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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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48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6화
156화
혁련미려가 기억을 더듬어 천선곡 내부에 대한 것과 입구의 진세에 대한 것을 모두 알려주는 데는 반 시진이 걸렸다.
“진은 바뀔지도 몰라요. 제가 빠져나왔으니까요.”
기천승도 그 말에 공감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진세는 변하지 않을 터. 변한 것은 나중에 알아보면 될 일이었다.
“그도 그렇군. 좌우간 시간이 없으니 다 먹었으면 일어나자. 몸을 다스리느라 너무 오래 지체했다.”
“예, 기 아저씨.”
기 아저씨라는 말에 기천승이 멈칫했다. 하지만 별다른 불만은 없는 듯 별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하루 동안 이동한 거리는 겨우 삼십여 리에 불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혁련미려가 부상을 입은 것도 그렇고, 기천승 역시 작지 않은 내상을 입어 몸을 먼저 돌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혁련미려가 천선곡을 빠져나간 이상 천외천가가 가만히 있을 리는 만무한 일. 그들의 추적을 피해야 했다.
기천승은 태백산 일대를 조사하며 봐두었던 동굴 중 사람들이 찾기 힘든 곳을 골라 일단 몸을 숨겼다.
그리고 하루, 어느 정도 몸이 회복된 상태였다.
“가자.”
기천승은 조심스럽게 동굴을 나섰다. 혁련미려도 그의 뒤를 따라서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클클클, 겨우 여기까지밖에 도망치지 못했나?”
순우무궁의 목소리가 암벽 위에서 들려왔다.
3장 무림맹(武林盟)에서 오룡(五龍)을 만나다
1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날 아침, 오백이십여 명의 무사가 제천신궁을 출발했다.
좌소천은 검왕 위지승정을 임시 궁주로 앉혀놓고, 원로원의 장로들 중 등소패를 비롯해 몸이 약한 사람들은 출정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이 워낙 먼데다가, 그들이라도 궁 안에 있어야 궁의 기강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동천옹과 무영자, 염불곡, 죽귀는 끝까지 출정단을 따라 나왔다. 죽기 전에 섬서의 유명한 곳을 구경해야겠다면서.
“장안이 그렇게 구경할 게 많다던데…….”
“종남산도 괜찮아.”
“화산에 귀령이 제법 많은데, 그놈들을 잡으러 가야겠습니다.”
“여산의 온천물이 그렇게 좋다고 하니 정말인가 알아봐야겠어. 우리 손녀딸 피부와 맞을지…….”
좌소천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
말려봐야 몰래 따라올 것이 분명한 일. 차라리 행방이라도 미리 아는 것이 나았으니까.
그렇게 하늘에 간간이 떠다니는 구름을 벗 삼아 걸음을 옮긴지 사흘째.
좌소천은 여주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무림맹이 있다는 오룡산(五龍山)을 향해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여주까지 그와 동행한 사람은 직속호법 열 명과 비천사룡. 그리고 능야산의 형제들 중에서 추린 열 명을 합쳐 스물네 명에 불과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주력은 북리환의 인솔 아래 웅이산(熊耳山) 북쪽에 있는 산채로 가도록 했다.
녹림왕이라 불리는 북리환 덕에 산적들의 소굴인 산채를 훌륭한 중간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주에서 오룡산까지는 사십여 리.
좌소천 일행이 쭉 뻗은 관도를 따라 이십여 리 정도 갔을 때였다. 십여 명이 앞쪽에서 달려왔다.
그들 중 마흔 정도 되어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로 물었다.
“제천신궁에서 오신 분들이 아니신지요?”
인상 좋은 사인학이 앞으로 나섰다.
“그렇습니다. 무림맹에서 오신 분이십니까?”
“맞소이다. 우리는 제천신궁에서 오신 분들을 본 맹으로 안내하기 위해 나왔소이다.”
“다행이군요. 어디로 가야 하나 고민했는데 말입니다.”
듣기에 따라 비꼬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었다.
청해놓고 알아서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 하는 투였으니까.
하지만 사십대의 중년인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담담히 말을 받았다.
“하하하. 어린아이들도 여주까지만 오면 무림맹을 찾을 수 있지요.”
