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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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39화
139화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몸 위의 여인이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그냥 이대로 있어요.”
불구덩이에 빠진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벽여령의 몸도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좌소천은 어쩔 줄 모르고 벽여령의 달아오른 동체를 잡은 채 정신을 일깨웠다.
그런데 정신이 조금 들자,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몸이 의지를 배반했다.
손은 손대로 움직이고, 몸은 몸대로 움직였다.
속으로는 ‘이러면 안 돼’를 외치면서도 그의 몸은 점점 더 환희의 바다를 향해 힘차게 노를 저었다.
그럴수록 벽여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도 커져만 갔다.
처음이 어려웠을 뿐이었다.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세 번째는 좌소천이 움직이면서 힘들 것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머릿속에서 피어나는 환희에 찬 수만 송이 꽃을 보며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벽여령은 등을 돌리고 누운 채 발그레한 얼굴로 죄없는 침상만 긁었다.
그때 죄를 지은 듯한 좌소천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안하오, 벽 낭자.”
“쉿!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래요.”
“하지만 나 때문에…….”
조금 전에 벽여령이 다 설명을 해주었다.
좌소천의 몸에 깃든 한기를 빼내기 위해서 어르신들이 고심 끝에 결정한 일이라는 것. 자신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좌소천의 몸에서 빼낸 한기가 자신에게도 득이 되었다는 것까지.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본의 아니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좌소천은 미안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소.”
벽여령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우윳빛 볼록한 가슴이 이불 밖으로 살짝 드러났다.
좌소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때 벽여령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했다.
“먼저 저를 벽 낭자라고 부르는 것부터 바꿔주세요.”
“알… 겠소, 령… 매.”
소영령과 이름 끝 자가 같다. 그러다 보니 소영령도 령 매고, 벽여령도 령 매다.
좌소천의 눈빛이 아련히 깊어졌다.
좌소천이 자신을 ‘령 매’라 부르면서 아련한 표정을 짓자 벽여령이 눈을 반짝였다.
“그리고 사매에 대해서 이야기해 줘요.”
좌소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벽여령은 물러서지 않고 좌소천을 재촉했다.
“들을 자격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아닌가요?”
흔들리던 좌소천의 눈빛이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이제 벽여령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자신의 가슴에 담긴 이야기를 들을 자격이 되었다는 말이다.
좌소천은 벽여령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채 입을 열었다.
“내 가슴에 소수를 남긴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어르신들은 신녀의 한천빙백소수공 같다고 했어요.”
좌소천의 입술이 잘게 떨렸다.
“맞소. 바로 신녀의 손이 내 가슴을 쳤소.”
“어떻게 신녀가 상공을 찾아온 거죠?”
“그걸 나도 잘 모르겠소.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향해서 기운을 쏘아 보내기에 나가봤는데, 그녀가 강가에서 기다리고 있었소.”
“왜요? 왜 신녀가……?”
좌소천의 눈가에 아픔이 묻어 나왔다.
“나를… 죽이기 위해서 불렀던 거였소. 전날 무당에서 정한궁의 여인들 몇이 나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그 복수를 하려 했나 보오.”
벽여령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여령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신녀를 거론하는 것일까? 그것도 보는 사람조차 아파질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때 문득, 벽여령은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에이, 설마…….’
그래도 설마 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그때 좌소천이 쩍쩍 갈라질 것 같은 입술을 벌리며 말한다.
“그런데… 신녀가 바로… 영령이었소. 나를 죽이려 했던 그녀가…….”
벽여령의 눈이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둥근 가슴이 이불 밖으로 완전히 나왔지만, 그녀는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게 무슨…… 맙소사! 그게 사실……?”
“한탄곡에 떨어질 때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소. 백부께서 돌아가신 걸 보고 충격이 컸던 모양이오. 그런데 아직도 기억을 되찾지 못한 것 같소.”
“어, 어떻게 그런…….”
좌소천은 나직한 목소리로 강가에서 있었던 싸움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령 매를 찾아야 하오. 다행히 심장을 비키기는 했는데, 그래도 강기가 령 매의 옆구리를 관통했소. 지금은 어찌 되었을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벽여령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소리는 내지 않았다. 자신이 우는 소리를 내면 좌소천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3
좌소천이 들것에 실려온 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
날이 밝자 네 노인과 벽수양을 비롯한 십여 명이 좌소천의 방을 찾아갔다.
“험! 일어났느냐?”
동천옹이 헛기침을 하며 묻자, 벽여령이 방문을 열고 발그레한 얼굴로 나섰다.
환한 표정. 동천옹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소천이는?”
“운기하고 계세요.”
“한기는 어떻게 되었느냐?”
“거의 다 제거되었어요. 내일이면 완전히 없어질 것 같아요.”
“그, 그래?”
네 노인과 벽수양의 얼굴이 환해졌다.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뻐했다. 그러나 기뻐하는 뜻이 조금은 달랐다.
‘흐흐흐, 이틀이면 충분히 애를 만들 수 있지…….’
‘쌍둥이면 좋겠는데…….’
네 노인은 주로 그런 생각이었다. 반면에 벽수양은 용을 잡았다는 생각을 했다.
‘용 중에서도 천룡을 잡았어!’
물론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직속무사들과 각지에서 몰려든 간부 급 고수들은, 그저 하늘인 좌소천이 정상을 되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그 시각.
좌소천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본신의 공력을 되찾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여 금라천황공을 운기했다.
한기가 가신 것만으로도 진기를 유동시키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네 노인이 막힌 혈도를 뚫기 위해서 전신혈도의 탁기를 제거했기에 오히려 진기의 흐름은 전보다 더 원활한 상태였다.
