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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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2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8화
158화
2
천외천가와 천해의 섬서 공략은 말 그대로 전광석화였다.
종남을 피로 뒤덮은 천해는 곧장 종남산 일대의 강호방파를 정리하고서 위남(渭南)으로 진격했다.
그사이 천외천가의 전위세력인 오단 오당과 한중의 세력이 섬서 남단의 강호세력을 접수했다.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비명이 하늘 가득 울렸다.
동쪽에서도,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혈전이 벌어졌다.
섬서의 강호인들은 숨을 죽이고 속속들이 들려오는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어디에서고 천외천가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화산조차 움직이지 않고 상황만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게 닷새, 갑자기 싸움이 멎었다.
사람들은 언제 몰려올지 모르는 피의 폭풍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혈풍이 완전히 멈춘 것이 아님을 아는 까닭이었다.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찌른다.
걸음마다 질퍽한 핏물이 발에 밟힌다.
순양 적기보(赤旗堡) 이백수십 명의 시신 사이를 지나는 순우무종의 얼굴에 만족감이 어렸다.
“이로써 목표물들을 모두 정리한 건가?”
세 줄기로 나누어진 폭풍이 닷새간 열두 개 문파를 휩쓸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끈 제일대가 그중 다섯 곳을 피로 물들였다.
그중에는 안강의 무림맹 파견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적기보마저 무너진 이상, 섬서의 남부는 모두 정리되었다고 봐야 했다. 나머지 중소문파들이야 가만히 있어도 고개를 숙이고 기어들어 올 테니까.
‘후후후, 이제 곧 나 순우무종의 이름이 천하에 진동할 것이다!’
그는 적기보의 주 전각인 적성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적기보주 구철명이 다리가 잘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살려…….”
안간힘을 다해 가래 끓는 목소리로 입을 여는 구철명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흘러나올 때마다 핏물 역시 한 움큼씩 흘러나온다.
순우무종은 차갑게 웃으며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여자들이야 당연히 살려줘야지. 쓸모가 많을 테니까 말이야.”
여자는 살려줘도 남자들은 죽이겠다는 투다.
구철명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이백이 넘게 죽었거늘. 아직도 만족하지 못한단 말이냐?”
“천하를 얻기 위해 나왔는데, 이 정도 피를 두려워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나?”
“악랄한 놈!”
퍽!
순우무종의 옆에 서 있던 중년인이 커다란 도의 옆면으로 구철명의 머리를 내려쳤다.
“총령주께 불손한 놈은 머리가 깨져 죽어도 싸다.”
그는 상천단의 단주 강대종으로, 순우무종의 오른팔과 같은 자였다.
순우무종은 머리가 쪼개진 구철명은 보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쓸모없는 것들은 모두 죽여라.”
“예, 총령주!”
그때 손자기가 순우무종의 뒤로 다가왔다.
“이곳은 수하들에게 맡기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대공자.”
순우무종이 이끄는 천귀단과 혼천단, 상천단의 삼단 단주와 도유당과 벽천당 당주가 한자리에 모였다.
순우무종은 다섯 명의 수뇌가 모두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손자기를 바라보았다.
“무림맹의 반응은 어떠한가?”
“정무사단 중 백호와 청룡을 상주와 화산 일대로 파견한 상탭니다.”
“그까짓 놈들은 상관없다. 천무단의 움직임만 놓치지 않으면 돼.”
천무단은 구파오가의 장로 급에 해당하는 자들로 이루어진 무림맹 최강의 무력단체다. 그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무림맹이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 그들에 대한 움직임은 파악된 것이 없습니다, 총령주.”
“흠, 생각보다 신중하군. 곧바로 달려들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순우무종은 화제를 돌렸다.
“천해는?”
“종남과 영화산장을 치고 위남에서 전진을 멈춘 상태라 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화산은 쉽지 않다 생각한 건가?”
“화산의 성세는 백 년래 최고조로 올라가 있습니다. 아무리 천해라 해도 그들을 멸하려면 많은 손실을 각오해야 할 것입니다.”
“노야도 알고 보면 여우같단 말이야. 움직인 김에 화산을 쳤으면 했는데…….”
