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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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29화
129화
눈앞에 떠서 다가오는 주먹 하나!
그리 큰 주먹도 아니다. 강력해 보이지도 않는다. 한데도 꼼짝을 할 수가 없다.
전신이 짓눌리는 기분!
움직이면 당장 가슴을 짓뭉개고 머리를 으스러뜨릴 것만 같다.
건곤합일(乾坤合一)!
등소패조차 가슴 떨리며 바라보았던 건곤신권의 정수였다.
목영운은 이가 으스러져라 악다문 턱에 힘을 주고 가까스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가 그러한 기분을 느낀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 찰나의 순간, 목영운의 가슴에 들떴던 자만심이 안개처럼 스러졌다.
그는 검첨을 들어 올려 권영의 한가운데를 찍었다.
그 순간 좌소천의 눈에서 보일 듯 말 듯 이채가 스쳤다.
이를 악문 목영운의 눈빛이 조금 전보다 더 강렬하다. 그러나 그 안에 떠올라 있던 자만의 빛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좌소천은 목영운을 향해 밀려가는 건곤합일의 권세에 일성의 내력을 더 집어넣었다.
퍽!
둔탁한 소음이 울리고, 검을 앞으로 내민 목영운의 몸이 그대로 일 장가량 죽 밀려났다.
발밑에는 다섯 치 깊이로 길게 파인 고랑이 만들어진 상태.
“크윽!”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목영운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좌소천은 한 걸음 물러서서, 신음을 흘리며 이를 악문 목영운을 바라보았다.
‘공손 형하고 붙으면 볼만하겠군.’
자신이 판단하기로는 공손양이 도유관이나 능야산보다 한 수 위다. 어지간해서는 전력을 쏟지 않으니 잘 드러나지 않아 그렇지.
“내가 졌소.”
그때 목영운이 입술을 씹으며 패배를 자인했다.
좌소천은 굳이 겸손한 말로 이러니저러니 하지 않았다.
과례는 비례라 했다. 그런 말은 오히려 목영운의 자존심만 건드릴 뿐.
좌소천은 말없이 고개만 숙여 답례를 하고, 고개를 돌려 능야산에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어디에 있소?”
능야산은 당연한 결과라 생각했는지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북쪽 야산의 골짜기에 있습니다.”
5
헌원신우는 깊게 침잠된 눈으로 마주 앉은 목영락을 바라보았다.
능야산의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솔직히 믿지 못했다. 그럼에도 밖으로 나가자 말한 것은, 그 자신이 더 이상 산속에 숨어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좌소천이 마음에 안 들면 따로 움직일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목영운이 졌다고 한다. 그것도 십 초를 버티지 못하고.
물론 자신도 가능할지 몰랐다. 아니, 오 초에도 승부를 가를 수 있을 것이었다. 생사를 건 채 전력을 다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비무라면, 자신이라 해도 현재의 목영운을 십 초 안에 이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상대적인 실력에 있어서는 좌소천이 자신보다 강하다는 뜻.
‘차라리 내가 갈 걸 그랬나?’
조카들이 말리지 않았다면 자신이 직접 만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직접 실력을 알아봤을 것이다.
‘그랬다면 답답함이 덜했을 텐데.’
하지만 이제는 늦은 일이다.
두 번에 걸친 시험은 상대를 모욕하는 일. 헌원신우는 나중을 기약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자!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 정도라면 천외천가를 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 같구나.”
2장 제갈세가
1
강 건너편의 양양성 너머로 제갈세가가 있는 융중산이 보인다.
한수 강변에 도착한 지 이각.
좌소천은 일행들과 함께 배가 건너오기만을 기다렸다.
양양 일대는 제갈세가가 제왕처럼 군림하는 곳. 자신들이 이각 동안 배를 기다리고 있는데도 제갈세가의 사람 중 누구 하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자신의 도착을 모르고 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아마 정은이 소식을 전한 이후부터 일대에 제갈세가의 세작들이 쫙 깔렸을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백 리 이전에 자신을 발견하고 연락을 취했을 게 분명했다.
