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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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60화
160화
“무진이라고, 내 친구요, 탁 도우.”
정은의 담담한 대답에 탁조민이 인상을 썼다.
“친구? 무림맹의 사람인가?”
“아니오.”
“아니다?”
잘 걸렸다는 듯 탁조민이 조소를 지으며 좌소천의 앞으로 다가갔다.
“무림맹 사람도 아닌데 현무당의 심처까지 데려오다니…….”
그는 좌소천의 앞에 멈춰 서더니 싸늘한 눈으로 좌소천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무진이라…….”
탁조민은 화산의 속가제자로 정은과 철군영, 공오, 진현과 함께 현무당의 조장 중 하나였다.
주작당의 조장인 황보소청까지, 정자 안에 있는 정은 등은 무림맹 사람들에게 오룡이라 불렸는데, 탁조민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네까짓 것들이 오룡은 무슨!’
자신이 일 년 먼저 오룡산의 무림맹에 들어왔다.
오룡 중에 화산의 기재인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럼에도 사람들은 오룡의 이름에 자신을 집어넣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빠진 오룡을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사람들의 부추김에 우쭐하는 정은 등이 가소롭기만 했다.
그래선지 오룡과 함께 있는 좌소천도 그리 좋게 보이지 않았다.
“어느 파의 사람이지?”
“그게 그리 중요하오?”
“당연하지. 그걸 알아야 적인지 아닌지, 그냥 쫓아내고 말 것인지 혼을 내서 쫓아낼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 아니겠나?”
“인사도 나눴으니 그냥 나가겠소.”
“아직 밝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그럴 수는 없지.”
탁조민이 비아냥거리며 좌소천을 싸늘히 노려보았다.
정은이 급히 나서서 손을 저었다.
“내 친구라 하지 않았소? 그만 하시구려, 탁 도우.”
“걱정 말게, 정은. 나는 그냥 이자의 정체를 알아보고 싶을 뿐이니까. 별 볼일 없는 자가 단순히 자네의 친구라고 해서 현무당의 심처를 마음대로 오간다면 강호 사람들이 웃을 거 아니겠는가?”
손을 젓던 정은이 멈칫했다.
‘무진이 별 볼일 없는 자라고?’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이지러졌다. 웃음을 가까스로 참는 듯한 표정.
황보소청이 그걸 보고 기이한 눈빛을 지었다.
‘왜 탁조민을 막지 않고 저런 표정을 짓지? 탁조민의 무공은 우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강한데. 무진이라는 저 사람이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때 좌소천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태 현무당이 그렇게 대단한 곳인 줄 몰랐소.”
그러고는 돌아서며 얼굴이 이지러진 정은을 바라보았다.
“정은, 아무래도 나처럼 별 볼일 없는 사람은 이만 이곳을 나가야 할 것 같네.”
“무진, 그게 말이지…….”
“오늘 자네의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기뻤네. 나중에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오늘은 이야기 나눌 상황이 안 되는 것 같군.”
탁조민은 눈을 부라리고는, 무시당한 기분이 드는지 날선 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방해해서 기분이 나쁘다, 그 말인가? 정말 건방진 자로군! 어디서 감히!”
그가 돌아선 좌소천을 향해 움직이자 정은이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비켜!”
탁조민이 소리치며 손을 휘둘렀다.
단단히 화가 난 듯, 휘두르는 그의 손끝에서 강한 기운이 칼날처럼 뻗쳤다.
정은은 두 손을 태극 형태로 휘저으며 탁조민의 공격을 자연스럽게 막아냈다.
“어허, 탁 도우. 그만 진정하시오.”
좌소천은 정은이 탁조민을 막는 걸 보고 몸을 돌려서 정자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아는 한 탁조민은 정은의 상대가 아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그때, 탁조민이 이를 악물고 칠성의 내력을 끌어올렸다.
정은의 부드러운 기운이 일순간에 자신의 공격을 무력화시키자 오기가 인 것이다.
“어디 이것도 받아봐라!”
정은으로선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잠시 망설인 사이 탁조민의 공격이 코앞에 닥쳤다.
철군영이 벌떡 일어나 노성을 내질렀다.
“무슨 짓이야, 탁 조장!”
“저런!”
“조심해요, 정은 도장!”
공오와 진현과 황보소청도 대경해 소리쳤다.
좌소천이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탁조민의 공격이 정은을 후려치고 있었다.