“아마 가주님께서 그리 명하셨을 것입니다.”
“아버님도 참. 모든 것은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데 말이야. 안 그런가? 칠 때 쳐야 기세를 살릴 수 있는 것 아닌가?”
“가주님이나, 대공자님이나 두 분의 깊으신 생각을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순우무종은 아쉬운 빛을 감추지 못하고 손자기를 바라보았다.
“본 가에서 따로 내려온 명령은 없느냐?”
“일차 계획이 성공리에 끝을 맺으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말고 천해의 움직임에 발을 맞추라 하셨습니다.”
“젠장, 죽어라 싸워서 남부를 장악했는데, 이제 천해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라고 하시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시지?”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그는 앞서서 지휘하고 싶었지, 천해의 뒤나 졸졸 따라다니며 뒤치다꺼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우리가 상주를 치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강대종이 당연하다는 듯 순우무종의 말에 찬동했다.
“총령주께서 하시려는 일을 누가 말릴 수 있겠습니까?”
손자기는 말리고 싶었지만, 순우무종의 불만 가득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적은 무림맹만이 아니다. 분명 제천신궁도 움직일 것이야. 그리되면 아무리 천해가 강하다 해도 혼자서 화산을 치는 것이 쉽지는 않을 텐데…….’
천외천가와 천해의 힘은 막강하다. 무림맹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하지만 제천신궁이 무림맹과 함께 움직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언제 균형이 깨질지 모르는 것이다.
그는 그런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총령주, 제천신궁의 움직임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좌소천이라는 어린놈이 차지했다는 제천신궁 말인가?”
“궁주가 된 좌소천은 본 가에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분명 무림맹을 도와 본 가를 치려 할 것입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말게. 그런 놈한텐 당할 정도로 약한 본 가가 아니니까.”
“물론 총령주를 믿기는 합니다만…….”
“그럼 끝까지 믿게. 애송이와 나를 비교하려 하지 말고.”
순우무종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냉랭하다.
그제야 손자기는 순우무종의 본심을 알고 마음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순우무종은, 어린 나이에 제천신궁을 장악한 좌소천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질시에 찬 마음으로.
경쟁심을 가진다는 것.
평소라면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좌소천과 싸울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상대를 얕보는 것은 더욱더 그랬다.
상대를 제대로 보지 못할 테니까.
‘좋지 않아…….’
손자기는 섬뜩한 불길함에 자신의 생각을 속으로 삭였다.
“속하가 어찌……. 총령주의 뜻대로 하시지요.”
어쩌면 자신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올지도 몰랐다. 그때를 위해서 순우무종의 눈 밖에 나는 짓은 삼가는 게 나았다.
가슴이 답답해도, 일단은 살아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3
가슴이 타는 듯하다.
손발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헉, 헉, 헉…….”
혁련미려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순우무궁에게 혈도를 짚이며 받은 충격이 아직 완전히 해소된 상태가 아니었다. 반나절을 움직이자 팔과 어깨가 시큰거리고 다리가 마비되는 듯했다.
그나마 기천승이 순우무궁을 막아주며 시간을 벌지 않았다면 벌써 쓰러졌을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자에게 들키다니…….’
순우무궁에게 들키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태백산을 벗어났을지도 모르거늘.
하늘이 자신을 농락하는 것만 같아 눈물이 나왔다.
자신을 발견한 사람이 하필 순우무궁일 것은 또 뭐란 말인가!
의외인 것은 순우무궁의 강함이었다.
자신이 천선곡 안에서 들은 말에 의하면, 순우무궁의 무위는 순우무종 아래라 했다. 그런데 기천승과 싸우는 것을 보니 오히려 순우무종보다 훨씬 강했다.
기천승은 순우무궁이 뭔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무공을 끌어올린 것 같다고 했다.
하긴 자신이 봐도 그렇게 보였다. 광기가 가득한 붉은 눈, 사악한 웃음소리. 절대 정상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는 쉽게 지치지 않았다.
