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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83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51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절대천왕 83화

 

83화

 

 

 

 

 

 

<진인께 받은 도법이 하나 있는데, 그때 얻은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정한궁의 수뇌로 보이는 노파가 그 도법을 알아보며 진인의 이름을 입에 올렸습니다.>

 

현오자의 표정이 바위처럼 굳어졌다.

 

영허 진인이 먼저 잘못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하나가 죽으나 백이 죽으나, 한이 심어지는 것은 마찬가지. 한을 가진 상대에게 그 숫자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일이다.

 

무당이 제자들의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나, 정한궁의 노파가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나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러나 분명, 위에 그 사실을 전해도 복수를 단념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무당의 제자가 수백이나 당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현오자의 굳은 표정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허어, 이거 참…….”

 

좌소천은 현오자의 갈등을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현오자의 입이 다시 열렸다.

 

“나와 함께 자소궁에 가보지 않겠느냐?”

 

좌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가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무당과 인연이 있다고는 하나, 오늘 일에 대해선 어차피 한마디도 나설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너는 외인이 아니다. 사백과 관계된 일도 그렇고…….”

 

“제가 끼면 일이 더 복잡해집니다. 무당의 일은 무당의 제자들만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으음…….”

 

현오자라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다.

 

좌소천이 끼어들면 소란이 생길지 모른다. 

 

어쩌면 좌소천을 좋지 않게 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 그리되면 가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럼 그냥 갈 것이냐?”

 

“아닙니다. 부상당한 사람들 좀 도와주고, 하루 정도 상황을 더 살핀 다음에 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상황을 봐서 장문인이라도 만나 뵙고 가거라.”

 

“예, 그러잖아도 그럴 생각입니다.”

 

 

 

 

 

 

 

 

 

 

자소궁에 무당의 장로들이 모두 모였다.

 

추적대를 조직해서 정한궁을 쫓아야 한다는 의견. 

 

아니다, 사상자가 너무 많은 만큼 시간을 두고 차분히 행동하자는 의견.

 

격론이 오가며 두 가지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그들 중 누구도 복수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결국 밤이 늦도록 결정이 나지 않자, 결정은 다음날로 미루어졌다.

 

밤이 깊어진 해시 무렵, 좌소천은 정은과 함께 현고자의 거처를 찾아갔다.

 

자소궁을 지키던 제자가 제지했지만, 함께 간 정은으로 인해 무사통과됐다.

 

안으로 들어가자 현고자가 조용히 웃으며 반겼다.

 

창백한 그의 안색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좌소천이 고개를 숙이자 현고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어쩌겠느냐, 본 파의 운명이 이러한 것을. 그나마 늦게라도 와서 도와준 것만 해도 고맙지. 그건 그렇고… 현오에게서 영허 사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만, 좀 더 자세히 알고 싶구나.”

 

“저도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현오 도장님께 말씀드린 것이 전부지요.”

 

“흐음…….”

 

좌소천이 현고자의 맑은 눈을 바라보았다.

 

“어찌할 생각이신지요?”

 

“지금으로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구나.”

 

“그럼 한 가지만 유의하시고 움직여 주십시오.”

 

현고자의 눈에 의혹이 어렸다.

 

“무엇을 말이더냐?”

 

“만일 섬서 쪽으로 멀리 가실 때에는 최대한 조심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할 이유가 있더냐?”

 

“천외천가 때문입니다.”

 

좌소천이 제천신궁과 천외천가 사이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자 현고자의 눈에서 왠지 모를 기광이 흘러나왔다.

 

“천외천가가 움직일 거라 생각한단 말이지?”

 

“그럴 것이 아니라면, 오랜 세월 태백산에 웅크리고 있던 그들이 제천신궁과 비밀스럽게 협상을 진행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구나.”

 

한 가닥 침음성을 흘린 현고자는 심유한 눈으로 좌소천을 응시했다.

 

잠시 그렇게 바라보던 현고자가 조심스럽게 이름 하나를 꺼냈다.

 

“혹시 천해라는 곳에 대해 들어보았느냐?”

 

 

 

 

 

 

 

5장 이십사 년을 쫓기면서 살아온 사나이

 

 

 

 

 

1

 

 

 

이틀 후.

 

무당을 떠난 좌소천은 석양이 질 무렵 의성에서 한수를 건너 방양으로 들어갔다. 의성 한가장의 혈겁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무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은 낭인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다.

 

겁을 먹은 근처의 장원이 무사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낭인들이 몰려온 듯했다.

 

좌소천은 강호의 흐름에 대해서도 들을 겸 무사들이 많이 몰리는 큰 객잔을 찾기 위해 성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길게 뚫린 대로를 건너 객잔으로 가는데 갑자기 길 저쪽에서 말 몇 마리가 달려왔다.

