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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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4화
154화
아버지는 자신이 제천동에 들어가기 전보다 많이 늙어 보였다. 머리는 백발이 되었고, 얼굴의 주름살도 배는 더 늘어나 있었다.
“아버지, 어떻게 된 겁니까? 정말 시중에 떠도는 말이 다 사실입니까? 태군사님에 대한 이야기부터 소천이 형을 죽이려 했다는 것까지 전부, 정말로 그랬던 것입니까?”
“그래, 사실이다.”
“그래서 분노한 소천이 형이 아버지와 큰형님을 몰아냈습니까?”
“조금은 변질된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전체적인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자신의 질문에 아버지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도무지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권력을 잃은 권력자답지 않은 태도.
패왕이라 불리던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자신으로선, 눈앞에 있는 분이 정말 아버지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왜 그렇게 태연하십니까, 아버지?”
“패도를 추구하던 나다. 그리고 나는 나를 대장부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자는 깨끗하게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담담한 아버지의 말에 다시 물어봤다.
“그럼 앞으로도 그냥 이렇게 사실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뜻밖에도 아버지는 조용히 웃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에 보았던 그 어떤 웃음보다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럴 수는 없지.”
대답도 뜻밖이었다. 깨끗이 승복한다면서 그럴 수 없다니?
그때 의아해하는 자신을 아버지가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내가 직접, 아들들과 손자들을 정말 그럴듯하게 키워볼 생각이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거렸다. 눈가가 찡해져서 억지로 눈물샘을 막아야 했다.
언제 저렇듯 따뜻한 말을 들어봤던가?
자신의 생각으로는 열 살이 넘은 이후로는 들어보지 못했던 듯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이분이 정말 내 아버지 맞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그렇게 키워서 좌소천을 이겨볼 생각이다. 그래야 남들도 내가 결코 못나서 좌소천에게 자리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 아니냐?”
그제야 조금 제천무제다웠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일단 큰형님을 만나고 나서 제가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일어서려 하자 아버지가 물었다.
“한 가지만 묻자. 천강의 힘을 얻었느냐?”
“예, 아버지.”
아버지는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 가서 큰형을 만나봐라.”
그 후 큰형을 만났다.
그런데 큰형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항상 큰형의 몸에서 피어나던 강자의 오만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갈며 큰형이 말했다.
“좌소천은 강하다. 나는 더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힘으로 좌소천을 이기고 진정한 패왕이 될 것이다, 호운!”
혁련호운은 혁련호정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서 들리는 듯했다.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왜 아버지와 큰형의 독선과 오만이 날개 꺾인 독수리 신세가 되었는지.
고금에서 가장 강한 무공 중 하나라는 천강무령수를 익히고도 좌소천의 권에 밀렸다.
비록 팔성의 성취에 머물러서 아직 완성이 요원하다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남에게 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좌소천의 도는 주먹보다 무섭다고 했다.
과연 천강무령수를 극성에 이르도록 익히면 좌소천의 도를 막아낼 수 있을까?
왠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천강무령수가 좌소천의 도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었다.
‘완성한 후에 다시 도전하겠어!’
혁련호운은 굳어진 얼굴로 좌소천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들었어. 소문이 모두 사실이라고 하더군.”
“맞다. 모두 사실이지. 내 아버지가 네 아버지의 방조 하에 죽어간 것, 어머니를 돌아가시게 한 천외천가와 손을 잡고 나를 멀리한 것, 그리고 나를 불러 죽이려 하신 것까지 모두.”
“그런데… 왜 아버지와 큰형을 물러나게 하는 것만으로 끝낸 거지?”
차마 물어보기가 힘들었다.
남들이 들으면, 그럼 아버지와 형이 죽었어야 했단 말이냐? 하고 욕할 수도 있는 말이었으니까.
그러나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걸 알아야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으니까.
“이유야 어쨌든 아버지의 목숨을 십삼 년이나 보살펴 주신 분이다. 그리고 한때 내가 백부라 불렀던 분이지. 너는 나를 너무 독한 사람으로 보고 있구나.”