그 바람에 기천승은 숲을 이용해 몸을 숨기고 암습으로 순우무궁을 상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기천승도 순우무궁과 계속된 격전에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그는 모험을 해서라도 순우무궁을 따돌리겠다면서, 나아갈 길을 대충 알려주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가 올지 오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황. 이제부터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태백산을 빠져나가야 한다.
남은 거리는 오십여 리.
‘살아서 나갈 거야. 꼭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거야!’
그녀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고 기대었던 나무에서 등을 떼었다.
그때였다.
“제법 멀리 왔군.”
음울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한 사람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빛 장포를 입은 자였다.
하얀 얼굴과 어우러져 섬뜩함이 느껴지는 얼굴은 정말 유령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혁련미려는 휘청거리려는 몸을 겨우 바로 잡고는, 있는 힘을 다해서 오른쪽의 숲으로 뛰어들었다.
일각을 달릴 수 있을지, 아니면 반 각도 되지 않아 잡힐지 몰랐다. 그래도 마지막 한 방울의 기력이 떨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자신을 발견한 자가 순우무궁이 아니라는 것 정도.
‘적어도 몸이 먹혀 죽지는 않겠지!’
그녀는 그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숲을 헤치고 달렸다.
그러나 그녀의 가녀린 몸부림도 오래가지 못했다. 생각했던 반 각의 반도 안 되어 그녀는 절망감에 젖어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유령처럼 나타났던 자는 정말 유령인 듯했다. 나무 사이를 안개처럼 흐르며 앞길을 막는데, 도저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 저를 놔줘요.”
그녀는 울며 애원을 해보았다.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목석처럼 음울한 목소리로 말하며 혁련미려를 향해 다가왔다.
“주군께서 너를 데려오라 하셨다. 너는 나와 함께 가야 해.”
그가 두 손을 뻗자, 하늘에서 수십 개의 손이 너울지며 그녀를 덮었다.
하늘이 돌고, 숲이 도는 것 같은 기분.
혁련미려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싸늘한 바람이 밀려들었다.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지만 한 여름의 바람치고는 너무 차가웠다.
어찌나 차가운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얼음구덩이에 빠진 것만 같았다.
두 가지 충격이 겹쳐지자, 혁련미려의 정신마저 무너져 내렸다.
쩌저적! 우르릉!
문득 만년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만년설에 갇혀 영원히 잠들었으면…….’
그녀는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소원을 빌며 눈을 감았다.
곧 부드러운 손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지만, 그녀는 그것조차 꿈이라 생각했다.
4
회의는 맹주의 집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참석자는 양편의 수장인 좌소천과 우경 진인, 군사인 제갈진문과 공손양이 전부였다.
주 의제는 두 가지, 천외천가와 천해를 어느 선까지 처리하느냐 하는 것과 우선적으로 어디를 먼저 치느냐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의제에 대한 생각은 양쪽이 같았다.
천외천가와 천해의 멸살(滅殺)!
너무 많은 피가 흘렀다.
안강에 파견 나갔던 무림맹의 무사들조차 겨우 오십 명 정도만이 살아남았을 뿐.
이렇게 회의를 나누는 중에도 혈겁에 관한 정보가 계속 들어오는 중이다.
단순히 태백산으로 밀어 넣는 정도로 끝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의제에서 생각이 엇갈렸다.
“지금 섬서의 많은 문파 사람들이 놈들을 피해 화산으로 집결했소. 그러니 우선적으로 화산을 지켜야 하오.”
제갈진문은 화산을 지키면서 적을 상대하자고 했다.
그러나 공손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처음부터 한곳에 힘이 집중되면 섬서의 동남부가 뚫립니다. 놈들이 그 틈을 노리고 호북과 하남으로 쳐들어오면 막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일단은 저들의 진출로를 막고 나서 공격에 나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다 화산이 공격당하면 큰일 아니오?”
제갈진문이 고집을 굽히지 않자, 우경 진인도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빈도가 생각해도 화산을 지키는 것이 먼저인 것 같네.”
그마저 화산파를 우선으로 생각하자, 조용히 듣고 있던 좌소천이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분명히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냉정한 말씀 같지만, 저희는 화산파를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닙니다.”
직설적인 말에 감정이 상한 듯 우경 진인의 눈매가 미미하게 움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