설마 어린아이도 찾을 수 있는 걸 당신들이 못 찾겠냐? 하는 말이다.
사인학은 빙그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속으로야 ‘아쭈 제법인데?’ 하는 마음이었지만.
“미처 몰랐습니다. 본 궁에선 사람을 청할 때, 처음 오는 사람에게는 안내인을 붙여주거든요. 그게 예의라서 말입니다. 하하하.”
그 말에는 중년인도 마땅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살짝 얼굴이 굳어진 그에게 사인학이 말했다.
“앞장서시지요. 뭐 저희가 그런 예의를 지킨다고 해서 굳이 무림맹에게까지 강요할 필요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눈을 좁힌 중년인은 사인학을 한번 노려보고 몸을 돌렸다.
“크음, 알겠소이다. 따라오십시오.”
그때 사인학이 돌아서려는 중년인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아! 그전에 저희 궁주님께 인사 정도는…….”
결국 중년인은 굳어진 얼굴로 좌소천 일행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곧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거의 같은 복장, 누구누군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인학이 그런 중년인의 뒤통수에 못을 박았다.
“본 궁에선 어린아이도 어느 분이 궁주님이신지 곧바로 알아보지요.”
중년인이 땡감 씹은 표정을 지으며 사인학을 흘겨보았다.
그러던가 말던가, 사인학은 조용히 웃으며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만 바라보았다.
완벽한 승리자의 모습이다.
좌소천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고 포권을 취했다.
“좌소천이오.”
궁주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름은 알고 있었다.
중년인은 다급히 마주 포권을 취하며 고개를 숙였다.
“황보세가의 황충이라 합니다.”
그의 뒤에 늘어서 있던 무림맹 무사들은 경악을 감추지 못하고 좌소천을 바라보았다.
듣기로는 새로운 제천신궁이 이전의 제천신궁보다 훨씬 강하고 거대한 세력이라 했다.
천하제일패 제천신궁의 새로운 궁주. 그는 천하를 뒤흔든 풍운아였다.
가히 천하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람. 그가 바로 현재의 제천신궁주 절대공자(絶對公子) 좌소천인 것이다.
그런데 너무 젊었다.
게다가 일반무사들이나 별반 다르지 않게 보였다.
정말 저 청년이 제천신궁의 궁주일까? 그런 의심이 갈 정도.
오죽하면 급히 고개를 숙이던 중년인이 멈칫했을까?
그때 좌소천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내해 주시겠소? 우리는 이곳이 처음이라, 어린아이보다도 길을 모릅니다.”
황충의 표정이 어색하게 변했다. 그러다 좌소천이 자신의 무안함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정말 제천신궁의 궁주인 것 같구나. 이런 사람을 의심하다니…….’
갑자기 좌소천이 커 보였다. 두 눈에 다 담기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충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공손히 흘러나왔다.
“저희를 따라오시지요, 궁주.”
황충을 따라 얕은 구릉을 몇 개 넘자, 그리 높지 않은 산 아래쪽에 끝이 보이지 않는 건물군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하제일의 연합세력, 무림맹이었다.
드넓은 오룡산 자락을 통째로 차지한 채 와룡처럼 누워 있는 무림맹. 그 거대한 규모는 결코 제천신궁에 못지않았다.
좌소천은 일행과 함께 황충을 따라 무림맹의 정문으로 다가갔다.
활짝 열린 커다란 정문 앞에는 십여 명이 미리 나와서 좌소천 일행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복을 입은 자도 있고, 도복을 입은 자도 있었는데,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나이로 보였다.
그들 한가운데에 제갈진문이 서 있었다.
황충이 먼저 그들 앞으로 가더니 자신의 임무 완수를 보고했다.
“황충, 명대로 제천신궁의 좌소천 궁주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수고했네.”
고개를 끄덕인 제갈진문은 옆에 서 있는 사람들과 함께 좌소천을 향해 다가왔다.
거리가 이 장으로 가까워지자, 제갈진문이 포권을 취하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시느라 애쓰셨소이다, 궁주.”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행동과 말투다.
좌소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을 취했다.