‘신경전을 벌여보자는 건가?’
아마도 자신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상대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인 듯하다.
강을 건너면 뭔가 움직임이 있을 터. 이후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살펴보면, 그들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다.
지금 제갈세가가 하는 행동이 그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배를 타고 한수를 건너자 세 사람이 다가왔다. 둘은 젊고 한 사람만이 마흔 정도의 중년인이었다.
조촐한 환영이었다.
“제갈송염이라 하오. 좌 공자시오?”
중년인이 좌소천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적의가 가득한 눈빛. 뭔가가 못마땅한 표정이다.
하긴 좌소천에게 죽은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좌소천은 그를 마주 보며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되물었다.
“그렇소. 군사는 오셨소?”
“세가에서 기다리고 계시오. 따라오시오.”
“잠깐, 우리는 양양에서 식사를 하고 갈 것이오. 먼저 가서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전해주시오.”
막 돌아서려던 제갈송염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식사는 본 가에서 하셔도 되지 않겠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소. 원한이 있는 곳에 가서 뭘 먹고 싶지도 않고. 그러니 먼저 가시도록 하시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까.”
제갈송염의 눈빛에 조소가 떠올랐다.
“행여나 본 가가 음식에 독이라도 탈까 봐 겁이 나는 거요?”
슬쩍 떠보듯이 좌소천을 건드리는 제갈송염이다. 하지만 좌소천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한 번도 제갈세가를 나의 상대라 생각해 본 적이 없소. 그러니 겁을 낼 이유가 없소.”
제갈세가 정도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말이다.
제갈송염의 이가 악다물렸다. 옆의 두 젊은이도 싸늘한 눈빛으로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그러든 말든, 좌소천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갑시다. 해 지기 전에는 제갈세가에 들어가야 하니까.”
그러고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양양으로 향했다.
도유관과 능야산이 제갈송염을 향해 피식 웃고, 이자광이 두 청년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사인학이 그들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아직 주군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 있군.”
말없이 그 뒤를 따르는 사십 명의 사람.
제갈송염의 표정이 점차 바위처럼 굳어졌다.
배에서 내린 후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몰랐다.
겨우 사십 명의 호위만 데리고 제갈세가를 찾아온 좌소천의 행동을 만용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거대한 해일이 밀려가는 듯 느껴진다.
‘맙소사! 설마 저들 대부분이 절정의 경지에 달한 고수들이라도 된단 말인가?’
제갈송염은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중천에 떠올라 있는 해가 보였다.
이제 겨우 미시 초. 해가 지기 전까지는 까마득했다.
‘설마……?’
2
양양에서 제갈세가까지, 무사들이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반 시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좌소천이 제갈세가에 도착한 시각은 유시 말. 해가 융중산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직전이었다.
제갈진문을 비롯한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예정보다 두 시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본래의 계획은, 제갈세가에 온 좌소천을 무시한 채 객당에서 두어 시진 기다리게 할 생각이었다. 그 후 마음이 흔들린 그를 상대하며 보다 더 유리한 협상을 하려고 했다.
오는 것을 알면서 모른 척한 것도 그 때문이고, 양양의 선창가에 세 사람만 내보낸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좌소천이 양양에서 식사를 한다면 두 시진을 늦게 오는 바람에 상황이 거꾸로 되어버렸다. 두 시진을 기다리는 사이 그들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좌소천이 일행과 함께 정문으로 다가가자, 정문에 나와 있던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일제히 싸늘한 눈빛을 한 채 그를 노려보았다.
좌소천은 고향집을 찾아온 듯 태연한 걸음걸이로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때 제갈진경이 앞으로 나왔다.
“오랜만이군.”
“그리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군요.”
“반길 거라 생각하고 온 것은 아닐 텐데?”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검을 들고 죽이겠다며 달려들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좌소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제갈세가의 건물을 둘러보았다.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어디에서고 매복이나 암습의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뒤통수를 칠 계획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하늘에 대고 침 뱉기는 싫은가 보군.’
