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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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11화
111화
남쪽에서 태풍이 몰려오는 시기, 호북 일대가 고요한 긴장에 잠겨 숨을 죽였다.
그날 이후, 좌소천은 지부 순찰을 미루고 상황을 주시했다.
의도하지 않은 상황이 전개되고 있지만 그에겐 손해될 것이 없었다.
‘어쩌면 고맙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궁주, 이제 어떻게 할 거요?’
3
“뭐야? 천외천가가 소천이를 암살하려 했다고?”
혁련무천의 갈라진 노성이 제천전을 울렸다.
연이은 사건에 그의 머리가 반쯤은 희어진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방금 황파에서 전서구가 당도했습니다, 주군!”
여가릉의 대답에 혁련무천의 볼이 씰룩였다.
“증거를 확보했다고 하던가?”
“살수들의 무기와 무기에 바른 독을 무영자 어른께서 알아보셨다 합니다.”
“무영자 장로가?”
“예, 주군. 그분 말로는, 그 독이 태백산에서만 나오는 절대극독인 흑령지독이었다고 합니다. 더구나 그녀들이 쓴 무기가 천외천가의 여살수들이 쓰는 무기였다고…….”
여가릉의 말이 끝나기도 전, 혁련무천이 분노에 찬 일성을 터뜨렸다.
“빌어먹을 놈들! 도대체 어쩌자는 거야!”
여가릉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이쯤에서 천외천가에 경고를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주군. 무사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었다.
사공은환의 유언장에 대한 사건과 맞물리자,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천외천가를 불신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간부들 중 일부마저 좌소천을 동정하는가 싶더니, 이제는 천외천가를 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판이었다.
“안 되겠어. 호정아!”
묵묵히 듣고만 있던 혁련호정이 고개를 돌렸다.
“예, 아버님.”
“서신을 보내서 내가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라! 협조고 뭐고,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지금까지의 약속을 모두 없던 것으로 하자고 해!”
“알겠습니다, 아버님.”
“그리고 남양으로 나가 있는 무사들을 당하(唐河)로 후퇴시켜!”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겠습니까?”
혁련호정이 토를 달자, 혁련무천이 차갑게 굳은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정한궁으로 인해 곤란에 처해 있는 놈들이야. 우리가 북진을 멈추고 무사들을 후퇴시키면, 우리를 견제하던 무림맹이 다시 놈들을 압박할 것이다. 우리에겐 나쁠 것 없다.”
제천무제 혁련무천다운 냉철한 판단이었다.
충분한 사유가 있는 후퇴인 만큼 천외천가에서도 따지지 못할 터. 그사이 전열을 정비해 놓고, 기회가 나면 일거에 북쪽을 치면 되는 것이다.
조금 늦어진 만큼 더 많은 것을 얻으면 될 일.
혁련무천은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는, 마음 한구석에 찌꺼기처럼 남아 있는 일에 대해 물었다.
“사공은환의 유언장에 대해서 입을 연 놈은 찾았느냐?”
“용의자가 어느 정도 좁혀진 상태입니다. 며칠 안으로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꼭 찾아라. 찾아서 그 소문이 진실과 다르다는 걸 알려야 한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님. 반드시 찾아내겠습니다.”
4
삼화의 사건이 벌어지고 사흘이 지날 즈음, 벽여령이 검인보에서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몸은 괜찮으세요?”
“괜찮소.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데.”
벽여령이 입술을 삐죽이며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반갑지 않은가 보죠? 제가 고집 피워서 그 아이들을 시비로 삼았으니…….”
“아마 검인보에 놔두었어도 어떻게든 이곳으로 왔을 것이오. 그 일에 대해선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벽여령이 좌소천의 가슴을 바라보더니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독은 완전히 몰아냈어요?”
“걱정 마시오,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가슴에 머물렀던 벽여령의 시선이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이제부터 제가 시비 대신 있을게요.”
뜻밖의 말에 좌소천의 눈이 커졌다.
“벽 소저가? 그건 아니 될 말이오. 보주께서 아시면…….”
벽여령이 피식 웃었다.
