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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03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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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3화

 

103화

 

 

 

 

 

 

하지만 최근의 강호 상황으로 인해 관에 비상이 걸린 상태였다. 당장 귀찮게 할 것이 뻔했다.

 

어린 계집아이 하나 품어보자고 터전을 떠날 수는 없는 일.

 

“쪼그만 놈이 성깔은 있어서……. 이놈아, 누가 네 동생을 잡아먹는다고 했냐? 그냥 하루만 데리고 놀다 돌려준다고 했잖아?”

 

소년은 이를 악다문 채 빼빼 마른 장한을 쏘아보았다.

 

“나를 죽이기 전까지는 못 데려가!”

 

그때 홍려운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서 그들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뒤늦게 홍려운의 등장을 눈치 챈 장한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거, 어지간하면 그냥 가쇼.”

 

얼굴에 곰보 자국이 가득한 장한이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 두툼한 주둥이를 열었다.

 

순간 홍려운의 발걸음이 빨라지는가 싶더니, 넓적한 도면이 도집째 곰보장한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퍽!

 

“쿠욱!”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른 채 곰보장한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장한들이 홍려운 뒤쪽 저만치에 서서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무사들을 발견하고 주춤주춤 물러섰다.

 

마차에 조기(弔旗)가 꽂혀 있고, 모든 무사들이 조의(弔衣)인 듯 보이는 흑의를 입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예사 일행이 아닌 듯 느껴졌다.

 

그때 홍려운이 소년에게 물었다.

 

“꼬마야, 이놈들에게 몇 대나 맞았냐?”

 

소년은 홍려운을 올려다보고는 입술에 묻은 피를 쓱 닦았다.

 

“저와 동생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맞은 것은, 훗날 저에게 힘이 생겼을 때 제가 직접 갚아줄 것입니다. 협사께선 거기까지 신경 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눈에선 독기가 흐르는데 말투는 정중하다. 제대로 배웠다는 말.

 

하지만 홍려운도 그냥 물러서지는 않았다.

 

“그래? 그럼 이제부터 너와 상관없는 일이니 저만치 가서 동생을 돌봐주어라.”

 

홍려운도 이자광만 아니라면 어디 가서도 빠지지 않는 덩치였다. 거기다 조금 전의 전광석화 같은 손놀림은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고.

 

그런 홍려운이 고개를 돌리자 장한들이 잔뜩 긴장한 채 무기에 손을 얹었다.

 

관추릉과 언자홍이 뒤를 막고 있어서 도망갈 수도 없는 상황.

 

뺨에 커다란 점이 박힌 자가 발악하듯이 소리쳤다.

 

“우린 흑사문의 무사들이오!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도 우리를 건드려 봐야 재미없을 것이오!”

 

홍려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깨를 들썩였다.

 

“그래? 미처 몰랐군!”

 

동시에 대뜸 칼을 들어 세 장한을 향해 휘둘렀다.

 

휘이잉!

 

빡! 빠박!

 

“아이고!”

 

“우리는 흑사문……. 허걱!”

 

차라리 잘못했다고 빌었으면 몇 대로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흑사문의 이름을 꺼내 위협하려 한 덕에 홍려운의 타작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거기다 도망치려 하면 관추릉과 언자홍이 엉덩이를 차서 밀어 넣었다. 홍려운은 그저 가만히 서서 그들을 후려치기만 하면 되었다.

 

“뭐? 하루만 가지고 놀아? 이놈의 새끼들, 평생 그 짓을 못하게 만들어주마!”

 

 

 

한편 마부석 옆에 앉아 있던 좌소천은 물끄러미 상황을 지켜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소년이 돌을 들고 대항하는 것을 보자 아련히 옛날 생각이 났다.

 

‘나도 정 급하면 그랬지.’

 

정당하지 못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에게는 정당함이 최선이 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 지켜야 할 것이 우선이었다.

 

그때 자신은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고 싶어서 돌을 들었다.

 

그리고 저 소년은 동생을 지키고자 돌을 들었다.

 

“홍 위사.”

 

마차가 그들과 가까워지자 좌소천이 홍려운을 불렀다.

 

씩씩거리며, 바닥을 박박 기는 장한들을 두들겨 패던 홍려운의 손길이 멎었다.

 

홱 돌아선 홍려운이 도를 거꾸로 쥔 채 허리를 꺾었다.

 

“예, 단주!”

 

“두 사람은 저 쓰레기들을 치우고, 홍 위사는 그 소년과 소녀를 데려오시오.”

 

좌소천의 말에 소년이 고개를 들어 마차를 바라보았다.

 

조기가 내걸린 마차의 마부석에 청년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의 한마디에 무지막지하게 보이는 홍려운이 극상의 예를 취하는 것이 아닌가.

