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천왕 153화
무료소설 절대천왕: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6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절대천왕 153화
153화
연검을 든 중년인. 그는 다름 아닌 귀영천살 기천승이었다.
기천승이 수천 리 밖의 태백산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좌소천에게 특별한 명을 받은 그는 이미 한 달 전부터 태백산에 들어와 있었다.
그가 받은 명령은 두 가지.
하나는 천선곡의 위치를 파악한 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면서, 훗날 태백산을 칠 때를 대비해 근처의 상세한 지리를 조사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천해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었다.
그건 아무에게나 시킬 수가 없는 일이었다. 둔형술 등을 익혀 잠입술이 뛰어난데다, 무위마저 높은 기천승을 보내는 것조차 좌소천으로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태백산에 온 기천승은 열흘 만에 천선곡을 찾아냈다. 그 후부터는 진세를 파악하고 근처의 지리를 조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천해에 대한 것을 알아보는 것뿐.
그런데 아무리 태백산을 뒤져도 천해가 존재할 것이라 생각되는 곳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기천승은 천해가 천선곡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사흘 전부터 천선곡의 입구로 보이는 곳을 감시했다.
마침 천외천가에서 엄청난 인원이 쏟아져 나간 상황. 들어갈 수만 있으면 자신의 몸 하나 숨기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안개 속에서 경장을 입은 여인이 튀어나오고 종소리가 울렸다.
종소리가 울린 이상 천외천가의 무사들이 나타날 것은 당연한 일. 기천승은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망설임도 잠시였다.
경장을 입은 여인의 뒤를 따라 수라귀처럼 변한 자가 안에서 뛰쳐나오는가 싶더니, 그의 입에서 혁련미려란 이름이 들렸다.
기천승은 미련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결국, 혁련미려가 위기에 처하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콰광!
십여 초가 지나도록 두 사람의 공방은 팽팽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십여 초가 지나자, 노련함이 앞선 기천승이 조금씩 우세를 점하기 시작했다.
순우무궁의 얼굴은 더욱 벌겋게 달아오르고, 두 눈에서 뿜어지는 붉은 기운도 더욱 강렬해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순우무궁의 두 눈이 완전히 붉게 변하는가 싶더니, 그의 입에서 괴성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
떠더더덩!
네 번에 걸친 격돌음이 이어지며 기천승의 몸이 뒤로 일 장가량 밀렸다.
갑자기 강해진 순우무궁의 무위에 기천승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봐도 정상이라 볼 수 없는 눈빛이다.
단순히 마공을 익혔기 때문이 아닌 듯하다. 광기에 젖은 것이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우측의 숲으로 들어가시오. 어서!”
기천승은 혁련미려에게 소리치고 순우무궁을 향해 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연검 끝이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짙푸른 검강이 검첨에서 쭉 뻗었다.
동시에 순우무궁이 핏빛 혈수를 앞세운 채 달려들었다.
콰르릉!
두 사람의 기운이 정면으로 충돌한 순간, 기천승의 몸이 우측의 숲을 향해 튕겨지듯이 날아갔다.
다섯 걸음을 물러선 순우무궁이 몸을 세웠을 때, 기천승은 이미 숲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때다. 천외천가의 무사 십여 명이 어스름을 헤치고 좌측의 숲 속에서 나왔다.
그들은 협곡 안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괴인을 보고는 재빨리 공세를 취했다.
“웬 놈이냐?!”
“수상한 놈이다! 놈을 잡아라!”
그들을 향해 천천히 돌아서는 순우무궁의 입가에 잔악한 미소가 번졌다.
“크크크크, 네놈들의 피를 마셔서라도 갈증을 해소해야겠다.”
2장 광기(狂氣), 그리고 최후(最後)
1
천공에 걸린 반쪽난 달이 수줍은 소녀마냥 구름 속을 비집으며 파고든다.