“제가 걱정하고 있으니까, 황파에 가보라고 등을 떠미신 분이 누군지 아세요?”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 모르니…….”
“아마 다 좋아할 거예요.”
벽여령이 눈을 반짝이며 바라본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온 듯하다.
하긴 여인의 몸으로 그런 말을 꺼냈다는 것부터가 어지간한 각오가 없으면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거부하면 입을 연 벽여령만 창피한 마음일 터. 좌소천은 두 손을 드는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자신도 벽여령이 싫지 않았다. 벽여령을 보면 자꾸만 소영령 생각이 나서 가슴 아픈 것이 마음에 걸릴 뿐.
‘후우, 대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려고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구포방이 전력을 기울여서 그녀를 찾고 있다.
거기다 천이당의 호연금에게도 소영령에 대한 것을 부탁했고, 나름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그녀에 대한 소식은 감감무소식이다.
‘미려 누님의 말대로 개방에도 부탁을 해야 하나?’
부탁을 하다 보면 그만큼 자신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또한 빚이 쌓인다. 하기에 아직은 개방을 찾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들에게도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
만월평에 눌러 앉은 벽여령은 정말로 시비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그녀의 신분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시비로 보지 않았다.
대신 좌소천을 수상한(?) 눈으로 보며 수군댔다.
―혹시 말이야. 검인보에 갔을 때…….
―저 정도면 벌써 진행이 되었다는 말인데…….
―내년 봄쯤에 아기씨를 볼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게 벽여령이 만월평에 온 지 나흘 후, 악양에 가 있던 장하경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구포봉의 서신을 지닌 채.
서신을 받아서 펼쳐 본지 일각 후. 좌소천이 고개를 들었다.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광한방이 장사로 가는 구포방의 상선을 탈취하고는 상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죽였다고 한다. 동정호의 수적들이 행한 일처럼 꾸며서.
죽은 사람은 모두 열두 명.
정말 수적들이 저지른 일이었다면 구포봉이 장하경을 시켜서 서신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도쯤이야 자신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을 테니까.
문제는 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광한방이라는 것이다.
죽은 사람들에게는 안 된 이야기지만, 내심 바라던 상황이었다.
“방주께서는 뭐라 하셨습니까?”
장하경이 머뭇거리더니 솔직히 말했다.
“똥구덩이에 스스로 대가리를 밀어 넣은 놈들이라고 하셨습니다.”
“훗, 그분다운 말이군요.”
구포방이 호남을 장악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광한방이다. 하지만 마땅한 명분이 없어서 지켜보고만 있던 차였다.
그런데 그들이 먼저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법.
더구나 우기가 닥쳐서 당분간은 자리를 비워도 될 만큼 시간도 충분했다.
“제가 직접 그들을 똥구덩이에 밀어 넣을 겁니다. 가서 그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장하경이 힐끔 좌소천을 바라보고는 씩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공자.”
좌소천은 계획보다 며칠 빨리 소수의 고수들만 대동한 채 만월평을 나섰다.
벽여령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를 손녀처럼 대하는 네 노인이 있으니까.
더구나 그녀는 공손양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큼 머리가 뛰어난 여인.
좌소천은 부담 없이 공손양마저 대동했다.
겉으로 알려진 목적은 지부 순찰.
그러나 그 안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또 다른 목적이 숨겨져 있었다.
한 달간의 외유.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이면 강호가 어떻게 변할지,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5장 동정호(洞庭湖)에 부는 바람
1
먹구름이 잔뜩 낀 것이 하늘에 먹물을 부어놓은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이미 남쪽에서는 우기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섬서성은 간간이 비가 내리긴 해도 아직 우기라 할 만큼의 비는 쏟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축축한 바람이 부는 유월 말.
어둑한 하늘 아래 일단의 무리들이 남정현 남쪽 홍묘(紅廟) 근처의 영음사로 들어섰다.
인원은 열 명이 조금 넘는 정도.
그들은 사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안쪽의 관음전으로 향했다.
관음전의 뒤쪽에는 제법 큰 동굴이 있었는데, 그들은 그곳을 잘 알고 있는지 망설이지 않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양쪽에 횃불이 꽂혀 있는 동굴로 이십여 장을 들어가자 광장이 나왔다.