혁련호운은 고개를 들고 대뜸 소리를 질렀다.
“젠장!”
그러고는 좌소천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좋아, 좋다고! 다 인정하지! 하지만 이것만은 알아둬. 형이 강한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언젠가는 형을 꺾을 거야. 그리고 다시 제천신궁을 찾을 거야. 알았어? 그때 가서 내 도전을 피하지 않는다고 약속해!”
좌소천은 혁련호운의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약속하지. 그런데… 떠나려고 하는 거냐?”
“그래!”
“차라리 이곳에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왜 가려는 거지?”
움찔한 혁련호운이 머뭇거리더니 하늘을 바라보며 독백하듯이 말했다.
“그게 말이지…… 나에게 좋은 여자가 하나 생겼거든. 정말 예쁜 여자야. 그런데 그 여자가 위험해질지 몰라. 그래서 가려는 거야. 그 여자를 지키러. 다행히 아버지하고 큰형도 괜찮은 거 같고……. 뭐 화는 나는데, 죽자 사자 싸울 정도는 아닌 것처럼 보여서 말이지.”
좌소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문득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떠난다는 혁련호운이 부럽게 느껴졌다.
“언제 돌아올 거냐?”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뒤늦게 알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여자다.
그런 여자가 결연한 표정으로 떠났다. 그만큼 위험한 길이라는 말. 앞날은 자신도 장담할 수 없었다.
“좌우간 다시 돌아와서 반드시 형을 꺾을 거야. 그때까지 기다려!”
혁련호운은 고개를 내밀며 으르렁거리듯 말하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가 갑자기 떠나자 좌소천이 급히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 거냐?”
지붕 너머에서 혁련호운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태백산…….”
순간 좌소천은 알 수 없는 느낌에 전율이 일었다.
2
혁련호운이 떠나간 그 시각.
천화원 깊은 곳에서 한 사람이 눈을 떴다.
“크으윽!”
그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머리를 두 손으로 쥐어 감쌌다.
바늘로 뇌를 휘젓는 듯한 고통에 머리가 터질 듯했다.
눈앞의 모든 것이 붉게만 보였다.
방 안에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데도 모든 것이 붉었다.
“흐으으으!”
그는 참을 수 없는 통증이 멈추지 않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쾅!
방문을 박차고 나간 그는 좌우를 훑어보았다.
역시나 모든 것이 붉기만 했다. 건물도, 나무도, 정원의 바위도 붉었다. 그리고 저만치서 다가오는 사람도 붉게 보였다.
그런데 괴이했다. 사람을 보자 고통이 누그러지는 것이 아닌가.
대신 기이할 정도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장이 벌떡거리며 고동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흐으, 저놈을 죽여 버리고 싶어. 내 머리를 아프게 한 놈.’
그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순찰무사를 향해 다가갔다.
그가 자신을 알아봤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 둘째 공자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냐고? 그럼! 머리 아픈 것만 빼면 다 괜찮지. 물론 그것도 네놈을 죽이면 다 나을 것 같지만. 그런데… 둘째 공자란 놈은 누구지? 아! 난가?’
혁련호승은 순찰무사가 눈앞까지 다가오자 하얗게 웃었다.
순찰무사는 혁련호승의 웃음에 멈칫했다.
순간 혁련호승의 손이 번개처럼 순찰무사의 심장을 향해 뻗었다.
퍽!
“크억!”
입을 쩍 벌린 순찰무사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혁련호승은 순찰무사의 심장에 박힌 손을 쑥 잡아 뽑았다. 그러고는 뒤로 넘어가는 순찰무사는 보지도 않은 채, 탐욕에 젖은 눈으로 손에 들린 심장을 입으로 가져갔다.
“크크크, 이제야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군.”
그때 입구 쪽에서 무사들이 몰려왔다.
“비명이 들렸는데 무슨 일이야?”
“누가 침입한 것이지? 모두 경비를 강화하고 속히 상황을 알아봐라!”
한 사람이 혁련호승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저기 수상한 놈이 하나 있다! 잡아!”
