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3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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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38화
138화
도유관이 알고 있는 것은 단편적인 상황뿐이었다.
외곽에서 엄청난 격전의 기운이 느껴졌다는 것. 이상해서 좌소천의 방을 살펴보니 좌소천이 사라졌다는 것. 급히 격전이 벌어지는 곳으로 갔는데, 그때는 이미 격전이 끝나고 좌소천이 누군가에게 당한 채 소나무에 기대고 앉아있었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일단 저희 모두가 달려들어서 최악의 상태는 면한 것 같습니다만, 내상이 너무 심합니다. 오면서 두어 번 정신을 잃긴 하셨는데, 지금은 완전히…….”
출발할 때만 해도 정신을 잃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금라천황공이 소수공의 한기와 몇 번 부딪치면서 간간이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시진, 두 번째는 좀 더 오래, 그러던 것이 지금은 아예 깨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럼, 뭐 하나? 어서 안에다 눕히게!”
그토록 침착하던 위지승정이 대뜸 소리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러한 것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잃은 좌소천을 침상에 눕힐 즈음 동천옹과 무영자가 득달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비켜봐라!”
이미 상황에 대해 들은 듯 동천옹은 급히 좌소천에게 다가가 옷자락을 젖혔다.
서리가 낀 듯 하얗게 변한 가슴. 그 한가운데에는 희미하나마 작고 하얀 손바닥이 하나 새겨져 있었다.
좌소천이 손으로 막았는데도 소수공의 여력이 좌소천의 손을 통과해서 가슴에 새겨진 것이다.
“엄청난 한기군!”
“근데, 저 손바닥은 뭐지?”
무영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동천옹의 표정이 굳어졌다.
“설마… 소수?”
뒤에 서 있던 무영자가 흑살기를 출렁이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뭐야? 소수? 그럼 한천빙백소수공에 당했단 말이야?”
동천옹이 멍청한 소리 말라는 듯 소리쳤다.
“멍청하긴! 소천이를 이렇게 만들 소수가 그것 말고 또 있냐?”
동천옹을 쏘아본 무영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그 무공은 신녀라는 아이가 익혔다 들었는데?”
“그럼 소천이가 신녀와 싸웠다는 말이잖아?”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전에 무당에서도 마주쳤다 했으니까.
그런데 무영자의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가슴에 정통으로 맞았지?”
“그거야……! 응? 그러게?”
그제야 동천옹도 이상한지 좌소천의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일순간 좌소천의 손을 바라보던 동천옹의 이마에 고랑이 깊게 파였다.
좌소천의 좌수 손바닥이 살짝 부어 있다. 만져 보니 엄청난 한기가 느껴진다.
“이거 봐. 손으로 막긴 막은 것 같군. 하긴 바로 맞았으면……. 근데 이상하네, 손으로 막을 수 있었을 정도면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동천옹과 무영자는 멀뚱히 서서 고개만 갸웃거렸다.
위지승정이 그런 두 사람을 닦달했다.
“지금 그게 문젭니까? 소천이의 내상을 치료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아차!”
번쩍 정신을 차린 동천옹이 급히 좌소천의 단전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뜬 동천옹이 옆을 향해 소리쳤다.
“벽가야!”
옆에서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던 벽수양이 급히 대답했다.
“예, 어르신!”
“빨리 전서구를 날려서, 만월평에 있는 여령이를 오라고 해라!”
“예?”
“예는 무슨! 빨리 서둘러!”
“아, 알겠습니다, 어르신.”
동천옹이 시키는 일이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 반문하고 머뭇거릴 여유가 없었다.
벽수양이 밖을 향해 소리쳤다.
“화웅아! 들었느냐? 빨리 전서구를 날려라!”
“예, 아버님!”
그때 등소패가 잔뜩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
“왜 여령이를 부르는 겁니까?”
“그거야 소천이를 치료하기 위해서지.”
“뭔 말인지 알기 쉽게 좀 말씀해 보슈!”
등소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천옹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정신을 잃은 채 누워 있는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혈맥이 몇 군데 막히긴 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기운이 강력하게 심장을 보호하고 있어서 내상은 우리만 있어도 치료할 수 있을 것 같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린다는 거야. 몸속에 스며 있는 소수공의 음기를 제거하는 것만 해도 열흘은 걸릴 거거든.”
