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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천왕 131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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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절대천왕 131화

 

131화

 

 

 

 

 

 

그는 제갈세가의 제일 어른은 아니지만, 현재 방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나이가 많은 제갈진건이었다. 

 

그의 나이 여든둘. 현 가주인 제갈황의 친백부였다.

 

“그렇다면 현우자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군.”

 

현우자는 좌소천이 오제와 비견될 만큼 강하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두 흔적이 비슷한 경지라면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는 말,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를 상대할 방법도 바꿔야 했다.

 

제갈진건의 눈이 맨 끝에 앉은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을 향했다.

 

“아이들에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해라. 벌에 쏘였다고 홧김에 벌집을 건드려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 벌집은… 아주 조심스럽게 상대해야 하는 법이야.”

 

“알겠습니다, 백부님.”

 

하지만 세상사에 달관했다는 제갈진건조차 미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었다.

 

제갈세가의 사람들 모두의 마음이 그의 뜻과 같지는 않다는 것을. 그리고 좌소천의 진정한 무위가 어느 정도라는 것 역시.

 

 

 

 

 

6

 

 

 

 

 

어둠이 짙어지는 시각.

 

화톳불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며 장원을 밝혔다.

 

어느덧 협상이 시작된 지 한 시진. 그동안 좌소천 일행과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양편으로 갈라선 채 전각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선 채 시간이 흐르자, 갈라선 사람들 사이에서 냉기가 흐르더니, 살얼음판 위에 올라선 것처럼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좌소천 일행은 마흔네 명, 그들을 둘러싼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백여 명이나 되었다.

 

그런데도 좌소천 일행은 담담한 표정인 반면, 제갈세가의 무사들은 팽팽하게 당겨진 실처럼 잔뜩 긴장한 상태였다.

 

칼만 가져다 대면 뚝 끊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장시간 서 있는 것이 지겨운지 이자광이 말을 걸었다.

 

“이보쇼. 이곳은 사람을 세워두고 물 한 모금도 주지 않소?”

 

이자광의 커다란 목소리에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당황하며 흔들렸다.

 

벌써 한 시진째. 주인 된 입장으로서 손님을 세워두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제갈승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가져다주면 되겠소?”

 

이자광이 반색하며 말했다.

 

“간식으로 먹을 것도 좀 주고, 괜찮다면 술도 몇 병 주시구려.”

 

넉살 좋은 이자광의 말에 갑자기 팽팽히 당겨져 있던 긴장감이 확 풀어졌다.

 

“미안하지만 지금 술은 안 되오. 협상이 끝나고 나면 드리겠소.”

 

“거, 사람들이 쫀쫀하기는…….”

 

전하련이 투덜거리는 이자광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곰탱이, 지금이 술 마실 때야?”

 

“윽, 그럼 술 마실 때가 따로 있어? 마시고 싶으면 마시는 거지. 분위기도 좀 누그러뜨릴 겸 한두 잔은 괜찮을 것 같은데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술을 마실 만한 상황이 아닌 것도 분명했다.

 

사인학이 넌지시 전하련 편을 들어서 이자광을 말렸다.

 

“자광, 제수씨의 말을 들어. 괜히 혼나지 말고.”

 

“제수씨? 그게 무슨 말이지? 형수지, 왜 제수씨야?”

 

퍽!

 

전하련이 이자광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그러고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장난 같지도 않은 말을 하는 이자광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이 미련 곰탱이!”

 

도유관을 비롯한 직속무사들은 안되었다는 표정으로 이자광을 바라보았다. 앞날이 훤히 보인다는 눈빛들이었다.

 

종리명한은 특유의 싸늘한 표정에 혀까지 차가며 이자광을 흘겨봤다.

 

“쯔쯔쯔, 이씨 집안에 공처가 하나 나오겠군.”

 

이자광이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괜찮아. 우리 아버지도 어머니에게 꼼짝 못하는데 뭐.”

 

“…….”

 

능야산의 형제들은 이자광과 직속무사들이 벌이는 대화에 끼어들지도 못하고 피식 웃기만 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태평한 그들의 행동은 한 가지를 의미했다.

 

그만큼 좌소천을 믿고 있다는 것!

 

도대체 그의 무엇이 저토록 사람을 믿게 하는 것일까?

 

단순히 강하다고 해서 그런 것이 아닐 듯했다. 강한 것 외에 또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제갈세가 사람들에게는 이자광과 직속무사들의 농담짓거리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분이 상했는지 한 사람이 나서서 질책하듯이 말했다.

