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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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01화
101화
1장 폭풍(暴風)을 실은 마차는 신궁(神宮)으로 향하고
1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벌떡벌떡 일어섰다.
위지승정이 조용히 웃으며 동천옹을 슬쩍 바라보았다.
“저 어르신의 말에 너무 기분 상해하지 말게나. 나에게도 그리 말하는 분이니까.”
“예?”
장만학의 표정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검왕에게도 욕을 하는 사람. 그 말뜻을 깨달은 그는 다리의 힘이 빠졌다.
동천옹이 위지승정을 흘겨보며 입을 삐죽였다.
“좀 놔두지 그러나? 데리고 놀기 딱 좋게 보이는데.”
무영자는 아무런 욕심도 없다는 듯 씨익 웃으며 엽평을 가리켰다.
“나는 이놈이면 되네.”
그가 웃자 온몸에서 어른거리던 검은 아지랑이가 덩실거리며 출렁였다.
순간 어렴풋이 무영자의 정체를 눈치 챈 엽평의 얼굴이 불쌍해 보일 정도로 하얗게 변했다.
“흐, 흑살신… 어르신?”
“우흐흐흐…….”
소란이 일순간에 잠잠해졌다.
검왕에 이어 무영자가 출현했다. 거기다 아직 두 노인의 정체는 밝혀지지도 않은 상태다.
하지만 두 노인 역시 검왕이나 무영자에 못지않은 신분이 확실해 보인다.
누가 감히 그들 앞에서 이러쿵저러쿵할 수 있단 말인가!
좌소천의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잔잔한 미소가 맺혔다.
‘훗, 확실히 제 역할은 해주시는군.’
따로 부탁하지도 않았고, 굳이 부탁할 것도 없었다.
알아서 나서주니까.
덕분에 신검장에 이어 황파의 일도 큰 마찰 없이 해결될 듯했다.
그 정도면 동행한 보람은 충분했다.
그는 장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지자, 낭랑한 목소리로 마지막 정점을 찍었다.
“더 이상은 소란을 용납하지 않겠소. 방금 벽 지부장님과 관 대협의 말씀도 있었소만, 총지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피를 보는 것도 서슴지 않을 것이오. 누구든, 그것이 불만이면 본 궁에서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든지, 이곳을 떠나든지 하시오!”
그것으로 호북 총지부의 모든 지휘권이 좌소천의 손바닥에 떨어졌다.
2
어스름이 깔린 새벽녘.
암흑에서 튀어나온 듯 묵빛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철탑처럼 우뚝 서서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으로 한곳을 응시했다.
언뜻 보기로는 평범한 장원에 불과했다. 전체 넓이는 사오천 평 정도. 건물은 열 개가 조금 넘을까 싶을 정도였다.
“몇 명이나 된다고 했지?”
옆에 공손한 자세로 서 있던 장한이 즉시 대답했다.
“이백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혼천단의 도착 예정 시간은?”
“일각 안에 도착할 것입니다, 부령주.”
“일각이라… 그럼 모두 오백인가?”
“솔직히 속하의 생각으로는, 그렇게 많은 인원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중년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판단과 결정은 네가 내리는 것이 아니다. 너는 따르기만 하면 된다.”
장한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속하가 그만 실수를…….”
“경각심을 가지라는 뜻에서 한 번만 말해주겠다. 저기에 있는 계집들에 의해 죽은 사람만 일천에 이른다. 비록 대부분이 중소문파의 제자라 하나 일천은 가볍게 말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다. 더구나 무당이 당했다.”
나직한 어조로 말하던 중년인이 고개를 돌려서 장한을 바라보았다.
“무당의 장로급 고수들조차 계집들을 막지 못해서 세 명이 죽고 십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너는 우리 오백이 무당을 칠 경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보느냐?”
장한은 땀만 뚝뚝 흘리며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때 중년인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본인이 굳이 만사령에서 서른의 아이들을 데려고 나온 것은 그 때문이다. 명심해라. 이기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
“예, 부령주.”
* * *
그 시각.
장원 안에서는 두 여인이 마주앉아 있었다.
“천외천가인가요?”
“그럴 것이오, 신녀.”
