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8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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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82화
82화
듣는 것만으로도 귓가에 서리가 낄 것 같은 음성이 들리더니, 온몸을 얼려 버릴 것 같은 한기가 밀려왔다.
신녀! 마침내 그녀가 직접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좌소천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무진도를 휘돌렸다.
고오오오! 쿠구궁!
주위의 나무에 서리가 낀다.
겹겹이 밀려오는 가공할 한기에 대기가 얼어붙어 쩍쩍 갈라진다.
무진도에 의해 그물처럼 갈라진 기운이 사방으로 뻗치자, 나무와 바위들이 터지고, 부서지며 무너져 내린다.
좌소천은 그 충격에 뒤로 다섯 걸음을 물러섰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무진도를 든 손에 짜르르한 충격이 전해진다.
단 한 번의 격돌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삼 장 반경이 초토화되다시피 했다.
허공에서 흩날리며 떨어지는 나무 파편들 사이로, 백설처럼 하얀 옷을 나풀거리며 천천히 하강하는 신녀가 보인다.
재질을 알 수 없는 백색 면사에 가려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의 혼을 잡아끄는 신비로운 여인이 신녀였다.
좌소천은 세간의 소문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느끼고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진정 사람이라 하기에는 너무 신비한 기운을 지닌 여인이구나.’
게다가 무위 역시 자신에 비해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승부를 가리려면 전력을 다해야만 할 만큼 가공할 기운을 지닌 여인. 그게 신녀인 것이다.
좌소천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은 혼자지만, 상대는 신녀만이 아니라 지팡이를 든 노파와 십여 명의 여인이 더 있다.
위기라고 할 것까지는 아니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
좌소천은 이를 악문 상황에서 금라천황공을 구성까지 끌어올렸다.
쏴아아아!
그의 전신에서 보일 듯 말 듯 기이한 광채가 흘러나왔다.
동시에 우수에 들린 무진도에서 도명이 울리며 시커먼 도강이 쭉 뻗쳤다.
웅웅웅웅!
‘오늘 죽이지 못하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를 일. 무리를 해서라도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내자!’
결심을 굳힌 좌소천이 앞으로 미끄러지며 무진도를 들었다 내려쳤다.
쩌어억!
건곤이 길게 갈라지며 하늘에서 땅까지 일직선으로 묵선이 그어졌다.
거의 동시에 신녀의 두 손이 원을 그리며 앞으로 뻗었다.
거미줄처럼 뻗친 백색 영롱한 기운이 묵선을 감싸며 그 이상의 진전을 막았다.
두 사람의 공방을 지켜보던 한령파파의 주름진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떻게 저놈이……?!”
하지만 의문을 풀기에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좌소천과 신녀 사이의 사 장 공간이 진공상태가 되다시피 한 상태다.
일순간!
좌소천의 무진도와 신녀의 두 손에서 묵광과 백광이 번쩍였다.
콰르르르릉!
두 사람 사이의 대기가 터져 나가며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바위도 나무도, 그 무엇도 견뎌내지 못했다.
심지어 절대지경에 근접했다는 한령파파도 눈을 홉뜨고 더욱 멀리 물러서야만 했다.
가히 공전절후의 대결!
주르륵 일 장을 물러선 좌소천은 다시 무진도를 들어 올렸다.
어둠도 삼켜 버릴 묵기에 어렴풋이 금광마저 섞여 나온다. 천하의 무엇도 갈라 버릴 것처럼 보이는 신비한 묵빛 금광이다.
순간 면사 안 신녀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저 도……?’
가물거리는 기억 저편 어디선가 본 듯한 도 같다. 문제는 그걸 기억하기 위해 고민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상대는 천의무봉의 경지에 올랐다는 자신과 대등한 자. 아니, 믿을 수 없게도 자신보다 강할지 모르는 자다.
결국 신녀도 얼굴을 찡그린 채 두 손을 다시 앞으로 내밀었다.
그녀의 두 손에서 영롱한 백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세상이 온통 백설 천지가 된 것처럼 느껴지는 가공할 한기다.