승화담에 비친 반쪽 달도 수련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바람에 날린 머리카락이 목덜미를 쓸며 지나가자, 좌소천은 승화담에서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한때 이곳에서 혁련호승과 자주 다툼이 있었다. 솔직히 다툼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얻어맞았지만.
당시 선우 백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무도, 자신조차 확신할 수가 없었다. 다만 선우 백부의 도움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어쩌면 혁련호승의 괴롭힘 역시 자신의 의지를 단단하게 만드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이제는 그때의 고난조차 추억처럼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호운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혁련가의 사람 중 자신을 좋아했던 두 사람. 그중 한 사람이 혁련호운이다.
이틀 전, 안에 있는 물건을 절대 반출시키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혁련가의 비밀 연무장인 제천동을 열었다.
그런데 당연히 안에 있을 거라 생각했던 혁련호운이 보이지 않고, 대신 통통하게 살찐 쥐 두 마리만 살고 있었다. 아마도 넣어준 음식을 그 쥐들이 모두 처리한 듯했다.
혁련호운이 사라진 것을 혁련무천과 혁련호정도 몰랐던 듯 그들 역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속일 이유가 없으니 거짓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대체 그는 언제 나갔을까?
있을 리 없는 쥐가 있는 걸로 봐서 어딘가에 통로가 있는 듯했다. 쥐가 아직 새끼를 낳지 않았다는 건, 그가 제천동을 나간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말.
왜 그는 몰래 제천동을 빠져나간 걸까? 앞이 막혔는데 어디로?
제천동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그리고 결국 제천동 끝에서 혁련무천과 혁련호정조차 몰랐던 비밀 통로를 발견했다.
그때 보았던 두 사람의 허탈한 표정으로 봐서는 말 못할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좌우간 혁련호운은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렸다.
‘소식을 들었으면 돌아올 텐데, 호운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군.’
하늘을 바라보는 좌소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힐 즈음, 구름에 숨었던 반쪽 달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다. 자신조차 쉽게 느낄 수 없는 미세한 기운이 느껴졌다.
비천사룡이나 도유관 등의 직속무사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매우 조심스러운 움직임.
적의는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내궁의 사람도 아닌 듯했다.
비천사룡도 뒤늦게 그 기운을 느꼈는지, 금룡의 전음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궁주, 접근하고 있는 자가 있사온데 그냥 놔둬도 되겠습니까?>
<놔두고 모른 척하시오.>
간발의 차이로 도유관도 전음을 보냈다.
<주군, 상당한 고수가 바로 앞까지 접근했습니다. 속하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그냥 놔두시오. 적은 아닌 것 같으니까.>
아직 누군지는 모른다.
뭔가 정보를 얻으려고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운 제천신궁의 주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왔을 수도 있다.
걸리는 점이라면, 접근하는 자의 무위가 생각보다 뛰어날지 모른다는 것 정도.
어쨌든 살기가 없는 이상 과잉 대응할 필요는 없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것 같군.’
좌소천은 아무것도 모른 척 몸을 돌려 승화담을 등졌다.
순간 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승화담 가에 자라는 버드나무 잎이 몸을 비벼대며 노래를 불렀다.
스스스스…….
그때 그가 나타났다.
천공에 떠 있는 반쪽 달을 가린 채, 하늘에서!
좌소천은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얼굴을 천으로 가린 검은 그림자 하나가 소리없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무기는 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좌소천은 무기가 들려 있지 않은 습격자의 두 손이 그 어떤 무기보다 더 위협적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묘한 것은 그토록 강력한 공격을 하면서도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 중 하나. 상대가 살기를 완벽히 감출 정도의 절대고수거나, 아니면 자신을 시험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말.
비천사룡과 도유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는 상태.
좌소천은 보는 사람이 답답해 보일 정도로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찰나, 상대의 짙푸른 청광이 번뜩이는 쌍수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떵! 떵! 떵!
쇠망치로 바위를 두들기는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좌소천은 건곤신권으로 상대의 쌍수를 막아내며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할 거라 예상은 했다. 하지만 비천사룡과 도유관에게 들켰을 정도면 그들보다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습격자의 수공만큼은 절대 그들 밑이 아니었다.
