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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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14화
114화
좌소천이 나직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머리 위에 서리가 내리는 듯했다.
말이 버린다는 것이지, 그러한 결정이 내려지면 동정호가 붉게 물들 정도로 피가 흐를 것이다.
태풍의 눈이 그들을 쓸고 지나갈 테니까.
구포봉이 무겁게 변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험, 그럼 좌 공자가 먼저 가게나. 나머지 인원은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도록 평강 근처에서 대기토록 하겠네.”
7
정한궁의 여인들이 천외천가의 추적조와 처음 마주친 것은 날이 밝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부상자들 때문에 속도를 늦춘 사이 놈들이 바로 뒤까지 쫓아온 것이다.
그때만 해도 충분히 놈들의 추적을 따돌릴 수 있을 듯했다. 아니, 추적해 오는 놈들을 그때그때 처리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신녀와 한령파파만 나서도 어지간한 추적조쯤은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세 번의 마주침에서 모두 정한궁이 승리했다. 천외천가는 백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내고 죽어라 도망쳐야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방심이라는 괴물이 정한궁 여인들의 가슴이 똬리를 틀었다.
신녀와 한령파파조차 천외천가의 추적을 그리 걱정하지 않고, 걸음을 늦추며 부상자들을 돌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게 한중에서 이백여 리를 벗어나 대파산맥의 초입에 들어서자, 신녀와 한령파파는 더 이상 천외천가의 추적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다음날 오후…….
천외천가는 결코 추적을 멈추지 않았다.
정한궁 여인들의 바로 뒤까지 쫓아온 그들은 적당한 장소가 나오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들 무리를 냉랭한 표정으로 살펴보던 한령파파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천외천가 무리 중에 칠순 정도로 보이는 빼빼마른 흑의 노인이 서 있었다.
그 노인을 본 한령파파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침내 사사가 세상으로 나왔구나!”
흑의노인. 그는 천해에서 가장 강하다는 사사 중 일인, 유사(幽師)였다.
십암 중 둘이 합공하고도 밀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침내 그가 나선 것이다.
“클클클! 신녀라 했더냐? 네년은 내가 상대해주마!”
유사가 뒷짐 진 채 앞으로 나서자, 순우무종이 악을 쓰듯이 명을 내렸다.
“모두 저 계집들을 쳐라!”
정한궁과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좁은 협곡에서 정면으로 부딪쳤다.
신녀는 유사와 일대 일로 경천동지의 대결을 펼쳤다.
유사는 한령파파의 목소리를 떨리게 할 만큼 강했다. 신녀보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신녀 역시 그와의 대결에서 우세를 보이지는 못했다.
막상막하!
두 사람의 대결은 양가장에서 보았던 신녀와 십암의 대결과는 또 달랐다.
그들의 싸움이 벌어진 곳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바위는 부서져 모래처럼 흩어지고, 숲을 이루었던 나무들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결국 유사에 의해 신녀의 손발이 묶이고, 우암에 의해 한령파파마저 정한궁의 여인들을 도와주지 못했다.
그 차이는 너무도 컸다.
비록 신녀에 의해 내상을 입었다 하나, 흑암과 적암은 십이정한녀 모두가 합공해야만 막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한궁의 여인들은 신녀와 한령파파와 십이정한녀가 없는 상황에서 천외천가의 고수들을 상대해야만 했다.
결국 한령파파는 한 맺힌 목소리로 악을 쓰며 후퇴를 명했다.
“정한녀들은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라!”
그날 싸움에서만 오십여 명의 여인이 죽임을 당했다.
그나마 신녀와 한령파파, 십이정한녀가 전력을 다해 막은 덕에 남은 여인들이라도 격전장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천외천가의 추적은 말거머리처럼 끈질겼다.
정한궁의 여인들은 천외천가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밤낮을 잊고 달려야만 했다.
당연히 부상자들의 몸은 더욱 악화되고, 숫자는 점점 줄어들었다.
신녀가 중간, 중간 돌아서서 추적대의 발길을 붙잡지 않았다면 그마저도 불가능했을지 몰랐다.
