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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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81화
81화
차 한 잔을 마시고 아침 업무를 시작하던 현오자가 벌떡 일어섰다.
알아듣기 힘든 소리가 메아리치며 울린다.
그런데도 그가 일어선 것은, 알아듣기 힘든 말 와중에도 들린 ‘마녀’라는 말 때문이었다.
“정은! 제자들을 모아라! 자소궁으로 간다!”
하지만 그는 자소궁으로 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밖에서 비명과 고함이 터져 나온 것이다.
“으아악!”
“마녀들이다!”
현오자는 대경해서 검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백의를 입은 십여 명의 여인과 녹의를 입은 오륙십 명의 여인이 도재전의 담을 넘어오는 게 보였다.
이제 막 침입한 것 같은데, 벌써 대여섯 명의 제자가 피를 뿌리며 쓰러져 있었다.
“감히 무당을 침입하다니! 모두 침착하게 마녀들을 상대하라!”
현오자는 노성을 내지르며 검을 뽑아 들고 신형을 날렸다.
뒤따라 도재전을 나온 정 자 배의 도인들 십여 명이 현오자를 따라 정한궁의 여인들을 맞이해 몸을 날렸다.
그즈음, 자소궁에서도 처절한 비명과 격전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천년도량 무당에 정한의 혈풍이 몰아닥친 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명과 고함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
자소궁에서 뻗친 살기가 천주봉 일대를 뒤덮었다.
텃새들이 분주하게 날아다니고, 짐승들은 꼬리를 말고 굴속으로 몸을 숨겼다.
자소궁에서 시작된 격전이 옥허궁까지 번졌을 무렵, 좌소천은 무당산 초입에 들어섰다.
어차피 동쪽의 길을 따라 올라가기에는 늦은 터였다. 좌소천은 달리던 그대로 험악한 산을 타 넘었다.
세 개의 산을 넘자 메아리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아주 늦지는 않은 듯했다.
좌소천은 무진도를 굳게 쥐고 도재전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십여 장 높이의 나무 위를 훌훌 날아내린 좌소천의 눈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녹의와 백의를 입은 여인 오십여 명이 무당의 제자들을 몰아치고 있었다.
땅에는 이미 오륙십 명이 쓰러진 상황.
그중 무당의 제자가 사십여 명인 데 반해, 여인들은 십여 명에 불과했다.
도재전의 제자가 백오십여 명인 걸 생각하면 실력의 격차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좌소천은 날아내린 즉시 상황이 급한 곳을 향해 직선으로 내달렸다.
그가 달리는 동선에 있는 여인들은 모두 넷.
번쩍!
“허억!”
“크윽!”
“피, 피해!”
좌소천은 무진도를 단 두 번 휘둘러서 네 여인의 목숨을 취했다.
“웬 놈이냐?!”
대경한 여인의 날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좌소천은 대꾸하지 않고 도재전 앞에서 벌어지는 격전지로 날아갔다.
현오자가 백의를 입은 여인과 한바탕 접전을 벌이고 있고, 정은과 정은의 사형제들이 안간힘을 다해 녹의를 입은 여인들을 막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좋지가 않았다.
좌소천이 그곳으로 달려가자 대여섯 명의 여인이 좌우에서 달려들었다.
순간 좌소천의 무진도가 휘둘러지고, 검은 도세가 그녀들을 향해 층층이 밀려갔다.
쉬쉬쉬쉬!
마치 검은 파도가 밀려가는 듯했다.
“허엇! 모두 피해!”
백의를 입은 여인 중 하나가 악을 쓰듯이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두 명의 여인이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도세에 휘말렸다.
“헉!”
“흡!”
두어 걸음 물러서던 여인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나마 세 여인은 두 여인의 희생 덕분에 몸을 뒤로 빼고는 좌소천의 곁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좌소천은 물러서는 그녀들은 보지도 않고 도재전으로 다가갔다.
그때 위쪽에서 기다란 소성이 울렸다.
삐이이이! 삐리리리!
정한궁이 무당을 친 지 반 시진 만이었다.
소성이 울림과 동시, 따로 명령이 없었는데도 도재전 앞에서 싸우던 여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심지어 현오자와 싸우던 여인도 현오자를 향해 강력한 일검을 내지르고는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몸을 날렸다.
좌소천은 갑자기 여인들이 몸을 빼자 재빨리 좌우를 쓸어보았다.
“무진!”
정은이 그를 알아보고 달려왔다.
피가 청의를 검게 물들이고 있었지만, 그다지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했다.
“괜찮나?”
