.
일수유의 순간, 이번에는 무진도에서 한줄기 시커먼 벼락이 하늘로 솟구쳤다.
무진칠도 중의 일식, 뇌공참(雷空斬)이다!
쾅!
조금 더 큰 천둥소리가 들리고, 좌소천의 발이 두 치가량 땅을 파고들었다.
후두둑!
핏방울이 떨어지는가 싶더니, 삼 장 앞에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내려섰다.
상인의 복장을 한 중년인, 기천승이었다.
그는 내려선 후로도 서너 걸음을 더 물러서고는,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 바로잡고 핏물이 흥건한 입을 벌렸다.
“가, 가공할……. 어떻게 이런 도가……?”
한마디 한마디마다 피가 뚝뚝 떨어진다.
좌소천은 그런 기천승을 직시한 채 나직이 물었다.
“누가 보냈소? 천외천가? 아니면… 사공은환?”
기천승의 눈빛이 번갯불 번쩍이는 순간보다 짧게 흔들렸다.
평소라면 절대 흔들리지 않았을 그다. 그러나 심적 타격을 입은 그는 평소와 같은 부동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역시 그랬나? 하긴, 예상은 했었지. 그가 말로는 잘해보자고 했지만,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사공은환의 수하치고는 참 대단했소. 하마터면 내가 당할 뻔했으니 말이오.”
쩡그렁.
그때 기천승이 손에 들린 연검을 떨구었다.
폭이 좁고 얇은 연검은 검신만 석 자 정도 되어 보였다.
검을 떨군 기천승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십팔 년 만에 청부를 실패했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만 너무 빨랐어. 한 가지만 말하자면… 사공은환은 내 상관이 아니다. 단순히 거래를 했을 뿐.”
순간 좌소천의 눈이 반짝였다.
‘사공은환의 수하가 아니라고?’
고개를 든 기천승이 눈을 감았다.
“염치없는 부탁이다만, 깨끗이 죽여주었으면 좋겠군.”
“내가 죽이지 않겠다면?”
천천히 눈을 뜬 기천승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다.
“나를 얼마나 더 참혹하게 해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청부를 실패한 살수는 죽은 자와 같다고 하더구려. 그 말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오. 그런데 나더러 또 누굴 죽이란 말이오?”
“지금 말장난하자는 것인가?”
잇새로 분노를 씹어뱉은 기천승이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그는 좌소천이 무진도를 도집에 집어넣자 허리를 숙여 연검을 집어 들었다.
“내가 자결하기를 바란다면 하는 수 없지. 내 비록 자객에 불과하지만 기왕이면 나를 이긴 적에게 죽기를 바랐거늘.”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 목숨 나나 주시오.”
“나를 모욕할 생각인가?”
기천승의 눈에서 불길이 일었다.
좌소천은 그런 기천승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하늘이 되고자 하오. 하기에 사람이 필요한데 좋은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가 않소.”
“…….”
“만일 당신이 당신의 목숨을 나에게 준다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겠소. 어떻소?”
기천승의 눈에서 일던 불길이 흔들렸다.
하늘이 되겠다고?
그 말에 목이 콱 막혀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싫으면 어쩔 수 없지요.”
좌소천은 자결하는 걸 더는 말리지 않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기천승은 분노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었다.
자신 앞에서 등을 보이다니.
하긴 천하의 귀영천살에게 죽일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는 자가 아닌가?
입술을 질끈 깨문 기천승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후회할 텐데?”
“후회는 벌써부터 하고 있었소. 저기 있는 세 사람에게도 같은 말을 할 생각을 하니 괜히 살려두었다는 생각이 들지 뭐요.”
기천승의 눈이 천천히 구석을 향했다.
소나무가 넘어간 곳, 그곳에 귀영문의 제자이자 자신의 의동생인 세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그런데 미약하게나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었소. 너무 탁 트인 곳에서 달려드는 바람에…….”
세 사람이 그나마 목숨을 건진 것은 다름 아닌 소나무 때문이었다. 허벅지보다 더 굵은 소나무가 몇 그루나 잘린 만큼 그들에게 가해질 충격이 덜어진 것이다.
비록 당장 움직이지는 못할 테지만,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만일 생각이 있다면, 몸을 추슬러서 찾아오시오. 아니면 여기서 단체로 자결을 하든지.”
좌소천은 그 말만 남기고 객잔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아 있는 기천승이 자결을 하든지 말든지,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는 좌소천의 눈가에는 가느다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쉬움이 가득 남아 있는 눈빛이었어. 뭔가 목표가 남아 있는 사람은 쉽게 죽지 못하는 법이지.’
하늘을 올려다봤다. 솔잎 사이로 황금빛 화살이 쏟아진다.
“흠, 오늘 날씨가 좋군. 비가 올지 모르겠어.”
오래전 선우궁현도 이런 날씨에 비가 올지 모른다고 했다.
비는커녕 하루 종일 해만 쨍쨍 떴지만.
그래도 그날은 기분이 매우 좋았었다. 오늘도 그랬다.
좌소천이 송림 속으로 들어가 사라지자, 이를 지그시 악문 기천승은 한숨을 푹 쉬고 의동생들에게 다가갔다.
‘그래, 본 문의 재건을 이대로 포기할 순 없어. 한 번 더 기회를 준다고 했으니, 철저히 준비해서…….’
그런데 과연 죽일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었다.
그때 문득 좌소천의 마지막 말이 떠올랐다.
‘뭐? 오늘 같은 날 비가 올 것 같다고?’
힐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자신이 아는 한 이런 날은 절대 비가 오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날씨에 대한 감각이 무딘 자일지도 모른다. 그 점을 잘 이용하면 기회가 생길지도…….’
그는 급히 소나무를 치웠다.
의동생들의 눈에는 전에 없던 공포가 서려 있었다.
“너무 의기소침해 할 것 없다. 아직 한 번의 기회가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