그때부터 사흘.
신녀는 지칠 대로 지친 백오십여 명의 정한궁 여인을 이끌고 대파산의 깊숙한 오지로 들어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양쪽에 세우고, 머리에 안개를 인 짙푸른 송림이 주단처럼 깔린 이름 모를 골짜기였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 지 벌써 이틀째.
송림을 스치는 음울한 바람 소리가 골짜기로 들어서는 그녀들의 어깨를 더욱 처지게 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바위 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일어서려는데, 십이정한녀 중 일곱째인 칠한녀가 입술을 깨물며 처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희들은 놔두고 먼저 가십시오, 신녀시여!”
그녀 주위에는 부상이 심해져서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여인 이십여 명이 모여 있었다.
또 다른 여인이 외치듯 말했다.
“부상이 심하긴 하나, 잠시라도 놈들의 발길을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희가 신녀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신녀!”
신녀의 두 눈이 격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차가운 마음도 정한궁의 여인들에게만은 예외였다.
“이곳은 추적이 쉽지 않은 곳이라서 아마 놈들도 더 이상 추적을 해오지 않을 거예요. 그러니 마음 약한 소리 말고 어서 일어나세요.”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추적해 온 것을 보면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만약의 경우 골짜기 안에서 놈들에게 꼬리가 잡힌다면, 더욱더 위험한 상황이 닥칠 것이다.
한령파파는 그걸 알기에 한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칠한녀 등의 손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신녀, 그 아이들의 뜻을 들어주시구려.”
“파파…….”
“신녀께서 곧 정한궁이라오. 우리가 모두 죽더라도 신녀께선 무사히 정한궁으로 돌아가셔야 하오. 그러니 저 아이들의 뜻을 들어주고 어서 가시도록 합시다, 신녀.”
“하아…….”
신녀의 면사가 흔들렸다.
다행히 적을 만나지 않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알았어요, 파파.”
신녀가 떠난 후, 칠한녀를 비롯한 정한궁의 여인들은 몸을 추스르기 위해 혼신으로 서로의 몸을 돌봤다.
휘이이익!
멀리서 휘파람 소리가 들린 것은 신녀가 떠난 지 두 시진가량이 지났을 때였다.
천외천가의 추적대가 불어대는 신호음이었다.
그들이 마침내 대파산의 오지까지 쫓아온 것이다.
칠한녀와 정한궁의 여인들은 처연한 눈빛으로 서로를 돌아보고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들로선 조금이라도 오래 적을 막을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신녀시여! 부디 무사히 돌아가셔서 저희들의 한을 풀어주소서!”
6장 광한방(廣寒幇)
1
상양(湘陽)은 그 이름답게 동정호의 남단 상강(湘江)이 흘러 들어오는 입구에 있었다.
아침에 다섯 명의 인원만 대동한 채 악양을 출발한 좌소천은 어둑해질 무렵 상강에 들어섰다.
공손양과 도유관, 능야산, 소광섭. 그리고 상양의 지리를 잘 아는 양화천이 좌소천과 동행했다.
부슬비를 맞으며 상강에 들어선 좌소천 일행은 일단 양화천의 안내로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양화천이 안내한 객잔은 그리 크지 않았다. 대신 깨끗하고 조용해서 하루를 지내기에는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가끔 상양에 올 때마다 들르는 곳이외다. 외진 곳에 있어서 주로 단골들이 찾는 곳이지요.”
저녁이 다 되었는데도 비 때문인지 손님이 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인이나 점소이는 하등 걱정을 않는 표정이었다.
바로 그때, 자리에 앉던 좌소천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창가의 자리에 앉아 있는 무사들이 보였다.
검에 달린 수실, 형산파의 제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자신이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장로가 된 건가?’
옆모습을 보이고 앉아 있는 중년인. 그는 선우궁현과 함께 악양의 포봉객잔에 갔을 때 봤던 자였다.
그의 검병에 매달린 다섯 개의 수실이 중년인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린다. 그것은 그가 형산파의 장로라는 말과도 같았다.