 

나이는 어리지만 무가에서 자란 그다.

 

자신이 아는 한, 홍려운이나 조용히 서서 장한들의 엉덩이를 걷어차던 두 사람 모두 일류고수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말 한마디로 부리는 청년이 자신을 부른다.

 

소년은 뒤에 앉아 있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가자, 연홍아.”

 

소녀가 엉거주춤 일어서며 소년의 옷자락을 잡았다.

 

모든 결정을 소년에게 맡긴 듯한 모습이었다.

 

 

 

소년과 소녀는 멀리서 온 듯했다. 옷이 지저분한데다 여기저기 찢긴 것이 상당한 고생을 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조금 전의 말투나 찢긴 옷이 좋은 옷감인 걸로 봐서 제법 사는 집안의 자식 같았다.

 

“이 근처에 사는 것 같지는 않은데, 어디서 왔지?”

 

좌소천의 담담한 질문에 소년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녀가 슬며시 소년의 옷을 잡아당기더니, 소년이 고개를 돌리자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이 눈살을 찌푸리고는 하는 수 없다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무당산 근처에서 왔습니다.”

 

“일행은?”

 

“저희 둘이 왔습니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단둘이서 천 리도 넘는 길을 왔다는 말에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뒤의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던 네 노인도 놀란 듯했다.

 

좌소천의 눈이 소년을 직시했다.

 

어린 소년과 소녀가 집을 떠나 천 리 길을 갈 일이 뭐가 있을까. 집안이 그만한 일을 당했기 때문일 것이 아니겠는가.

 

“어디를 가던 길이냐?”

 

소년이 머뭇거리자, 소녀가 소년의 옷을 다시 한번 잡아당겼다. 왠지 간절한 눈빛이었다.

 

“갈 곳은 있느냐?”

 

못 본 척 좌소천이 마저 물었다.

 

소년이 찢어진 입술을 질겅거리며 잇새로 대답했다.

 

“강서 남창에 가려고…….”

 

그런데 소녀가 모기 날갯짓만 한 소리로 중얼댔다.

 

“거기 가도 숙부가 계시는지 모른다면서…….”

 

“어쩔 수 없잖아. 친척이라고는 그분뿐인데.”

 

소년과 소녀의 대화를 듣던 좌소천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곳까지 가려면 온 만큼 더 가야 할 것이다. 어린 여동생과 함께 가기에는 무리인 거리지. 거기 말고는 갈 곳이 없느냐?”

 

소년이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곳까지 온 것만도 천행이었다. 거기다 이제는 떠나올 때 가지고 왔던 패물까지 다 떨어져서 구걸을 하든지 일을 해서 벌어야 할 판이었다.

 

혼자라면 끝까지 남창으로 갈지 몰랐다. 하지만 여동생과 함께 가기에는 너무 멀고 험한 길이었다.

 

힘없는 목소리가 소년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없… 습니다.”

 

“그래, 남창으로 갈 것이냐?”

 

소년의 고개가 처음으로 숙여졌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뒤의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던 노인들이 소리쳤다.

 

“소천아, 그 아이들을 우리 마차에 태우면 어떻겠냐?”

 

좌소천이 가만히 웃으며 소년을 향해 물었다.

 

“어떠냐. 우리와 함께 가겠느냐?”

 

“어디로……?”

 

마차에는 제천신궁의 표기 대신 조기만 걸려 있다. 게다가 운구를 하는 터라 모두가 흑의를 입고 있는 상태. 모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지금 제천신궁으로 가는 중이다. 저 뒤에 있는 마차에 동생과 함께 타거라.”

 

소년이 한껏 커진 눈으로 좌소천을 올려다봤다.

 

그러고는 체념한 듯 작은 손을 들어서 포권을 취했다.

 

“저는 단리운강이라 합니다.”

 

“좌소천이다.”

 

소녀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이름을 말했다.

 

“소녀는 단리연홍이에요.”

 

소년과 소녀는 인사를 하고 쭈뼛거리며 마차로 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좌소천의 눈빛이 기이하게 빛났다.

 

무당 근처에서 왔다 했다. 거기다 집안이 혈겁을 당한 듯 보인다.

 

‘단리 성의 두 아이……. 설마 청봉에서……?’

 

 

 

 

 

 

 

2장 술 한잔, 진실, 그리고 죽음

 

 

 

 

 

1

 

 

 

제천신궁의 거대한 정문이 활짝 열렸다.

 

드르르륵.

 

마차 두 대를 앞세운 채 흑의를 입은 무사들이 들어선다.