“나는 괜찮네. 다만 워낙 많은 제자들이 죽고 다쳐서…….”
좌소천은 고개를 돌려 현오자를 바라보았다.
얼굴이 창백한 것이 그도 상당한 곤욕을 치른 듯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니다. 그나마 네가 온 덕에 피해가 조금이라도 줄었거늘…….”
말을 길게 끄는 현오자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제자들이 죽고 다친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녀들을 추적하겠습니다.”
좌소천은 현오자가 말릴 틈도 없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주력은 도재전에 있던 여인들이 아니었다.
자신이 도재전에 도착했을 즈음, 자소궁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었다. 자신조차 흠칫할 정도의 기운이.
좌소천이 쫓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기운이었다.
단숨에 능선에 도착한 좌소천은 능선을 타고 빠르게 북쪽으로 달렸다.
자소궁에서 빠져나갔다면 북쪽 능선을 탔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쪽이라면 자신도 어느 정도 길을 아는 터. 오래지 않아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암벽을 타고, 그 사이사이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밟으며 나아가던 좌소천의 신형이 어느 순간 갑자기 멈췄다.
눈앞에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난 것이다.
일순간 부드러운 듯 차가운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다.
그 기운의 위치는 백 장 절벽 건너편 쪽.
그때다. 멈춰 선 자신을 봤는지, 건너편 바위 봉우리 위로 누군가가 올라섰다.
백설처럼 하얀 경장. 호리호리한 몸매.
여인이다. 신비한 기운을 뿜어내는 여인.
‘저토록 강한 기운의 주인이 여자?’
몸을 돌린 여인이 자신을 마주 본다.
바람이 거센데도 한 점 흔들림없이 칼날 같은 바위에 서 있다.
삼백 장의 거리. 바람에 날리는 하얀 옷자락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두꺼운 백색 면사로 인해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기운이 봉우리 전체를 휘감고 있다.
결코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기운!
‘저 여인이 정한궁의 신녀라는 여인인가?’
그런 듯했다. 저 여인보다 강한 여인이 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주위에 있는 인기척이 적다. 기껏해야 십여 명뿐.
그러나 숫자는 적어도 모두가 완숙한 경지에 들어선 절정고수들이다.
특히 어렴풋이 느껴지는 기운 하나는 바위 봉우리 위에 올라선 여인과 큰 차이가 나지 않게 느껴진다.
잠시 바라보는 사이, 카랑카랑한 노파의 목소리가 절벽에 부딪쳐 메아리쳤다.
“네놈이 본 궁의 정한녀들을 죽였더냐? 두고 보아라! 오늘은 그냥 간다만, 본 궁의 한이 반드시 네놈을 찾아갈 것이니라!”
순간, 바위 봉우리 위에 서 있던 여인이 바람에 날리듯 뒤로 날아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좌소천도 절벽 아래로 신형을 날렸다.
혼자서 모두를 상대해야 하는 일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신녀라는 여인만 해도 자신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절대의 고수. 다른 여인들까지 합세한다면 감당하기 힘들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냥 보낼 수는 없는 일.
단숨에 절벽을 날아 내린 좌소천은 곧장 신녀가 올라섰던 봉우리 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솟은 칼날 같은 바위들을 차고, 소나무 가지를 밟으며 신형을 날린 그는, 반의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신녀가 서 있던 암봉을 넘어갔다.
순간, 저 멀리 까마득한 곳에 구름이 밀려가듯 달리는 수백의 인영이 보였다.
신녀는 그들의 뒤에 처져서 따라가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수장이 앞장서 가는 형태와는 조금 달랐다.
무당의 추적을 염려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을 의식해서인가.
신녀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하들을 추적대로부터 보호하려는 것인 듯 보였다.
‘생각보다 냉혹한 마녀는 아닌 것 같군.’
좌소천은 그녀들의 진행로를 대충 예상하고 다시 몸을 날렸다.
4장 격전(激戰)
1
좌소천이 정한궁의 꼬리를 잡은 것은 일각가량이 지나서였다.
스르르.
무진도를 빼 든 좌소천이 짓쳐들자, 앞에서 달리던 세 여인 중 하나가 홱 고개를 돌렸다.
“네놈이?”
그녀의 목소리에 나머지 두 여인도 고개를 돌리고는 무기를 빼 들었다.
“죽여라!”
찰나! 무진도가 횡으로 그어지자, 묵광이 맨 앞쪽의 여인을 그녀의 검과 함께 튕겨냈다.
쾅!
“허억!”
곧이어 두 여인마저 피를 뿌렸다.
“아악!”
“못 간다, 이놈! 컥!”
