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4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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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40화
140화
좌소천은 머쓱한 표정으로 벽여령을 돌아다보았다.
벽여령은 그 말에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만 만지작거렸다.
“부탁하겠습니다, 어르신.”
“글쎄, 걱정 말라니까?”
무영자도 한마디 했다.
“내가 네 마누라 방의 대들보 위에서 자면 어떤 놈도 건드리지 못할 텐데. 흐흐흐. 어때, 내가 남을까?”
그러다 동천옹에게 한 소리 들었다.
“이제 노망까지 들었군. 저래서 늙어도 곱게 늙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거라니까. 쯔쯔쯔…….”
6장 번천지로(翻天之路)
1
무승관을 넘을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부슬비는 신양성에 도착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챙이 넓은 죽립을 쓴 좌소천은 도유관 등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신양성으로 들어섰다.
본래 무인들이 많은데다가 비가 내려서 그런지 좌소천에게 눈을 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는 뻥 뚫린 대로를 통해 곧장 북성로의 성화객잔으로 향했다.
그곳은 제천신궁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서 한 달 전에 공손양이 매입한 곳이었다. 물론 주인과 점소이도 모두 공손양이 심어놓은 패천단 사람들이었다.
남쪽이 아닌 북쪽에 비밀 거점을 마련한 것은 남쪽을 경계하는 혁련무천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좌소천이 곧바로 제천신궁으로 가지 않고 신양성에 들어온 이유는,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능야산의 형제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일각 후.
좌소천이 북성로로 들어섰을 때였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한 사람이 중얼거리며 스치듯 지나간다.
좌소천은 삼 장여 앞을 걷는 그를 따라갔다. 이미 자신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사람을 보낸 듯했다.
그렇게 북성로가 끝나갈 즈음, 영웅루라는 커다란 주루가 보였다.
앞서가던 자는 영웅루의 담을 돌아서 폭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좌소천이 그 뒤를 따라가고, 도유관 등도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뒤를 따라갔다.
다행히 그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엿보는 자는 없었다.
골목 안에는 십여 개의 술집과 객잔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성화객잔은 그 골목의 맨 끝에 있었다.
좌소천 일행을 이끈 자가 입구에 서 있더니, 좌소천이 성화객잔으로 들어가자마자 자연스럽게 한쪽으로 비켜났다.
대신 문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점소이가 다가왔다. 그는 잘 아는 사람을 만난 듯 말하면서 좌소천을 객잔의 뒤에 있는 객방 쪽으로 안내했다.
“어이구, 이제 오셨습니까? 저를 따라 오시지요. 손님들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요.”
당연히 그럴 것이었다. 아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일 터였다.
며칠 늦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늦은 이유가 문제였다.
좌소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점소이에게 물었다.
“나에게 온 소식은 없소?”
“왜 없겠습니까요? 일단 방으로 가시지요.”
점소이는 일반 객방을 지나서 별원으로 좌소천을 안내했다. 별원은 일반 손님들이 머무는 곳에서 외따로이 떨어져 있었다.
좌소천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조금 늦었소.”
모두가 패천단의 무복을 입고 있었다.
능야산의 형제들 역시 흑의를 벗고 패천단의 무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헌원신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패천단의 무복을 입히는 것. 그것도 그들을 성화객잔으로 가도록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단지 옷만 갈아입었을 뿐인데도 그들은 패천단의 무사로서 당당히 제천신궁에 입궁할 자격이 된 것이다. 패천단의 무사 전원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어차피 아무도 없으니까.
그때 도유관과 나머지 사람들도 비에 젖은 모자를 털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좌소천은 그들마저 안으로 들어오자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 시진 후 궁으로 들어갈 거요. 준비는 되었소?”
천하제일세라는 제천신궁의 심장부로 들어가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다.
그러잖아도 바윗덩이 같은 헌원신우의 표정이 쇳덩이처럼 굳어졌다.
“합류할 사람이 있다고 들었네만.”
“오십 리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와 약간의 시차를 두고 궁으로 들어갈 것이니, 그들과 합세해서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헌원신우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그건 그렇고, 대체 누가 그대에게 그런 부상을 입힌 것인가? 정말 싸우다 당한 것인가? 듣기로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던데?”