“그럼, 여령이가 있으면 시간이 단축되기라도 한단 말입니까?”
“바로 그거야. 여령이를 시켜서 소수공의 음기를 빨아내면, 그만큼 시간이 단축되지. 아마 이틀이면 될 걸?”
등소패가 안타까움이 가득한 눈으로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치료도 여령이가 온 뒤에 해야 하는 겁니까?”
“그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그 아이가 올 동안 최대한 손을 써서 막힌 혈맥도 좀 뚫고, 내상도 치료해야 하니까 말이야.”
등소패가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럼 비켜주쇼. 스승인 내가 먼저 소천이의 몸을 다스리겠수.”
그때 위지승정이 재빨리 입을 열며 침상 위로 올라갔다.
“아닙니다. 등 선배는 잠시 물러서 계십시오. 마침 저에게 괜찮은 진기요상법이 있으니, 제가 먼저 소천이의 내상을 손보도록 하겠습니다.”
무공이 절대의 경지에 올라 있는 좌소천이다. 그의 내상을 다스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내력을 소모해야 하는지,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방에 아무도 없다.
자칫하면 오늘의 일로 인해서 평생 익혀온 무공을 잃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좌소천의 내상을 치료하겠다며 서로 나섰다.
사람들은 코끝이 찡해졌다.
동천옹이 콧소리를 내며 손을 휘휘 저으며 사람들을 쫓아냈다.
“킁, 모두 밖으로 나가게. 어차피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순서를 정해서 들어오자고.”
그러고는 몸을 돌리는 무영자에게 물었다.
“검둥아, 너, 전에 그거 알고 있다고 했지?”
“그거? 뭘?”
무영자가 동천옹의 뜬금없는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동천옹이 씩 웃으며 나직이 말했다.
“음양흡기대법 말이야.”
“아, 그거? 알… 지? 근데 왜?”
“그거야 여령이에게 가르쳐 주려고 그러는 거지.”
“여령이…에게?”
무영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뿌연 기운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제야 동천옹이 벽여령을 부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그의 입에서 음흉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흐흐흐, 그럼 잘하면 내년에 손자를 볼 수 있겠군.”
동천옹과 등소패의 입가에도 그와 비슷한 웃음이 걸렸다.
그리고 막 방문을 열려던 벽수양의 얼굴에도 슬며시 웃음이 맺혔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좌소천의 생사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멈칫한 벽수양의 등에 대고 동천옹이 말했다.
“벽가야, 몸에 좋은 약 있으면 좀 내놔라. 확실하게 하려면 최대한 양기를 끌어올려서 음기를 눌러야 하거든.”
“걱정 마십시오, 어르신. 그동안 모아놓았던 것 다 내놓겠습니다.”
2
위지승정에 이어, 등소패, 동천옹, 무영자가 한 시진씩 차례대로 좌소천의 몸에 진기를 주입했다.
오후가 되자 막힌 혈맥이 하나둘 뚫렸다.
그렇게 혈맥이 뚫리자 좌소천의 심장을 위협하던 한천빙백소수공의 한기가 조금씩 누그러지고, 주인을 보호하려는지 금라천황공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초조하게 벽여령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
좌소천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벽여령이 늦게 도착하면 좌소천이 깨어날지 몰랐다.
그럼 자신들의 계획이 물거품이 될지 모르는 것이다.
‘내상을 조금 악화시켜?’
오죽하면 그런 생각마저 했다.
다행히 저녁이 되기 전, 벽여령이 말을 타고 열 명의 호위무사와 함께 검인보에 도착했다.
“어떻게 된 일이에요? 좌 상공은 어디 계세요? 몸은 좀 어때요?”
그녀는 말에서 내리자마자 급히 물었다.
벼락이 옆에 떨어져도 꿈쩍 않을 것 같던 평소의 침착한 그녀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여인이 진짜 벽여령인지, 사람들이 다시 한번 쳐다볼 정도로 그녀는 불난 집에서 뛰쳐나온 여인처럼 급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급한 것은 네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좌소천의 몸에서 움직이고 있는 신비한 기운이 언제 좌소천을 깨울지 모른다. 좌소천이 깨어나기 전에 첫 번째 치료(?)가 끝나야 했다.