묘한 인연이었다. 아무리 형산파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지만, 칠 년 전, 그때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이다니.
소광섭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 듯 표정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좌소천은 굳이 소광섭에게 중년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때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는 데다, 지금은 알아보는 것이 오히려 반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상하게 흘렀다. 양화천이 중년인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한 것이다.
“거기, 장 형이 아니시오?”
중년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 양 형이 어인 일입니까?”
양화천으로선 무의식중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로 인해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상황. 좌소천은 일단 소광섭에게 전음을 보내서 형산파와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형산파와 특별한 관계라도 있으십니까?>
<전에 형님이 형산파의 장로와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네.>
다행히 나쁜 관계는 아니었던 듯하다.
<그럼 악양에서 싸움이 벌어졌을 때, 형산파의 사람들이 보였던 게 그 때문이었습니까?>
<그건 잘 모르겠네. 그들과 친분이 있던 사람은 형님이어서. 다만 그날 형산파의 제자들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네.>
선우 백부도 비슷하게 말했었다.
보물에 눈이 어두워져서 왔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왔는지는 몰라도 형산파의 제자들은 세운산장의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았다고.
그렇다면 소광섭과의 일은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좌소천이 소광섭에게 묻는 사이, 형산파의 장로인 장원영이 좌소천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챈 양화천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냥 자연스럽게 대해주십시오.>
좌소천의 전음이 전해진 뒤에야 양화천이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삼 년 만에 뵙는 것 같은데, 그간 잘 지냈소?”
“제자들과 다투느라 정신이 없지요. 한데 양 형이야말로 악록산(岳麓山)에서 유유자적하던 분이 어쩐 일이십니까?”
“허허, 잠시 볼일이 있어서 들렀소이다.”
장원영이 의자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뭔가를 느낀 듯 서서히 표정이 굳어졌다.
‘하나같이 고수들이다. 심지어 나조차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
장원영이 넌지시 물었다.
“동행이시오?”
“그렇소이다.”
평상시라면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양화천은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말을 돌렸다.
“어디 가시던 길이오?”
장원영은 좌소천 일행에 대해 궁금했지만, 양화천이 먼저 물어오자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본 파의 제자 다섯이 사라져서 그 일의 조사차 나왔소이다.”
그것만으로는 좌소천 일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처럼 보였다. 그런데 미적거리던 장원영이 넌지시 몇 마디 덧붙이는 바람에 일이 이상하게 꼬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광한방에 당한 것 같소. 해서 조사를 좀 더 해보고 광한방을 찾아가려 하오.”
“광한방이 제자들을 해쳤단 말이오?”
“그렇소. 사흘 전 선착장 근처에서 광한방의 무사들과 격렬한 다툼이 있었다는데, 그날 저녁에 제자들의 흔적이 사라졌소. 물론 그들이 범인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소만, 정황을 보면 그들이 관여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소.”
“음, 만일 그들의 짓이라면 어찌할 생각이시오?”
장원영의 온화하던 표정이 무표정하게 굳어졌다.
“형산은 상대가 누구든 쉽게 고개를 숙이는 곳이 아니라는 걸 양 형도 잘 아실 거요. 그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형산의 검이 얼마나 매서운지 절감하게 될 것이오.”
객잔에 방을 잡고 올라가자마자 사람들이 좌소천의 방에 모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군?”
공손양이 좌소천을 향해 물었다.
형산파와 광한방은 소 닭 보듯 지내는 관계였다. 싸움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규모의 싸움은 서로가 피했다.
어쩔 수 없이 싸울 때는 명백한 이유가 있어야만 했고.
그런 판국에 정말로 광한방이 형산파의 제자들을 쳤다면, 정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한바탕 회오리가 몰아칠 것이었다.
호남십대세력 중 수위를 다투는 두 문파가 자존심을 걸고 검을 맞댈 테니까.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도록 합시다. 우리에게 나쁠 것은 없으니까.”
좌소천은 냉정하게 입을 열고 양화천을 바라보았다.
상황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사람을 먼저 알아야 했다.
“장원영이라는 분, 괜찮아 보이더군요. 그 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 대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