혁련호승은 그들을 한번 바라보고는 귀찮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신형을 날렸다.
“건방진 놈들이 감히 내 식사를 방해하다니…….”
그가 사라짐과 동시 네 명의 무사가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바닥에 쓰러진 순찰무사를 보고는 대경했다.
“심장이 뽑혔어!”
“어떤 놈이……!”
“비상을 걸어! 어서! 아까 그놈을 잡아야 돼!”
그때 한 사람이 혁련호승의 방을 바라보고 말을 더듬었다.
“두, 둘째 공자의 방이……?”
옆에 서 있던 자가 급히 부서진 방문을 옆으로 치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없어. 둘째 공자가 사라졌다.”
“그럼… 조금 전의 덩치 큰 그 사람이… 둘째 공자?”
제령전의 내실로 돌아가려던 좌소천은 천화원 쪽에서 들려오는 급작스런 소란에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즉시 도유관이 나섰다.
“속하들이 알아보겠습니다, 주군!”
그는 종리명한과 사인학을 데리고 소리가 들려온 천화원 쪽으로 달려갔다.
그가 돌아온 것은 반의 반 각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굳은 그의 얼굴로 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듯했다.
“주군, 천화원에서 심장이 뽑힌 순찰무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범인이 혁련호승 같습니다.”
도유관은 당시 혁련호승을 목격했던 자들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그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좌소천의 표정도 굳어졌다.
출정을 하루 앞둔 날,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신과 악연이 있다 할 수 있는 혁련호승이 관계된 일이.
뜻하지 않은 일에 좌소천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의 행방은 찾았소?”
“지금 전 지역에 비상을 걸고 찾고 있는 중입니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혁련호승은 혈맥이 세 군데나 끊어진 상태다. 호성당의 순찰무사는커녕 일반무사들조차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터.
뭔가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졌다는 말이었다.
“알겠소. 내가 직접 천화원으로 가볼 테니 소식이 오면 바로 전하라 하시오.”
“예, 주군!”
마주 앉은 혁련무천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져 있다.
혁련호정도 평소와 달리 입을 꾹 다문 채 굳은 표정이다.
좌소천은 두 사람의 태도만으로도 뭔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왜 호승 형이 그리 갑자기 변한 것입니까?”
좌소천의 재촉에 혁련무천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으음……. 내 다 말하지.”
“아버님…….”
혁련무천을 말리려던 혁련호정은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혁련무천의 입이 열렸다.
“천외천가의 놈들이 둘째의 끊어진 혈맥을 이어준다고 사람을 데려왔는데…… 아무래도 부작용이 일어나서 결국 그리된 것 같다.”
“순찰무사가 죽고, 심장이 뽑혔다는 말은 들었겠지요?”
“들었다.”
“그가 왜 심장을 뽑아서 가져갔을 거라 보십니까?”
“그건…….”
혁련무천도 뭔가를 짐작한 듯했다. 하지만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하지는 못했다.
좌소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만일 제가 생각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냥 둘 수 없습니다. 그 점 미리 용서를 구하겠습니다.”
거기에 대해선 혁련무천도, 혁련호정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마 세 사람의 생각이 거의 같을 것이다.
혁련호정이 가래 끓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전에, 내가 먼저 호승이의 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해다오.”
혁련호승의 뒤를 쫓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그가 들고 간 심장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황강산 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으니까.
추적이 시작된 지 반 시진.
삐이이이이!
황강산 중턱에서 기다란 신호음이 울렸다. 핏방울을 쫓아간 호성당과 절혼당, 순찰당의 무사들이 혁련호승의 위치를 파악한 듯했다.
신호음이 울리자 황강산 일대에 천라지망이 펼쳐졌다.
천화원을 나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좌소천도 직속호위무사들과 함께 황강산으로 향했다.
그러길 일각.
좌소천은 황강산의 묘역이 있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또 다른 신호음이 울리길 기다렸다.
그때 좌측 계곡 안쪽에서 괴성과 비명과 무사들의 외침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으아악!”
“놈이다! 잡아라!”
“살귀가 도망간다! 쫓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