 

“이곳은 당신들 놀이터가 아니외다. 자중해 주시오.”

 

이자광이 고개를 하늘로 쳐들더니 퉁퉁거리며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놈의 집안에서는 농담도 않고 사나?”

 

그는 중얼거리는 목소리도 남보다 훨씬 커서,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도 들을 정도였다. 하물며 삼 장 정도 떨어져 있는 제갈승이 못 들을 리 없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그가 날 선 목소리로 물으며 이자광을 향해 다가갔다.

 

없는 트집거리라도 억지로 만들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던 차에 터져 나온 이자광의 말은 그에게 훌륭한 먹잇감이었다.

 

“본 가가 그리 우습게 보이나? 덩치가 크면 머리에 든 것이 없다더니, 지금 무식을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이자광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진다. 그걸 본 사인학이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무심코 한 말을 가지고 너무 그렇게 정색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자네라면, 자네 집안을 모욕하는데 참을 건가?”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농담하다 한 말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실 건 없잖습니까?”

 

“흥! 자네 집안에서 그렇게 교육시키는지 몰라도, 본 가는 자식들을 그렇게 교육시키지 않는다네.”

 

말끝마다 집안, 집안이다. 사인학도 고개를 쳐들고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쉰 사인학은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렇게 교육시키지는 않죠. 하지만 그래도 무턱대고 손님에게 뭐라 하지도 않습니다.”

 

“훗! 어디 구석에서 그럭저럭 행세깨나 하는 집안인가 본데, 그렇다고 자네 집안과 본 가를 똑같이 생각하지는 말게.”

 

사인학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지금 시비 걸자는 겁니까?”

 

그때 종리명한이 손을 내밀어 사인학의 앞을 막았다.

 

“물러서게, 인학.”

 

평소에는 능글거리고 잔머리 굴리는 짓도 가끔씩 하는 사인학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인학의 성격을 온순한 걸로만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한번 돌아버리면 누구도 못 말리는 사람. 그게 사인학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용케 그의 조문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어 조용했지만, 집안 이야기가 나온 이상 그냥 지나가기는 틀린 상황이었다.

 

그가 집을 떠나 제천신궁으로 향한 이유 중 하나가 그러한 성질 때문이라는 것을 친구인 종리명한만큼은 잘 알고 있었다.

 

하기에 그로선 사인학이 돌기 전에 막아야 했다. 아니면 지금의 사태가 어떻게 발전할지 아무도 몰랐다.

 

다행히 사인학이 순순히 물러선다.

 

종리명한이 제갈승을 향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하시지요.”

 

문제는 그의 냉막한 인상과 싸늘한 말투가, 여자라면 모를까 남자에게는 그리 호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상대가 나이 먹은 사람이라면 더 그랬다.

 

“건방진 놈들이 감히……!”

 

제갈승이 파르스름한 안광을 빛내며 이를 갈았다.

 

종리명한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게 또, 남이 보기에는 한번 하려면 하자는 것처럼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입술을 말아 올린 제갈승의 눈에서 살기가 스멀거렸다.

 

“오냐, 네놈들이 하자면 내 못할 줄 알았더냐? 가주께 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라!”

 

순간, 제갈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세 명의 삼십대 무사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

 

휘리릭, 짝!

 

전하련의 허리에 둘러졌던 채찍이 허공을 한 바퀴 돌고 바닥을 후려쳤다.

 

“멈춰요! 뭐예요? 그깟 일로 정말 싸우자는 거예요?”

 

“흥! 시작은 너희들이 먼저 하지 않았느냐?”

 

“시작? 먹을 것 좀 달라는 것이 그렇게 고깝던가요?”

 

“누가 그것 때문에 이런다더냐? 네놈들이 본 가를 모욕하지만 않았다면 내가 왜 이러겠느냐?”

 

제갈승의 말에 전하련의 고개가 살짝 모로 꺾어졌다. 그러더니 뭔가를 알았다는 듯 차가운 비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오호라! 이제 보니 주군과 제갈세가 사이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 들었는데, 그 때문에 별것도 아닌 것을 시빗거리 삼겠다는 생각이로군.”

 

자신의 생각이 들켰다는 생각에 제갈승은 상황을 더욱 급하게 몰아쳤다.

 

“건방진 계집! 네가 감히 나를 모욕하겠다는 것이냐?”

 

“뭐야? 건방진 계집? 당신 지금 말 다했어?”