‘아차!’
다급한 표정을 지은 정은이 급히 뒤로 물러서며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미처 좌소천이 손을 쓸 틈도 없이 두 사람의 쌍장이 맞부딪쳤다.
퍼벅!
“으음…….”
정은은 나직한 신음을 흘려내며 비틀거렸다.
겨우 탁조민의 공격을 막아내긴 했는데, 실린 힘에 워낙 차이가 나서 그런지 가슴에 느껴지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괜찮나?”
좌소천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다.
이마를 찡그린 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친 곳은 없으니까, 걱정 말게.”
탁조민이 다가오며 코웃음 쳤다.
“흥! 제법이군. 그걸 막아내다니.”
철군영이 발끈하며 나섰다.
“탁조민! 제정신이 아니구나!”
“무사라면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지. 정은은 그러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 좌소천이 탁조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정은이 다급히 좌소천을 말렸다.
“무진, 나는 괜찮다니까? 탁 도우를 용서해 주게!”
그 말에 갑자기 정자 안이 조용해졌다.
탁조민에게 한 소리 하려던 철군영도 입을 닫고, 공오와 진현과 황보소청도 자신들이 잘못 듣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반면에 탁조민은 그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내상이 심한가 보군.’
그는 정은이 말을 거꾸로 했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무진이라는 자를 용서해 달라고 해야 맞는 말이었으니까.
하기에 그는 비릿한 조소를 지었다.
“용서하고 안 하고는 내가…….”
그때다. 좌소천이 무심한 눈으로 탁조민을 바라보았다.
일순간 탁조민의 몸이 얼어붙은 듯 그대로 굳어졌다.
좌소천은 눈빛만으로 탁조민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해놓고 정은에게 물었다.
“정은, 정말 그러길 바라나?”
“물론이네. 내가 다치지 않았는데, 자네가 손을 쓰면 강호인들이 웃을 것이네. 나는 내 친구가 강호인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네.”
“자넨 여전하군. 정수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참기만 하더니.”
정은이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천성이 그런데 뭐.”
“그래도 고치게. 섬서에 가면 사람을 죽여야 할지 모르는데,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검을 쓰겠나? 나는 친구가 천외천가 놈들의 손에 당하는 걸 보고 싶지 않네.”
“나도 그게 고민이네. 그래도 노력은 해봐야지…….”
좌소천은 입을 닫고 탁조민을 직시했다.
“정은이 부탁하니 오늘은 이만 참겠다만, 가기 전에 내 충고 하나 하지. 탁조민이라 했던가? 그 성질 버리지 못하면 오래 살기 힘들 것이다.”
좌소천은 그 말만 하고 몸을 돌렸다.
탁조민은 심장을 옥죄어오던 눈빛에서 풀려나자,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금 전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던 공포에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숨도 쉴 수가 없었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좌소천이 몸을 돌림과 동시,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원상태로 돌아왔다.
그는 좌소천의 등을 노려보고 이를 갈았다.
‘내가 저따위 놈의 눈빛에 꼼짝을 못하다니!’
좌소천이 막 정자를 나가려는 순간,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몸을 날렸다.
‘개자식! 죽여 버리겠어!’
좌소천과 정은의 대화에 얼이 반쯤 빠진 모습이었던 철군영 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화들짝 놀랐다.
“헛!”
“조심……!”
그들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쾅!
좌소천의 등을 향해 달려들던 탁조민이 벼락이라도 맞은 듯 튕겨졌다.
좌소천은 탁조민을 이 장 밖으로 튕겨내고는, 손을 탈탈 털며 담담하게 말했다.
“이건 자네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네. 이해하게, 정은.”
정은은 대충 상황을 짐작하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좌소천이 고의로 등을 보여서 탁조민의 공격을 유도했던 것이다.
그래야 정은의 부탁과 상관없이 탁조민을 혼내줄 수 있을 테니까.
어차피 벌어진 상황. 정은은 실눈을 뜨고 좌소천을 흘겨보았다.
“이제 보니 자네도 꽤나 고약한 면이 있군.”
“글쎄, 나와 함께 다니는 사람들은 절대 자네의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네.”
좌소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머리를 흔들고 멍하니 서 있는 철군영 등을 바라보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지요. 그럼 저는 이만.”
정은은 좌소천의 등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서야 철군영 등을 향해 몸을 돌렸다.