더구나 벽수양이 보관하고 있던 영약마저 복용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그런지 몸 안에선 상당한 양의 진기가 들끓었다.
좌소천은 하루 반에 걸쳐 거의 쉬지 않고 운기한 덕에 본신 내공의 칠 할을 찾을 수 있었다. 며칠만 더 지나면 이전의 공력을 회복할 수 있을 듯했다.
의외라면, 금라천황공이 이제는 뜻만 일으켜도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작으면서도 큰 차이였다. 좌소천의 무공이 한 걸음 전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말과도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제천신궁으로 가겠다고 한 날이 다 되었다. 약속한 날에 가지 않으면 혁련무천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좌소천은 일단 공손양을 통해서 며칠 늦는다는 서찰을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도 오랜 시간 여유를 둘 수는 없었다. 사흘만 지나도 밀정을 내려 보내서 사정을 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틀, 그 이상의 시간이 없다는 말이었다.
나흘째 되던 날은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것이 비라도 내릴 것 같았다.
좌소천은 아침이 되자 제천신궁으로 출발할 준비를 서둘렀다.
이미 벽여령에게 말해서 공손양이 서신을 보낸 상태. 지금쯤은 혁련무천도 자신을 맞이해 어떻게 할 것인지 모든 결정을 내려놓은 상태일 것이다.
‘당신의 뜻대로만 되지는 않을 것이오, 궁주.’
그때 벽여령이 장포를 걸쳐 주었다.
등을 쓸어내리는 그녀의 손길에서 따뜻한 열기가 전해진다. 더위와 상관없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열기다.
그녀의 손길을 따라 가슴 한 켠에 남아 있던 긴장이 쓸려 내려갔다.
하지만 소영령의 안전에 대한 걱정만은 쉽게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좌소천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었다.
일단은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되었다.
‘살아 있는 이상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그거면, 그거면 되었다. 지금은…….
그런데 다시 만났을 때도 자신을 몰라볼까?
그럴지도 몰랐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자신이 그녀의 기억을 찾도록 해줄 것이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그래, 귀마종 염불곡이라면 방법이 있을지도…….’
한줄기 희망이 좌소천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때 벽여령이 한쪽에 놓여 있던 묵령기환보와 무진도를 들고 다가왔다.
좌소천은 코앞으로 다가온 벽여령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소영령을 생각한다는 게 미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할지는 몰라도, 소영령을 머리에서 지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벽여령이 빙긋이 웃으며 묵령기환보와 무진도를 내밀었다.
“사매가 걱정되세요? 너무 걱정 마세요. 아무 이상 없을 거예요.”
소영령에 대한 것은 오직 벽여령만이 알고 있다.
벽여령은 그 이야기를 듣고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히 가슴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꼭 찾으라고. 찾아서 데려오라고.
소영령이 사실을 알고 나면 미안해서 피할지 모르니, 별일 없었던 것처럼 말하라고.
“고맙소.”
좌소천은 벽여령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는 벽여령의 손에서 묵령기환보와 무진도를 건네받았다.
“가요,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벽여령이 입가의 웃음을 소매로 가리며 몸을 돌렸다.
좌소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장포 안에 묵령기환보를 꽂고, 허리띠에 무진도를 끼웠다.
밖으로 나가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도유관과 이자광, 전하련, 사인학, 종리명한, 홍려운도 출발 준비를 한 채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지난 나흘 동안 네 노인의 심심풀이 상대가 되었다.
이유야 분명했다.
―너희들이 약해 빠져서 소천이야 다친 거 아니겠냐?
―그 정도로 소천이를 지킬 수 있겠어?
―심심한데 늙은이들을 위해서 칼춤을 춰봐라.
그랬는데 얼굴색이 좋아 보이는 게 뭔가를 얻은 듯했다.
그들을 바라보며 내심 고개를 끄덕이던 좌소천이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앉아 있는 소광섭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 허공에 머물러 있는 시선.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좌소천이 전음으로 인사를 건네자 살짝 고개만 끄덕이고 슬며시 눈을 내리는 소광섭이다.
좌소천은 그의 마음을 알기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소광섭은 광한방을 접수한 후 구포방에 머물렀다. 구포봉과 마음이 맞은 이유도 있지만, 광한방에 대한 좌소천의 처리가 조금은 마뜩치 않았기 때문이다.
좌소천은 구포봉에게서 넌지시 소광섭의 마음을 전해 듣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말을 해봐야 변명처럼 들릴 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크게 잘못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광한방주 섭정산의 팔이 잘리고 수백 명이 죽었다. 소광섭의 원한만 생각하고 동료 수백의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광한방도 모두를 죽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쩌면 소광섭도 그 정도는 알기에 차마 대놓고 자신의 마음을 소리치지는 않는 듯했다.
‘하아, 내가 왜 당신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좌소천은 속으로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소광섭이 자신을 못마땅해 하며 떠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소영령에 대해 알리는 것을 보류한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얼굴만 확인했을 뿐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쌓인 상태. 게다가 아무것도 기억 못 하는 그녀가 아닌가?
하기에 좀 더 자세한 것을 알고 나서 말해주는 것이 소광섭에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잖아도 갈등을 겪는 소광섭이 무턱대고 그녀를 찾으려다가는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는 것이다.
‘서운해 해도 하는 수 없지…….’
그때 위지승정이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지금 가려는 거냐?”
“예, 스승님.”
“혁련무천은 누가 뭐래도 천하제일의 패웅이다. 조그만 방심도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명심해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천옹이 눈을 찡긋하며 이 빠진 웃음을 흘렸다.
“우리는 오후쯤에 출발할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말고 먼저 가거라.”
“예, 어르신.”
“흘흘흘, 네 마누라도 걱정 마. 우리가 조치를 취해놓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