“일이 이상하게 되었군요. 우리의 목표인 한중의 양가장은 천외천가에 무릎을 꿇고, 천외천가는 우리를 치려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니…….”
“차라리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소, 신녀?”
신녀의 눈이 한령파파를 직시했다.
면사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인데도 한령파파는 한기가 느껴져 눈이 절로 내려갔다.
“이미 늦었어요. 저들은 절대 우리를 순순히 보내주려 하지 않을 거예요.”
“저들도 막대한 손해를 입을 텐데, 굳이 막으려 하겠소?”
“아마 좋은 기회라 생각할지도 몰라요. 우리를 이긴다면 적어도 두 가지를 얻게 되니까요.”
“두 가지라니요?”
“하나는 자신들의 힘을 과시함으로서 섬서의 한수 이남을 힘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무림맹이 공적으로 선언한 본 궁을 친 대가로 자신들이 태백산에서 나온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물론 부수적인 이득이 더 있을 테지만, 그것은 모두가 그들이 정한궁을 이긴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였다.
“잊지 마세요. 피해가 많아지면 당분간 정한의 발걸음도 멈춰질 수밖에 없어요.”
“어찌 그걸 모르겠소, 신녀.”
신녀의 고개가 살짝 들렸다. 그녀가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 오연한 태도로 말했다.
“나는 오히려 이 기회에 본 궁의 위엄을 천하에 알릴 생각이에요. 우리가 무당에 이어 천외천가의 공격을 물리친다면 누구도 감히 본 궁을 업신여기지 못할 거예요.”
승리의 이득은 천외천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한궁이 이길 경우, 정한궁도 최소한 한 가지 이득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천외천가와의 정면대결을 마다하지 않으려는 것은 꼭 그러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이상했다.
천외천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친다. 불꽃조차 얼려 버릴 정도의 분노가!
‘전생에 천외천가와 철천지원수지간이 아니었을까? 아니면……?’
신녀의 몸에서 극한의 한기가 흐르자, 한령파파는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대항했다.
‘설마 신녀가 천외천가와의 일에 대해서 기억하는 거 아니겠지?’
표정이나 말하는 것을 봐선 아닌 듯했다. 다만 본능으로 뭔가를 느끼고 분노하는 듯 보였다.
‘하긴 어차피 나 역시도 천외천가와는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운명이 아니던가?’
아직은 힘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참고 있을 뿐, 그녀의 마지막 목표가 바로 천외천가다. 언젠가는 피로써 원한을 갚아야 할 곳.
하기에 한령파파는 신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신녀의 기운을 잠재우는 것이 먼저, 이를 지그시 악문 한령파파는 혼신의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
“으음. 알겠소, 신녀. 그 일에 대해선 너무 걱정 마시구려.”
잠시 후 면사가 흔들리고 한숨처럼 느껴지는 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하아아…….”
순간 서서히 한기가 가라앉는가 싶더니 신녀의 입이 다시 열렸다.
“본 궁의 제자들은 모두 모였나요, 파파?”
“거의 다 모였소이다.”
“제가 지시한 대로 이동했겠죠?”
언뜻 한령파파의 주름진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그 말을 듣고서야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
“물론이오. 이백의 제자는 신녀의 명대로 철저히 모습을 감추고 움직였지요.”
신녀의 입에서도 한기가 조금은 가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적들은 우리의 인원을 정확히 모르고 있을 거예요.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승부의 결과도 확실해질 것인 만큼, 놈들과 격전이 벌어지면 그 차이를 철저히 이용하세요.”
“과연, 과연 신녀시오.”
이각 후, 어스름이 거의 다 물러간 시각.
“계집이라 생각하지 마라! 칼에 인정을 두지 말고 철저히 죽여라! 가자!”
흑의중년인의 명령이 떨어진 순간, 오백수십 명의 무사가 장원을 향해 바람처럼 치달려갔다.
일순간에 장원에 접근한 그들은, 고요함에 묻힌 장원의 담장을 소리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나직한 비명과 신음과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새벽의 대기를 가르고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전장에서나 터져 나오는, ‘적이다! 적들을 죽여라! 막아라!’ 하는 그 흔한 외침은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장원 전체를 짓누르는 살기에 장원의 쥐새끼들도 구멍을 찾아 고개를 처박았다.