사람들이 일제히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옆 사람이 쓰러져도 모를 정도로 눈을 빛내면서.
좌소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어서 아직 그 일에 대해선 말할 수 없으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그토록 찾으려 했던 소영령과 싸웠다. 문제는 그녀의 신분이 신녀라는 것이다.
오직 벽여령에게만 말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휘이… 그것참…….”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여기서 말할 것이었다면 이미 검인보에서 말했을 것이고, 자신들에게도 조금은 알려졌을 것이다.
사람들이 실망감을 가득 안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지 반 각. 객잔의 주인이자 패천단의 조장인 석호문이 좌소천 혼자 남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좌소천을 향해 공손한 태도로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 오후까지 진 대주께서 보낸 것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주군.”
제천신궁에 남은 무사를 총괄하는 사람은 구대주 진초산이었다. 그는 단순히 무사들을 관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궁내부의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도 수행하고 있었다.
좌소천은 석호문이 밖으로 나가자 봉투를 열어보았다.
지난 사흘간 그가 보낸 서신은 모두 삼십여 장이나 되었다.
그만큼 꼼꼼하게 살피고 자세히 적었다는 말. 공손양이 그를 적극 추천했는데, 좌소천은 그를 남겨놓은 공손양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장 한장 서신을 읽던 좌소천의 눈이 한곳에 멎은 채 잘게 떨렸다.
“미려 누님이?”
며칠 전 순우무종이 비밀리에 제천신궁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틀 전, 그가 떠날 때 혁련미려까지 데려갔다는 것이었다.
아쉽기만 했다. 손안에 들어온 순우무종을 두 눈 빤히 뜨고 놓친 꼴이 아닌가.
그런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팠다.
검인보에서 내상을 치료하는 사이 혁련미려가 끝내 천외천가로 떠났다. 정략혼의 희생양이 되어서.
“별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러나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당장 쫓아가서 구할 수 없는 이상은 혁련미려의 무사함을 비는 수밖에 없었다.
좌소천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범벅된 표정으로 서신을 넘겼다.
그렇게 석 장의 서신을 넘겼을 때다. 서신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싸늘한 냉소가 맺혔다.
“그랬군.”
혁련미려가 떠나기 이틀 전, 한 여인이 몰래 패천단을 찾아왔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바로 사공은환의 죽음에 대한 걸 소문낸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진초산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그녀를 밖으로 빼돌리려 했지만, 감시가 심해지자 패천단 안에 숨겨놓았다고 한다.
서신을 내려놓은 좌소천의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이 걸렸다.
좌소천은 그녀를 알고 있었다.
밀천단의 시비장 매선. 그녀는 한때 군사부에서 시비로 있던 여인이었다.
‘혁련 백부, 아무래도 하늘은 당신보다 나를 택한 것 같소.’
2
항상 활기에 차있던 제천신궁의 분위기가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연이어 터져 나온 소문의 진원지를 찾는다며 밀천단과 호성당의 무사들이 궁내를 엄밀히 조사하면서부터였다.
더구나 연일 내리는 비에 공기마저 눅눅해지자, 사람들의 마음마저도 가랑비에 젖은 옷처럼 축 처져 버렸다.
좌소천이 제천신궁에 도착했을 즈음, 그러한 분위기는 절정에 달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질 때가 다 되어가는 데도 부슬비는 여전했다.
좌소천은 부슬비를 가슴으로 안은 채 일행들과 함께 제천신궁의 정문을 들어섰다.
공손양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서신을 보낸 대로 이틀이 늦어진 상태다.
호연금이 보내온 전갈에 의하면, 혁련무천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좌소천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러니 지금쯤은 자신이 들어온 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패천단 복장을 한 사십여 명이 정문을 통과하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좌소천 일행을 향했다.
“패천단이잖아?”
“헛! 좌소천 단주다!”
누군가가 좌소천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웅성거림이 이는가 싶더니, 곧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좌소천이 일행과 함께 패천단의 입구에 도착했을 즈음에는 근 일천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위를 가득 메운 상태였다.