그곳에는 이미 삼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이 광장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나직하면서도 엄숙한 외침이 동굴을 울렸다.
“신녀를 뵈옵니다.”
선두에 섰던 자가 채양이 넓고 깊이가 깊은 모자를 벗었다. 순간 긴 머리가 출렁이고, 백색 면사가 드러났다.
그녀였다, 신녀!
마침내 정한궁의 여인들이 소리 소문 없이 한중의 코밑까지 다가온 것이다.
2
밤이 깊을 무렵, 중년의 회의인 셋이 한중의 양가장을 찾아왔다.
순우무종은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세 회의인을 보고 얼굴이 굳었다.
그들이 누군지 아는 것이다.
‘마침내 천해가 열린 것인가?’
천해의 십암(十暗).
사사를 제외하고 천해에서 가장 강하다는 열 사람 중 셋이 한꺼번에 나왔다.
오전에 도착한 이백 명의 정예가 지원 무사의 전부인 줄 알고 있었던 그로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인 일이십니까?”
세 회의인 중 얼굴이 거무스름한 자가 고저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주의 청이 있었다고 하더군. 신녀와 늙은이 등 주력은 우리가 맡을 테니, 자네는 나머지를 책임지도록 하게.”
순우무종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들에게는 반대라는 것이 소용없었다.
“그렇게 하지요. 한데, 천해가 완전히 열린 것입니까?”
“거기에 대해선 어떤 말도 할 수 없네. 자네가 이해하도록.”
거의 강압에 가까운 말투.
순우무종은 떫은 감을 베어 문 심정이면서도 별다른 말 없이 몸을 돌렸다.
‘흥! 자신들이 종가(宗家)라 이거지? 웃기는 놈들. 어둠 속에서만 산 놈들이 세상에 대해 뭘 안다고?’
십암 중 셋째인 흑암은 몸을 돌리는 순우무종의 입술이 비틀리는 것을 보고 조소를 베어 물었다.
‘건방진 놈. 네놈이 어찌 천해의 진실을 알겠느냐? 가주의 아들이라고 해서 겨우 겉만 경험한 놈이.’
삼백 년 전까지만 해도 천외천가는 천해에 들여보낼 특별한 기재들을 찾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특별한 자질을 지닌 아이들이 어디 강가의 돌멩이처럼 흔하던가?
일 년에 일이십 명, 때로는 열 명이 못 되는 해도 있었다.
그중 천해의 무공을 익히다 죽어가는 아이가 반이 넘었으니, 자연 천해의 인원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사이 천외천가는 천해에서 반려된 아이들을 길러 꾸준히 힘을 키웠고, 그 덕에 이제는 천해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가주의 아들이라는 놈이 감히 십암 앞에서 먼저 몸을 돌릴 정도로.
‘착각하지 마라, 어린놈. 아무리 발버둥 쳐도 천해의 가신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네놈들도 곧 알게 될 테니까. 후후후후…….’
3
구름이 짙어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밤.
영음사의 뒷문을 통해서 여인들이 빠져나갔다.
모두 사백에 가까운 여인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영음사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함을 유지했다.
“부디 한 서린 여인들의 원을 풀어주시길.”
영음사 주지인 정해 사태의 인사에 신녀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이 이승에서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는 제자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세요.”
“나무아미타불, 이미 준비를 다 해놓았습니다, 신녀.”
천하에는 정한궁의 여인들이 세운 사찰만도 십여 곳에 달했다.
한이 쌓여 비구니가 된 여인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러한 사찰에서는 죽어간 정한궁의 여인들을 위해 왕생극락을 빌어주었다.
영음사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다.
신녀는 정해 사태가 합장하는 것을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서 한령파파와 함께 영음사로 출발했다.
한중까지는 오십 리. 조심해서 간다고 해도 두 시진이면 도착할 것이었다.
4
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첫 번째 전서에 적힌 말대로라면 그리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사냥꾼 하나가, 채양이 달린 모자를 쓴 사람들 서넛이 산길을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훑듯이 전서를 읽어가던 손자기의 손이 어느 순간에 멈칫했다.
“응?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