뭔가가 자꾸 뒤통수를 잡아당겼는데,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꼭… 똥 싸고 안 닦은 기분인데……. 왜 이리 찝찝하지?’
그가 돌아서자 철군영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는 누군가?”
탁조민이 단 일 권에 나가떨어져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전력을 다한다 해도 이십 초는 되어야 승부가 날 사람이 탁조민이란 걸 생각하면, 무진이라는 자가 얼마나 강한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무진이라니까?”
황보소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람, 무림맹의 사람이 아니라면서요. 이곳에서 혼자 다녀도 괜찮을까요?”
정은이 눈을 홉떴다.
“헛! 깜박했다! 데려다 줘야 하는데.”
그제야 생각이 났다. 찝찝하던 기분의 정체는 좌소천을 혼자 보냈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
정은의 걱정에 청성의 진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를 찾아가야 하는데?”
“정빈관.”
“정빈관요?”
황보소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거기에는 지금 제천신궁에서 온 사람들이 머물고 있는데……. 그럼 무진이라는 그 사람이 혹시 제천신궁의 사람?”
정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제천신궁의 사람이라는 말.
모두가 흠칫했다. 철군영은 눈살을 찌푸리며 침음성마저 흘렸다.
“으음……. 탁조민을 한 방에 눕히다니. 제천신궁의 무력이 생각보다 대단한 것 같군. 그래, 그 친구의 지위가 뭔가? 그 정도 실력이라면 상당한 지위에 있을 것 같은데.”
공오와 진현, 황보소청이 정은을 주시했다.
정은이 별거 아니라는 듯 간단하게 말했다.
“무진이 제천신궁의 궁주야.”
“…….”
입이 달라붙은 듯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말이라니까?”
정은이 믿어달라는 표정을 지은 후에야 철군영이 달라붙은 입술을 어렵게 떼었다.
“이름이…… 무진이라며?”
그때까지도 정은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어, 무당에서는 그렇게 불렀어. 원래 이름은 좌소천이지만. 어때? 내 친구, 괜찮지?”
여덟 줄기 눈빛이 화살이 되어서 정은의 몸을 꿰뚫었다.
“아미타… 미치겠군.”
“원시…… 염병, 그걸 말이라고 해?”
“정으으은!”
4장 오행대(五行隊)
1
눅눅한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부는 아침나절.
좌소천은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두컴컴한 하늘을 머리에 이고 무림맹을 나섰다.
그들을 환송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수백 쌍의 눈빛이 그들을 훔쳐보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그리 곱지 않은 시선도 섞여 있었다.
무당의 제자 정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흥! 건방진 자식. 네놈이 운 좋게 사백조의 무공을 얻지 않았다면 어찌 그 자리까지 올라갔겠느냐?’
그러더니 좌소천 일행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는 살기마저 띠었다.
‘언제고 네놈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만들어주마.’
하지만 그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그가 좌소천을 보며 독한 마음을 먹는 동안, 누군가 역시 그를 엿보고 있다는 걸.
‘음?’
호정단 일대주 황보석의 수하인 하복양은 건물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정수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좁혔다.
그가 정수를 살피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제저녁 황보석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일대의 거처로 왔다.
그는 한참 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벽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한숨을 쉬고 남궁호와 팽교를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보고 온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황보석의 이야기에 남궁호와 팽교는 물론이고 하복양마저 넋 빠진 표정이 되었다. 그 역시 무당에서 좌소천과 다투었던 사람 중 하나였던 것이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림 남궁호가 물었다.
“그가… 정말 좌소천이었단 말입니까?”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였네.”
“제길. 정수, 그자만 아니었어도 일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팽교가 투덜거리며 정수 탓을 했다.
그러자 황보석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잠깐! 복양, 지금 정수 도장이 맹에 들어와 있지?”
“예, 대주.”
“복양, 자네는 지금부터 정수 도장의 행동을 잘 살펴보게.”
“예?”
“정확하게 뭘 알아보라는 것이 아니네. 그냥 살펴봐. 그러다 이상한 점이 있으면 내게 알려주기만 하게.”
그때부터 정수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결국 원수를 바라보듯이 살기 띤 눈빛을 짓는 정수를 본 것이다.
‘저것도 이상하다면 이상한 거겠지? 일단 대주에게 보고를 해야겠군.’
하복양은 슬그머니 몸을 돌리고 호정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