그만큼 현재의 제천신궁 분위기가 암울하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좌소천으로 인해 암울한 분위기가 조금 바꾸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듯했다.
좌소천은 패천단원으로 하여금 능야산의 형제들을 쉴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도유관과 함께 집무실에 들어가자 한 사람이 따라 들어왔다.
패천단의 구대주 진초산이었다.
나이 서른다섯의 진초산은 본래 종남의 제자로, 도인이었다가 환속한 무사였다. 그래서 그런지 무사라기보다는 평범한 서생처럼 보이는 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무공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종남의 촉망받던 제자였던 그가 도복을 벗은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서른 무렵, 종남산의 이름 모를 동굴에서 뜻하지 않게 얻은 선배고인의 무공 때문이었다.
처음에 진초산은 종남의 제자 신분을 유지한 채 몰래 그 무공을 익히려 했다.
그러나 그는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무공이 종남의 무공과 상극이었던 것이다.
그 무공을 익힌 지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사형제들이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로선 갈등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사문이냐, 뛰어난 무공이냐.
하지만 어차피 발을 너무 깊숙이 들여놓아서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 그는 결국 무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의 방에 한 장의 서찰만 남겨놓고 떠난 그는 그 후로 종남산의 외진 골짜기에 틀어박혀서 사 년간 그 무공을 익혔다.
그가 세상에 나왔을 즈음,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에서 패천단의 무사를 구한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패천단에 자원했다.
그리고 구대의 대주가 되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소?”
좌소천의 질문에 진초산이 고개를 숙였다.
“지하밀실에 있습니다, 주군. 허락을 받지 않고 지하밀실을 이용한 점,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오, 잘하셨소. 가봅시다.”
지하밀실은 원래가 단주의 수련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단주의 집무실이 있는 전각에 입구가 있었다.
좌소천은 도유관, 진초산과 함께 지하밀실로 들어갔다.
진초산이 지하에 도착해 밀실의 문을 열자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지 마시오. 주군께서 오셨소.”
행여나 놀랄까 봐 진초산이 먼저 매선을 안심시켰다.
“아!”
안에서 매선의 탄성이 터졌다.
좌소천은 진초산의 옆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눈을 파르르 떨며 매선이 다가왔다.
“오랜만이오.”
좌소천이 인사를 하자 매선의 움푹 들어간 눈에 눈물이 맺혔다.
“공자님…….”
3
반 시진 후.
패천단 복장을 한 백수십 명의 무사가 궁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도착한 것을 보고 나서야, 좌소천은 혼자서 패천단을 나섰다.
나서기 전 각 문파의 수장들에게 행동요령을 신신당부한 터였다. 제천전 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면, 그들이 즉시 내궁으로 진입할 것이다.
게다가 제천신궁의 몇몇 간부가 자신과 손발을 맞추기로 했다.
그들 중에는 의외라 할 수 있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과 함께라면 오늘의 일이 결코 불리하게 흐르지만은 않을 듯했다.
‘궁주, 나를 원망하지 마시오.’
수많은 눈이 내궁으로 향하는 좌소천을 주시했다.
그들 중에는 상황을 정확히 아는 자도 있었고, 모르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알던 모르던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소문이 돌았다.
―좌소천이 호북에 세력을 구축했다고 한다.
―제천신궁이 둘로 갈라질지도 모른다 하더라.
―사공은환이 저지른 일을 따지기 위해서 좌소천이 왔다고 한다.
―궁주가 자신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좌소천을 팽시키려고 불렀다고 하더라.
확실한 근거도 없는 온갖 소문이 며칠 사이 제천신궁을 짓누르고 있는 판이었다.
그중에는 공손양이 지시해서 퍼진 소문도 있었고, 혁련무천이 암암리에 퍼뜨린 소문도 있었다.
분명한 것은, 그러한 소문으로 인해서 제천신궁 무사들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다.
좌소천을 성토하는 자들과 옹호하는 자.
둘로 나뉜 마음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도 않은 채 팽팽히 대치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는 것이었다.
내궁으로 들어가자 호성당의 무사들이 도열해서 좌소천을 맞이했다.
좌소천은 묵묵히 그들 사이를 걸어서 제천전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