“별말씀을. 너무 늦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갈진문의 눈 가장자리가 잘게 떨렸다. 좌소천의 말뜻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방법을 구해봐야지요.”
그때 제갈진문의 뒤에 서 있던 자들 중 오십대 초반의 중년인이 좌소천 일행을 둘러보고는 좌소천을 향해 두 손을 들어 올렸다.
길게 빠진 턱에 뾰족한 수염이 달리고, 눈 가장자리가 살짝 치켜져 날카로운 인상을 주는 자였다.
“좌 궁주를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현무당을 맡고 있는 당처문이라 하외다. 한데… 설마 제천신궁에서 여러분만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예의상 인사말은 건네지만 마지못해하는 표정이다. 게다가 질문을 하면서 인상을 쓴다.
좌소천이야 담담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했다.
당처문에 비해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날카로운 인상의 도유관이 냉랭히 말했다.
“주군께서 계시는 곳이 곧 제천신궁이지요. 본 궁은 사람 수를 앞세워서 위세 떠는 곳이 아니외다.”
당처문의 싸늘한 눈이 도유관을 향했다.
도유관의 말인즉, 무림맹처럼 사람 수를 앞세워서 위세를 떨지 않는다, 라는 뜻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대단한 자신감이군. 입만 산 것이 아니길 바라지.”
당처문은 차마 더 이상 심한 말을 하지는 못하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내심을 드러냈다.
“확실히 소문은 믿을 게 못돼. 맹주께선 왜 저런 자들과 손을 잡으려 하는지 모르겠군. 별 도움도 못될 것 같은데 말이야.”
도유관의 입꼬리 한쪽이 슬쩍 위로 말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누구들처럼 입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뭐라고?”
일순간 두 사람 사이에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자 둥근 얼굴 왼쪽에 커다란 점이 박힌 도인이 담담히 웃으며 나섰다.
“허허허. 본 맹과 제천신궁이 그간의 다툼을 떠나 손을 잡는 날인데 인상을 쓸 필요가 있겠소?”
공손양이 마주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기분 좋은 날 시비를 거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도 호법님, 먼지가 이는 곳에 주군을 모시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도유관이 좌소천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주군.”
좌소천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걸렸다.
“너무 신경 쓸 것 없소. 진실은 칼이 말해줄 테니 말이오.”
공손양이 씩 웃었다.
“정문을 넘어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주군.”
제갈진문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럴 리가 있겠나? 본 맹은 손님을 청해놓고 문전에서 쫓아낼 정도로 무지한 곳이 아니네.”
“글쎄요. 그래도 문 앞에서 사람을 죽이면 상황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만.”
공손양의 말에 제갈진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말이 뭘 뜻하는지를 알아챈 것이다.
그는 당처문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끼고 급히 좌소천을 보며 안쪽으로 손짓을 했다.
“자,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궁주. 맹주님께서 이제나저제나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시오.”
제천신궁의 궁주가 무림맹을 방문한다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밖으로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림맹 내부에선 상당수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좌소천 일행이 무림맹의 정문을 통과하고, 넓은 연무장을 지나 정천전으로 가는 동안 많은 사람이 좌소천 일행을 구경하며 수군거렸다.
“이거야 원,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우리가 온다는 것을 알린 것인지 모르겠군요.”
사인학이 투덜댈 만도 했다.
천외천가와를 상대하기 위해 제천신궁과 무림맹이 손을 잡았다는 것이 알려져 봐야 천외천가의 경계심만 높여줄 뿐인 것이다.
“맹주께서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말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말이 새어나간 것 같네.”
제갈진문이 쓴웃음을 지으며 변명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명될 일이 아니었다.
공손양의 얼굴이 침중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그럼 앞으로 회의를 할 때 장로들은 일절 배제해야겠군요.”
“그건…….”
제갈진문이 머뭇거리며 난색을 표하자, 좌소천이 못을 박듯이 말했다.
“무조건 그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좌 궁주…….”
“맹주와 군사, 그리고 군사께서 책임질 수 있는 사람. 그 외에는 누구도 회의에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고개를 돌린 당처문이 이마를 찡그렸다.
“우리를 못 믿겠단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