공포의 한천빙백소수공(恨天氷魄素手功)이 삼백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급급히 오 장 밖으로 물러선 한령파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찰나간 망설임을 떠올린 그녀는 주름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두 사람이 부딪치면 누가 이길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
다만 둘 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지 모른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도를 쓰는 어린놈이 부상을 입는 거야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신녀는 아직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 이곳은 천년도량 무당, 자신들은 아직 무당의 권역에 있는 것이다.
묵빛 금광과 영롱한 백광이 서서히 서로를 향해 밀려가는 순간!
또다시 두 사람 사이가 진공상태로 변해갔다.
우르르릉!
우렛소리가 일며 가공할 강기의 회오리가 주위를 잠식한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공간!
찰나였다.
고오오오오오!
갑자기 두 사람의 기운이 얽혀들더니 둔중한 굉음이 하늘과 땅을 울렸다.
쿠구구궁!
두 사람 다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않고 서로만 노려보앗다.
이를 악다문 좌소천이 창백하게 굳은 안색인 반면, 신녀는 면사로 인해 아무런 표정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신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리며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미미하나마 신녀가 약간의 손해를 본 듯 느껴지는 상황.
‘더는 안 돼!’
한령파파는 한광이 번들거리는 눈을 좌소천에게 고정시키고 보일 듯 말 듯 입을 열었다. 그러고는 좌소천이 멈칫하자 신녀에게 소리쳤다.
“신녀! 무당의 말코들이 쫓아올지도 모르오. 더 상대하지 말고 떠나도록 하오!”
신녀의 입에서 불길조차 얼려 버릴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파파, 너무 위험한 자예요. 합공을 해서라도 죽이고 가는 게 낫겠어요.”
“저자 하나 죽이는 것보다 신녀의 몸이 더 중하다오. 어서 가시구려.”
“저자가 그냥 보내주지 않을 거예요.”
“저자도 나와 정한녀들이 함께 손을 쓰면 어찌 될지 알고 있을 테니, 우리를 더는 핍박하지 못할 것이오.”
한령파파는 좌소천을 노려보고는 괴이한 안광을 빛냈다.
“쫓아오려면 쫓아와라!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쫓아와야 할 것이다!”
그러더니 신녀를 재촉했다.
“갑시다, 신녀!”
면사에 가려진 신녀의 눈이 흐트러진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진 좌소천을 향했다.
좌소천의 무진도에서 쏟아지던 묵빛 금광이 옅어진다.
서서히 내력을 회수하는 신녀의 얼굴에 곤혹스런 빛이 떠올랐다.
‘분명히 어디선가 본 도 같은데…….’
뿌연 안개가 머리를 가득 메운 것 같은 기분. 그러나 그뿐, 그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신녀는 좌소천이 내력을 거두자,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뒤로 훌훌 날아갔다.
그제야 한령파파도 그녀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좌소천은 떠나가는 그녀들을 바라보고도 그 이상 뒤쫓지 않았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공격하기 직전에 들려온, 생판 처음 본 노파의 전음이 그의 발걸음을 막은 것이다.
<네놈이 어떻게 멸악천도를 얻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에 만나면 반드시 죽이고 말 것이다!>
초토화된 숲 한가운데 서 있던 좌소천은 한참 만에야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멸악천도를 알아보다니. 어떻게……?”
멸악천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영허 진인뿐이다. 그나마도 무진칠도로 바뀐 상태가 아닌가.
그런데 노파는 그 본질을 알아본 듯하다.
‘설마 저 노파가 어르신 이전의 도법 주인이란 말인가?’
전혀 불가능한 가정만은 아니었다.
나이로 봐도 그렇고, 이미 변형된 멸악천도를 알아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영허 진인은 도법의 주인에게 죄를 지었다고 했고, 노파는 영허 진인을 악적이라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가능성이 컸다.
좌소천은 무진도를 도집에 집어넣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원죄를 영허 진인이 지었다면, 그녀들이 무당을 친 걸 원망만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어르신…….’
좌소천은 신녀와 노파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만일 노파와 십여 명의 여인이 죽기를 각오하고 함께 덤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신녀를 죽일 수 있었을까?
천주봉을 바라보던 좌소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잘해야 양패구상. 거기다 노파가 멸악천도의 도식까지 안다면, 오히려 내가 죽었을지도 모르지. 훗. 아직 멀었다, 좌소천.’