그제야 앞서 달리던 한령파파가 뒤쪽의 상황을 알고 대노해 소리쳤다.
“놈이 쫓아왔다! 막아라!”
동시에 신녀를 보호하며 달리던 십이정한녀 중 넷이 몸을 멈추었다.
좌소천은 달리던 그대로 그녀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그녀들은 처음의 여인들과 비교가 안 되는 고수들이었다.
능히 일파의 장로 급인 그녀들 넷의 협공은 좌소천조차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쩌정!
그녀들은 좌소천의 칠성 공력이 실린 공격을 서너 걸음 물러서는 정도로 막아냈다.
이어서 다른 여인들이 쇄도했다.
좌소천은 빙글 신형을 돌리며 무진도를 흩뿌렸다.
묵광이 회오리처럼 휘돌며 달려드는 여인들을 튕겨냈다.
떠더더덩!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세 여인을 튕겨낸 좌소천은 무진도에 내력을 더 주입시키고 앞에 있는 여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순간 무진도에서 시커먼 묵광이 확 피어났다.
“조심해라!”
한령파파가 좌소천의 도에서 이는 가공할 기운을 감지하고 대경해 외쳤다.
찰나였다!
후우웅!
무진도에서 한 마리 흑룡이 튀어나오더니 십이정한녀 중 한 여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쾅!
여인은 다급히 검을 들어 좌소천의 공세를 막았다.
하지만 일성의 공력 차이는 천지 차이였다.
검을 부러뜨린 무진도가 여인이 쓴 차양과 어깨를 베어냈다.
“흡!”
여인이 다급히 숨을 들이켜며 튕기듯이 물러섰다.
좌소천은 그녀를 보지도 않고 또 다른 여인을 향해서 무진도의 도첨을 틀었다.
그때였다.
“이놈!”
한령파파는 십이정한녀로 좌소천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서 직접 지팡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좌소천도 그녀의 공격을 무시하지 못하고 무진도를 신중하게 내려쳤다.
찰나간 숲 속에 묵선 한줄기가 죽 그어졌다.
“헛!”
눈을 부릅뜬 한령파파가 지팡이를 마주 내밀었다.
콰앙!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친 순간, 한령파파가 달려오던 그대로 허공으로 튕겨졌다.
좌소천도 움찔 뒤로 한 걸음 물러서고는 다시 무진도를 위로 올려쳤다.
쉬이익!
시커먼 도세가 이번에는 아래에서 위쪽으로 대기를 쩍 갈랐다.
한령파파의 몸을 두 쪽 낼 듯한 도세!
허공으로 튕겨진 한령파파도 이를 악문 채 지팡이를 있는 힘껏 내려쳤다.
쩌어엉!
진저리치며 터져 나가는 대기!
두 기운의 파편이 아름드리나무들을 할퀴며 사방으로 퍼졌다.
“물러서라! 휩쓸리면 죽는다!”
기회를 엿보던 십이정한녀들이 대경해서 급급히 물러섰다.
“정말 대단한 놈이로구나! 노신을 물러서게 하다니!”
한령파파가 진정으로 경악해서 소리쳤다.
놀란 것은 좌소천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하리라 짐작은 했다. 그렇다 해도 설마하니 자신의 도를 무리없이 막아낼 줄이야.
“그대들의 원한을 알지는 못한다! 하나 무당을 건드린 것이 그대들의 실수다!”
좌소천의 차가운 목소리가 숲 속에 울렸다.
한령파파도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냉랭하게 코웃음 쳤다.
“흥! 영허, 그 악적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 억울하거늘. 뭐라? 무당을 친 것이 실수라고? 죽어라, 이놈!”
그러고는 석 자 길이의 강기가 어린 지팡이를 들고 좌소천을 공격했다.
일순간, 좌소천은 그녀의 말에 흠칫했다.
왜 여기에서 영허 진인의 이름이 나온단 말인가?
게다가 그분을 악적이라니?
멈칫거림은 찰나였다. 하지만 그 바람에 한령파파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정면으로 부딪쳐야만 했다.
무진도가 살짝 옆으로 눕는가 싶더니, 뭉클거리는 도강이 한령파파의 지팡이를 휘감았다.
순간 한령파파의 눈에 뜻 모를 경악이 어렸다.
“네놈이……?!”
그러나 말을 이을 새도 없이 두 사람의 공격이 뒤엉켰다.
콰과과광!
일수유의 순간에 다섯 번의 굉음이 일며 두 사람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한령파파는 다섯 걸음, 좌소천은 두 걸음을 물러선 채 서로를 마주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파파! 물러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