좌소천의 태연한 행동에 제갈진경이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도무지 자네에 대해 알 수가 없군. 왜 진문의 조건을 받아들여 이곳을 협상 장소로 택한 것인가?”
“앙금을 남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도 말인가?”
“글쎄요, 누가 감당할 수 없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담담한 말투다. 제갈세가쯤은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배인 말투.
제갈진경은 그래서 더 가슴이 무거워졌다.
‘가주가 엉뚱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의 마음과 같지는 않았다. 칠순에 가까운 노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좌소천에게 물었다.
“네가 좌소천이더냐?”
좌소천은 눈을 돌려 그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제갈모라는 이름에 대해 아느냐?”
장하경에게 들었다. 자신이 대홍산 입구에서 벤 제갈세가의 사람 중 하나의 이름이 제갈모라 했었다.
“압니다.”
“너의 손에 죽은 그 아이, 내 아들이었다. 내가 왜 이 자리에 나왔는지 알겠느냐?”
툭, 말을 내뱉은 노인이 분노의 불길이 이는 눈으로 좌소천을 노려보았다.
좌소천도 무심한 눈으로 노인의 눈을 마주 보았다.
“누군가가 귀하를 죽이겠다고 쫓아와 달려들면, 그것도 원수의 집안사람이 그리한다면, 귀하는 손 놓고 보기만 할 겁니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내 잘못을 인정하지요.”
노인의 주름 진 입술이 씰룩이고, 입가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너의 실력이 정말로 진경이의 말대로라면,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지 않느냐?”
“그럼 대신, 대항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랐을 겁니다. 그게 더 나았을 거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무사에게 있어 그것은 죽음과 다름없었다.
노인, 제갈진오라 해서 어찌 그걸 모를까.
그러나 아버지 된 사람으로서,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좌소천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내 아들과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죽인 것은 너다. 그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지.”
“웃기는군요.”
“뭐야?!”
“강호에 나와 상대에게 검을 들이댄 이상, 죽고 사는 것은 오직 자신의 실력에 달린 문제입니다. 약하면 죽고, 강하면 사는 것이지요. 귀하의 아들이 나에게 검을 들이댔지만, 나는 강하기에 살아남았고, 귀하의 아들은 약하기에 죽었을 뿐입니다. 거기에 제갈세가라는 이름은 아무 소용도 없지요.”
“네가 감히!”
“지금이라도 그때의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하시지요. 제갈세가 전체가 다 덤벼도 상관없습니다.”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말을 맺은 좌소천은 좌수로 무진도를 쥐었다.
제갈진오와 함께 분노한 표정으로 좌소천을 노려보던 자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갈세가의 정문 앞에서 제갈세가 전체가 다 덤벼도 상대해 주겠다는 태도다.
광오한 그의 태도에 사람들은 분노조차 잊었다.
“네가 감히 하찮은 실력으로 본 가를 능멸하겠다는 것이냐?”
푸들거리던 제갈진오의 입이 열리고 나서야 사람들의 눈에서도 다시 분노의 불길이 쏟아졌다.
“능멸이라…….”
좌소천은 나직이 제갈진오의 말을 되뇌며 좌수 엄지로 무진도를 밀어 올렸다.
순간,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발톱을 세운 제갈세가의 중견 고수 십여 명이 급살이라도 맞은 듯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자신들이 원해서가 아니었다. 좌소천의 기운이 그들을 밀어낸 것이었다.
좌소천은 그들을 밀어내고는, 몸을 약간 돌려 정문 옆에 서 있는 고목을 바라보았다.
제갈세가와 운명을 같이한 수백 년 된 고목이었다.
그런데 옆으로 뻗은 팔뚝 굵기의 가지 하나가 병에 걸린 듯 푸르름을 잃고 말라간다.
스윽,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좌소천의 몸이 고목을 향해 미끄러져 나아갔다.
찰나였다.
번쩍! 한줄기 묵선이 가지를 스치며 사라졌다.
그 광경에 제갈진경이 몸을 떨었다.
단 일도에 제갈모의 몸을 갈랐던 그때의 광경이 눈앞에 생생히 떠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