그때 문득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대체 어떤 얼굴이기에 사람들이 넋을 잃는다는 걸까? 잘하면 볼 수 있었는데…….”
2
그날 무당이 당한 피해는 여느 곳 못지않았다.
사망자가 백수십 명에 부상자는 이백이 넘었다. 그나마도 작은 부상을 입은 제자는 숫자에 넣지 않은 게 그랬다.
오죽하면 정한궁의 마녀들을 쫓을 생각도 못하고 있을까.
단 반 시진. 무당산이 암울함에 짓눌렸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고통에 찬 신음. 뒷수습을 하기 위해 바쁘게 돌아다니며 소리치는 중견 제자들. 죽은 이를 위해 독송을 하는 도인들.
좌소천이 독송이 흘러나오는 도재전으로 다가가자 정은이 뛰어나왔다.
“무사히 돌아왔군!”
“현오 도장님께선 괜찮으신가?”
“다행히 약간의 내상만 입으셨을 뿐이네.”
“자소궁 상황은 어떤가?”
정은이 침울하게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셨다고 하네. 자소궁에서만도 백 명이 넘게 죽은 것 같아.”
“장문인께선?”
정은의 굳은 얼굴에 그늘이 졌다.
“내상이 깊으신 듯하네. 그나마 사조 어르신과 은거하셨던 기인들께서 제때에 와주셔서 피해가 줄었다고 하네.”
“사조? 그분들이 나오셨단 말인가?”
“영우 사조는 워낙 몸이 좋지 않아 오시지 못하시고, 영오 사조와 영등 사조께서 세 분의 기인을 모시고 오셨네. 나도 말만 들었는데, 그분들이 마녀와 나찰 같은 노파를 막지 못했다면…….”
정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마 자소궁의 인원 중 반 이상이 죽었을 거라 하더군. 장로 여덟 분이 있었는데도 말이야.”
좌소천도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미 신녀와 손을 나눠보지 않았던가.
“다른 곳의 피해는?”
“옥허궁에서도 칠십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하네. 후우……. 아직 다른 곳의 상황이 전해지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상자가 삼백이 넘을 거라고 하는 말이 있다네.”
무당의 제자는 직계와 방계를 합쳐 수천에 이른다. 혹 어떤 자는 속가의 방계까지 합해서 일만이 넘을 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중 무당산에 머무는 제자는 모두 일천오백. 그들은 팔궁 십이암에 나뉘어 도를 닦고 무공을 수련했다.
그중 반 가까이가 자소궁과 옥허궁을 중심으로 기거했다.
정한궁이 공격한 곳은 팔궁 중 사궁인 자소궁, 옥허궁, 태화궁, 남암궁. 그곳에서만 삼백의 피해가 난 것이다.
백 년 사이 최대의 참사였다.
“들어가세. 사부님께서 기다리시겠네.”
좌소천이 정은을 따라 도재전으로 들어가자 몇몇 무당의 제자들이 두 손을 마주 잡고 고마움을 표했다. 좌소천 덕분에 위기를 넘긴 사람들이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좌소천이 아니었다면 적어도 대여섯 명은 더 죽거나 다쳤을 것이었다.
좌소천도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현오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을 보았느냐?”
“예, 북쪽 너머에서 마주쳤습니다.”
“음…….”
현오자는 침음성만 흘리고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좌소천도 입을 다물고 현오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현오자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자소궁의 사정을 들었느냐?”
“정은에게 들었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구나.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어.”
좌소천이 현오자를 직시한 채 물었다.
“그녀들이 왜 무당을 공격했는지 들으셨습니까?”
현오자의 이마에 세 줄기 주름이 졌다.
“그게 이상한 일이야. 듣기로는 영허 사백과 어떤 원한을 진 것 같다는데 도통 알 수가 없으니……. 허어…….”
좌소천은 잠시 생각을 하고는, 전음으로 현오자에게 간략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알고 상대하는 것과 모르고 상대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오자가 장문인인 현고자에게 전하든 전하지 않든, 그것은 현오자가 적절히 판단할 몫이었다.
<진인께오서 말씀하시길, 오래전에 실수로 죄 없는 사람을 죽였다 하셨습니다. 아마 그 일로 원한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순간 현오자의 눈매가 가늘게 떨렸다.
<그게 사실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