 

일천 무사가 양편으로 늘어선 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자객에게 당했다 해도 궁주인 제천무제의 아우인 혁련무성이기에, 호북 총지부장이기에 무사들은 예로서 시신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 대부분은 시신이 실린 마차보다 좌소천을 향했다.

 

혁련무천은 내궁의 입구에 나와 있었다.

 

좌소천이 마차에서 내리자 혁련무천이 앞으로 다가왔다.

 

“수고했다. 아우의 시신을 안으로 옮겨라.”

 

 

 

시신이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장례 절차가 시작되었다.

 

수천 군웅들이 향을 피우고 사자의 명복을 빌었다.

 

장례는 닷새에 걸쳐서 장엄하게 치러졌다.

 

좌소천은 첫날만 장례 의식에 참석하고, 이후에는 패천단에 처박혀서 지냈다.

 

패천단은 떠날 때와 다름없이 이백 명 정도의 무사가 넓은 패천단을 지키고 있었다.

 

더 이상의 단원을 뽑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좌소천도 익히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장례가 끝나기 전까지 묵묵히 자신을 가다듬으며 오랜만에 여유 있는 시간을 보냈다.

 

좌소천의 모습이 며칠간 보이지 않는데도 혁련무천은 모른 척, 그에 대해 일언반구도 꺼내지 않았다. 

 

어쩌면 좌소천의 모습이 내궁에 보이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혁련무성의 시신이 제천신궁에 들어온 지 닷새.

 

무거운 분위기 속에 장례식이 끝났다.

 

다음날, 궁의 분위기가 조용히 가라앉자 좌소천은 패천단을 나섰다. 혁련무천이 부른 것이다.

 

 

 

“명령서를 읽어보았겠지만, 앞으로 네가 호북 총지부를 이끌어줘야겠다.”

 

웃음 띤 혁련무천의 목소리다. 혁련무성의 죽음에 대한 슬픔은 이미 안개처럼 스러진 후였다.

 

“예, 궁주.”

 

“그런데 패천단을 그대로 호북에 놔둘 것이더냐?”

 

“전마성이 잠시 물러갔다 하나 언제 검을 들이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당분간은 호북에 놔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사공은환이 끼어들었다.

 

“제 생각도 좌 단주와 같사옵니다, 주군.”

 

“흠, 그래? 좋다. 그럼 잠시 패천단을 호북에 놔두기로 하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혁련무천의 눈이 좌소천을 향했다.

 

찰나간, 눈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갈등이 일다 스러졌다.

 

―절호의 기회야! 후환이 될지도 모르는 좌소천을 이 자리에서 죽여라, 혁련무천!

 

―내가 누구냐? 천하의 제천무제가 아니더냐? 저따위 어린아이가 무서워 남에게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할 수는 없어!

 

내면에서 두 가지 마음이 팽팽하게 충돌했다.

 

혁련무천은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에 분노가 일었다.

 

그렇다고 좌소천 앞에서 그런 마음을 보일 수는 없는 일. 그는 더욱 온화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태군사의 아들을 믿지 못한다면 누굴 믿는다는 말이냐? 잘하리라 믿고 맡기겠다, 소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궁주!”

 

고개를 숙이는 좌소천의 눈빛도 깊게 침잠되었다.

 

혁련무천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그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순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분명했다.

 

갈등의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

 

마침내 혁련무천이 자신을 꼭두각시가 아닌 상대로 여기고 있다는 것!

 

“언제 떠날 것이냐?”

 

“온 김에 몇 가지 일을 보고 사흘 후에 떠날까 합니다.”

 

“필요한 것이 있거나 할 말이 있으면 가기 전에 말하도록 해라.”

 

혁련무천은 제천신궁의 주인으로서 여유를 보이려 했다.

 

좌소천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물어볼 말이 있으니까.

 

“예, 궁주.”

 

짧은 만남이었다.

 

전이라면 많은 사람 앞에서 장황한 칭찬과 함께 총지부장 임명을 했을 것이었다. 그래야 제천신궁의 무사들이 열광하며 제천신궁의 영광을 외쳤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 임명식에는 사람들을 부르지 않았다.

 

혁련무성의 장례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랬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그렇게 해봐야 좌소천의 위명만 높여주는 셈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좌소천으로선 상관없는 일이었다. 덕분에 혁련무천의 마음을 알았으니, 그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제천전을 나온 좌소천은 곧바로 원로원으로 향했다.

 

단리운강과 단리연홍이 동천옹과 무영자의 수발을 들고 있었다. 그 아이들에게 물어볼 말이 있었다.

 

전에 물어볼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때만 해도 두려움에 질려서 가슴이 닫혀 있던 아이들이었다.

 

‘지금쯤은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어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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