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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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6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15화
115화
“그는 가장 젊은 장로이면서도 형산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고수입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무공보다 인품을 더 높이 쳐주지요. 그를 형산고검이라 부르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아마 광한방이 아무리 마도의 거대 세력이라 해도 장원영을 함부로 하지는 못할 겁니다.”
다음날 아침, 장원영이 제자들과 함께 먼저 객잔을 나섰다. 좌소천 일행은 그들이 떠난 지 일각이 지나서야 방을 나왔다.
그들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마흔 정도의 평범한 중년인으로 상양에 있는 구포방의 정보원을 총괄하는 종여삼이라는 자였다.
그는 좌소천을 바로 알아보고 고개를 숙였다.
“종가라 합니다, 좌 공자.”
“형산의 무사들이 이곳에서 나간 것을 알고 계십니까?”
“물론입니다.”
“상양에 있는 정보원이 모두 몇 사람이나 됩니까?”
“열 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쫓을 수 있겠습니까?”
“원하신다면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감시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의 행적을 쫓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그가 광한방으로 향한다던가, 아니면 그에 상응하는 중요한 일이 발생하거든 즉시 알려주십시오.”
종여삼이 고개를 들었다.
비록 십여 명을 다루지만, 그는 정보원을 총괄하는 자다. 하기에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적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좌소천, 그가 누군가!
아직 강호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장강을 가운데 두고 호북과 호남에 걸쳐 광대한 지역을 제패한 자다.
가히 제왕이나 다름없는 사람. 그게 바로 좌소천인 것이다.
그런 좌소천이 일개 지역의 책임자인 자신에게 존대를 쓰며 예를 갖춘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종여삼은 진심으로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좌 공자가 재수가 좋아 방주를 얻었다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방주께서 복이 많아 좌 공자를 만난 것이었구나.’
종여삼의 고개가 조금 전보다 배는 더 깊숙이 숙여졌다.
“성심을 다해 이행하겠습니다, 좌 공자.”
공손양이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리석은 자는 사람을 힘으로 다루려 하고, 조금 뛰어난 자는 설득시켜 다루려 한다. 그러나 진정 뛰어난 자는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따르게 만든다 했다. 주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방법을 이행하고 있다.’
사람을 설득시켜 다루는 것은 뛰어난 머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따르게 만드는 것은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식이 섞인 행동은 언젠가는 드러나는 법이 아니던가.
“뭐가 그리 좋아 웃나?”
도유관이 슬쩍 공손양의 옆구리를 찌르며 묻는다.
공손양은 좌소천에게 시선을 둔 채 조용히 웃었다.
“소제가 운이 좋은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또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긴가?”
도유관의 눈이 슬쩍 치켜떠진다. 공손양의 웃음도 짙어졌다.
“주군을 잘 만난 것도 운이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도유관이 이마를 찡그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지. 한데 정말 그것 때문에 웃었나?”
“그럼 제가 지나가는 처자 속곳이라도 본 줄 아셨습니까?”
난데없는 공손양의 농담에 도유관의 가느다란 눈이 제법 크게 떠졌다. 다른 사람들도 의외라는 눈으로 공손양을 바라보았다.
항상 무게만 잡던 공손양이 그런 농담을 하다니!
그런 눈빛들이었다.
공손양의 농담 때문인지, 식사를 하는 동안의 분위기가 부드럽게 흘렀다.
어차피 상양을 구경하자고 온 것이 아닌 상황. 더구나 장원영의 움직임을 지켜본 후 움직이기로 했으니 바쁠 것도 없었다.
식사는 근 한 시진이나 이어졌다.
양화천이 객잔의 주인을 잘 알아서인지, 아니면 아침이라 바쁘지 않아서인지, 좌소천 일행이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사시가 되어갈 무렵. 종여삼이 객잔 안으로 뛰어들 듯이 들어왔다.
그는 좌소천 일행이 탁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급히 다가와 빠르게 입을 열었다.
“장 대협이 분노한 표정으로 동쪽 문을 나섰습니다.”
뜻밖이었다.
양화천의 말대로라면 장원영은 차분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일처리를 신중하게 할 터. 언제 움직일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두 시진 만에 그가 분노한 채 상양을 나선 것이다.
그의 행동이 뜻하는 것은 하나. 뭔가 증거를 찾았다는 말이다.
“광한방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게 보입니다. 강가의 송림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표정이 급변해서…….”
좌소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현재 방의 무사들은 어디쯤 있습니까?”
“장동(長東) 건너편 야산에서 대기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지금 연락해도 두 시진 정도면 광한방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2
광한방은 상양에서 동쪽으로 삼십여 리가량 떨어진 천정산(天井山) 자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좌소천 일행은 상양을 벗어나자마자 경공을 시전해서 장원영의 뒤를 쫓았다.
그렇게 서두른 덕에 광한방을 십 리 정도 남겨놓았을 때 장원영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장 형!”
양화천이 저만치 앞서 가는 장원영을 불렀다.
제자들과 함께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장원영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그사이 거리가 좁혀지고, 장원영의 의아해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좀 더 가까이 다가간 양화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도 광한방에 볼일이 좀 있소이다. 그래, 제자들의 흔적은 찾으셨소?”
장원영의 눈에서 분노에 찬 싸늘한 빛이 번뜩였다.
어지간한 일에 화를 내지 않는다 했다. 그런데 눈빛을 보니 단단히 화가 난 듯했다.
“강가에서 급박하게 남긴 비문(秘文)을 찾았소이다.”
“비문을 찾았다고요?”
“그렇소이다. 광한방에 쫓기고 있다는 비문이 검으로 깎아낸 소나무에 적혀 있었소. 그리고 강가의 바위에… 복수를 부탁한다는 비문이 남아 있더구려.”