 

사람들이 급급히 물러서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대로에서 말을 달리다니, 미친놈들!”

 

“힘깨나 있는 집안 놈들이겠지 뭐.”

 

좌소천도 객잔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달려오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쫙 갈라지더니 네 마리의 말이 곧장 그의 앞으로 달려온다.

 

좌소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그들을 바라볼 때다.

 

히히히힝!

 

말들이 좌소천의 이 장 앞에서 급히 멈추며 앞발을 치켜들었다.

 

먼지가 훅 하니 좌소천을 덮쳤다.

 

동시에 마상에서 낭랑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워워! 어때? 제 시간에 도착했지?”

 

“하하하하! 별수 없이 오늘 식사는 내가 책임져야겠군.”

 

“그야 당연히 위 형이 책임져야지. 상 형이 동생을 데려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나?”

 

“그게 그렇게 되나? 하하하!”

 

세 필의 말에서 내린 사람은 모두 이십대 중반의 청년들이었다.

 

깨끗한 옷차림. 고급스런 장식이 주렁주렁 매달린 검.

 

행세깨나 한다는 무가의 자제들인 듯했다. 검에 사람의 피를 묻혀보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분에서 곱게 자란 태가 역력한 자들.

 

좌소천이 그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릴 즈음, 조금 늦게 도착한 말에서 여인이 내렸다.

 

동백이 핀 것처럼 붉은 경장을 한 그녀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청의를 입은 청년을 흘겨보았다.

 

“오빠! 이게 뭐예요? 옷에 먼지만 잔뜩 묻었잖아요!”

 

사람들이야 다치든 말든 자신의 옷에 묻은 먼지가 더 걱정된다는 투다.

 

그런데도 청의를 입은 청년은 어깨를 으쓱하며 피식 웃었다.

 

“털면 되지 무슨 걱정이냐? 들어가자.”

 

그때 점소이가 재빨리 뛰어나와서 말고삐를 건네받았다.

 

“이리 줍쇼, 공자님들. 제가 마구간으로 잘 모시겠습니다.”

 

손을 탁탁 턴 청의청년은 객잔으로 몸을 돌리려다 말고 멈칫했다.

 

그는 자신들을 빤히 바라보는 좌소천의 위아래를 훑어보더니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놀랐나 보군. 너무 겁먹지 않아도 되었는데 말이야. 내가 말은 좀 다룰 줄 알거든.”

 

안으로 들어가려던 홍의여인이 그를 불렀다.

 

“뭐 해, 오빠? 나 배고프단 말이야.”

 

“아, 이 사람이 좀 놀란 것 같아서.”

 

“상관하지 말고 빨리 와. 그런 자들 상대해 봐야 더럽게 손만 내민단 말이야.”

 

“알았다.”

 

청의청년은 홍의여인의 성화에 못 이긴 척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요즘은 개나 소나 칼을 차고 다니는가 보군. 아무리 낭인이라도 그렇지, 옷 사 입을 돈도 없나?”

 

좌소천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그들이 그렇게 볼만한 행색이었다.

 

신녀와의 격전으로 인해서 여기저기 찢겨진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데다가, 머리도 옷자락을 찢어 대충 묶은 터였다.

 

자신이 봐도 삼류낭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훗, 이거 꼴이 말이 아니군.’

 

좌소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객잔으로 들어갔다.

 

 

 

객잔 안은 거의 모든 탁자가 손님으로 차 있었다.

 

좌소천이 둘러보며 빈자리를 찾자 점소이가 재빨리 다가왔다.

 

“합석이라도 하시겠습니까, 손님?”

 

구석진 곳에 빈 탁자가 두 곳 있었는데, 행여나 돈도 없어 보이는 좌소천이 혼자서 그 자리를 차지할까 봐 미리 선수를 친 것이었다.

 

좌소천도 점소이의 뜻을 알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점소이의 짜증난 얼굴을 보느니 그게 나았다.

 

그런데 점소이를 따라간 곳이 하필 객잔 앞에서 만난 밥맛없는 자들의 옆자리였다.

 

하지만 좌소천은 마다하지 않고 점소이가 안내해 준 자리에 앉았다. 

 

밥맛없는 자들을 무시해도 좋을 만큼, 합석할 곳에 먼저 앉아 있는 흑의장한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서른 중반 정도. 그는 자신만큼이나 행색이 허름했다. 그러나 좌소천의 눈길을 끈 것은 그의 행색이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싸구려 화주와 야채볶음이 놓여 있었는데, 술을 마시는 거나 안주를 먹는 모습이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음식을 먹는 것처럼 경건해 보일 정도였다.

 

마치 오늘이 아니면 절대 못 먹을 것처럼.