첫 번째 부딪침에서 자신의 손이 밀려났다. 기이한 반탄력 때문이었다.
좌소천은 연이어 세 번의 주먹질을 하고 나서야 상대의 손에 실린 반탄력을 완화시키고, 두 손을 엇갈려 쳐내며 반격을 가했다.
쾅!
건곤합일에 습격자의 몸이 이 장 밖으로 튕겨졌다.
좌소천은 훌훌 날아 내려서는 상대를 향해 두 손을 느릿하니 내밀었다.
후웅!
순간, 어둠이 그의 두 주먹 사이로 빨려 들어갔다.
건곤합일의 극치, 건곤통천이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용돌이처럼 휘도는 어둠이 묵빛으로 변하고, 어느 순간 두 주먹이 사라졌다!
“허엇!”
두 번째 공격을 하려던 습격자의 입에서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상대의 주먹은 보이지도 않는데, 온몸을 짓이겨 버릴 것 같은 가공할 압력이 밀려든다.
숨이 턱 막힌다.
주먹을 들어 대항하고 싶은데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장 상대의 주먹이 자신의 심장을 부숴 버릴 것만 같다.
습격자는 이를 악물고 전신 공력을 다 끌어올렸다.
행여나 하는 생각에 팔성의 공력만 썼거늘, 모든 것이 기우였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었다.
‘제기랄! 이렇게 강하다니!’
그는 전 공력이 실린 쌍수를 내밀어 천강무령수를 펼쳤다.
좌소천과 습격자의 기운이 정면으로 부딪친 순간!
퍽!
쇠가죽으로 된 거대한 북이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허공이 뻥 뚫렸다.
“헉!”
주르륵, 뒤로 물러선 습격자의 입에서 거친 신음이 흘러나왔다.
좌소천은 두 걸음 물러서서 습격자를 바라보았다.
“호운, 제법인데?”
습격자는 급히 얼굴로 손을 올리고는, 얼굴을 가린 천이 그대로 있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난 줄 알았어?”
“몇 년 못 봤다고 네 눈빛을 몰라볼 줄 알았냐?”
“제기랄!”
습격자, 혁련호운은 좌소천의 말에 얼굴을 가린 천을 거칠게 잡아뗐다.
좌소천은 그를 바라보며 잔잔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호랑이냐?”
“뭔 소리야?”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고 하지 않냐. 그런데 널 생각하고 있을 때 네가 나타났으니 네가 곧 호랑이일 수밖에.”
혁련호운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왜 날 생각한 거지?”
“보고 싶었으니까.”
“왜?”
단순히 궁금해서 묻는 것이 아니다. 기분이 좋아 묻는 것도 아니다.
아버지와 큰형을 쫓아내고 제천신궁을 차지한 좌소천이 아닌가?
그런 좌소천이 자신을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 혁련호운에게는 이중적으로 느껴진 것이다.
“차지할 것 다 차지하고 나니까, 여흥거리가 필요했던 거야?”
그래선지 혁련호운의 말투에 날이 섰다.
좌소천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제천신궁을 차지했는지 알아?”
혁련호운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신이 신양에 도착한 것은 사흘 전이었다.
신양에 들어가자마자 상황을 알아보았다.
오래 걸릴 것도 없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옆에서 보았던 것처럼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으니까.
아버지와 형이 물러났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좌소천이 제천신궁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어김없는 사실이었다.
소문은 결코 자신이 원했던 것처럼 헛소문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었다. 천하제일을 자랑하던 세력의 주인이 하루아침에 바뀌다니.
그런데 자신을 충격에 빠뜨린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왜 수하들에게 신망을 잃었는지, 좌소천이 어떻게 제천무제의 아성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안 순간, 허탈감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화를 내고, 분노해서 좌소천을 찾아가야 하는데 이상하게 화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신양에서 더 보내고 몰래 아버지를 찾아가 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