“제자들의 시신은 찾았소?”
“찾지 못했소.”
어딘가에 묻었다 해도 최근 내린 폭우로 인해서 흔적이 사라졌을 것이다.
“형산에는 알리셨소?”
“가져온 전서구에 상황을 적어 보냈소. 본산의 제자들이 오기 전에 정확한 상황을 알아볼 생각으로 가는 중이외다.”
“어차피 우리도 광한방에 볼일이 있는데, 같이 갑시다.”
“무슨 일로?”
아직은 주목적을 말할 때가 아니었다. 양화천이 소광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때까지도 장원영은 소광섭을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약간씩 저는 다리. 거기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서 어지간히 신경 쓰지 않는 한 알아보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가기로 한 이상 거리낄 것도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 좌소천이 이미 언질을 준 터. 소광섭이 먼저 아는 척했다.
“오랜만이오.”
장원영의 고개가 모로 꺾어졌다.
“누구신지?”
“세운산장의 소광섭이라 하오.”
잠시 소광섭을 바라보던 장원영의 눈이 한껏 커졌다.
“귀하가 그럼 칠 년 전 악양에서 봤던……?”
“그렇소. 당시 장 형의 도움, 고마웠소.”
도와주기 위해 왔는지 아닌지는 아직도 확실치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도움이 된 것만은 분명했다.
장원영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짧게 입을 열었다.
“그날 일에는 많은 사연이 있습니다. 이해하신다면 나중에 말씀드리지요.”
소광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지난 일이다. 게다가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해보다는 도움이 되었다.
당장은 그것이면 되었다.
소광섭의 정체를 알고 나서야 장원영은 양화천과 소광섭이 광한방에 가려는 이유를 짐작했다.
복수! 그것 말고 뭐가 있겠는가.
“좋습니다. 같이 가십시다.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목적이 같은데, 따로 갈 일이 뭐 있겠습니까?”
3
그리 높지 않은 천정산 자락을 거대한 장원 하나가 차지하고 있다.
그곳이 바로 이백 년간 동정호의 동쪽을 지배하며 상양 일대에서 제왕처럼 군림해 온 광한방의 총단이었다.
오시 무렵.
좌소천은 장원영 등과 함께 광한방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다가가자 거대한 정문을 지키고 있던 네 명의 정문위사가 앞으로 걸어왔다.
정문위사들은 눈을 굴려 좌소천 일행을 훑어보더니, 장원영의 등에 매달린 검에서 눈길을 멈췄다.
그들 중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형산의 장로께서 어인 일로 오신 겁니까?”
장원영이 차가운 말투로 되물었다.
“왜 왔는지는 그대들이 더 잘 알 거 아닌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모르면 가서, 두강호에게 형산의 장원영이 보았으면 한다고 전하게.”
두강호는 광한방의 오당 중 순찰 임무를 맡고 있는 적수당의 당주로 장원영과 안면이 있는 자였다. 상양에서 싸움이 일어났다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장원영이라면 그 유명한 형산고검의 본명.
정문위사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뒤쪽의 수하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그러고는 장원영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일각이 지날 즈음.
눈매가 칼날처럼 옆으로 뻗은 중년인이 십여 명의 무사와 함께 정문으로 나왔다.
그가 바로 적사마도(赤蛇魔刀) 두강호라는 자였다.
“형산고검께서 어인 일이시오? 거기다 풍양객 양 대협까지 오시고.”
“어인 일이냐고?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장원영의 목소리가 날 선 검처럼 두강호의 귀청을 두들겼다.
두강호는 어깨를 으쓱 추키고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모르니 묻는 거 아니오?”
“모른다? 상양에서 제법 큰 싸움이 벌어졌는데, 순찰당의 당주라는 사람이 그 일을 모른다고?”
“그거야…… 모를 수도 있는 일 아니오? 아무리 내가 순찰당주라 하지만, 사방 오십 리나 되는 상양이 어디 내 손바닥 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답하는 두강호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장원영이 그 눈빛을 놓치지 않고 추궁했다.
“광한방과 본 파의 제자들이 싸웠는데도 그걸 모르고 있다면 자네의 능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네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는 좀 더 윗사람을 만나는 게 낫겠군.”
그제야 두강호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서둘러 아는 척했다.
“아!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본 방의 무사들과 형산의 제자들이 사소한 다툼을 벌였다 했는데, 혹시 그 일을 말씀하시는 거요?”
“알긴 아는군. 하나 내가 정말로 알고자 하는 것은 그때의 일이 아니라, 그 후에 벌어진 싸움이네. 그 일에 대해 솔직히 말해주었으며 싶군.”
“또 싸웠단 말이오? 그 일은 저도 금시초문이라 장로께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지금쯤 본산에서 제자들이 내려오고 있을 것이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어서 내가 먼저 왔지. 후회할 일은 하지 말게.”
장원영의 입에서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두강호의 얼굴도 침중하게 굳어졌다.
형산에서 사람들이 내려온다면 일이 간단하게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들이 나설 필요는 없지 않소?”
“물론 옳은 말이네. 그러나 싸우던 아이들이 죽었다면 문제가 달라지지.”
두강호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말이오? 형산의 제자들이 죽기라도 했단 말이오?”
“정확히 다섯이 죽었네, 광한방의 무사들에게. 변명할 생각은 말게. 제자들이 죽기 전에 남긴 비문을 확인하고 왔으니까. 내가 왜 왔는지 알겠지?”
“으음,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제가 확인을 해보겠소이다.”
두강호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장원영을 안으로 들였다.
그러다 장원영을 따라 들어오는 좌소천 일행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분들도 일행이시오? 형산파의 분들이 아닌 것 같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