처음에는 만사령과 혼천단으로 구성된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정한궁의 여인들을 몰아치는 듯했다.
그러나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상황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장원에 모두 진입하자, 마침내 신녀가 한령파파와 함께 나타난 것이다.
신녀의 한천빙백소수공은 너무도 가공할 위력을 발휘했다.
그녀의 일 장 곁에 접근한 무사들은 제대로 공격도 못한 채 혈맥이 얼어붙어서 몸이 굳었다.
회오리처럼 밀려가는 하얀 백색 기운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무사들이 얼음기둥 무너지듯이 쓰러졌다.
문제는 직격당한 무사들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녀의 손길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서리가 내리고, 뿌연 서리가 전면 삼 장을 가공할 한기로 뒤덮었다.
갑작스런 대기의 변화는 천외천가 무사들의 움직임을 제어했다.
일류고수들도 움직임이 둔해지면 삼류무사나 마찬가지였다.
일순간에 수십 명이 정한궁 여인들의 손에 죽어갔다.
“모두 신녀의 곁에서 멀어져라!”
대경한 만사령의 부령주 호릉하가 소리치고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한령파파가 그를 놔주지 않았다.
“클클클, 너는 노신과 놀아보자꾸나!”
한령파파의 무공도 호릉하에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였다.
호릉하는 네 명의 만사령 수하와 합공을 하고서도 한령파파의 지팡이를 겨우 막아내며 평수를 이룰 수 있을 뿐이었다.
‘설마 이 정도였다니! 본 가에서 이들을 너무나 몰랐구나!’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었다.
이제는 신녀를 어떻게 막느냐 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호릉하는 뒤로 물러서며 만사령의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이 이 노파를 막아라! 내가 신녀를 막겠다!”
그의 외침에 다시 다섯 명의 만사령 무사가 한령파파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틈에 몸을 뺀 호릉하가 신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신녀의 한천빙백소수공은 그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신녀는 원인 모를 분노로 인해 구성의 내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후우우웅!
하얀 서리가 휘돌며 백색 창날처럼 날아들자 호릉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마, 맙소사!’
태양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소음이 잦아들고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장원을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는 오백이 넘는 숫자였다. 그러나 마지막 무사가 나와 서쪽을 향해 달려갈 즈음, 그들의 숫자는 백이 조금 넘는 정도에 불과했다.
호릉하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하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서 신녀의 한천빙백소수공을 단신으로 막다가 정원 한가운데 뻣뻣이 굳은 채로 죽었다.
그날, 섬서를 진동시키는 싸움의 서막이 올랐다!
또 하나의 폭풍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3
아침이 되자 공손양이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삼십여 명의 이름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이자들만 해결하면 황파는 저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좌소천은 종이에 적힌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았다.
적힌 이름 중 십여 명은 저녁 회의 때 나왔던 자들로, 거의 모두가 자신의 말에 반대했던 자들이었다.
“현재 우리 쪽 무사의 배치 상태는 어떻소?”
“저희 패천단이 주요 전각의 경비를 맡고 있습니다. 단주께서 지휘권을 잡았다는 것이 알려진 터라, 누구도 패천단의 움직임을 막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밀천단의 비찰에 대한 조사는?”
“놈들이 다급해지면 비공식적으로 전서구를 날릴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해서 전서구 관리하는 곳을 철저히 감시하면서, 패천단의 무사들에게 몰래 성 밖으로 날아가는 전서구에 대한 것을 주시하라 일러두었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좌소천은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려놓고 공손양을 주시했다.
“총지부의 무사들 반응은 어떻소?”
공손양이 조용히 웃었다.
“본래 황파의 호북 총지부 전체 무사들 중 제천신궁에서 파견 나온 사람은 삼백 정도에 불과합니다. 나머지는 각 지부에서 모여든 자들이거나, 외부에서 영입된 사람들이지요.”
그나마도 제천신궁에서 파견 나온 무사 중 반 가까이가 잠강과 천문으로 가 있는 상황이다.
남은 자는 백오십 정도.
언뜻 말을 잇는 공손양의 표정에 가벼운 웃음이 떠올랐다.
“한데… 제천신궁에서 나오 자들이 그동안 제법 위세를 부린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