네 노인과 벽수양은 대뜸 벽여령을 좌소천이 있는 방에 밀어 넣었다.
“어서 들어가 봐라.”
“탁자 위에 적힌 종이를 보고 그대로 해라. 소천이의 목숨은 너에게 달렸음이니……. 뭐 네가 정 싫다면 어쩔 수 없다만…….”
벽여령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으로 들어갔다.
여인은 강하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더욱 강해진다.
벽여령도 그랬다. 동천옹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낼 수 있어!’
입술을 지그시 깨문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는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어서 방 안은 한밤중처럼 어두웠다. 침상 옆에서 타오르는 단 하나의 유등불만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얼마 전에 봤던 그 얼굴이었다.
평소처럼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어색한 표정을 지을 것만 같았다. 어서 오라며 담담히 웃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일어나지도, 어색한 표정을 짓지도, 웃지도 않았다.
벽여령은 가느다란 숨을 내쉬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었다.
자신에게 급히 해야 할 일만 없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었다.
“내가 도와줄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제가 도울게요, 상공.”
벽여령은 이를 지그시 깨물었다.
소매로 쓰윽,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는 단단히 각오를 하고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집어 들었다.
삐뚤삐뚤 쓰인 무영자의 글씨체가 신경질 날 정도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그녀는 참고 끝까지 다 읽었다.
종이를 내려놓은 벽여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아무리 힘든 일도 해낼 거라는 각오를 했다. 좌소천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피를 반쯤은 뽑아서라도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런 일이 아니었다.
이거야말로 자신이 원하던 일이었다.
그녀는 종이에 적힌 구결을 다시 한번 자세히 읽어봤다.
두 번째 읽어서인지 삐뚤삐뚤 쓰인 글씨가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다.
종이에 쓰인 내용도 유난히 머릿속에 쏙쏙 틀어 박혔다.
벽여령은 종이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침상에 누워 있는 좌소천이 보였다.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잔잔한 웃음이 피어났다.
사뿐사뿐, 침상 앞으로 걸어간 벽여령은 좌소천을 내려다보았다.
내상이 심각한 환자가 아니라 조용히 잠든 아기처럼 보였다.
“제가 상공의 몸속에 깃든 한기를 몰아내 줄게요.”
그녀는 손을 뻗어서 옷자락이 풀어헤쳐진 좌소천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손끝이 잘게 떨렸지만 손을 떼지는 않았다.
심장 어림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
마치 한겨울 소복이 쌓인 눈을 만진 듯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뺏어내야 할 그 기운이었다.
벽여령은 손을 떼고, 한쪽에서 몰래 훔쳐보고 있는 등잔불을 껐다.
“후욱!”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부드러운 뭔가가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데, 난생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몸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면사가 잘려지며 얼굴이 드러난 소영령이 떠올랐다.
마른 입술을 비집고 안타까움에 가득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령…….”
언뜻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부드러운 뭔가가 가늘게 떨리는 듯했다.
좌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서 부드러운 동체를 감쌌다.
“아아……!”
가슴 부위에서 들릴 듯 말 듯 가느다란 교성이 새어 나온다.
좌소천은 비몽사몽 중에도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부드럽고도 따뜻한 뭔가가 손에 닿았다.
단순한 감촉이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살을 만지는 듯하다.
“누구……?”
“쉿…….”
가슴에서 바람 소리가 난다. 손가락이 입술을 막는다.
쿵덕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하나가 아니다.
손바닥에 전해지는 감촉. 누군가가 자신의 몸 위에 있다.
코끝을 간질이는 은은한 화향.
‘여인?’
그렇다, 여인이다.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심장의 박동 소리가 북소리처럼 귀청을 두들겼다. 온몸이 불구덩이에 빠져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좌소천은 여인을 밀어내기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으음……. 상공…….”
그때, 다시 가슴 위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들어본 목소리다.
‘서, 설마…… 벽 낭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