 

전하련도 지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이자광도 눈을 부릅뜨고 전하련 옆에 섰다.

 

“당신 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봐!”

 

그러자 제갈세가의 무사들 중 십여 명이 더 앞으로 나왔다.

 

“당주, 저희들이 상대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 버렸다.

 

전하련과 이자광, 사인학, 종리명한이 제갈세가의 무사들과 대치한 채, 당장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이다.

 

“하자면 마다하지 않아.”

 

도유관이 냉랭하게 말하며 걸음을 옮기고, 능야산과 홍려운, 관추릉, 언자홍도 이자광 등과 합세했다.

 

제갈세가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잊은 듯, 너무도 태연한 행동이다.

 

‘후후후, 제대로 걸렸군. 겁대가리없는 놈들! 모두 죽여주마!’

 

제갈승은 차가운 조소를 입에 물고 슬쩍 고갯짓을 했다.

 

그의 뒤에 늘어서 있던 제갈세가의 무사들 모두가, 천천히 좌우로 벌어지면서 직속무사들과 능야산의 형제들을 둘러쌌다.

 

쩌저적.

 

살얼음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별것도 아닌 일이 피를 튀기는 혈전으로 변하려는 상황.

 

바로 그때, 직속무사들 뒤쪽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갈세가라면 중원의 명문가라 들었는데, 강호의 소문은 역시 믿을 게 못 되는군. 그만한 일로 손님들에게 검을 겨누려 하다니.”

 

제갈승의 독기 흐르는 눈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홱 돌아갔다.

 

목소리의 주인은 조용히 서 있는 오십대 중반의 중년인이었다.

 

다름 아닌 헌원신우, 바로 그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압박감에 제갈승의 목소리가 저절로 낮게 깔렸다.

 

“귀하는 누구요? 귀하도 좌소천이라는 자의 수하요?”

 

“수하라… 일단은 동료라 해두지.”

 

담담한 가운데 무게있는 목소리다. 더구나 바윗덩이처럼 느껴지는 헌원신우의 묵직한 모습은 제갈승으로 하여금 함부로 입을 열지 못하게 했다.

 

‘저자는 누구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던 자다. 나이를 먹은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입을 열자 만근의 무게가 느껴진다.

 

제갈승은 이를 지그시 악물고 헌원신우를 노려보았다.

 

그때 문득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초로인의 주위에 조용히 서 있는 흑의인들. 그들에게서 피어나는 기운이 어둠을 짓누르고 있다.

 

‘뭐, 뭐야?’

 

상당한 실력을 갖췄을 거라 생각하기는 했다.

 

하지만 숫자가 삼십여 명이나 되는데다 싸구려 흑의를 입어서, 단순히 좌소천을 호위하기 위한 호위무사들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어떻게 저런 자들을 몰라본 거지?’

 

제갈승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자신이 몰라봤다는 사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하나였다.

 

그만큼 흑의인들이 강하다는 것!

 

제갈승은 무정효라는 별호답게 숨 한 번 쉬는 사이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상대가 예상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 이상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군. 좋아, 지금은 참지.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좌소천.’

 

제갈승은 포위망을 구축하다 말고 멈칫한 무사들을 향해 다시 고갯짓을 했다.

 

“물러서라.”

 

그러고는 전하련과 이자광을 노려보며 싸늘히 입을 열었다.

 

“저분의 체면을 봐서 지금은 참겠다. 하나, 한 번만 더 본 가를 모욕하면 그때는 참지 않을 것이다.”

 

“좋으실 대로.”

 

전하련이 톡 쏘고는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바닥에 길게 늘어져 있던 채찍이 살아 있는 뱀처럼 그녀의 허리에 감겼다.

 

제갈승이 그걸 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추룡편인가? 그걸 믿고 설치다가는 제 명에 못 살 것이다. 앞으로는 입조심하도록.”

 

“흥!”

 

전하련은 코웃음만 날리고 홱 몸을 돌렸다.

 

이후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대치는 협상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좌소천이 방에 들어간 지 두 시진 후.

 

좌소천과 제갈진문이 방을 나오자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두 사람을 향했다.

 

그때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말없이 서 있던 제갈조릉이 앞으로 나섰다.

 

“이야기가 다 끝났다면 잠시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소, 좌 공자.”

 

이미 그러한 일이 있을 걸 알고 있었는지 제갈진문이 한 소리 거들었다.

 

“가주께서 그대를 만나보고자 하시네. 어떻게 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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