 

그것만으로도 좌소천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족했다.

 

좌소천이 자리에 앉자 기다렸다는 듯 점소이가 물었다.

 

“뭘 시키시겠습니까, 손님?”

 

“야채와 돼지고기를 볶은 게 있으면 그걸 주게. 술은 백주로 주고.”

 

좌소천이 음식을 주문하고 고개를 돌리자 마주 앉아 있던 흑의장한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고요히 가라앉은 그의 눈빛에선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는 깊은 눈빛이었다.

 

‘좋군. 뜻밖인데?’

 

한데 장한도 좌소천에게서 뭔가를 느꼈는지, 술잔을 내려놓고 좌소천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때 옆에서 밥맛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싸구려 낭인들 주제에 무게 잡기는.”

 

“위 형, 너무 그러지 말게.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면 신경이 곤두설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이 동료들을 말렸다. 그나마 모두가 밥맛없는 성격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좌소천과 흑의장한은 그들의 말을 들은 척도 않고 서로만 바라보았다. 어디서 똥개가 짖나 하는 태연한 표정으로.

 

무시당했다 생각했는지 조금 전의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칼만 차면 자신들이 다 무인인 줄 아나?”

 

“거참, 위 형 성격도…….”

 

그때 흑의장한이 좌소천에게 잔을 내밀었다.

 

“한잔 하겠나?”

 

좌소천이 잔을 받자 흑의장한이 술을 따랐다.

 

좌소천은 술을 단숨에 마시고 잔을 내밀었다.

 

술잔에 술이 가득 차자 이번에는 장한이 단숨에 술을 마셨다.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상한가?”

 

좌소천은 대답 대신 내민 잔을 받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분이 조금 좋아졌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답답했는데.”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좌소천은 상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고독감에 젖어 있던 자다. 그 고독감이 어디서 나온 것이든.

 

그런데 어느새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고독감이 덜어져 있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자신으로 인해서라는 것이다.

 

“저도 오랜만에 기분이 좋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물이 묻은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자신의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흑의장한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행이군. 한 잔 더 받게.”

 

그렇게 다시 한 잔의 술이 오가는 동안 점소이가 좌소천의 음식을 가져왔다.

 

좌소천의 음식이 먼저 나온 것이 기분 나쁜지 또 퉁명스런 목소리가 들렸다.

 

“이봐! 우리가 먼저 시켰는데 왜 저자 것이 먼저 나오는 거냐? 장사하기 싫은 거야?”

 

“아닙니다, 공자! 공자님들의 음식은 고급 음식이라 시간이 조금 걸릴 뿐입니다요.”

 

“흠, 그래? 하긴 맛을 제대로 내야 할 텐데, 싸구려 음식처럼 바로 나올 리가 없지.”

 

말끝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다. 좌소천은 그래도 그들을 무시하고서 담담히 흑의장한의 잔에 술을 따랐다.

 

계속적인 무시에 흥을 잃었는지, 옆자리의 청년도 더는 시비를 걸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객잔 한쪽이 떠들썩해지는가 싶더니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이어 비명이 터졌다.

 

째쟁! 창!

 

“으악!”

 

“이놈! 크억!”

 

사람들이 음식을 먹다 말고 주섬주섬 일어서더니 급히 계산을 하고는 슬금슬금 밖으로 나갔다.

 

꽉 찼던 객잔의 손님이 순식간에 반수 가까이나 빠져나가자, 그제야 어렴풋이 객잔 안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진 곳에 사람이 죽어 있었다.

 

죽은 사람은 모두 두 명.

 

그들을 죽인 자도 둘이었다.

 

하나는 눈이 하나 없는 애꾸였고, 다른 하나는 얼굴에 기다란 칼자국이 난 자였다.

 

애꾸가 자신들에게 죽은 자의 피가 묻은 칼을 혀로 핥더니 냉랭히 코웃음 쳤다.

 

“흥! 건방진 놈. 계집에게 말 좀 걸었다고 검을 빼? 계집에게 술 좀 따르라는 게 뭐 어때서?”

 

“클클. 그 계집, 벗겨놓으면 더 예쁘겠는데?”

 

“어때, 내가 먼저 방으로 데려갈까?”

 

“좋을 대로 하게나.”

 

두 사람 앞에는 여인 하나가 바들바들 떨며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에 길게 칼자국이 나 있는 자가 자신의 칼로 여인의 턱을 들어 올리더니 씨익 웃었다.

 

“말만 잘 들으면 살려줄 테니 너무 겁먹지 마라, 이쁜아.”

 

바로 그때.

 

“그게 무슨 짓이냐!”

 

옆자리에 앉아 있던 밥맛없던 자들 중 황의청년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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